“제가 돌아가야 한다면요?” 유진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저희는 명령을 따를 뿐이니 저희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십시오.”윤조는 꼿꼿하게 선 채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의 뒤에는 수백 명의 은갑병이 비장하게 서 있었다.기세를 봐서 유진우가 제 발로 가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세자 전하,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죠. 친구 한 명 더 사귀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이청성이 유진우를 툭 건드리며 귀띔했다.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기에 졸리고 피곤해도 참고 견뎌야 했다.대황자의 거처에 갔으면서 이황자에게 가지 않으면 그의 체면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이황자의 강압적인 성격을 봐선 아무런 패악질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그래요. 그럼 윤 장군이 길을 안내하세요.”유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더 반기를 들지 않았다.통쾌하게 거절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후에 끊이지 않는 문제가 생길 거다.“감사합니다, 세자 전하! 가시죠.”윤조는 비켜서서 정중하게 유진우와 이청성을 차로 에스코트했다.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차는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 입구에 멈췄다.대황자 저택의 화려함에 비하면 이황자 저택은 훨씬 더 위엄이 있었다.전쟁의 신 동상, 무술 경기장, 무기가 전시된 무기고까지 있었다.유진우 일행은 차에서 내려 윤조를 따라 들어갔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군사들이 끊임없이 늘어져 있어서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많은 장벽을 통과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대청에 도착했다.그 시각 대청 안에서는 갑옷을 입은 여러 장군이 한 젊은 남자와 군사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서 왕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이황자 이광우였다!이광우는 유진우와 이청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우리 장혁 군과 청성이가 이렇게 와줘서 너무 기쁘네요.”“이황자님을 뵙습니다.”이청성이 허리를
유진우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이광우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장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나는 무인이라 전장에서 상대를 죽일 순 있어도 권모술수에는 능하지 못해요. 특히 소식을 접하는 건 큰형님보다 훨씬 뒤떨어지죠. 그래서 많은 걸 다 알지는 못해요.”“그렇군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사실 폐하와 대황자님께서는 별다른 일 없이 그저 오랜만에 담소나 나누려고 저를 부른 겁니다.”이 말이 나오자 이광우는 다소 불쾌한 듯 눈꼬리가 씰룩거렸다.옆에 있던 수염 난 장군이 발끈하며 호통을 쳤다.“이봐! 그게 무슨 뜻이지? 한밤중에 담소를 나눠? 우리 전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내가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금방이라도 칼을 빼 들고 공격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무엄하다!”이광우는 그를 노려보더니 화를 내며 꾸짖었다.“장혁은 서경 세자이고 더구나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니 예의를 갖춰야지!”“전하! 이 자식이 전하를 우습게 보고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으니 한바탕 두들겨 맞아야 바른대로 고할 것 같습니다.”수염 난 장군이 목소리를 높였다.“닥쳐라!”이광우는 격분하여 그의 얼굴을 거칠게 때리면서 소리쳤다.“또다시 무모한 짓을 하면 군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흠!”수염 난 장군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엔 잠자코 있었다.유진우를 노려보는 한 쌍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엔 악의가 넘쳐났다.“장혁,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부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무례를 범했네요. 용서해 주세요.”이광우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솔직하게 말을 뱉는 걸 보니 성품이 올곧은 분인가 봅니다. 이해하죠.”유진우가 무심하게 말했다.“장혁, 우리가 남도 아닌데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이광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버지와 형님이 밤늦게 차를 마시고 수다나 떨자고 부르지는 않았겠죠. 분명 중요하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 하나는 분명하게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게
“이황자님...”이청성이 그 상황을 보고 도와주려고 입을 열려는데 유진우가 앞장서서 말했다.“전하의 호의를 받지 않는 것도 무례이니 이 보물은 제가 다 가져가겠습니다.”“엥?”이청성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입가에 차오른 말을 삼켰다.‘뭐지, 도대체 이놈은 무슨 꿍꿍이인 걸까?’처음에는 이성민의 부탁을 받아들여 은밀히 도와주겠다더니, 이제는 이광우의 보물을 마다하지 않는다.‘어엿한 서경 세자가 이렇듯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고?’“하하하... 좋아요! 아주 통쾌하네요!”유진우가 받아주자 이광우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여봐라, 얼른 이 보물들을 다 포장해서 장혁 군의 집으로 보내거라!”“선물 감사합니다, 전하!”유진우가 허리를 굽혔다.“이젠 형제인데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이광우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그런데 오늘 밤 아버지가 밀담을 나눌 때 따로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나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머뭇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광우는 금방 눈치를 채고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다들 물러가. 나와 장혁 군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네!”사람들이 대답하며 뿔뿔이 자리를 떠났다.“청성아, 잠시 가서 쉬어라.”이광우가 이청성을 돌아보았다.“네.” 이청성은 유진우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나갔다.“장혁, 여기 더 이상 외부인이 없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 봐요.” 이광우의 말에 유진우는 대청 문을 닫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스럽게 말했다.“전하, 사실 폐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비밀을 말씀해 주셨는데 나라에 관한 일이고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 절대 누설하시면 안 됩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비밀 지킬게요.”이광우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유진우가 아버지와 형과 비밀리에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지 못했다.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밀담이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결정할 관건이라는 것뿐
