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이 어떻게 왔든 간에,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진은 그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반면 대장은 이진의 남편이 찾아왔다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는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그들을 잘 대접하려고 했다.그러나 눈치 빠른 대장은 이진의 예사롭지 않은 표정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이진 씨, 그럼 찾아오신 분이 있으시니 전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무슨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절 찾으시면 됩니다.”대장은 황급히 작별 인사를 하고는 신속하게 병실을 나섰다.이진은 곁눈질로 승연을 힐끗 보며 말했다.“너도 나가.”승연은 이진의 차가운 시선을 보더니, 얼른 고개를 숙인 채 병실을 나서려고 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이건을 만나게 되었다.승연은 그에게 속은 것이 떠올라, 울분이 치밀어 올라 몰래 이건을 노려보고는 조용히 병실 밖을 지켰다.이건은 그의 눈빛을 무시하고는, 긴 다리를 내디뎌 병실에 들어간 후 문을 잠갔다.그러나 이건도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엄청난 상처들을 보게 되었다.이건은 먼저 이진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그러나 그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이진이 다쳤다고 말한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이건은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이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이진의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이건은 두 손을 주먹 쥔 채 감정을 억누르며 이진에게 다가갔다.지금의 그는 이진에게 화가 난 것인지, 그녀의 다친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곳엔 왜 온 거야? 어쩌다가 이렇게 다치게 된 거야?”어쨌든 이진은 그에게 저격 임무 중에, 부주의로 부상을 입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 비서가 말 안 했어요?”이진은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어 이건더러 침대 옆에 앉으라고 표시했다. 그러고는 기회를 틈타 그를 꽉 껴안았다.“이건 씨, 왜 그렇게 진지하신 거예요. 전
“이진아, 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는 물론 아주머니와 이영도 널 매우 걱정하고 있었어.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건데, 시간이 된다면 오늘 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을래?”이기태는 이진은 매우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그가 벌인 짓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정말 딸을 아끼는 좋은 아버지라고 믿었을 것이다.이진은 원래 속이 메스꺼웠는데, 이 말을 듣자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이런 연기 따위는 정말 질리도록 봤어.’이진은 손에 든 유리잔을 내려놓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이기태 씨, 지금 식사 자리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딸과 제 남편을 이어주려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이진은 두세 마디로 세 사람이 애써 만든 조화로운 분위기를 순식간에 깨뜨렸다.이기태는 이진이 이렇게 가차 없이 그들을 까발릴 줄은 몰랐다.이진이 적어도 이건의 앞에서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이건의 의심하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자, 이기태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통을 쳤다.“이진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는 그저 네가 걱정되어 너와 밥 한 끼 먹고 싶었을 뿐이야.”“그렇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빠를 것 같네요. 당신은 정말 제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이진은 비꼬듯이 말을 꺼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경고하는데, 여긴 제 집이고 윤이건 씨는 제 남자예요. 제가 이곳에 있는 한, 아무도 이건 씨를 빼앗진 못할 거예요. 더 이상 환영하지 않으니 당장 제 집에서 나가주세요!”“이진!”이기태는 얼굴이 노기로 붉게 달아오르더니, 화가 난 나머지 이건이 앞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그리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이진을 해코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이건은 불쾌한 마음에 눈썹을 찌푸리고는, 이진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이기태 씨, 제 아내가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이상, 이만 돌아가 보시는 게 좋을 것
이건의 지위로는 분명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이기태가 망설이는 사이에, 이건은 이진을 안은 채 그의 곁을 지나가며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왜 아직도 가지 않으시는 거죠? 혹시 이씨 가문을 포기하시려는 거예요?”“이건 오빠, 할 말이 있어요.”이영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채 그를 쫓아가려고 했다.“이영아, 거기 서!”이기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건이 차가운 눈을 부릅뜨기 전에 급히 이영을 붙잡았다.이건의 표정은 전혀 농담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이기태는 당장이라도 이건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이진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적어도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태는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먼저 집으로 돌아가자고.”