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그 뒤로도 온 저택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밤이 깊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던 천도준은 혼자 테라스로 나와 밤바람을 쐬었다.“도련님, 무슨 걱정거리 있으십니까?”등 뒤에서 걱정스러운 존의 목소리가 들렸다.천도준은 조용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테라스에서 아래로 굽어다 보면 천문동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존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담배 있어요?”존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자 천도준이 물었다.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어 천도준에게 한 개비 건네주었다.담배를 피우지 않는 천도준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 담배에 의지하고 싶어졌다.존에게서 라이터까지 건네받고 서툴게 불을 붙인 뒤 힘껏 한 모금 빨아들였다.순간 안개가 피어오르듯 매캐한 담배연기가 페로 한가득 차오르자 천도준은 눈물이 날 정도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눈물을 글썽이며 담배를 내려다보던 천도준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면서 쓴웃음을 지었다.“아무래도 못 피겠네요.”“그러지 말고 저한테 얘기하셔도 됩니다.”존은 그러게 왜 피지도 못하는 담배를 피우겠다고 했냐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수심이 가득한 천도준을 진작에 눈치챘던 그였다.천도준은 긴 의자에 누워 두 손을 머리 뒤에 베고서 하늘의 수많은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제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맞나 싶어서요.”전에는 아버지를 처자식을 버리고 본인의 부귀영화만 추구하는 한심한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다.이수용 어르신이 나타나 그의 처지를 바꿔주고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좌해 줬던 것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었다.가문의 경영권을 이어받게 될 거래 말이다.지금껏 일면식도 없었는 아버지에 대해 원망 외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그가 어머니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만약 정말로 아버지가 떠남으로써 모든 생사가 걸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때 천씨 가
“전장을 누빌만큼 누비고 다닌 용병들도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면 두려워서 부들부들 떱니다. 하지만 도련님의 아버지처럼 태연하고 침착한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웬만큼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경이로운 눈빛으로 말하던 존은 천도준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도련님은 회장님과 많이 닮았습니다. 아직 따라가시려면 멀었지만.”“그다음에는요?”천도준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다음엔 2조 원의 돈을 들여 제 목숨을 사셨습니다.”“이조... 로 목숨 하나를 샀다고요? 아버지한테 충성하실만하네요.”존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키득거렸다.“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이죠.”웃음으로 화답하던 존의 눈빛이 더욱 밝게 반짝였다. “가장 제 마음을 움직였던 건 회장님의 침착함이었습니다. 용병으로 잘나가긴 했어도 명예롭지 못한 일도 많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회장님을 따르면 얘기가 달라지죠.”“용 가는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 간다... 뭐 이런 겁니까?”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하하하... 역시 도련님 잘 아시네요.”존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천도준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만약 입장 바꿔 그가 존의 처지였었다면 그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다만 존의 입을 통해 들은 아버지는 그의 생각과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몇 만 명이 지켜보고 군탱크가 도사리고 있는 죽어마땅한 전장이었다.그런 곳에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는 배짱은 보통 상인이 가질 수 있는 포스가 아니었다.“도련님, 회장님은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세요.”침묵하는 천도준의 안색을 살피던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말을 아껴야 하는 게 맞지만, 한 말씀 드리자면 회장님이 저를 도련님의 곁에 보내셨다는 건 도련님을 본인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천도준이 물었다.“저는 회장님의 유일한 최측근 경호원이었습니다.”말하는 존의 눈빛에 살기가 감
이튿날 아침.천도준은 날이 밝자마자 존과 함께 아침 운동에 나섰다.부상 때문에 지옥훈련은 잠시 중단하고 기본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만 했는데도 운동이 끝날 무렵이 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상의를 탈의한 존을 보며 천도준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존, 자기 관리에 엄격한 편이죠?”전에 존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한 지옥훈련을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했었다.이걸 매일 견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천태영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천도준 역시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견지하지 않았을 테니까.땀 범벅이 된 존의 구릿빛 피부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 아래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구리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피부였다.존은 가슴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무예는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밀리기 마련이니 게을리해서야 되겠습니까.”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거실을 청소하고 있던 박유리는 웃통을 벗고 있는 존의 모습에 꺅 하고 소리치며 고개를 푹 숙였다.“왜 그래?”존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천도준은 존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팍 치면서 나지막이 귀띔해 주었다.“여자아이잖아요. 조심해야죠.”그제야 존은 다급히 옷으로 가슴을 가리며 횡설수설했다.“유리야, 미안해. 나,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박유리는 숨을 고르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오빠 가슴 근육 장난 아니다...”“보통이지, 뭐. 너도 똑같아.”존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천도준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남자와 여자의 가슴 근육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박유리를 보며 천도준은 다급히 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죠?”존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감히 천도준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수
