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서는 윤이건의 이런 모습을 보자 엄청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윤이건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이때 다행히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방 안의 두 사람을 보더니 조금 의아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남편입니다.”윤이건도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료기록부를 꺼내면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이진 씨는 비록 크게 다치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뼈가 조금 상한 데다가 약간의 연조직 타박상이 있기 때문에…….”“뭐라고요?”의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윤이건은 재빨리 몸을 돌렸는데 그 눈빛은 극도로 흉악해 보였다.“제 부인이 골절 타박상이라고요?”윤이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거잖아요? 근데 왜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는 거예요?”방금 윤이건의 눈빛과 표정에 이 두 마디를 더하자 의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의사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이진 씨가 지금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저희가 상처를 처리할 때 마취약을 주사했기 때문이에요.”윤이건은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윤이건은 긴장이 풀리자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얼른 손을 뻗어 책상을 붙잡았다.“걱정 마세요. 이진 씨는 아마 오늘 저녁이면 깨어나실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시면 됩니다.”이 의사도 많은 사람들을 봐왔었기에 눈앞의 윤이건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의사는 곧 윤이건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는 병실을 나섰다.정신을 되찾자 윤이건은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는 계속해서 이진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매우 부드러웠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병실 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한 시간도 안 돼 문이 다시
몸에 큰 통증을 느끼진 못했지만, 오히려 윤이건의 표정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 났다.“깼어? 몸은 좀 어때?”윤이건이 기뻐하는 얼굴만 본다면 무슨 큰 경사가 생긴 것만 같았다.“윤 대표님, 저…… 이렇게 쳐다보지 않으시면 안 돼요?”‘분명히 교통사고가 난 사람은 나인데 왜 이 사람의 머리가 안 좋아진 것 같지?’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하던 사이에 승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사부님 깨어나신 거예요? 몸은 좀 어때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승연이 갑자기 나타나자 이진은 너무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잠시 혼수상태에 빠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건지.“나가서 뭐 좀 사 올 테니 먼저 얘기들 나누고 있어.”윤이건은 승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병실을 나섰다.그러자 방안에는 스승과 제자 두 사람만 남았는데, 승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먼저 입을 열어 자백했다.“다 말한 거야?”이진이 급한 마음에 몸을 살짝 움직이자 상처를 건드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사부님, 미안해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윤 대표님이…….”“됐어, 됐어.”이진은 손을 흔들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린 제자가 절대로 윤이건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승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모든 것들을 말해버렸다.그들이 말하는 사이에 윤이건은 보온병을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는데 얼굴의 표정은 여전히 낯설었다.이진은 그제야 윤이건의 방금 모습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이 일이 밝혀진 후 다시 윤이건을 마주하게 되자 이진은 다소 어색함을 느꼈다.“윤 대표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이건 근처 가게에서 산 보양식이야. 의사가 말했는데 국을 마시면 영양 흡수가 잘 되어 상처가 좀 빨리 나을 거래.”윤이건은 바로 손을 뻗어 국 한 그릇을 담고는 숟가락을 들어 이진의 입가에 갖다 댔다. 승연은 그들의 모습을 보더니 얼른 빠져줘야겠다고 생각되어 가볍게 기침을 하고 이진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진이 이번 교통사고에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두 다리만큼은 반드시 조심해야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잊은 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행히 그녀가 바닥에 넘어지기 전에 윤이건이 그녀를 붙잡았다.마침 이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한시혁이 안으로 들어왔다.한시혁은 녹음실에서 이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헤드셋을 집어던지고는 외투를 들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다행히 이진의 상태가 심각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정말 꼴 보기 싫었다.윤이건은 갑자기 나타난 한시혁을 보더니 별로 놀라진 않았다.그저 한시혁을 노려보더니 손을 뻗어 이진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올렸다.혹시라도 이진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 건지 그의 동작은 무척 부드러웠다.한시혁은 그들을 지켜보더니 자신이 끼어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참아 오르는 감정을 못 이겨 이를 악물고는 앞으로 나가 윤이건을 밀쳤다.“이진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건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윤이건 씨!”