‘내가 반드시 제대로 된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한편 이진은 이건에게 안긴 채 차에 올라탔다.그녀는 이건을 놀래 키고 싶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배 속에는 통증이 끊임없이 전해져왔다.이건은 기사한테 속도를 높이라고 분부하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이진아, 솔직히 말해봐. 그날 덫에 빠진 것 외에 다른 상처도 있는 거야?”“정말 상처가 있었다면 이건 씨의 눈을 속일 수 있었겠어요?”이진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했으나,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진은 결국 설명을 포기하고는 이건의 손바닥을 문지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씨, 이래 봬도 전 의사예요. 정말 다친 것을 감추려고 했다면, 이건 씨 앞에서 아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전 배가 아플 뿐이에요. 아마 저녁에 무언가 잘못 먹은 게 아닐까요?”이건은 그저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식을 잘못 먹었든 안 먹었든 간에, 제대로 검사를 해봐야겠어.’30분 후, 검은색 외제차가 병원 입구에서 멈추었다.아니나 다를까, 이진의 추측이 일리가 있었다.의사는 꼼꼼히 검사를 한 후 검사 결과를 그들
정확히 말한 다면, 경기가 시작된 게 아니라 끝난 것이다.승연이 특별히 병원까지 찾아온 것은, 바로 그녀와 이 일을 토론하기 위해서이다.“전 사부님이 왜 루트 씨를 곁에 남기신 건지 알 것 같아요. 루트 씨는 정말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한동안 데리고 다녔는데, 그는 융통성이 매우 높고 인내력이 대단한 친구더라고요. 이번 시합에서도 제 예상을 깨뜨리고는, 세계 5위를 차지하게 되었어요.”승연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세계 5위를 따낸 것은 나라를 위해 영예를 떨쳤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승연이 조금만 더 어렸다면 분명 루트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좋은 순위를 받게 된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도 불러일으켰다.승연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사부님, 경기가 끝난 날, 제가 무심코 루트 씨의 컴퓨터를 보게 되었는데, 여러 신비 조직들이 루트 씨를 스카우트하려는 것을 발견했어요.”그의 말을 들은 이진은 표정이 조금 바뀌더니, 컴퓨터를 덮고는 더 이상 업무에 몰두하지 않았다.“루트 씨가 동의하기라도 한 거야?”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루트가 어디에 가든지 결정권은 그의 손에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하진 않았으면 좋겠네.’“그건 아니에요.”승연은 그녀를 힐끗 보며 부인하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따지고 보면 루트 씨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에요.”시합이 끝난 지금이야말로, 루트는 해커라는 분야에 진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이처럼 신비롭고 위험이 가득한 세계 라면, 누구나 쉽게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다.이진이 가장 걱정했던 문제도 이것이다.하지만 루트가 조직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아직 늦진 않았다.만에 하나 루트가 정말 조직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루트를 바른길로 이끌어줄 것이다.이진은 곧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루트 씨를 잘 지켜봐.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알겠습니다.”승연도 이진과 같
‘내가 알고 있는 승연 씨라면 정말 그런 생각일지도 몰라.’이런 생각에 루트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그가 진정으로 동경하는 사람은 이진이었기에, 그가 이곳을 떠나 다른 조직에 참가할 리는 절대로 없었다.‘내 목표는 대표님의 제자가 되는 거야!’루트는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모든 제안들을 완곡하게 거절하고는, 컴퓨터를 닫으려고 했다.이때 새로운 메일이 튀어나왔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의 코드명이 S였다.[루트 씨,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너무 급히 거절하진 마세요.]‘가족, 친구?’루트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곧바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루트는 메일을 보낸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조용히 답장을 기다렸다.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상대방은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루트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였다.그는 곧 대화창을 삭제하고는, 반복적으로 연습했던 해독 기술을 되새기며 깊이 잠들었다.이튿날 아침, 다급한 전화벨 소리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불 속에서 몸을 내밀었다.택배가 왔다는 말을 듣게 된 루트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무슨 택배인 거죠?”루트는 인터넷 쇼핑을 하는 습관이 없었기에, 그가 산 물건을 절대 아닐 것이다.“누가 보내온 거죠?”상대방은 입을 열지 않은 채 초인종을 누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루트는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급히 나가보았다.하지만 문밖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문 앞에는 작은 택배가 하나 놓여 있었고, 위에는 ‘S’라는 기호가 적혀 있었다.루트는 어제 일을 떠올리더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그가 조심스럽게 택배를 연 순간,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두꺼운 자료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자료에는 최근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그리고 그 자료 뭉치 사이에서 카드 한 장이 떨어졌다.위에는 작은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어때요 루트 씨? 저희 초대를 받아들이실 거죠?
