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배인호는 정말 내게 미련이 남아 있었다.초인종은 더 다급하게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나는 배인호를 무시하고 서둘러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우... 우범 씨 어떻게 왔어요?”이우범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오늘 밤 당직이지 않았나? 지금 어떻게 온 거지?이우범은 나의 어깨를 잡고서는 위아래로 나를 살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다치진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이쪽에 살인범이 침입해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너무 걱정돼서 돌아왔어요.”그의 시선이 정원으로 향했다. 바닥에 피는 조명 아래에서 더 눈에 띄었다. 이우범은 의사이니 당연히 더 예민하게 반응했고 갑자기 표정이 바뀌었다.배인호가 걸어 나와 3, 5미터 거리에서 이우범을 바라보았다. 공중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이제 두 사람은 물과 불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만약 이우범이 타이밍 좋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배인호 이 미친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었다.배인호가 한 말 중에 자기 같은 사람이 오히려 죽어 주는 것이 내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했던 한마디는 정말 맞는 말이었다.24시간 안에 이우범은 우리 집에서 두 번이나 배인호를 목격했다. 아마도 지금 기분이 거의 폭발 직전일 것이다.사람이 아무리 침착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이우범의 눈빛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당시 상황을 다 설명할 수 없어 간단하게 한 마디 했다.“그 탈출범이 우리 집에 침입했는데 배인호 씨가 구해 줬어요. 그러다가 다쳐서 내가 상처에 붕대 감아준 게 다예요.”“단지 붕대만 감아준 거야? 그렇게 간단했나?”배인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투로 장난스럽게 물었다.나는 돌아 서서 배인호를 사나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그는 아무렴 상
희선 언니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또 배인호일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인터폰으로 밖을 확인했는데 배인호 부모님이 문 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계셨다.두 분이 여기는 무슨 일이지?내가 문을 열자마자 배인호의 어머니가 곧바로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물으셨다.“지영아, 괜찮아? 인호한테서 어젯밤에 살인범이 네 집에 몰래 들어와 네가 다칠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얼마나 놀랐는지!”“아주머니, 저 괜찮아요. 인호 씨가 와준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안 그랬다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배인호 어머니 눈빛에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이렇게 오실 필요까지 없었지만 두 분이 특별히 나를 보러 직접 오셨다.배인호 아버지는 진지하게 말씀하셨다.“지영아, 집에 사람 몇 명 더 구해라. 아이 둘 보살피기도 힘들 텐데 너희 부모님도 지금 안 계신다며. 두 사람 정도 더 고용해서 집안일 도와줘야지.”나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더 부르려고요. 두 사람이 더 있으면 그만큼 더 안전할 것 같기도 해서요.”나는 말을 마치고 두 분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차를 내어 드린 뒤 승현이와 로아를 거실로 데려왔다.정원에는 아직도 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 냄새를 맡은 배인호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셨다.“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도 하지 못하겠네. 인호 그 자식이 드디어 옳은 일을 해냈어.”“인호 씨가 오른쪽 팔을 다쳤어요.”나의 말에 배인호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그래, 하지만 인호는 남자잖니. 그 정도 다친 걸로 죽지는 않아. 민설아도 있고.”아들을 향한 배인호 어머니 김미애 여사의 사랑은 조금 독특했다.배인호의 상처는 몇 바늘 꿰매야 할 것이다. 그 뒤로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감염되면 정말 번거로울 것이다.오늘 민설아가 여기에 없었기에 김미애는 허허 웃으며 로아를 안고 배건호는 승현이를 안았다
김미애의 분노에 배인호는 나를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지금 그들 모두 우리 집에 있으니 말이다.“무슨 일인지 먼저 정확하게 설명해 주세요.”배인호는 자기 어머니를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런 뒤에 제가 처리할게요.”김미애는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런 뒤 내가 했던 말을 다시 했다. 그녀는 나보다 더 흥분하며 점점 더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민설아에 대한 비난과 거부감이 섞여 있었다.그녀의 말에 배인호의 얼굴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마침내 내게 물었다.“엄마가 하는 말 모두 사실이야?”“인호 씨가 어젯밤 내게 물으려고 했던 거예요. 이미 다 말했어요. 인호 씨가 믿든 안 믿는 마음대로 해요.”나는 거리낄 것 없이 배인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지영이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니. 빈이가 그렇게 똑똑히 말했는데. 그 여자는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달라. 빈이를 널 감시하는 추적 장치로 섰어. 정말 미친 여자야!”김미애는 또다시 분노하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나는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주었다.“아주머니, 일단 진정하세요.”김미애는 물컵을 건네받으며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배인호에게 비난을 쏟아냈다.“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지영이가 얼마나 잘했니. 예전에 널 일편단심으로 좋아할 때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지금 저렇게 여주 같은 년이 우리 집안에 들어온 거 아니야. 집안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어떻게 알겠어?”나는 식은땀이 났다. 비록 내가 민설아가 한 짓을 폭로한 건 맞지만 김미애가 이렇게 대놓고 나를 칭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건호도 말을 보탰다.“그래, 처음부터 네가 민설아와 만나는 걸 우리는 반대했어. 그런데 네가 말을 안 들었지. 지금 봐라. 몰래 도망쳐 아이를 낳아 저렇게 다 커서 데려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그만하세요. 이 문제는 제가 처리할게요.”배인호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그의 미
