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돌아가야 한다면요?” 유진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저희는 명령을 따를 뿐이니 저희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십시오.”윤조는 꼿꼿하게 선 채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의 뒤에는 수백 명의 은갑병이 비장하게 서 있었다.기세를 봐서 유진우가 제 발로 가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세자 전하,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죠. 친구 한 명 더 사귀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이청성이 유진우를 툭 건드리며 귀띔했다.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기에 졸리고 피곤해도 참고 견뎌야 했다.대황자의 거처에 갔으면서 이황자에게 가지 않으면 그의 체면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이황자의 강압적인 성격을 봐선 아무런 패악질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그래요. 그럼 윤 장군이 길을 안내하세요.”유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더 반기를 들지 않았다.통쾌하게 거절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후에 끊이지 않는 문제가 생길 거다.“감사합니다, 세자 전하! 가시죠.”윤조는 비켜서서 정중하게 유진우와 이청성을 차로 에스코트했다.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차는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 입구에 멈췄다.대황자 저택의 화려함에 비하면 이황자 저택은 훨씬 더 위엄이 있었다.전쟁의 신 동상, 무술 경기장, 무기가 전시된 무기고까지 있었다.유진우 일행은 차에서 내려 윤조를 따라 들어갔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군사들이 끊임없이 늘어져 있어서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많은 장벽을 통과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대청에 도착했다.그 시각 대청 안에서는 갑옷을 입은 여러 장군이 한 젊은 남자와 군사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서 왕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이황자 이광우였다!이광우는 유진우와 이청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우리 장혁 군과 청성이가 이렇게 와줘서 너무 기쁘네요.”“이황자님을 뵙습니다.”이청성이 허리를
유진우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이광우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장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나는 무인이라 전장에서 상대를 죽일 순 있어도 권모술수에는 능하지 못해요. 특히 소식을 접하는 건 큰형님보다 훨씬 뒤떨어지죠. 그래서 많은 걸 다 알지는 못해요.”“그렇군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사실 폐하와 대황자님께서는 별다른 일 없이 그저 오랜만에 담소나 나누려고 저를 부른 겁니다.”이 말이 나오자 이광우는 다소 불쾌한 듯 눈꼬리가 씰룩거렸다.옆에 있던 수염 난 장군이 발끈하며 호통을 쳤다.“이봐! 그게 무슨 뜻이지? 한밤중에 담소를 나눠? 우리 전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내가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금방이라도 칼을 빼 들고 공격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무엄하다!”이광우는 그를 노려보더니 화를 내며 꾸짖었다.“장혁은 서경 세자이고 더구나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니 예의를 갖춰야지!”“전하! 이 자식이 전하를 우습게 보고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으니 한바탕 두들겨 맞아야 바른대로 고할 것 같습니다.”수염 난 장군이 목소리를 높였다.“닥쳐라!”이광우는 격분하여 그의 얼굴을 거칠게 때리면서 소리쳤다.“또다시 무모한 짓을 하면 군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흠!”수염 난 장군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엔 잠자코 있었다.유진우를 노려보는 한 쌍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엔 악의가 넘쳐났다.“장혁,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부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무례를 범했네요. 용서해 주세요.”이광우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솔직하게 말을 뱉는 걸 보니 성품이 올곧은 분인가 봅니다. 이해하죠.”유진우가 무심하게 말했다.“장혁, 우리가 남도 아닌데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이광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버지와 형님이 밤늦게 차를 마시고 수다나 떨자고 부르지는 않았겠죠. 분명 중요하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 하나는 분명하게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게
“이황자님...”이청성이 그 상황을 보고 도와주려고 입을 열려는데 유진우가 앞장서서 말했다.“전하의 호의를 받지 않는 것도 무례이니 이 보물은 제가 다 가져가겠습니다.”“엥?”이청성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입가에 차오른 말을 삼켰다.‘뭐지, 도대체 이놈은 무슨 꿍꿍이인 걸까?’처음에는 이성민의 부탁을 받아들여 은밀히 도와주겠다더니, 이제는 이광우의 보물을 마다하지 않는다.‘어엿한 서경 세자가 이렇듯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고?’“하하하... 좋아요! 아주 통쾌하네요!”유진우가 받아주자 이광우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여봐라, 얼른 이 보물들을 다 포장해서 장혁 군의 집으로 보내거라!”“선물 감사합니다, 전하!”유진우가 허리를 굽혔다.“이젠 형제인데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이광우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그런데 오늘 밤 아버지가 밀담을 나눌 때 따로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나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머뭇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광우는 금방 눈치를 채고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다들 물러가. 나와 장혁 군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네!”사람들이 대답하며 뿔뿔이 자리를 떠났다.“청성아, 잠시 가서 쉬어라.”이광우가 이청성을 돌아보았다.“네.” 이청성은 유진우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나갔다.“장혁, 여기 더 이상 외부인이 없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 봐요.” 이광우의 말에 유진우는 대청 문을 닫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스럽게 말했다.“전하, 사실 폐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비밀을 말씀해 주셨는데 나라에 관한 일이고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 절대 누설하시면 안 됩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비밀 지킬게요.”이광우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유진우가 아버지와 형과 비밀리에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지 못했다.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밀담이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결정할 관건이라는 것뿐
