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됐네요. 마침 제가 직접 복수할 수 있겠네요. 송원호와 호룡각의 잔여세력들을 한 방에 없애버릴 겁니다.”유진우는 살기등등하게 말했다.“이 일은 서두르면 안 되고 멀리 봐야 해. 송원호 이 사람은 머리가 좋고 계략이 많아. 만약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어.”이성민이 근엄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그는 분노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송원호 같은 늙은 여우를 잡으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진우야, 송원호와 호룡각의 소식은 내가 항상 주의해서 봐줄게. 무슨 소식이 있기만 하면 빠르게 너한테 얘기할게.”이성민은 약속했다.“감사합니다, 폐하.”유진우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이성민은 10년 동안 와신상담하면서 반드시 거대한 세력을 모았을 것이다. 특히 호룡각이 무너지고 나서 그는 용국의 진정한 왕이 되었다.만약 이성민이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면 송원호를 잡고 호룡각을 말살시키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진우야, 만약 다른 의문이 없다면 미래에 관해 얘기해볼까?”이성민은 화제를 돌렸다.“폐하께서 무슨 말씀이신지요?”유진우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진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사실대로 말할게. 사실 나는 중병이 들어 남아있는 날이 많지 않단다.”“아바마마...”이청성은 깜짝 놀라 뭐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이성민이 그녀를 제지했다.“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이미 비밀리에 궁 안의 어의한테 보였는데 다들 속수무책이라고 해. 내가 소식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긴 했지만 얼마나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내가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이제 안정되어가고 있는 조정이 또다시 혼란이 일어날까 봐 걱정돼. 그때가 되면 불행한 것은 무고한 백성들이야. 그래서 나를 한번 도와줬으면 해.”“폐하께서는 저한테 병을 보이시려는 겁니까?”유진우가 물었다. 유진우의 실력으로는 이성민이 천인오쇠하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유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대답했다.“폐하, 저는 황자들을 본적이 없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평가를 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몰라서 괜찮아. 내가 자세하게 얘기해줄게.”이성민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내 큰아들은 성격이 듬직해.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 공부를 했고 영토를 넓히는 일에는 부족할 수 있지만, 영토를 지키는 데는 충분해. 그런데 아쉽게도 몸이 약해서 앓는 일이 많아 군주가 되기는 적합하지 않아.”마지막 말을 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의 큰아들은 성군이 될 수 있지만 그럴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예전에 용한 점쟁이한테 본 점괘에서 얘기하길 큰아들은 서른여섯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자리를 큰아들한테 넘겨준다면 힘들게 살다가 얼마를 못가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큰 황자 전하께서는 적합하지 않다면 둘째 황자 전하는요?”유진우가 되물었다.“둘째 아들은 건강하고 튼튼하지만, 너무 용맹해. 지나치게 용맹하면 누구도 눈에 들지 않게 되어 성군이라고 할 수 없어.”이성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 용맹하기는 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았고 무척 충동적이었다. 장군이 되는 건 문제없지만 제왕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셋째 황자 전하께서는 문무를 겸비하셨다고 들었는데 적합하지 않겠습니까?”유진우가 또 물었다.“그래. 많은 사람이 다 그렇게 얘기를 하지.”이성민은 한숨을 내쉬었다.“셋째는 머리가 좋고 계략도 많아. 여러모로 봤을 때 제일 적합한 후계자야. 그러나 유일하게 나를 머리 아프게 하는 점은 셋째가 그릇이 작아. 이런 사람은 좋은 군주가 될 수 없어.”셋째 아들은 문무를 겸비했지만, 속이 좁아 질투가 많고 의심이 많았다.이런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 좋아하고 나쁜 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쓰게 되고 진정한 인재는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오래도록 그렇게 나아가다가 용국은 쇠퇴하게 될 것이다.하
유진우는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이성민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호룡각이 무너지고 황실은 진정으로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호룡각의 영향으로 하여 황실의 뿌리가 단단하지 못해 황실을 대대적으로 지지하는 중간 기둥이 하나 필요했다.쉽게 보아낼 수 있다시피 이성민에게 서경왕부가 최고의 선택이었다.한편으로 서경왕부는 군대를 거느리고 조정과 지방에 모두 세력을 두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경왕부와 호룡각이 원수이므로 서경왕부와 황실의 협력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 서경왕부의 지지만 있다면 황실은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이게 바로 이성민이 그를 부른 원인이었다. 유진우에게 황권의 귀속을 결정하라는 것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얘기지만 그만큼의 진심을 보이는 것이다.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진우야, 부담가질 필요 없어.