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윤이건은 한시혁의 이런 행동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윤이건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시혁은 그의 얼굴을 향해 세게 주먹을 내리쳤다.“윤이건 씨! 이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만 빠져요!”“한시혁!”방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던 이진은 지금 머릿속이 윙윙거리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눈앞의 화면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녀도 윤이건이 한 대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윤이건은 이진을 다독여준 뒤 입가를 닦고는 한시혁을 쳐다보았다.“이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건 제 실수예요. 제가 제대로 이진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건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윤이건은 말을 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는 흉악한 모습을 드러냈다.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렸는데 표정조차도 매우 험상궂어 보였다.“하지만 절대로 이진을 양보하진 않을 거예요.”윤이건은 말을 하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이진과 한시혁은 모두 그가
눈앞의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해진 이진은 눈을 깜빡이며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나서 다시 시선을 그 사람의 손에 있는 작은 반지함에 돌렸다.다이아몬드 반지는 크지 않지만 공을 들인 디자인이었다.그 다이아몬드 위에 박힌 무늬는 시중에서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맞춤 디자인인 것이 분명하다.사실 이진은 이 반지함을 처음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비록 안에 들어있는 반지는 처음 보지만 사실 반지함으로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이진은 윤이건이 반지 하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주는 것이라는 것은 정말 몰랐다.두 사람이 다시 계약을 체결한 후부터, 이진은 윤이건에 대한 인상을 바꾸었다.가장한 관심인지 아니면 위장한 관심인지 그건 지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이진은 이 남자가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지금 이 순간 이진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그 누가 이런 상황에 빠져도 감동할 것이다. 이건 이진도 예외가 아니다.손끝을 떨며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받으려고 하였다.이때 병실 밖에서 갑자기 깨지는 소리가 났다.“이진아!”한시혁의 외침이다. 그는 밖에서 들어오려고 하지만 윤이건의 경호원들이 그를 막았다.“윤이건! 너 무슨 남자야!”시끄러운 외침소리로 이진은 방금 전 정서에서 벗어났다.갑자기 무엇을 떠올린 듯 잠시 들었던 그 손을 다시 내려놓고 주목을 꽉 쥐었다.‘어떻게 이렇게 쉽게 이 남자를 용서할 수 있지?’그녀는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이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반지를 든 윤이건의 손은 갑자기 떨렸다. 이진의 눈빛도 흔들림이 보였다.비록 거절은 그녀 자신이 한 말이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아 결국 나머지 말을 돌렸다.“잘 알잖아요, 이번 이 사고는 누가 날 죽이려고 일부러 조작한 것이라는 거.”이진의 말 뜻을 이해한 윤이건은 마음을 놓았다.감정문제로 거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아까 그
두 사람은 같이 있는 동안 윤이건은 이진의 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하였다.그래서 이 말을 듣고 기쁨을 멈출 수 없었다.이진과 계속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지만 이진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참았다.기쁨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두 사람은 담담하게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어떤 것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칠 후 이진의 상처는 뚜렷이 호전되었다.약을 먹는 시간이며 윤이건은 쭉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라도 늦으면 안 되었다.원래 병원 간호사들은 윤이건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진에게 침을 놓은 순간 그런 마음은 어디론 지 바로 사라졌다.어린 간호사들은 모두 웃음을 띠고 병실에 들어오고 울며 병실을 나갔다.어쩔 수 없었다. 윤이건이 너무 따지기 때문이다. 약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진이 이마를 찌푸리기만 하면 그는 몹시 긴장하면서 화를 내였다. 그리고 사과는 이진 몫이다.그리고 드디어 이진은 몇 걸음 걸을 수 있었다.비록 움직임이 느리고, 상처도 조금 아픔을 느끼지만 병상에 계속 누워있는 것보다는 났다.“그 운전자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윤이건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어렵게 걸고 있는 이진은 사고를 멈추지 않았다.그녀를 이렇게 반병신으로 만든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그자도 이 병원에 있어, 내가 여기로 옮겼거든.” 윤이건이 가볍게 말했다. 이진을 잡고 계속 그녀를 지켜보았다.이 말을 들은 이진은 긍정적인 표정을 주었다.이 사람 일하는 잘 처리한다.“저 가보고 싶어요.”자기를 부축인 그의 손이 멈추자 이진은 급히 말을 이었다.“물론 함께 가도 되고요.”그 다음 윤이건은 의사에게 여러 주의사항을 물어보고 이진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 병동으로 갔다.“나 지금 늙은 할멈 같해요.”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진은 윤이건이 자기를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화나 나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하다.평소 같으면 바로 놀릴 윤이건이 지금은 침묵하고