“당신...”말린 다고 그의 말을 들을 장수지가 아니었기에 오덕화는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두 사람은 선물 꾸러미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별장단지의 입구로 걸어갔다.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두 경비원이 서로 마주 보며 의혹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았다.천문동 별장단지에서 경비원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관리사무소에서 엄선해낸 능력자들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달에 400만 원의 월급을 준다 하면 충분히 프로 경비원을 골라낼 수 있었다.두 사람은 장수지와 오덕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들이 별장단지의 입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얼마 안 되어 장수지와 오덕화가 입구에 도착했다.“저기요! 그래요. 바로 당신, 빨리빨리 문 안 열어주고 뭐 하는 거예요?”장수지가 목을 빼들고 호통을 쳤다.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했지만 경비원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어떻게든 별장단지의 입주민에게서 뭐라도 뜯어먹으려는 친척들이 이곳에 찾아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었기 때문이었다.단 한 번의 호통에 버럭 화를 낸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었다.“죄송하지만 저희 별장단지 규정상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카드로 신분을 확인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안에 친척분께서 살고 계신대도 저희한테 확인을 받은 뒤에야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경비원이 장수지의 앞으로 다가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경비원의 말에 장수지와 오덕화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오덕화가 못마땅한 손길로 장수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장수지는 차갑게 그의 손을 쳐내며 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지금 우리 짐 많은 거 안 보여요? 내 사위가 안에서 산다니까? 난 내 사위 보러 왔다고요!”“사위분 몇 동 몇 호에 사시는 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연락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직접 연락하셔도 되고요.”연락?연락 같은 소리 하고 있네!장수지는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도준이 별장단지의 최고급 별장에 산다는 것만 알았지 상세한 주소를
관리사무소 팀장의 말을 듣고 난 천도준의 입가에 비릿한 냉소가 걸렸다.3년의 결혼생활 동안 오씨 가문 네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훤히 꿰고 있었던 그는 천문동 별장단지에 입주하기 전 미리 관리사무소에 언질을 주었었다.만약 장수지가 막무가내로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절대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고 그에게 연락하라고 당부했었다.비록 고비는 넘겼지만 어머니가 회복 중에 큰 충격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더구나 이건 그의 개인적인 일이기도 했고.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을 어머니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천도준 씨, 어떻게 처리할까요?”관리사무소 팀장이 물었다.“독신인 저에게 장모님이 어디 있겠습니까?”천도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관리사무소 팀장이 몇 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천도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했다.그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남미와는 진작에 모든 걸 끝냈었다.전에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오씨 가문이었기에 이젠 그가 갚아줄 차례였다.감히 그를 넘볼 수 없게 문턱도 넘게 못하게 할 작정이였이다.천문동 별장단지 관리사무소.전화를 끊은 뒤 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천문동의 별장은 물론 관리 사무실 역시 주건희가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들이었다. 천도준이 천문동의 별장을 구매했을 때 주건희는 부동산의 대표를 건너뛰고 관리사무소 팀장에게 친히 천도준의 일을 명령했었다.때문에 관리사무소 팀장도 천도준의 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바였다.그는 별장단지의 대문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녀가 확실히 천도준의 장인 장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주건희에게서 그들이 천도준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또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천도준 씨 어머니의 수술비까지 등 처먹으려던 인간들이 어디서 빌붙으려고!! 낯짝도 두껍지!”팀장은 썩소를 지으며 인터폰을 들고 명령을 내렸다.“당장 쫓아내!”별장단지 대문 앞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장수지