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를 선택하면 돼.”이성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폐하, 이 사안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서두를 필요 없어. 아직 내가 더 버틸 수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봐. 돌아가서 너희 아버지와 상의해도 좋아. 결정하게 되면 다시 와서 나한테 알려도 늦지 않아.”이성민이 웃으며 말했다.“폐하...”유진우는 난처해졌다. 그는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성민의 기세를 보면 거절할 기회를 줄 생각이 아니었다.“맞다, 진우야, 너 아직 혼자지?”이성민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마침 내가 좋은 상대를 하나 봐뒀어. 재능이 있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다정해서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정말 하늘이 맺어준 한 쌍 같아.”“폐하, 좋은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연이 중요한 일에서는 혼인을 맺어주거나 하는 건 필요 없을 듯싶은데요?”유진우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인연이라고 하면 두 사람은 진작에 친분이 있었어. 잘 지내는 것도 같아. 네가 마음에 들
“폐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유진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폐하께서는 여러 여자를 곁에 두는 게 당연할지 몰라도 저는 일부일처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애정 없는 결혼은 죽음과 다름없는데 저를 포함한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이청성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유진우를 바라보았다.연경 전체를 놓고 봐도 권력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곁에 여자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나머지 소수는 여자의 집안이 너무 대단해서 감히 대놓고 행동하지 못하거나 몸이 따라가지 못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였다.유장혁처럼 충분히 잘났으면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남자는 매우 드물었다.“장혁, 청성이 싫은 거냐? 아니면 얘가 너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이성민이 떠보듯 물었다. 그의 딸 이청성은 외모나 재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여자였다.당장 근처에만 해도 따라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얼마나 많은 잘난 청년들이 어떻게든 절세미인에게 다가가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지 모른다.유장혁 같은 정상적인 남자가 이렇듯 좋은 일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이청성 씨는 재능도 있고 아름다워서 그에 비해 오히려 제가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제 마음엔 이미 자리 잡은 이가 있으니 또 다른 사람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유진우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자네가 이렇게까지 일편단심일 줄은 몰랐어. 그래, 억지로 강요해봤자 소용없지. 결혼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이성민은 강요하지 않았다.음식도 천천히 음미해야 깊은 맛을 내고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나.아마도 유장혁은 아직 자기 딸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해 거절하는 것이리라.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테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감사합니다, 폐하.”유진우가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했다.“장혁, 시간이 늦었으니 가서 쉬면서 후계자 문제를 생각해 봐. 난 자네 대답을 기다리지.”
유진우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그럼 형제들 중에 누가 이 나라의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요?”“저를 떠보는 건가요?”이청성은 부드럽게 웃었다.“이것은 아바마마께서 당신에게 준 문제이니 당연히 본인 스스로 답해야죠. 저는 도와줄 방법이 없고 도와줘서도 안 돼요.”“천제감 제자답지 못하네요.”유진우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저었다.황태자 자리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인데 그 부담이 자신에게 떨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무엇보다 그가 누구를 선택하든 놀라운 권력을 거머쥔 다른 여러 황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었다.그러면 성가신 문제들이 생긴다.“서두를 필요 없어요. 아바마마께서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니 어떤 황자가 더 잠재력이 있는지, 서경왕부의 뜻에 더 부합하는지 지켜볼 수 있지 않나요?”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음... 골치 아프네요.” 유진우는 머리가 아팠다.“아, 한 가지 더 있어요.”그때 유진우가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물었다.“왜 하루 종일 베일을 쓰고 다녀요? 경국지색인데 남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거라도 있나요?”“얼굴로 성가신 일이 많아서 가리는 게 좋아요. 물론 보고 싶으면 잠깐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쪽이 볼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네요.”이청성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허허...