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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Author: 고운
“시연아, 또 만나네? 새해 복 많이 받아.”

연도진이 온화한 웃음을 띠며 김시연 옆의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김시연이 불편한 심기로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일이 있어서. 넌?”

연도진은 옆의 벽에서 종이 타월 두 장을 뽑아내 손을 닦았는데 하나하나의 동작이 화보 속 한 장면 같았다.

“놀려고.”

김시연은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손의 물기를 털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 김시연의 팔을 연도진이 잡았다.

“같이 밥 먹을 수 있을까?”

“안 돼.”

김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화장실을 걸어 나갔다. 식사 자리에 돌아오니 온하랑은 그녀의 안 좋은 안색을 눈치채고 물어왔다.

“무슨 일 있어요?”

김시연은 콧방귀를 끼더니 말했다.

“쓰레기를 봤더니 기분이 안 좋네요.”

온하랑은 이내 누굴 얘기하는지 알아차렸다.

“그 사람 여기 있어요?”

“네.”

김시연은 집히는 대로 두 입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전 안 먹을래요. 먼저 방에 돌아가려고요. 밤에 나갈 계획 있나요?”

온하랑은 최동철을 바라봤고 최동철은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8시에 나가서 야경 찍는 법 가르쳐 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전 먼저 가서 좀 누워있을래요.”

김시연은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

“숙모, 저도 배불러요. 그만 갈래요.”

부시아도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온하랑은 최동철을 향해 말했다.

“그럼 우린 먼저 가볼게요. 이따 8시에 로비에서 봐요.”

“그래.”

온하랑 일행이 뜨자 자리에는 최동철과 이석 두 사람만 남았다. 이석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최 대표님, 아까 꼬맹이가 온하랑 씨한테 숙모라고 부르던데요.”

“들었어.”

최동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하랑 남편이 누군지 알아봐.”

“네.”

이때 연도진이 접시를 들고 걸어와 최동철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다 돌아갔어요?”

“응.”

이석이 놀리듯 말했다.

“시연 씨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돌아가겠다던데요? 쓰레기를 봤다는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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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몇 마디 인사로도 두 사람 사이엔 짙은 긴장감이 흘렀다.온하랑은 살짝 부승민을 힐끔 보았다.‘오늘 밤 여기에 머무르겠다고? 뭐, 괜찮네.’메이슨이 하품을 하며 졸린 기색을 내비쳤다.“졸려? 위층에 가서 잘래?” 온하랑이 물었다.“네.” 메이슨은 조그맣게 대답하며 손에 들고 있던 체스를 내려놓았다. 아이는 카펫을 짚고 일어서더니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고는 작게 말했다.“엄마, 이야기 해주시면 안 돼요?”“그래, 엄마가 이야기 들려줄게.”온하랑은 메이슨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최동철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카펫 위에 흩어진 장난감과 보드게임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승민에게 말했다.“편히 있어.”그 말과 함께 최동철도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메이슨은 세수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이불 속에 들어갔고 온하랑은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동화책을 펼쳤다.책 속 두 번째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몇 문장 읽었을 때 최동철이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온하랑은 잠시 멈칫했지만 최동철이 손짓으로 계속 읽으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는 천천히 침대 끝에 앉아 온하랑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고요한 방 안에는 온하랑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만이 흘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잔잔한 시냇물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며 은은하게 번졌다.방 안의 분위기는 조화롭고 따뜻했다. 부드러운 조명이 구석구석을 비추며 아늑함을 더했고 평온함이 감돌았다.최동철은 침대 끝에 조용히 앉아 온하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평화로운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마치 깊고 맑은 호수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감정은 한없이 깊었다.언제부터였는지 메이슨은 점점 고른 숨소리를 내며 꿈나라로 빠져들었다.이야기가 끝에 다다랐고 온하랑은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책을 조심스럽게 덮었다.의자를 원래 자리로 옮기고 일어났다.최동철도 온

  • 위태로운 제안   제1278화

    최동철은 영어로 낮게 속삭이며 메이슨에게 말했다.“메이슨, 엄마 전화야. 직접 말씀드려.”“엄마, 보고 싶어요. 언제 돌아오세요?”메이슨의 어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부승민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는데 그런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온하랑은 메이슨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모자 간의 정은 쉽게 끊을 수 없는 법이었다.그건 마치 그가 부시아를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다만 최동철의 교활함이 문제였다. 아이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온하랑은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엄마 지금 외식 중이야. 금방 돌아갈게.”“네. 그럼 엄마 돌아오면 자러 갈게요.”메이슨의 목소리가 끝나자 수화기 너머로 최동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하랑아, 혹시 불편하면 안 돌아와도 돼. 내가 메이슨을 잘 달래볼게.”부승민은 그 말을 듣고 냉소를 터트렸다.‘목적을 이루고 나서도 마치 배려심 깊은 척 연기까지 하다니.’온하랑은 부승민을 한 번 힐끗 보더니 최동철에게 말했다.“불편하지 않아요. 곧 돌아갈게요.”최동철은 부승민의 냉소를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그래, 여기서 기다릴게.”전화가 끊기자 부승민은 최동철의 말투를 따라 하며 비꼬듯 말했다.“그래, 여기서 기다릴게.”온하랑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나 샤워 좀 할게.”그러나 침대에서 내려가려던 그녀는 부승민에게 다시 눌려졌다.“좀 이따 가. 우리 아직 ‘저녁’ 다 안 먹었잖아.”“...빨리 끝내.”메이슨이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그녀는 서둘렀다.부승민은 이를 꽉 물고 말했다.“그래, 빨리 끝낼게.”그러고는 온하랑을 다시 한 번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이번엔 정말 빨랐다.그의 움직임이 빨랐고 그녀가 여러 번 절정에 다다르는 시간도 짧았다.끝난 뒤 온하랑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결국 부승민이 그녀를 안아 욕실로 데려가 간단히 씻겨 주었다.샤워를 마친 뒤 옷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77화