이광우는 유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에는 열정과 기대가 가득했다.원래 유진우는 단순히 유장혁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를 끌어내려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관우가 예상외로 유장혁이 황제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다시 말해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에 있어 유장혁이 절반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이 사실에 이광우는 속으로 미칠 듯한 기쁨을 느꼈다.“전하께서는 용맹하시고 여러 차례 공을 세우셨으니 당연히 가장 적합한 황태자 후보이십니다. 다만 최종 결정권은 결국 폐하에게 있으니 저는 그저 한 가지 조언을 드린 것에 불과합니다.”유진우가 차분히 말했다.“괜찮습니다. 도련님께서 전적으로 저를 지지해 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이광우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환히 웃었다.“전하께서 이렇게 넉넉하게 대하시고 또 저와 의기투합하셨으니 당연히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시기를 지원하겠습니다.”유진우가 말했다.“좋습니다! 도련님의 말씀이면 저는 안심이 됩니다.”이광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장혁 도련님, 오늘부터 당신은 저의 친형제와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전하, 감사드립니다.”유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여기 술을 좀 가져오라!”이광우는 크게 외치며 시종들에게 술을 가져오게 했다. 이어 술잔을 들고 화끈하게 마시며 축하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전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늘 하루 긴 여정으로 정말 피곤하여 혹시 먼저 돌아가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석 잔의 술을 마신 유진우는 결단력 있게 말했다.“물론이죠. 당신도 하루 종일 수고하셨으니 푹 쉬셔야죠.”이광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에게 외쳤다.“세자 전하를 안전히 집으로 모셔다드리거라!”“전하, 이제 저는 물러가겠습니다.”유진우는 예를 다해 인사한 뒤 이청성과 함께 저택을 떠났다.오늘 밤 이 여정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성과를 거
“이런 계획을 하고 있었군요.”이청성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깨달음을 얻었다.그녀는 유진우의 행동을 대체로 이해하게 되었다.유진우가 말한 대로 두 황자가 밤중에 초대했을 때 직접 거절하면 분명히 사람들을 화나게 할 것이고 결국 얻을 것 없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반대로 양쪽 모두 잘 다루어서 두 황자를 기쁘게 하면 혜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붉히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표면적으로 보면 탐욕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유진우의 방식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어차피 공정하게 양쪽 모두를 다루면 어느 쪽도 원망하지 않게 된다.“어쩔 수 없잖아요. 나도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이런 보물들을 받지 않을 거예요. 이건 다 쌍날검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무거운 책임이기도 해요. 큰 그림을 위해선 난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입가에 미소를 좀 거두고 말해요.”이청성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유진우, 점점 더 뻔뻔해지네. 이득을 보고는 오히려 얌전한 척하다니.’“공주님, 저는 독식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상자 안의 보물들 마음대로 고르세요. 마음에 드는 걸 바로 가져가세요.”유진우는 아주 호탕하게 말했다.“흥! 그래야죠.”이청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하룻밤을 함께 보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생비를 받아야지.’“공주님, 저는 차에서 잠깐 쉬겠습니다. 도착하면 불러주세요. 정말로 버틸 수가 없네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을 할 힘도 없어서 한 마디 남기고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차가 갑자기 멈췄다.관성에 의해 유진우의 몸이 앞으로 쓰러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이청성이 재빠르게 반응하여 여린 손을 뻗어 유진우의 머리를 받쳐서 가까이 가지 않도록 했다.“무슨 일이에요? 벌써 집에 도착한 건가요?”유진우는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다. 원래 쌍꺼풀은 세 겹으로 늘어나며 떨리고 있었다.그