상대방은 이진의 신의 신분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진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하지만 메일 내용을 보았을 때, 그 거들먹거리는 말투는 루트가 받은 메일과 꽤나 비슷해 보였다.게다가 상대가 치료를 부탁한 것은 총상이었다.만약 그들이 정당한 조직이었다면, 이진에게 사적으로 연락하진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이진더러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하였다.지하 조직들 중에서 이렇게 대범한 태도를 보일 만한 놈들은 몇 명 없을 것이다.이 사람들은 아마 루트를 스카우트하려는 놈들과 같은 테러 조직일 것이다.이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별장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안고 조사를 진행했다.이진의 컴퓨터 기술은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이진은 가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는데, 상대방이 자신만만하게 설치해 둔 방화벽을 쉽게 뚫을 수 있었다.결과는 그녀가 처음 예상한 바와 같았다.이진에게 치료를 부탁한 것과, 루트를 위협한 것은 공교롭게도 같은 테러 조직이 벌인 짓이다.애초에 이진은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이진의 신분으로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할 리가 없었고, 괜히 이런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루트가 그들의 타깃이 된 이상, 이진은 모른 척 내버려 둘 수 없었다.이진이 치료를 동의한다면, 루트가 그들의 통제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진은 메일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답장을 보냈다.상대방은 마치 하루 24시간 컴퓨터 앞을 지키는 것만 같았다.이진이 답장한지 불과 몇 초도 안되어 그들은 주소 하나를 보내왔다.상대방은 계획에 이변이 생기지 않게, 직접 이진을 데려갈 헬리콥터를 안배했다.전제는 이진이 먼저 약속한 장소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이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시원하게 동의했다.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이진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구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그러기에 이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유일하게 이진을 골치 아프게 한
이진은 어쩔 수 없이 목걸이를 걸고는, 메일로 약속했던 교외로 갈 수밖에 없었다.이진이 도착하자 헬리콥터 한 대가 아스팔트 위에 가로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알파벳 ‘S’가 적혀 있었다.이로 하여, 이진은 루트를 협박한 사람과 이진을 찾는 사람이, 같은 테러 조직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이진은 가녀린 긴 다리를 쭉 뻗고 발걸음을 내디뎠다.“이진 씨.”헬리콥터 앞에 서 있던 중무장한 남자 몇 명은, 이진을 보자마자 앞으로 나가 그녀의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분명 이진의 트렁크를 검사해 보려는 거다.이진은 눈썹을 찡긋거리고는 시원시원하게 트렁크를 건넸다.안에는 이진이 사람을 구할 때 자주 뒤적거리던 서적만이 들어있었다.‘궁금해한다면 얼마든지 보여주지.’이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트렁크를 뒤적거리는 남자들을 지켜보았다.검사를 마친 놈들이 트렁크를 닫자, 이진은 무심한 듯 물었다.“제가 의사 신분으로 당신들과 함께 가는 이상, 저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셔야겠죠.”“죄송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도착하신 후에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놈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이진을 헬리콥터로 모셨지만, 얼굴에는 전혀 이진을 존경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들이 단서를 제공해 주지 않자, 이진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는 바로 헬리콥터에 올랐다.이진은 헬리콥터에 오른 후, 아예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기만 했다.얼마 정도 지나자, 헬리콥터는 구름층을 뚫고 천천히 땅에 착륙했다.그들이 도착한 곳은 임시로 건설된 야영지 같았는데, 줄곧 몇 미터를 거리 두고 ‘S’가 그려진 깃발을 하나씩 세웠다.이진이 무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던 참에, 누군가가 이진의 두 팔을 붙잡았다.“이진 씨, 보스는 오직 당신 만을 안으로 들이겠다고 하셨어요.”이진은 무의식적으로 반격하려 했으나 놈이 이미 말을 마친 상태였다.그 말은 이진의 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곧이어 이진의 핸드폰은 물론 휴지마저도
쌍방이 눈을 마주치자 공기 중에 미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금호는 이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진 씨, 죄송합니다. 저희도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으로 당신을 초대하게 되었어요. 저희의 무모한 행동을 너무 탓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말을 꺼낸 금호의 얼굴에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이진 씨,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전 이진 씨의 실력으로는 절대 저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금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는데, 그 말은 마치 이진을 협박하는 것만 같았다.이진은 그들의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환자를 구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이진은 당연히 최선을 다해 환자를 구해야 할 것이다.만약 이진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이진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환자의 상처를 자세히 훑어보았다.환자의 팔은 총에 맞았을 때부터 줄곧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아, 상처가 이미 곪아버리고 말았다.현재 상황으로서, 팔 전체를 지키려면 상처가 곪은 부분을 일일이 제거한 후, 치료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이 부분을 모두 제거해야 됩니다.”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잘라야 할 근육 부분을 그으며 말했다.“말도 안 돼!”모두 멍하니 이진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화를 내며 이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성민이가 자기 팔을 얼마나 아끼는데, 이대로 팔을 잘라내는 건 성민이가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당신이 의사라도 돼요?”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반문했다.“당신!”놈은 이진의 당당함에 말문이 막혀, 얼른 금호를 찾아 고자질했다.“형님, 저 여자는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돌팔이예요! 절대로 성민이를 저런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차라리 제가 저 여자를 쏴 죽일게요!”“그만 떠들어대고 이만 물러서.”금호가 손을 들며 말하자, 놈은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이진을 노려보더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