이광우는 유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에는 열정과 기대가 가득했다.원래 유진우는 단순히 유장혁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를 끌어내려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관우가 예상외로 유장혁이 황제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다시 말해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에 있어 유장혁이 절반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이 사실에 이광우는 속으로 미칠 듯한 기쁨을 느꼈다.“전하께서는 용맹하시고 여러 차례 공을 세우셨으니 당연히 가장 적합한 황태자 후보이십니다. 다만 최종 결정권은 결국 폐하에게 있으니 저는 그저 한 가지 조언을 드린 것에 불과합니다.”유진우가 차분히 말했다.“괜찮습니다. 도련님께서 전적으로 저를 지지해 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이광우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환히 웃었다.“전하께서 이렇게 넉넉하게 대하시고 또 저와 의기투합하셨으니 당연히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시기를 지원하겠습니다.”유진우가 말했다.“좋습니다! 도련님의 말씀이면 저는 안심이 됩니다.”이광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장혁 도련님, 오늘부터 당신은 저의 친형제와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전하, 감사드립니다.”유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여기 술을 좀 가져오라!”이광우는 크게 외치며 시종들에게 술을 가져오게 했다. 이어 술잔을 들고 화끈하게 마시며 축하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전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늘 하루 긴 여정으로 정말 피곤하여 혹시 먼저 돌아가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석 잔의 술을 마신 유진우는 결단력 있게 말했다.“물론이죠. 당신도 하루 종일 수고하셨으니 푹 쉬셔야죠.”이광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에게 외쳤다.“세자 전하를 안전히 집으로 모셔다드리거라!”“전하, 이제 저는 물러가겠습니다.”유진우는 예를 다해 인사한 뒤 이청성과 함께 저택을 떠났다.오늘 밤 이 여정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성과를 거
“이런 계획을 하고 있었군요.”이청성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깨달음을 얻었다.그녀는 유진우의 행동을 대체로 이해하게 되었다.유진우가 말한 대로 두 황자가 밤중에 초대했을 때 직접 거절하면 분명히 사람들을 화나게 할 것이고 결국 얻을 것 없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반대로 양쪽 모두 잘 다루어서 두 황자를 기쁘게 하면 혜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붉히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표면적으로 보면 탐욕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유진우의 방식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어차피 공정하게 양쪽 모두를 다루면 어느 쪽도 원망하지 않게 된다.“어쩔 수 없잖아요. 나도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이런 보물들을 받지 않을 거예요. 이건 다 쌍날검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무거운 책임이기도 해요. 큰 그림을 위해선 난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입가에 미소를 좀 거두고 말해요.”이청성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유진우, 점점 더 뻔뻔해지네. 이득을 보고는 오히려 얌전한 척하다니.’“공주님, 저는 독식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상자 안의 보물들 마음대로 고르세요. 마음에 드는 걸 바로 가져가세요.”유진우는 아주 호탕하게 말했다.“흥! 그래야죠.”이청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하룻밤을 함께 보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생비를 받아야지.’“공주님, 저는 차에서 잠깐 쉬겠습니다. 도착하면 불러주세요. 정말로 버틸 수가 없네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을 할 힘도 없어서 한 마디 남기고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차가 갑자기 멈췄다.관성에 의해 유진우의 몸이 앞으로 쓰러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이청성이 재빠르게 반응하여 여린 손을 뻗어 유진우의 머리를 받쳐서 가까이 가지 않도록 했다.“무슨 일이에요? 벌써 집에 도착한 건가요?”유진우는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다. 원래 쌍꺼풀은 세 겹으로 늘어나며 떨리고 있었다.그
“하아...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유진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온몸 구석구석에 피로가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잠 한 번 제대로 자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이군요!”둘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는 품격 있는 자태에 온화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미소를 짓는 모습은 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졌다.그는 바로 용국의 삼 황자 이군호였다.“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갈수록 멋져지시는군요!”이군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어릴 적 함께 사냥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활쏘기 실력은 유장혁님에 비할 바가 못 되었죠.”“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유진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인사했다.“오라버니, 평안하시옵니까.”이청성이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응? 공주도 있었군요. 잘됐습니다. 유장혁 님과 함께 저희 저택에서 쉬어 가시지요.”이군호는 다정한 미소를 띠며 초대했다.“전하, 소인은 집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오늘은 사양하고자 합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습니다.”유진우는 공손히 거절하며 말했다.평소라면 돈을 마다할 리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잠이 절실했다.“유진우 님, 무슨 일이 그리 급하신가요? 혹시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군호는 미소를 유지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제가 이 연경에서 비록 천하를 호령하지는 못하더라도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소인의 일을 어찌 감히 전하께 폐를 끼치겠습니까?”유진우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거절했다.“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이