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그쪽 얼굴 한번 못 본다고요? 웃기는 소리!”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정말 보고 싶어요?” 이청성이 다시 물었다.“물론이죠! 설마 머리 세 개 달린 메두사라도 되겠어요?”유진우는 고개를 기울였다.“좋아요, 그러면 그쪽이 직접 베일을 벗겨서 진짜 얼굴을 봐요.”이청성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본인 손으로 베일을 들어 올리고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이 누구든 그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했어요.”“네?”그 말에 방금 내밀었던 유진우의 손이 놀란 듯 금세 움츠러들었다.“됐어요, 안 볼래요. 피곤해서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요.”“한심하네요.” 이청성은 웃음을
“나리, 대황자님께선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지요?” 유진우는 모르는 척했다.“황자님께서는 세자 전하께서 연경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담소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밤 달빛이 아름다워 술 한잔을 하기에 딱 좋다고 하시네요.” 전현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나리, 다음에 뵙는 게 어떨까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네요. 다음에 제가 꼭 찾아뵙겠습니다.” 유진우가 두 손을 맞댄 채 공손하게 말했다.거짓말이 아니었다.오늘 그는 몇 차례 큰 전투를 치렀고 심각한 부상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푹 쉬고 싶었다.그런데 이청성이 먼저 찾아오더니 곧이어 이성민이 그를 소환했고 이젠 대황자까지 사람을 보냈다.숨 돌릴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세자 전하, 주인님께서 이미 술과 음식을 준비해서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세자 전하께서 피곤하시면 주인님과 먼저 만나고 저택에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전현진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다.유진우는 힘없는 얼굴로 상대방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이청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다.“대황자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술과 음식까지 다 준비했는데 얼굴은 비춰야죠. 타요. 내가 같이 가줄게요.”“감사합니다, 공주님, 세자 전하. 두 분 얼른 가시죠.”전현진은 곧바로 허리를 굽히며 안내했다.“그쪽 때문에 못 살겠네요.”유진우는 이청성을 노려보며 힘없이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지금 이 기세를 보니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거절하면 대황자의 심기를 건드려 불필요한 문제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그도 성가신 게 제일 싫었다.“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어요? 오늘 밤 대황자를 만나고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이청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럴지도 모르죠.”유진우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마차에 등을 기댄 채 흐릿한 정신으로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싸우고 있었다.감히 정말로 잠들 엄
“오라버니...”그 순간 이청성과 유진우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두 사람을 본 이문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청성아, 오랜만이야.”곧 그의 시선이 유진우에게로 향했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이쪽이 장혁인가? 10년 만에 보니 몰라보게 달라졌네. 못 알아볼 뻔했어.”“소인 대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유진우는 고개를 숙여 경례했다.“형제끼리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잖아.”이문재는 곧바로 손을 뻗어 유진우의 굽힌 상체를 들어 올렸다.“자자, 두 사람 다 앉아. 격식 차리지 말고 내 집이라고 생각해.”“감사합니다. 전하.”“고마워요. 오라버니.”유진우와 이청성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차례로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장혁, 늦은 밤에 초대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길 바라.” 이문재가 먼저 나서서 상대를 배려하며 사과를 건넸다.“전하, 천만에요.”유진우가 싱긋 웃었다.“전하의 저택에 손님으로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이문재는 입을 벙긋하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옆에 있던 이청성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청성아, 최근에 내 저택에 귀한 보석이 새로 도착했으니 가서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도록 해.”이청성은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성의를 봐서 나도 마다하지 않을게요.”상대방이 일부러 자신을 내보낸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전현진, 공주를 보물창고로 데려가게.” 이문재가 손짓했다.“공주마마, 따라오십시오.”전현진은 허리를 굽히며 이청성을 데리고 재빨리 대청 밖으로 나갔다.두 사람이 나간 뒤 이문재는 유진우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장혁, 사실 내가 늦은 밤에 자네를 부른 것은 내 마음속 의혹에 대해 자네가 대답해 주길 바라서야.”“전하, 말씀하세요.” 유진우가 태연하게 말했다.“듣기론 방금 아바마마를 뵈었다고? 아바마마께선 무슨 말씀 없으셨나?”이문재가 떠보듯 물었다.