배씨 집안이 돈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하지만 나도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팔고 난 뒤로는 더 이상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 전보다 더 잘 지냈다. 지금 부모님께서 삼촌의 회사를 넘겨받으신 일도 더 잘될 것이다.문제는 돈이 아니라 배인호가 걸렸다.그는 당연히 로아와 승현이를 예쁘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귀여워도 누구의 아이인 가를 생각할 때마다 분명히 화가 날 것이다.“아저씨, 아주머니.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으시면 오셔서 보세요.”내가 김미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우리의 특별한 신분 때문이었다. 만약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다.김미애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개를 숙이고 품 안에서 잠든 로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이때 배건호가 작은 선물상자 두 개를 내게 건넸다.“자, 이건 우리가 로아와 승현이에게 주는 선물이니 받거라.”상자를 열어보니 예쁜 디자인의 금팔찌였다. 하나는 용의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전에 두 분이 로아와 승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선물을 주셨다. 지금 또 금팔찌를 선물로 주시니 조금 부담스러웠다.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도 될지 기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바로 아이들에게 끼워 보자.”김미애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바로 팔찌를 꺼내서 로아의 손목에 채웠다.팔찌가 로아의 흰 아기 피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여 김미애도 만족스러워하며 자신의 안목이 맞았다고 자랑했다.다른 한 팔찌도 승현이에게 해주었다. 나는 방금 이미 배인호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했는데 지금 이 선물까지 거절하면 너무 매정해 보일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희선 언니가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얘기했다. 식탁에 요리들을 올리면서 우리를 불렀다.나는 로아와 승현이를 침실에 데려가서 계속 재웠다. 그런 뒤 배인호의 가족들과 식사했다. 풍성한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꼭 배
우지훈은 내 말에 분노하긴 했지만 조금 조심스러워하며 말했다.“허지영 씨도 정말 멍청하네요. 예전에 배인호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요?”그는 배인호에 대한 나의 증오심을 불러일이켜 내가 자기와 손잡고 함께 배인호를 상대해 주길 바랐다.하지만 난 우지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자기와 손잡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배인호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지 이런 진흙탕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다.“과거 일들은 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더 이상 그런 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 잘못 찾았어요.”나는 계속 거절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인호가 준 상처는 아직 남아 있잖아요.”우지훈은 포기하지 않았다.“당신하고 인호 사이에는 아이도 없고 증오만 남았잖아요. 우리 두 사람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요.”최고의 파트너라니 정말 대단한 개소리였다. 우지훈은 미친놈이 확실했다.내가 말이 없자 우지훈의 말투는 더 조급해졌다.“배인호를 상대하는 사람이 나뿐인 줄 알아요? 당신이 옛정에 젖어서 인호에게 복수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인호를 상대할 사람은 많아요. 이제부터 알게 될 거예요. 허허”배인호를 상대할 사람이 또 있다고?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지훈이 말하는 복수는 어떤 것일까? 생명까지 위협할 생각일까?내가 더 묻지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어보니 핸드폰은 이미 꺼져 있는 상태였다. 내 협박이 우지훈에게는 꽤 위협적일 것이다. 나에게 손을 대려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지영 씨, 우리 만나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오후에 갑자기 민설아의 전화를 받았다.시간을 보니 오후 5시쯤이라 잠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려고 했다. 게다가 민설아와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설마 배인호와 그의 부모님이 이틀 전 여기서 들은 얘기를 그녀에게 말한 것일까?그렇다면 민설아가 나를 찾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민설아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지만 나는 아주 태연했다.아까 그녀의 반응으로 봤을 때 나는 이미 우위를 차지한 것 같았다. 오히려 민설아를 이용해 내 두 아이에 대한 배씨 가문의 의심을 완전히 깰 수 있다.곧이어 나는 계산을 하고 쇼핑몰에서 나와 차를 불러 집으로 갔다.요 며칠 우지훈과 민설아가 번갈아 가며 나를 협박하다 보니 살이 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며칠 뒤 김미애와 같이 설악산으로 가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니 그때 몸에 낀 재수 없는 기운을 씻어낼 계획이다.하지만 그날 나를 데리러 온 건 김미애뿐만 아니라 배인호와 민설아, 그리고 빈이도 함께였다.