당연히 유진우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과 달리 이군호와 이청성은 품위 있게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을 즐겼다.한 시간이 지나 유진우는 마침내 배를 채웠다.평소 평평하던 복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만족스러움을 느꼈다.“꺽!”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유진우는 길게 트림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잠을 푹 자면 완벽할 것이다.‘잠깐 왜 이렇게 갑자기 졸리지?’음식을 먹을수록 더 졸려지는 느낌이었다.“유진우님,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요?”이군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두 귀한 진미여서 입이 호강했네요.”유진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프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진짜로 맛있었다.“다행입니다.”이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유진우님, 한밤중에 쉬지도 않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밤엔 큰 사건들이 많아 자금성 안팎에 검문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조금 전에 둘째 황자 전하의 저택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유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솔직하게 대답했다.귀찮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게 우선이었다.“오호?”이군호는 일부러 놀라는 척하며 물었다.“한밤중에 둘째 황자 저택에 간 이유가 있습니까?”“폐하께서 황태자 문제를 고민 중이시라 둘째 황자께서 심야에 저를 불러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황태자 말입니까?”이군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급히 물었다.“혹시 아바마마께서 둘째 형을 태자로 세우시려는 건가요?”“그건 아닙니다.”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폐하께서는 세 분 황자님 각자의 장점을 인정하시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하셨던 거죠.”“오호? 그렇다면 유진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 형제 중 누가 태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제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
“에이! 장혁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당신은 한때 천하를 뒤흔들었던 천재 아닙니까? 몇 년간 칩거하셨다 해도 여전히 비범합니다.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이군호는 유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형님처럼 굴었다.유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이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돈이 부족하단 거야. 만약 당신이 형제들처럼 통 크게 나섰더라면 내가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을 거다.’비록 속으로는 이군호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하께서 과찬입니다. 제 미천한 명성이 전하와 어찌 비교되겠습니까? 비할 바가 못 됩니다.”“장혁님, 저와 협력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죠.”이군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황자 중에서도 제가 황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유진우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신다면 이는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겁니다. 저를 지지하는 건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줄 투자입니다.”“그건...”유진우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가 눈치를 챘을 테고 금품이나 보상을 제안하며 설득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군호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홀로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기다릴 뿐이었다.이군호의 눈에 유진우는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든 결국 신하일 뿐이었다.그는 신하라면 신하로서의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황자로서 유능한 사람에게 겸손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고 믿는 듯했다.‘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청성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세자 전하의 지지를 얻으시려면 뭔가 보답할 만한 것을 내놓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성의가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이 말을 듣자 이군호는 마치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이고 보십시오! 제가 깜빡했군요. 중요하게 걸 잊어버릴 뻔했습니다.”그는 품에서 옥 펜
