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그 뒤로도 온 저택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밤이 깊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던 천도준은 혼자 테라스로 나와 밤바람을 쐬었다.“도련님, 무슨 걱정거리 있으십니까?”등 뒤에서 걱정스러운 존의 목소리가 들렸다.천도준은 조용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테라스에서 아래로 굽어다 보면 천문동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존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담배 있어요?”존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자 천도준이 물었다.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어 천도준에게 한 개비 건네주었다.담배를 피우지 않는 천도준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 담배에 의지하고 싶어졌다.존에게서 라이터까지 건네받고 서툴게 불을 붙인 뒤 힘껏 한 모금 빨아들였다.순간 안개가 피어오르듯 매캐한 담배연기가 페로 한가득 차오르자 천도준은 눈물이 날 정도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눈물을 글썽이며 담배를 내려다보던 천도준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면서 쓴웃음을 지었다.“아무래도 못 피겠네요.”“그러지 말고 저한테 얘기하셔도 됩니다.”존은 그러게 왜 피지도 못하는 담배를 피우겠다고 했냐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수심이 가득한 천도준을 진작에 눈치챘던 그였다.천도준은 긴 의자에 누워 두 손을 머리 뒤에 베고서 하늘의 수많은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제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맞나 싶어서요.”전에는 아버지를 처자식을 버리고 본인의 부귀영화만 추구하는 한심한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다.이수용 어르신이 나타나 그의 처지를 바꿔주고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좌해 줬던 것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었다.가문의 경영권을 이어받게 될 거래 말이다.지금껏 일면식도 없었는 아버지에 대해 원망 외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그가 어머니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만약 정말로 아버지가 떠남으로써 모든 생사가 걸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때 천씨 가
“전장을 누빌만큼 누비고 다닌 용병들도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면 두려워서 부들부들 떱니다. 하지만 도련님의 아버지처럼 태연하고 침착한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웬만큼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경이로운 눈빛으로 말하던 존은 천도준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도련님은 회장님과 많이 닮았습니다. 아직 따라가시려면 멀었지만.”“그다음에는요?”천도준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다음엔 2조 원의 돈을 들여 제 목숨을 사셨습니다.”“이조... 로 목숨 하나를 샀다고요? 아버지한테 충성하실만하네요.”존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키득거렸다.“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이죠.”웃음으로 화답하던 존의 눈빛이 더욱 밝게 반짝였다. “가장 제 마음을 움직였던 건 회장님의 침착함이었습니다. 용병으로 잘나가긴 했어도 명예롭지 못한 일도 많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회장님을 따르면 얘기가 달라지죠.”“용 가는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 간다... 뭐 이런 겁니까?”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하하하... 역시 도련님 잘 아시네요.”존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천도준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만약 입장 바꿔 그가 존의 처지였었다면 그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다만 존의 입을 통해 들은 아버지는 그의 생각과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몇 만 명이 지켜보고 군탱크가 도사리고 있는 죽어마땅한 전장이었다.그런 곳에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는 배짱은 보통 상인이 가질 수 있는 포스가 아니었다.“도련님, 회장님은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세요.”침묵하는 천도준의 안색을 살피던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말을 아껴야 하는 게 맞지만, 한 말씀 드리자면 회장님이 저를 도련님의 곁에 보내셨다는 건 도련님을 본인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천도준이 물었다.“저는 회장님의 유일한 최측근 경호원이었습니다.”말하는 존의 눈빛에 살기가 감
이튿날 아침.천도준은 날이 밝자마자 존과 함께 아침 운동에 나섰다.부상 때문에 지옥훈련은 잠시 중단하고 기본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만 했는데도 운동이 끝날 무렵이 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상의를 탈의한 존을 보며 천도준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존, 자기 관리에 엄격한 편이죠?”전에 존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한 지옥훈련을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했었다.이걸 매일 견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천태영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천도준 역시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견지하지 않았을 테니까.땀 범벅이 된 존의 구릿빛 피부는 싱그러운 아침 햇살 아래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구리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피부였다.존은 가슴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무예는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밀리기 마련이니 게을리해서야 되겠습니까.”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거실을 청소하고 있던 박유리는 웃통을 벗고 있는 존의 모습에 꺅 하고 소리치며 고개를 푹 숙였다.“왜 그래?”존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천도준은 존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팍 치면서 나지막이 귀띔해 주었다.“여자아이잖아요. 조심해야죠.”그제야 존은 다급히 옷으로 가슴을 가리며 횡설수설했다.“유리야, 미안해. 나,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박유리는 숨을 고르며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오빠 가슴 근육 장난 아니다...”“보통이지, 뭐. 너도 똑같아.”존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천도준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남자와 여자의 가슴 근육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박유리를 보며 천도준은 다급히 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죠?”존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감히 천도준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수