“하아...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유진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온몸 구석구석에 피로가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잠 한 번 제대로 자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이군요!”둘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는 품격 있는 자태에 온화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미소를 짓는 모습은 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졌다.그는 바로 용국의 삼 황자 이군호였다.“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갈수록 멋져지시는군요!”이군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어릴 적 함께 사냥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활쏘기 실력은 유장혁님에 비할 바가 못 되었죠.”“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유진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인사했다.“오라버니, 평안하시옵니까.”이청성이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응? 공주도 있었군요. 잘됐습니다. 유장혁 님과 함께 저희 저택에서 쉬어 가시지요.”이군호는 다정한 미소를 띠며 초대했다.“전하, 소인은 집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오늘은 사양하고자 합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습니다.”유진우는 공손히 거절하며 말했다.평소라면 돈을 마다할 리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잠이 절실했다.“유진우 님, 무슨 일이 그리 급하신가요? 혹시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군호는 미소를 유지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제가 이 연경에서 비록 천하를 호령하지는 못하더라도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소인의 일을 어찌 감히 전하께 폐를 끼치겠습니까?”유진우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거절했다.“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이
당연히 유진우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과 달리 이군호와 이청성은 품위 있게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을 즐겼다.한 시간이 지나 유진우는 마침내 배를 채웠다.평소 평평하던 복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만족스러움을 느꼈다.“꺽!”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유진우는 길게 트림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잠을 푹 자면 완벽할 것이다.‘잠깐 왜 이렇게 갑자기 졸리지?’음식을 먹을수록 더 졸려지는 느낌이었다.“유진우님,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요?”이군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두 귀한 진미여서 입이 호강했네요.”유진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프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진짜로 맛있었다.“다행입니다.”이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유진우님, 한밤중에 쉬지도 않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밤엔 큰 사건들이 많아 자금성 안팎에 검문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조금 전에 둘째 황자 전하의 저택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유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솔직하게 대답했다.귀찮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게 우선이었다.“오호?”이군호는 일부러 놀라는 척하며 물었다.“한밤중에 둘째 황자 저택에 간 이유가 있습니까?”“폐하께서 황태자 문제를 고민 중이시라 둘째 황자께서 심야에 저를 불러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황태자 말입니까?”이군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급히 물었다.“혹시 아바마마께서 둘째 형을 태자로 세우시려는 건가요?”“그건 아닙니다.”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폐하께서는 세 분 황자님 각자의 장점을 인정하시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하셨던 거죠.”“오호? 그렇다면 유진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 형제 중 누가 태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제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
“에이! 장혁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당신은 한때 천하를 뒤흔들었던 천재 아닙니까? 몇 년간 칩거하셨다 해도 여전히 비범합니다.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이군호는 유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형님처럼 굴었다.유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이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돈이 부족하단 거야. 만약 당신이 형제들처럼 통 크게 나섰더라면 내가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을 거다.’비록 속으로는 이군호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하께서 과찬입니다. 제 미천한 명성이 전하와 어찌 비교되겠습니까? 비할 바가 못 됩니다.”“장혁님, 저와 협력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죠.”이군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황자 중에서도 제가 황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유진우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신다면 이는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겁니다. 저를 지지하는 건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줄 투자입니다.”“그건...”유진우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가 눈치를 챘을 테고 금품이나 보상을 제안하며 설득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군호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홀로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기다릴 뿐이었다.이군호의 눈에 유진우는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든 결국 신하일 뿐이었다.그는 신하라면 신하로서의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황자로서 유능한 사람에게 겸손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고 믿는 듯했다.‘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청성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세자 전하의 지지를 얻으시려면 뭔가 보답할 만한 것을 내놓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성의가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이 말을 듣자 이군호는 마치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이고 보십시오! 제가 깜빡했군요. 중요하게 걸 잊어버릴 뻔했습니다.”그는 품에서 옥 펜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