황옥주는 무림의 3대 성물 중 하나로 천영 구슬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탐내는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황옥주는 신비한 힘을 지녀 다양하게 쓰였다.모든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포메이션도 부술 수 있다.예를 들어 실수로 환영에 들어갔거나 포메이션에 갇혔을 때 황옥주로 즉시 빈틈을 찾아낼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황옥주는 상대와의 대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적의 약점이나 필살기 등 모든 공격 수단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심지어 보물을 찾고 감정하는 것에도 독특한 기능이 있었는데 보물이 맞는지, 그 가치는 얼마인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황옥주를 한눈에 알아본 유진우는 황태자 저택에 이런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역시 장혁이야. 눈썰미가 좋네.”이문재가 웃으며 말했다.“이건 황옥주가 맞아. 내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오늘 자네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었으니 선물로 이걸 주지.”“절대 안 됩니다!”유진우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이렇게 귀한 물건은 제가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세요.”“보물은 영웅에게 줘야 그 쓸모를 다하지. 내 손에 있으면 먼지만 쌓이고 전혀 쓸모가 없어. 너에게 줘야 진정한 힘을 발휘할 거야. 예의 차리지 말고 받아.”이문재가 보물 상자를 앞으로 밀었다.“전하,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보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유진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내가 너보다 몇 살이나 더 먹었고 항상 너를 동생처럼 대했는데, 형이 동생에게 선물을 주는 게 뭐 어때서?”이문재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직접 보물 상자를 유진우의 품에 밀어 넣고는 일부러 정색하며 말했다.“받아, 또 거절하면 화낼 거야.”“이건...” 유진우는 딜레마에 빠진 표정이었다.“장혁, 이 황옥주가 많은 도움을 줄 거야.”이문재가 문득 비밀스럽게 말했다.“용맥이 파괴되어 용원의 기가 다섯 갈래로 천지에 흩어져 있는데 그걸 다 찾는
왕부의 편전.네 명의 제후는 차례대로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제갈영군은 한가롭게 차를 음미했고, 은성종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주한휘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왕부 편전의 장식을 구경했고, 장범규는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일어나 앉았다가 몇 걸음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졸이는 모습이었다.한 차례 시간이 흘러, 이의진이 유천우와 석태혁을 데리고 마침내 편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정교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여러분, 병부를 가져왔어요.”이의진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열자, 그 안에는 금빛의 호부가 놓여 있었다. 호랑이 형상을 정교하게 조각해 위엄이 깃들어 보였다. 호부 한가운데에는 ‘병갑지부, 좌재왕, 우재경’이라는 금색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역시 병부군요!”호부를 본 장범규가 눈을 반짝였다.“이 병부만 손에 넣으면 흑용군을 동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유태범의 음모도 허무하게 끝나겠죠.”“천우야, 지체할 시간 없어. 병부를 들고 흑용군 주둔지로 가서 그 장수들을 만나. 신분을 확실히 밝혀야 해. 유태범이 틈탈 구석이 없도록.”주한휘가 서둘러 재촉했다.“병부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야. 유태범이 순순히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철저히 준비해야 해.”은성종이 경고하듯 말했다.“알겠습니다, 제후님. 이미 어머니께도 상의드렸어요. 열 개 정찰팀을 꾸려 여러 갈래로 성을 나갈 거고, 저 역시 그중 한 무리에 섞여서 움직일 겁니다. 유태범이 대비하고 있어도 쉽게 제 위치를 알아내진 못하겠죠. 유태범이 위협을 눈치챌 무렵이면 저는 이미 흑용군 주둔지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유천우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그거면 충분하겠군.”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당부했다.“천우야, 이번 행선지는 너랑 왕비님만 아는 걸로 해. 괜히 입 밖에 새면 사고가 터질 수 있어.”“명심하겠습니다, 제후님.”“자, 그럼 빨리 움직이자.