“당신...”말린 다고 그의 말을 들을 장수지가 아니었기에 오덕화는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두 사람은 선물 꾸러미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별장단지의 입구로 걸어갔다.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두 경비원이 서로 마주 보며 의혹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았다.천문동 별장단지에서 경비원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관리사무소에서 엄선해낸 능력자들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달에 400만 원의 월급을 준다 하면 충분히 프로 경비원을 골라낼 수 있었다.두 사람은 장수지와 오덕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들이 별장단지의 입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얼마 안 되어 장수지와 오덕화가 입구에 도착했다.“저기요! 그래요. 바로 당신, 빨리빨리 문 안 열어주고 뭐 하는 거예요?”장수지가 목을 빼들고 호통을 쳤다.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했지만 경비원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어떻게든 별장단지의 입주민에게서 뭐라도 뜯어먹으려는 친척들이 이곳에 찾아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었기 때문이었다.단 한 번의 호통에 버럭 화를 낸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었다.“죄송하지만 저희 별장단지 규정상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카드로 신분을 확인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안에 친척분께서 살고 계신대도 저희한테 확인을 받은 뒤에야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경비원이 장수지의 앞으로 다가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경비원의 말에 장수지와 오덕화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오덕화가 못마땅한 손길로 장수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장수지는 차갑게 그의 손을 쳐내며 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지금 우리 짐 많은 거 안 보여요? 내 사위가 안에서 산다니까? 난 내 사위 보러 왔다고요!”“사위분 몇 동 몇 호에 사시는 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연락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직접 연락하셔도 되고요.”연락?연락 같은 소리 하고 있네!장수지는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도준이 별장단지의 최고급 별장에 산다는 것만 알았지 상세한 주소를
관리사무소 팀장의 말을 듣고 난 천도준의 입가에 비릿한 냉소가 걸렸다.3년의 결혼생활 동안 오씨 가문 네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훤히 꿰고 있었던 그는 천문동 별장단지에 입주하기 전 미리 관리사무소에 언질을 주었었다.만약 장수지가 막무가내로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절대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고 그에게 연락하라고 당부했었다.비록 고비는 넘겼지만 어머니가 회복 중에 큰 충격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더구나 이건 그의 개인적인 일이기도 했고.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을 어머니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천도준 씨, 어떻게 처리할까요?”관리사무소 팀장이 물었다.“독신인 저에게 장모님이 어디 있겠습니까?”천도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관리사무소 팀장이 몇 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천도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했다.그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남미와는 진작에 모든 걸 끝냈었다.전에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오씨 가문이었기에 이젠 그가 갚아줄 차례였다.감히 그를 넘볼 수 없게 문턱도 넘게 못하게 할 작정이였이다.천문동 별장단지 관리사무소.전화를 끊은 뒤 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천문동의 별장은 물론 관리 사무실 역시 주건희가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들이었다. 천도준이 천문동의 별장을 구매했을 때 주건희는 부동산의 대표를 건너뛰고 관리사무소 팀장에게 친히 천도준의 일을 명령했었다.때문에 관리사무소 팀장도 천도준의 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바였다.그는 별장단지의 대문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녀가 확실히 천도준의 장인 장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주건희에게서 그들이 천도준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또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천도준 씨 어머니의 수술비까지 등 처먹으려던 인간들이 어디서 빌붙으려고!! 낯짝도 두껍지!”팀장은 썩소를 지으며 인터폰을 들고 명령을 내렸다.“당장 쫓아내!”별장단지 대문 앞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장수지