모두 3일이 걸리는 일정이라 나는 로아와 빈이를 모두 데리고 비행기로 이동할 계획이었다.김미애는 차에서 내려 아이를 같이 옮기려 했다. 민설아도 가식적으로 도우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넌 빈이랑 먼저 차에 타 있으면 돼.”김미애가 차갑게 말했다.“네.”민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에 있는 빈이 곁으로 갔다.배인호는 운전을 책임졌다. 그는 차창 너머로 나와 김미애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그의 눈매와 코를 가려 오뚝 솟은 콧날과 얇은 입술, 그리고 잘 빠진 턱선이 보였다.김미애는 발걸음을 멈추고 낮은 소리로 나에게 해명했다.“지영아, 원래는 설아를 데리고 가기 싫었는데 빈이가 같이 가겠다고 생떼를 쓰면서 민설아도 같이 가야 한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어.”나는 김미애가 손자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알고 있었다. 만약 빈이가 진짜 설악산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민설아까지 꼭 가야 한다고 했다면 김미애는 무조건 설득당했을 것이다.“이해해요. 괜찮아요.”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민설아가 있는 한 그녀는 무조건 배인호와 김미애가 내 아이를 가까이하고 예뻐하는 걸 어떻게든 막아낼 것이다.나와 김미애는 아이를 한 명씩 안아야 했기에 민설아는 조수석에 앉았고 빈이는 우리와 뒤에 같이 앉았다.빈이는 나를 보자마자 큰 원수라도
나는 빈이가 로아와 승현이에게 일부러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쪽으로 가서 지켰다.“흥.”빈이는 나만 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에 대한 거부감과 실증을 대놓고 티 냈다. 나는 괜찮았다. 아이와 겨룰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그 전제는 빈이가 내 마지노선을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거의 도착하니까 엄마한테 가서 얌전히 앉아 있어. 뛰어다니지 말고.”나는 빈이에게 말했다.빈이는 지금 나와 매우 가까이 있었고 또 로아와 승현이를 보기 위해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아까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빈이는 트림을 했고 나는 옅은 콜라 냄새를 맡았다.‘콜라를 언제 마신 거지?’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빈아, 이리 와. 곧 랜딩인데 엄마 곁으로 와야지.”이때 민설아가 빈이를 부르자 빈이는 바로 얌전하게 그쪽으로 다가가 앉았고 나는 아직도 의문에 잠겨 있었다.비행기에서 내릴 때 민설아는 빈이의 손을 잡고 제일 앞에 섰다. 김미애는 적극적으로 로아를 안으면서 배인호더러 승현이를 안으라고 했다. 그러자 오히려 나는 빈손이 되었다. 아까 빈이가 점심을 먹은 자리를 지나칠 때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민설아가 버린 병을 주어 내 가방에 넣었다.비행기에서 내린 후 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먼저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하고 내일 아침 일찍 설악산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나는 방 세 개를 예약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와 로아, 그리고 승현이가 한방을 쓰고 김미애가 한방, 배인호와 민설아가 빈이를 데리고 패밀리 룸에 입주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배인호가 혼자 방을 쓰는 바람에 방은 네 개였다.민설아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봐줄 만했다. 이 일로 정서를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예약한 방은 다 VIP룸이어서 매우 아늑했다. 거기에 아이를 같이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아와 승현이는 말을 잘 듣는 편이었지만 가끔 떼를 쓰면서 안아달라고 할 때면 한 번에 둘을 안을 없어 머리가 아팠다. 만약 이 두 아이를 혼자서 돌봐야
나는 김미애가 배인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추측은 할 수 있었다.김미애의 성격에 무조건 배인호에게 민설아를 쫓아내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배씨 가문에서는 이렇게 꿍꿍이가 많은 여자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를 쫓아내려는 건가요?”민설아도 이를 눈치챘는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인호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나를 버리겠다는 건가요?”그때 일은 배인호가 굳건하지 못했던 건 맞다. 하지만 민설아도 본인도 너무 극단적이었고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전생에 배인호는 서란이 민설아를 빼닮았다는 이유로 서란을 참 많이 아꼈다. 이 부분에서 첫사랑인 민설아가 그의 맘속에서 얼마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빈이까지 생겼다.배인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빈이가 방에서 달려 나와 민설아의 다리를 꼭 껴안으며 울기 시작했다.“난 마미랑 떨어지기 싫어요. 대디, 할머니, 마미 가라고 하지 마요. 안 그러면 난 마미랑 같이 갈 거예요.”“빈아, 마미가 가도 할아버지랑 할머니, 그리고 대디 말씀 잘 들어야 해. 알았지?”민설아는 빈이와 같이 빌지는 않았다. 그저 몸을 반쯤 숙인 채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빈이에게 말했다.그러면서 나를 힐끔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새 마미 말씀도 잘 듣고.”이는 일부러 싸움의 화염을 내 쪽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빈아, 걱정하지 마. 새로운 마미 생기는 일은 없을 거야.”나의 심플한 한마디에 민설아의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 하지만 배인호와 김미애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어쨌든 이는 배씨 가문 집안일이라 내가 여기에 더 있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배인호의 태도를 보니 더 기분이 나빴다. 민설아에 대해 어떤 감정인지 궁금했다. 이런 때에 깔끔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아주머니, 로아와 승현이 아직 방에서 자고 있어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나는 김미애에게 인사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