“안 돼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육진우가 모험을 강행하려 하자 유천우는 곧바로 제지하고 나섰다.유천우는 그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유태범의 주변에는 정말 많은 고수가 몰려들어 있었다.두 주먹이 네 손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만약 암살에 실패라도 하면 수많은 고수들의 포위망에 걸려들 위험이 컸다. 장차 서경왕이 될 몸으로서, 유천우는 결코 함부로 유진우가 위험을 감수하도록 둘 수 없었다.“천우야,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는 누군가 희생을 감내해야 하지. 게다가 호위는 하나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가 있을까?”주한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유천우는 거의 고함치듯 외쳤다.강한 기세가 순간 터져 나와 주한휘는 뒷걸음질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아무도 유천우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리라 예상하지 못했다.자신이 좀 과격했음을 깨달은 듯, 유천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제후님, 호위의 목숨도 저희와 똑같이 소중해요. 괜히 헛된 희생을 치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모두를 납득시키겠어요?”“그래,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네.”주한휘는 어색하게 웃었다. 속으로는 그가 호위 하나 때문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설마 그냥 손 놓고 당하기만 할 생각은 아니겠죠?”장범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제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제갈영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 어떤 방법인데요?”이의진이 살짝 미간을 올리며 물었다.“유태범이 믿는 가장 큰 무기는 흑용군이에요. 우린 이 점을 공략하면 됩니다.”제갈영군은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다들 아시다시피, 전쟁 시기가
석태혁의 발언은 순간적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이의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머뭇거리며 술을 다물었다.석태혁은 왕부의 친위이자 그녀가 굳게 신뢰해 온 인물이기에 솔직히 그가 목숨을 걸고 위험에 뛰어들길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장군님께서는 워낙 강하시고 충성도 깊으니 유태범을 암살하러 간다면 가능성이 있겠죠.”장범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의 친위대장인 만큼 실력이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장군님, 제가 괜히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니지만 혼자 가시는 건 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어요.”제갈영군이 갑작스레 말했다.“잠깐! 아직 그 전설 속의 인도가 있잖아요?”주한휘가 문득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인도란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인도의 실력이라면 장군님 못지않을 텐데요?”“아니요, 홍복홍께서는 저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석태혁이 차분하게 답했다.그가 친위대장이기는 해도 왕부의 진정한 비책은 사실 인도 홍복홍이다. 서경의 세 고수 중 검선은 세상을 떠났고, 주광은 행방이 묘연하다. 결국 남은 인도가 서경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대 마스터 급의 인도는 그가 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와, 그럼 잘됐네요! 인도가 장군님보다 훨씬 강하시다면, 그분께 부탁드리는 게 훨씬 확실하지 않을까요?”주한휘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유감이지만, 홍복홍께서는 왕부를 떠나신 뒤로 지금까지 종적을 감추셨어요. 그분께 부탁드리긴 힘들 것 같네요.”석태혁이 고개를 저었다.“종적이 묘연하다니...”장범규가 미간을 찌푸렸다.“홍복홍이라는 분, 왕부가 이렇게 위태로운데 어디 가신 건지 모르겠군요.”“설마 상황이 안 좋아 보이니까 도망쳐 버린 건 아니겠죠?”주한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주 제후, 그런 말씀은 삼가주세요. 홍복홍께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 바쳐 오신 분이에요. 도망칠 리가 없습니다.”석태혁의 얼굴이 굳어졌다.“아,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주한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가 좀 있어요.”제갈영군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새 왕이 즉위하려면 폐하의 허가와 백관의 승인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폐하의 뜻을 받고 백관을 모시려면 앞뒤로 최소 사흘은 걸려요. 지금 우리 상황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죠.”“에이, 설마? 즉위가 그렇게나 복잡해요?”장범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들 천우가 어르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잖아요. 그럼 당연히 서경왕 자리를 잇는 게 맞지 않나요?”“맞아요! 급할 때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하는 거잖아요.”주한휘가 곁에서 맞장구쳤다.“두 분 다 서경왕위를 산적 두목 뽑듯 생각하시는 건가요? 깃발 하나 꽂고 술 몇 사발 마신 다음 큰소리 몇 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에요. 농담하지 마세요.”제갈영군이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서경왕위는 서경 백성만이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의 안위와도 연결돼 있죠. 서경이 혼란스러워지면 천하가 뒤숭숭해지고, 서경이 안정되면 천하도 평안해져요. 과장이 아니라 서경왕위의 무게는 폐하의 황위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그런 중요한 자리를 함부로 정하고 아무나 앉을 수 있겠습니까?”“맞아요. 저도 천우가 빨리 왕위를 이어서 군심을 안정시키면 좋겠지만, 왕위 계승은 장난이 아니죠.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고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이니까요.”이의진이 고개를 저었다.규율과 절차 없이는 질서가 서기 어려운 법. 서경왕 자리의 무게는 그만큼 무겁다. 폐하의 명령과 문무백관의 증인이 없으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다들 너무 규칙만 따져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어요.”장범규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지금 도련님이 왕위를 잇지 못하면 유태범의 대군이 쳐들어올 때 어쩌자는 겁니까?”주한휘가 난처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은 제후님, 혹시 다른 방도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말씀 좀 해주세요. 더는 뜸 들이지 말고요.”제갈영군이 은성종을 바라봤다.“두