장수지가 번쩍 들어 올린 손이 금방이라도 경비원에게 닿으려는 찰나.아까 연락한 관리사무소와 연결된 인터폰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당장 쫓아내!”팀장의 목소리에 속으로 참을 인을 족히 삼백 번은 새겼던 경비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장수지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중 한 경비원이 무지막지한 장수지의 팔을 덥석 움켜 쥐였다.“못 들었습니까? 저희 팀장님께서 당장 쫓아내랍니다.”“어머, 어머. 지금 감히 날 막았어?”경비원이 못 막을 걸 막기라도 한 것처럼 장수지가 소리를 빽 질렀다.“집 지키는 개 주제에 감히 날 막아?”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경비원의 얼굴을 할퀴었다.“악!!”미처 그녀를 막지 못한 경비원의 얼굴에 깊은 생채기가 났다. 손톱자국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픔을 참으며 그는 장수지의 손목을 힘껏 뿌리쳤다.장수지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서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장수지는 아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사람 잡네, 사람 잡아. 천문동 별장단지의 경비원이 폭행을 휘두르네... 아이고... 누가 빨리 와보세요...”처절한 절규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누가 보면 그녀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만큼 메서드 눈물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얼굴에 상처를 입은 경비원은 멍한 표정으로 두 눈만 끔벅였다.다른 경비원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례한 사람은 여럿 봤어도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은 처음이었다.구경꾼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몇 초 정적이 흐르더니 구경꾼들 사이에서 분노에 찬 비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떻게 저렇게 뻔뻔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 천문동 별장단지에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어요?”“교양 수준하고는. 경비 아저씨들 겁먹지 말아요. 오늘 이 일이 커진다 해도 우리가 다 증인이니까!”“아유, 품격 떨어져. 어디서 이런 막돼먹은 아줌마가 굴러온 거예요?”구경꾼들의
장수지와 오덕화가 천문동 별장단지에 온 것은 천도준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아예 무관심했을뿐더러 거들떠볼 가치조차 없는 자들이었다.길을 걸을 때 발에 밟혀 죽는 개미가 몇 마리나 되는지 일일이 살피지 않는 것처럼 천도준에게 장수지와 오덕화는 개미나 다름없었다.용정 화원의 예약 분양으로 온 도시가 뜨겁게 들끓어 올랐고 단 하루만에 모든 집을 다 팔 것을 천도준도 진작에 예상하였다.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바로 다음 예매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었다.보히니아 체크 카드에 현금 이천억이 있었으니 전반 서천구의 재개발 프로젝트도 그에겐 식은 죽 먹기인 셈이었다. 그는 반나절이나 소모해서야 부상 때문에 한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아 생긴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다.그리고서 그는 이메일함을 열어 동종 업계의 사장들이 그에게 보내온 축하메일을 확인했다. 그중에서 재료상들의 초청장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천도준은 동종 업계 사장들이 보내온 축하 메일에 일일이 정성스레 답장을 보냈다. 이 업계에서 친구를 한 명이라도 더 두는 것이 적으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 축하가 진심이든 아니든 메일을 보낸 이상 천도준도 예의를 차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재료상들의 초청장에 그는 그저 담담히 웃으며 모조리 삭제 버튼을 눌렀다.당시 전 도시의 재료상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정태건설을 배척했었다.그런데 지금 용정 화원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자 다시 협력하자는 것이었다.힘들 때 나 몰라라 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친한 척 메일이라니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군!똑똑.노크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마영석이 안으로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자재의 대표님께서 대표님과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며 응접실에 와계십니다. 어떻게...”“마 대리 생각은 어떤데?”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그의 마음을 읽은 마영석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제가 알아서 잘 거절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덩달아 우리를 배척했던 주제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심산인가 봅니다. 아주
“그만해.”천도준은 눈을 흘기며 마영석에게 핀잔을 주었다.새로 부임했다던 영일자재의 대표가 고청하라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아니 출근한다며?누가 첫 출근을 도시의 제일가는 회사의 대표님으로 해?머리를 긁적이던 천도준은 문득 전에 영일자재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음을 눈치챘다.혹시... 그도 모르는 사이에 고청하의 덕을 본 것일까...“그럼 오늘 점심에 형수님을 초대하시겠어요? 아, 아니 영일자재의 대표님을 초대하시겠어요?”마영석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계속되는 마영석의 웃음에 천도준이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한가한가 봐? 공사장에 가서 철근이나 나르지?”마영석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가버렸다.천도준은 여전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고청하... 서프라이즈가 커도 너무 크잖아!천도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고청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하하... 이 시간에 전화한 걸 보면 같이 점심 먹자는 거지?”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고청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그런데 우리 고 대표님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천도준의 웃음기 섞인 말에 침묵하던 고청하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어, 어떻게 알았어?”“내가 요즘 유난히 바쁘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알았을 텐데.”천도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고청하 씨, 남자 친구인 저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대표님이 되셨네요? 굉장히 섭섭해요.”“나도 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날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하도 컸었어야 말이지. 말 꺼내기 쑥스러워서 못했던 거야.”고청하가 세상 억울한 목소리로 변명했다.“혹시 화 났어? 화 난 거 아니지? 화내지 마~”마치 억울해하며 애원하는 꼬마 여자아이같기도 했다.그녀의 애교에 마음이 풀린 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으름장을 놓았다.“남자 친구한테 점심 크게 사야 할 거야.”“물론이죠. 남자 친구님.”고청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천도준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