하여 그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하하하...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제갈영군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비웃었다.“그래.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제갈영군은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휙.금빛 광선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펑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터져버렸다.잠시 후 머나먼 길 끝에서 갑자기 일사불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고 리듬이 빠르면서도 동일했다.노정한과 하원휘는 발밑의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땅의 진동은 더욱 강해졌다.노정한과 하원휘는 움찔하더니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칠흑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거리를 전부 덮고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말... 말도 안 돼.”눈앞에 빽빽하게 서 있는 병사를 본 순간 노정한과 하원휘는 멍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행을 바랐고 제갈영군이 겁을 주기 위해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기가 죽어버렸다.그들의 십만 대군이 성문을 지키고 있어서 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외부 군대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군대가 나타났다는 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바로 그들의 십만 대군이 정말로 항복했다는 것이다.제갈영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들이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이었다.“노정한, 하원휘, 너희들이 지금 본 건 단지 일부야. 우리 동맹에는 세 개의 군대가 더 있고 세 제후가 이끌고 각각 세 방향에서 왕부를 향해 빠르게 진격하고 있어. 내 예측이 맞다면 이미 왕부에 가까워졌고 어쩌면 너희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몰라. 너희는 이미 사방으로 포위됐어. 항복하지 않는다면 전멸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래서 아까 이미 대세가 기울었고 다시 역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 거야.”제갈영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을 쿡쿡 찌르는 그의 말에 두 사람은 얼굴이 다 창백
제갈영군의 말에 노정한과 하원휘는 충격에 빠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하원휘가 단호하게 부인했다.“우리 십만 대군은 장비도 잘 갖춰져 있고 훈련도 잘되어 있는데 항복한다는 게 말이 돼?”“맞아.”노정한도 전혀 믿지 않고 소리쳤다.“설령 남쪽 4대 제후의 군대를 모두 합친다고 해도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우리 십만 대군을 무너뜨릴 수 있겠어? 지금 우리한테 겁주려고 과장한 게 분명해.”남쪽 4대 제후의 총 군사력은 20~30만 명에 불과했다. 전부 동원한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10만 대군을 이길 수 없었다.그들의 대군은 이미 많은 방어 시설을 구축해 놓았기에 두세 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하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게다가 남쪽 4대 제후의 군대를 전부 동원하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일부는 도시를 지켜야 했다.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이기는 건 더욱 어려웠다.“정면 돌파는 당연히 불가능하지.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제갈영군이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장교들은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어. 만약 그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우리가 장교들의 친척이나 친구들을 군영에 데려와 설득한다면 결과가 어떨지 한번 예상해볼래?”그 말을 들은 순간 노정한과 하원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사실 그들이 왕성을 포위한 것 자체가 명분 없는 행동이었다. 비록 왕실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수많은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반역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군 내부에서도 이미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단지 군령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불안감의 씨앗은 이미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만약 속전속결로 대장군을 왕위에 올리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특히 방금 제갈영군이 말한 것처럼 장교들의 친척이나 친구를 데려
이런 말로 일반 백성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제갈영군의 앞에서 이 수작을 부리는 건 그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제갈영군, 여기까지 온 이상 숨길 필요도 없을 것 같으니까 솔직하게 얘기할게.”하원휘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위왕님께서 돌아가신 지금 위왕 자리가 비었어. 무릉 제후는 누가 새로운 서경왕이 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제갈영군이 차갑게 웃었다.“무릉 제후도 잘 알 텐데. 새로운 왕이 될만한 가장 적합한 분이 표기 대장군 유태범이라는 걸.”하원휘가 고개를 쳐들고 말을 이었다.“대장군님께서 서경왕이 되셔야 우린 더 나은 발전과 더 많은 영토, 그리고 더 많은 군사를 가질 수 있어. 이게 지금 대세고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야. 무릉 제후는 현명한 사람이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 거라 믿어.”“나더러 너희들 편에 서라는 건가?”제갈영군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그래.”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대장군님께서는 그동안 세운 공이 많고 권력을 쥐고 있으며 능력까지 뛰어나 서경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 부족함이 없어. 좋은 새는 좋은 나무를 택하고 현명한 신하는 현명한 군주를 섬긴다고 하잖아. 대장군을 따른다면 앞날이 무궁무진한 건 물론이고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어.”“맞아, 무릉 제후. 우린 조정의 신하로서 서로 원한도 없잖아. 현명한 왕을 섬긴다면 우린 분명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야.”노정한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들어보니 나쁘지 않군.”제갈영군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렇다면 제안에 동의한다는 건가?”하원휘는 제갈영군을 설득한 줄 알고 두 눈이 다 반짝였다.“무릉 제후가 무공이 뛰어나니 우리를 위해 저 자객을 처리해 준다면 대장군님께 좋게 얘기해줄게.”노정한이 유진우를 가리키며 말했다.“잠깐. 내가 언제 동의한다고 했어?”제갈영군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난 충신이야. 너희들 같은 배신자들과는 다르다고. 그러니까 너희들의 그 더러