“뭐라고요? 목격자를 전부 없애버린다고요?”그 말을 듣자 장범규의 안색이 급변했다.“농담하는 거 아니죠? 북쪽 4대 제후는 모두 유태범의 사람인데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전부 죽인다는 게 말이 돼요?”“큰일을 하는 자는 마음이 독해야 하는 법입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사람한테 약간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제갈영군이 덤덤하게 말했다.“물론 이건 마지막 계획이에요.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무사히 왕위를 빼앗고 병부를 손에 넣는다면 유태범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바로 왕위를 이어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실패하면 유태범은 큰일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욕심이 많은 자일수록 더욱 광기 어린 행동을 보일 것이다.예전에 유태범은 위왕에게 억눌려 힘을 숨기고 기회를 기다렸다. 위왕이 세상을 떠난 지금 속박을 벗어난 유태범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렇다면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장범규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흑용군은 서경에서 가장 강하고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흑용군을 장악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만약 유태범이 표기 대장군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다시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흑용군을 대량으로 동원할 가능성이 컸다.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오직 승자만이 왕이 되고 패자는 반역자가 될 뿐이니까.“제후님들은 모두 서경의 기둥입니다. 혹시 좋은 해결책이라도 있습니까?”이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전 싸우는 것만 잘하지, 머리를 쓰는 건 절대 안 돼요.”장범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저도 그렇습니다.”주한휘도 고개를 내저었다.“회음 제후님은 재능이 뛰어나니 뾰족한 수가 있으면 얘기해보시죠.”제갈영군의 시선이 은성종에게 향했다.그들이 성문 앞의 십만 대군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은성종의 회유책 덕분이었다.장교들의 가족과 친구를 이용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항복하게 했다.많
지금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오는 것이었다.“너희 둘은 주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력자야. 사형은 면해도 처벌은 면치 못해.”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여봐라. 저 두 놈을 끌고 가서 감시하고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알겠습니다.”몇 명의 친위대가 재빨리 다가가 포박된 진승민과 강윤기를 강제로 끌고 갔다.“장군님, 항복한 병사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오늘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의진이 석태혁을 보며 말했다.“알겠습니다.”석태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비님 자비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그때 네 명이 군중 속에서 걸어 나왔다.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자동으로 길을 터주었는데 네 사람이 바로 남쪽 4대 제후였다.맨 왼쪽으로부터 제갈영군, 그다음은 은성종, 주한휘, 장범규가 나란히 서 있었다.“저희가 너무 늦게 온 바람에 왕비님께서 많이 놀라셨죠? 부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은성종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겸손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그런 말씀 마십시오. 만약 제때 와주시지 않았다면 왕부가 위험에 처했을 겁니다. 제후님들 모두 공신이십니다.”이의진은 재빨리 다가가 허리 굽힌 은성종을 일으켜 세웠다.사실 남쪽 4대 제후가 이렇게 빨리 군대를 보내 지원해 줄 거라는 건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다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왔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왕부를 지키고 서경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은성종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맞습니다. 만약 위왕님께서 저를 살려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왕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요.”장범규가 호탕하게 말했다.남쪽 4대 제후 중에서 그는 가장 솔직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왕비님,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왕부의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이니 당연히 도와야죠.”주한휘가 웃으며 말했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는 말이 서경왕부 상공에 계속 맴돌았다.이미 공포에 질려 있던 반군들은 더욱 두려움에 떨었고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쨍그랑, 쨍그랑, 쨍그랑...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손에 든 무기를 던졌고 고집을 부리는 일부 병사들은 즉시 체포되어 포박당했다.왕부를 오랜 시간 공격했음에도 함락되지 않았고 성문을 지키던 군대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네 명의 제후 중에 둘은 포로가 되어 잡혔고 둘은 도망쳤다. 대세를 잃을 그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항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하지만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목숨을 헛되이 버리려 하지 않았다.“난 방금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항복한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무기를 던진 반군을 보며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 강압적이지 않았고 강렬한 기세도 내뿜지 않았으며 오히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항복한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많은 장교들이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장교들이 앞장서자 많은 병사들도 무릎을 꿇었다.