장수지가 번쩍 들어 올린 손이 금방이라도 경비원에게 닿으려는 찰나.아까 연락한 관리사무소와 연결된 인터폰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당장 쫓아내!”팀장의 목소리에 속으로 참을 인을 족히 삼백 번은 새겼던 경비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장수지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중 한 경비원이 무지막지한 장수지의 팔을 덥석 움켜 쥐였다.“못 들었습니까? 저희 팀장님께서 당장 쫓아내랍니다.”“어머, 어머. 지금 감히 날 막았어?”경비원이 못 막을 걸 막기라도 한 것처럼 장수지가 소리를 빽 질렀다.“집 지키는 개 주제에 감히 날 막아?”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경비원의 얼굴을 할퀴었다.“악!!”미처 그녀를 막지 못한 경비원의 얼굴에 깊은 생채기가 났다. 손톱자국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픔을 참으며 그는 장수지의 손목을 힘껏 뿌리쳤다.장수지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서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장수지는 아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사람 잡네, 사람 잡아. 천문동 별장단지의 경비원이 폭행을 휘두르네... 아이고... 누가 빨리 와보세요...”처절한 절규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누가 보면 그녀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만큼 메서드 눈물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얼굴에 상처를 입은 경비원은 멍한 표정으로 두 눈만 끔벅였다.다른 경비원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례한 사람은 여럿 봤어도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은 처음이었다.구경꾼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몇 초 정적이 흐르더니 구경꾼들 사이에서 분노에 찬 비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떻게 저렇게 뻔뻔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 천문동 별장단지에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어요?”“교양 수준하고는. 경비 아저씨들 겁먹지 말아요. 오늘 이 일이 커진다 해도 우리가 다 증인이니까!”“아유, 품격 떨어져. 어디서 이런 막돼먹은 아줌마가 굴러온 거예요?”구경꾼들의
장수지와 오덕화가 천문동 별장단지에 온 것은 천도준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아예 무관심했을뿐더러 거들떠볼 가치조차 없는 자들이었다.길을 걸을 때 발에 밟혀 죽는 개미가 몇 마리나 되는지 일일이 살피지 않는 것처럼 천도준에게 장수지와 오덕화는 개미나 다름없었다.용정 화원의 예약 분양으로 온 도시가 뜨겁게 들끓어 올랐고 단 하루만에 모든 집을 다 팔 것을 천도준도 진작에 예상하였다.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바로 다음 예매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었다.보히니아 체크 카드에 현금 이천억이 있었으니 전반 서천구의 재개발 프로젝트도 그에겐 식은 죽 먹기인 셈이었다. 그는 반나절이나 소모해서야 부상 때문에 한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아 생긴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다.그리고서 그는 이메일함을 열어 동종 업계의 사장들이 그에게 보내온 축하메일을 확인했다. 그중에서 재료상들의 초청장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천도준은 동종 업계 사장들이 보내온 축하 메일에 일일이 정성스레 답장을 보냈다. 이 업계에서 친구를 한 명이라도 더 두는 것이 적으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 축하가 진심이든 아니든 메일을 보낸 이상 천도준도 예의를 차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재료상들의 초청장에 그는 그저 담담히 웃으며 모조리 삭제 버튼을 눌렀다.당시 전 도시의 재료상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정태건설을 배척했었다.그런데 지금 용정 화원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자 다시 협력하자는 것이었다.힘들 때 나 몰라라 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친한 척 메일이라니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군!똑똑.노크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마영석이 안으로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자재의 대표님께서 대표님과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며 응접실에 와계십니다. 어떻게...”“마 대리 생각은 어떤데?”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그의 마음을 읽은 마영석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제가 알아서 잘 거절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덩달아 우리를 배척했던 주제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심산인가 봅니다. 아주
“그만해.”천도준은 눈을 흘기며 마영석에게 핀잔을 주었다.새로 부임했다던 영일자재의 대표가 고청하라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아니 출근한다며?누가 첫 출근을 도시의 제일가는 회사의 대표님으로 해?머리를 긁적이던 천도준은 문득 전에 영일자재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음을 눈치챘다.혹시... 그도 모르는 사이에 고청하의 덕을 본 것일까...“그럼 오늘 점심에 형수님을 초대하시겠어요? 아, 아니 영일자재의 대표님을 초대하시겠어요?”마영석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계속되는 마영석의 웃음에 천도준이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한가한가 봐? 공사장에 가서 철근이나 나르지?”마영석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가버렸다.천도준은 여전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고청하... 서프라이즈가 커도 너무 크잖아!천도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고청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하하... 이 시간에 전화한 걸 보면 같이 점심 먹자는 거지?”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고청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그런데 우리 고 대표님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천도준의 웃음기 섞인 말에 침묵하던 고청하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어, 어떻게 알았어?”“내가 요즘 유난히 바쁘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알았을 텐데.”천도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고청하 씨, 남자 친구인 저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대표님이 되셨네요? 굉장히 섭섭해요.”“나도 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날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하도 컸었어야 말이지. 말 꺼내기 쑥스러워서 못했던 거야.”고청하가 세상 억울한 목소리로 변명했다.“혹시 화 났어? 화 난 거 아니지? 화내지 마~”마치 억울해하며 애원하는 꼬마 여자아이같기도 했다.그녀의 애교에 마음이 풀린 천도준이 피식 웃으며 으름장을 놓았다.“남자 친구한테 점심 크게 사야 할 거야.”“물론이죠. 남자 친구님.”고청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천도준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주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