유진우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살기등등하게 서 있었다.원래 검은색이었던 옷은 이미 핏빛으로 물들어 검붉게 변해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창궁검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가볍게 울렸는데 언제라도 공격할 태세였다.“X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앞을 막아선 유진우를 본 순간 노정한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친위대가 시간을 조금 더 끌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객이 벌써 포위망을 뚫고 추격해왔을 줄은 몰랐다.“진퇴양난이네. 큰일 났어, 이제.”하원휘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들은 지금 고립된 상태였고 두 강자의 협공 앞에서 저항할 여지가 없었다.제갈영군은 그나마 신분 때문에 함부로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객은 달랐다. 조금 전 학살을 벌이던 장면을 그들은 모두 똑똑히 봤다. 반항했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노 제후님, 이제 어떡하죠?”하원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노정한이 한숨을 쉬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이미 궁지에 몰렸으니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다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죠.”“항복?”하원휘가 미간을 찌푸렸다.“제후님, 우린 반역죄를 저질렀어요. 항복하면 가볍게는 가산을 몰수당하고 유배를 떠나겠지만 심할 경우 사람들 앞에서 참수를 당할 수 있어요. 결과가 어떻든 우리 인생은 끝장난다고요.”“저도 당연히 알고 있죠. 근데 지금 다른 선택이 없지 않습니까.”노정한은 앞쪽에 살기등등한 기세로 서 있는 유진우와 뒤쪽에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는 제갈영군을 번갈아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항복하는 게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요. 게다가 대장군님께서 아직 나서지 않으셨으니 우리가 살아있으면 다시 역전할 기회도 있을 겁니다.”그 소리에 하원휘가 눈을 번뜩였다.“그렇네요. 우리한테는 아직 대장군님이 있어요. 아직 진 게 아니네요.”“항복합시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잠시 참고 견디자고요.”노정한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노정한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했다.다행히 친위대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자객이 공격할 때까지 계속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들도 진승민과 강윤기처럼 생포 당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목숨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너무 이상합니다. 왕부에 언제부터 이렇게 강한 사람이 있었죠?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조차도 그 사람을 막지 못했어요.”하원휘는 고민에 잠긴 듯 얼굴을 찌푸렸다.그들의 조사에 따르면 왕부에는 석태혁과 홍복홍이라는 두 강자뿐이었다.홍복홍은 이미 유태범의 손에 잡혔고 석태혁도 조금 전 모습을 드러냈다. 왕부에 정예 부대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그들이 예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자객은 예상 밖이었다. 단순한 자객이라면 몰라도 문제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수많은 군사를 뚫고 쉽게 우두머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였다.이런 무서운 압박감은 홍복홍이나 석태혁에게서는 절대 받을 수 없었다.자객은 그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돼버렸다.“이 일 빨리 대장군님께 보고하는 게 좋겠어요. 자객의 실력이 강해서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작전을 실행한다면 방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노정한이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맞습니다. 지금 당장 대장군님께 직접 군대를 이끌고 진압하러 오시라고 연락해.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객을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몰라.”하원휘가 진지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조수석에 앉은 한 장교가 전화를 꺼내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끼익.그런데 그때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면서 자국 네 줄을 길게 남겼다.차 안에 있던 노정한과 하원휘는 몸이 앞으로 쏠린 나머지 머리를 앞 좌석 등받이에 부딪히고 말았다.“무슨 일이야? 왜 멈췄어?”노정한이 머리를 어루만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제후님, 앞에 누군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운전하던 장교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두 사람이 눈을 크
유진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적을 잡으려면 먼저 우두머리를 잡아야 했다.쌍방이 전투를 시작할 때 먼저 유천우와 유만군이 대부분의 병사를 유인하도록 했다. 그다음 유진우가 틈을 타 적진에 침입하여 4대 제후를 생포하는 것이었다.그의 실력으로 수만 대군을 모두 죽일 수는 없지만 대군 중에서 우두머리의 머리를 베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4대 제후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진우는 맨 처음 적진에 침입할 때 실력 대부분을 숨기고 약한 척했다. 진승민과 강윤기 주변의 친위대가 떨어져 나간 순간 갑자기 실력을 폭발시켜 단숨에 두 사람을 잡았다.이제 진승민과 강윤기는 붙잡혔고 남은 건 노정한과 하원휘뿐이었다. 마지막 두 제후만 처리하면 왕부 밖의 대군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다.“이제 너희 차례다.”유진우는 눈빛을 번뜩이며 두 제후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어서 저놈을 막아라.”“여봐라. 절대 저놈이 가까이 오게 해선 안 된다.”노정한과 하원휘는 겁에 질려 연신 소리쳤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들은 그동안 전장에서 수많은 적을 홀로 상대하는 자를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강한 무사라도 포위되면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 자객은 달랐다.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강해졌고 피로한 기색조차 전혀 없었다.수만 대군이 한 사람을 막지 못하다니 실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서경의 검선 백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왕부에 언제 이런 고수가 나타난 것일까?“제후님을 지켜라.”공격해오는 유진우를 아무도 막지 못하자 두 제후의 친위대는 즉시 방어 진형을 만들고 유진우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자객을 죽일 자신이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제후가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밖에 없었다.“제후님, 그만 보시고 빨리 차에 타십시오.”몇 명의 측근 장교들이 노정한과 하원휘를 차에 태웠다.왕부를 포위할 때 근처의 모든 거리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차량이 거침없