몇 분 만에 조금 전까지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사람들의 무릎을 전부 꿇렸다.이의진의 자비에 모든 병사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너희 둘은 어떡할 거야?”이의진이 뒤에 매달려 있는 진승민과 강윤기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왕부 대문에 매달려 있었는데 꼴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저... 저희도 항복하겠습니다.”진승민과 강윤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왕부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건 그들이 성문 밖에 주둔시킨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했다.게다가 왕부를 포위 공격하던 선봉 부대는 모두 무릎을 꿇고 항복했고 그들 두 사람까지 인질이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항복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다.만약 대장군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도착한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명령을 받은 후 진승민의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렸다.“그리고 너. 네 부하들도 전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해.”이의진은 칼끝을 돌려 강윤기의 목에 겨누었다.살기등등한 이의진의 눈빛에 강윤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무기 전부 내려놔.”쨍그랑, 쨍그랑, 쨍그랑...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렸고 강윤기가 통솔하던 병사들도 무기를 버렸다.전장의 약 60%에 달하는 군대가 전투를 포기했다. 나머지 40%는 무기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전투는 사기가 떨어지면 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이미 무기를 버렸는데 어찌 더 공격할 수 있겠는가?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제후가 이미 사라져 수만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당황하는 수밖에.“다들 잘 듣거라. 너희들의 제후는 이미 도망갔고 너희들이 죽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어. 아직도 그런 사람을 위해 싸울 것인가? 너희들이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고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 그래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오늘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물론 계속 저항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땐 모든 사람을 반역자로 취급할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참수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하거라.”이의진의 강렬하고 힘찬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는 위엄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제후님이 정말 도망갔어? 그럼 우린 어떡해?”“나한테 물으면 내가 누구한테 물어?”“이 싸움은 원래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어. 왕실을 구원하고 범인을 잡긴 개뿔. 이건 그냥 반역이야. 이 일에 책임을 묻는다면 우린 모두 죽을 거라고.”“진 제후님과 강 제후님도 이미 항복했는데 우리도 항복할까? 왕비님께서 우리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전장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의견이 분분했다.그들은 이미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지만 명령이
“됐어. 그만 좀 웅얼거려. 유태범이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오늘 밤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제갈영군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듯 손을 크게 휘둘렀다.“여봐라. 반역자들을 잡아들여서 감시하거라!”“알겠습니다.”친위대가 즉시 앞으로 나와 노정한과 하원휘를 포박했다.“제갈영군. 우리 모두 한 지역의 제후이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러는 건 우리 체면을 너무 짓밟는 거 아니야?”노정한이 소리쳤다.“체면?”제갈영군이 코웃음을 쳤다.“이미 반역자로 잡혔는데 무슨 체면이 더 있어?”“제갈영군, 아직 승패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대세도 정해지지 않았어. 대장군님이 왕이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노정한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맞아. 세상일은 돌고 돈다고 했어. 지금 한껏 위세를 부려도 영원히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야. 그러니까 적당히 해.”하원휘가 맞장구를 쳤다.“너희들이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는데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쳐? 정말 주제를 모르는구나. 여봐라, 어서 저 둘의 입을 막아라. 더 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않게.”제갈영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너...”노정한과 하원휘가 뭐라 더 말하려던 그때 입을 강제로 틀어막은 바람에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끌고 가.”제갈영군이 손을 휘두르자 부하들이 바로 그들을 차에 태웠다.제갈영군의 시선이 앞쪽의 유진우에게 향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어딘가 낯이 익은데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네, 만난 적이 있어요. 전 서경왕부 사람입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그래?”제갈영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왕부의 고수들은 내가 전부 알고 있는데 당신은 전혀 모르겠어. 대체 누구지?”“제 신분은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제갈영군에게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빠르네.”제갈영군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이 다 휘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