윤이건의 찌푸린 미간을 보고 이진은 입을 벌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 사람은 분명히 알면서 일부러 묻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으로 어디도 갈수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윤이건의 태도를 뚜렷이 표명하였다. 막는 뜻이다.두 사람은 잠시 대치하고 있고, 방안의 케빈을 포함한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무의식적으로 코를 만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어색한 거는 바로 그들이다. 하여 두 주인이 빨리 화해하기를 바랬다.다행히 몇 초 만에 이진은 어깨를 살짝 숙이고 양보했다.그녀는 쉽게 충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태라도 여전히 현실과 대면한다.지금 이 몸 상태로는 조사는 물론이고 병원 대문 앞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다.입술을 물고 답답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이건이 그녀를 병실까지 데려갔다.“사모님 잘 모셔.”아랫사람들에게 당부하고 나서 윤이건은 병실을 나섰다.가기 전 이진이 걱정되어 그녀를 또 한번 본 다음 병실을 나갔다.이진이 자기만의 자랑이 있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으로 그를 미워해도 내보낼 수 없었다.병실에 혼자 남은 이진은 아까 윤이건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그녀는 이런 일까지 따지게 그리 유치한 것은 아니다. 비록 그녀에 관한 일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병상에 누워있는 것뿐이다.그러나 아쉽게도 2분도 안지나 병실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이거 안 놔! 빨리 놔!”너무 익숙한 목소리였다. 문이 열리면서 경호원이 문의한 것을 보고 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유연서가 혐오가 가득한 얼굴로 병실 밖에서 뛰쳐들어왔다. 병상에 누워있는 자와 병실에 서있는 자가 그렇게 눈을 몇 초 동안 마주쳤다. 그리고 유연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이진 너 이러고도 죽지 않았어?”“그래, 내가 죽지 않았으니 괴로워할 자가 따로 있겠지.”이진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비록 병상에 누워있으나 유연서는 여전히 그 기세에 눌려 있었다. 이진은 이 말이 유
갑자기 아픔을 느낀 유연서는 머리가 어질어질 하였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몸을 지탱하고 돌아섰더니 윤이건의 그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순간 유연서는 마치 무슨 흉악한 맹수라도 본 것처럼 침을 삼켰다.“너…….”“지금 뭐하는 짓이야?”유연서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윤이건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 눈빛은 마치 얼음 같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이진도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진은 원래 유연서의 뺨을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였다.다시 눈을 뜨고 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산과 같이 앞을 막아주었다.이미 다 보았으니 유연서도 뭐라고 변명하지 않았다.주먹을 꽉 잡고 한참동안 참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지만 외침이었다. “윤이건! 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 너의 생명의 은인이야!”이 핑계 그녀는 수없이도 썼고 매번 이에 윤이건은 타협하였다.비록 이미 부정된 사실이기는 하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상 설령 마음에 꺼려도 여전히 이 핑계를 써먹으려고 하였다.그리고 윤이건의 망설이는 눈빛을 보고 유연서는 계속 소리쳤다. “이진이가 너로 인해 유명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면 그만 손을 떼는 것이 좋을 거야.”“너 이 말, 무슨 뜻이야.”윤이건이 이를 갈았다. 그는 누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 유연서의 협박을 받은 것이다.“내 뜻은 만약 윤이건이 이진을 위해 생명의 은인도 해쳤다는 보도가 나면 어떨 가?”윤이건은 유연서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진도 이젠 그의 약점이 되었으니 말이다.원래 꿋꿋하게 서있던 그는 잠시 몸을 휘청거리고 몸을 풀었다. 이는 물러나려는 뜻이다.그는 보도가 무섭지 않다. 이진을 보호할 수 있다면 두렵지 않았다.그러나 유연서가 이런 미친 짓을 하고나서 그가 바로 보도를 내려도 그로 인해 이진이 욕을 먹고 꾸중을 듣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진의 말투와 표정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구경꾼의 자세로 냉담하게 이 모든 것을 대하였다.두 사람은 몇 초 동안 대치하였다. 이진의 눈빛은 점점 밝아졌고, 유연서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렸다.아까 그 의기양양한 모습은 어디인지 사라지고 지금은 이진을 마주칠 용기조차 없었다.“왜? 아까 그 확고함 어디 갔지? 너도 널 의심하지.”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미간을 가볍게 치켜세우며 마음속은 아주 통쾌하였다.생명의 은인이라는 타이틀로 유연서는 가질 것을 다 가졌다. ‘여태까지 입 다물고 있었는데 이젠 이 특권 회수해야 겠어.’“이진 너, 뭐라고 말하는 거야!”속으로 겁을 먹고 또 말로 이진을 이기지 못한 유연서는 그녀가 이미 사실을 알았을 가봐 너무 걱정되었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윤이건 앞에서 이 일을 들어내면 손해를 보는 것은 그녀밖에 없다.더욱이 유연서가 이해 안되는 것은 이진이 입원 전 두 사람은 분명히 갈라진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이번 사고로 이진은 죽지도 않고 윤이건과도 화해했단 말이야?’‘젠장’생각할수록 답답한 유연서를 이를 갈았고 몸을 벽에 기대었다.“난 이미 충고했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이 말이 나오자 유연서는 윤이건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 것을 보았다.어디에서 나온 힘인지 유연서는 앞에 선 이진을 번쩍 밀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뛰쳐나갔다.그 비틀거리는 자세는 그녀의 마음속의 당황스러움을 완전히 드러냈다.유연서가 나가고나서 윤이건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까 유연서의 그 태도, 그는 이진이가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말할 거라 생각했다.그 당시 몸을 던져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낸 그 어린 소녀 말이다.그러나 아쉽게도 끝내 듣지 못한 그는 얼굴에 실망을 가득 담았다.이때 이진이가 마침 돌아섰고 윤이건의 그 표정을 보고는 조금 놀래 하였다.“괜찮아요?”표정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윤이건은 급히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아니야, 너만 괜찮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