그러다가 친위대가 완전히 모이자 자객은 갑자기 놀라운 실력을 드러냈다.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친위대를 유인하여 주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더 쉽게 암살하기 위해서였다.“X발, 정말 간사하고 교활한 놈이군. 어서 철수해.”친위대가 제때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안 진승민은 그제야 당황하며 옆에 있는 장교들과 함께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최적의 철수 시기를 놓쳤다.자객의 공격 속도는 그들의 철수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단 2분 만에 양측의 거리는 20m도 채 남지 않았다.“제후님, 저희가 자객을 막을 테니 먼저 피하십시오.”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몇 명의 장교들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X발, 절대 가만 안 둬!”강윤기가 분노를 터트리면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강 제후님, 흥분하면 안 됩니다.”진승민이 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앞으로 달려나간 강윤기가 자객의 목을 베려던 순간 자객이 검날을 덥석 잡더니 강윤기의 어깨를 찔러버렸다.“너 대체 누구야?”강윤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자객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강윤기의 옷깃을 잡고 하늘로 내던졌다.휙.강윤기는 마치 발사된 포탄처럼 수백 미터 날아가 왕부 대문을 넘은 후 마당에 떨어졌다.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강윤기의 몸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강윤기.”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의진은 급히 몸을 돌려 검을 강윤기의 목에 겨누고 외쳤다.“지금 당장 병사들한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왕부 밖.강윤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진승민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자객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알았다면 노정한과 하원휘처럼 빨리 도망쳤을 것이다.
하원휘는 매우 현명했다. 자객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친위대를 지휘하여 뒤로 물러섰다.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고 자객을 잠시 피했다가 체력이 고갈될 때 대군들이 포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진 제후님, 하 제후님 말이 맞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니 저도 뒤로 가서 잠시 피해있겠습니다.”하원휘가 철수하자 노정한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흥, 겁쟁이들.”진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냈다가 강윤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 제후님은 용맹한 분이니 저 두 분처럼 겁먹고 물러나지는 않겠죠?”“당연히 물러나지 않죠.”강윤기가 몸을 풀면서 싸늘하게 웃었다.“자객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제후가 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았다. 큰 전투도 겪은 그가 작은 자객 하나에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객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진승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진을 치고 자객을 잡아라.”“알겠습니다.”그의 말에 친위대 수백 명이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공격하려 했다.“자객을 잡아라.”강윤기도 지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지휘하며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친위대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혼자서 백 명을 손쉽게 해결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했다.자객의 실력이 대단하긴 해도 수많은 병사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아직 진짜 정예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친위대가 투입되면 지금처럼 휘젓고 다니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아니나 다를까 두 제후의 친위대가 투입되자 자객의 돌격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친위대는 실력, 장비, 전투 경험 모두 일반 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고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다.또한 일반 병사는 일반 철 갑옷을 입었으나
옆에 있던 하원휘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기 좀 봐요. 저게 대체 뭔가요?”사람들이 하원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내려오더니 대군들 속에 떨어졌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먼지가 피어올랐다.강력한 충격파는 마치 해일처럼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나가떨어졌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단 한 번의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X발, 대체 뭐야?”진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방금 떨어진 게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혹시 운석 조각 같은 건 아닐까요?”노정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고요?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강윤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제가 봤어요. 사람이었어요.”눈치 빠른 하원휘가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4대 제후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그 사람은 검은 검을 들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무장병사들은 그의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객이다. 어서 막아라!”하원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군사를 모아 갑자기 튀어나온 자객을 공격하려 했다.“흥,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우리한테는 대군이 수만 명이 있어요. 저자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많은 병사를 뚫고 우리의 목을 벤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진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은 암살로 우두머리를 제거했다.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