    저녁 식사 후, 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부승민은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문을 닫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 물었다.“샤워할 거야?”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고 그들의 시선이 맞닿았다.온하랑은 그의 눈 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발견했다.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그의 말에 담긴 속뜻을 이미 충분히 이해한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응.”그녀는 천천히 욕실로 걸어갔고 부승민은 그런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샤워기의 물소리가 욕실 가득 울려 퍼지면서 따뜻한 김이 허공을 채웠다.온하랑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그의 허리에 감겨 있었고 몸은 공중에 떠 있었다.뜨거운 물줄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폭우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꽃처럼 그녀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떨리고 있었다.온하랑은 두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좀... 좀 천천히 해...”오랜만이라 그런지 부승민은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잠시 멈춰 샤워기를 껐고 긴 팔을 뻗어 수건을 집어 그녀의 몸 위에 덮었다. 그리고는 가뿐히 그녀를 안고 욕실을 나섰다.온하랑은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붉어진 눈가를 하고는 그가 힘을 준 팔뚝을 붙잡고 말했다.“빨리 가.”“알겠어.”“...아니, 그렇게... 빠르게가 아니야... 으응...”그녀는 그가 터치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했다.“알아.”그는 그녀의 말을 따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이내 창가에 도착했다.“안 돼...” 온하랑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아래를 힐끗 보니 차들이 오가며 번화한 거리와 길게 늘어진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눈을 위로 돌리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졌는데 천장이 없는 듯한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부승민은 그녀의 입술을 엄지로 문지르며 속삭였다.“긴장하지 마. 건너편엔 높은 건물이 없으니 아무도 볼 수 없어.”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내려놓았고 그녀의 허리를

  • 위태로운 제안   제1276화

    어두운 조명과 검은색 자동차가 어우러져 최동철의 실루엣이 희미해졌고, 거기에 부승민이 거의 다 왔다고 메시지를 보낸 터라, 온하랑은 무심코 그가 부승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하필 이때 최동철이 올 줄은 말이다.“너 내 차가 온 걸 보고서도 그 사람한테서 안 떨어지고 오히려 머리를 돌려서 못 본 척하더라.”그는 최동철이 일부러 그와 비슷한 차를 몰고,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온 걸 보면 내일 출장을 핑계로 별장에 묵으려는 게 뻔했다.“...!”온하랑은 난감해서 울상 지었다.“못 본 척한 게 아니라 진짜 못 봤어...”눈 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쫙 비친 순간 온하랑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이웃 차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내가 경적 안 울렸으면, 넌 내가 온 줄도 모르고 계속 그 사람이랑 얘기했겠네?”“아니거든.... 사람 잘못 본 걸 발견하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네 차를 알아봤어.”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변명하듯 말했다.부승민이 말없이 그녀만 지그시 바라보자 온하랑은 눈을 깜빡였다.“왜 그렇게 쳐다봐? 혹시 내가 그 사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렇다면?”온하랑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바로 널 차버렸지. 뭐 하러 여기 앉아서 연기하겠어?”“...”온하랑은 문득 차창 밖을 보다가 여전히 차 옆에 서 있는 최동철을 발견했다. 그를 보는 순간 다시 민망해져서 부승민 팔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우리 이제 가자.”부승민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온하랑 뺨에 입을 맞췄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투명한 창문 너머로 최동철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가속 페달을 밟아 단지 밖으로 차를 몰았다.차 안에는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서 훈훈했다.온하랑은 얼굴이 달아올라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뒷자리에 던졌다. 그러곤 바깥 풍경을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우리 어디 가서 밥 먹을 거야?”부승민은 대답 대신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왜 멈춰?”

  • 위태로운 제안   제1275화

    온하랑은 하루 종일 메이슨과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메이슨은 이미 잠이 들었다.도착하자 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먼저 할 거냐고 물었다. 온하랑은 메이슨이 잠에서 깨면 같이 먹겠다고 했다.오후 늦게쯤, 메이슨이 조금 출출해해서 온하랑이 그를 데리고 디저트 가게에 갔고 같이 케이크를 먹었기에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온하랑은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처리했다.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온하랑이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확인해 보니 부승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지금 데리러 갈게. 야식 먹자. 거의 다 왔어.]온하랑은 답장을 보냈다.[좋아, 나도 아직 저녁 못 먹었어.]그리고 노트북을 덮고 도우미에게 말했다.[잠깐 밖에 나갈 건데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 30분 뒤쯤에 메이슨 깨워서 밥 먹여 주세요.]도우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방으로 올라가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방에서 나오며 베란다를 지나칠 때 무심코 밖을 내다봤다.부승민의 차가 이미 별장 입구에 와 있었다.차 옆에는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한 손을 차 문 위에 올리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였다. 불빛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온하랑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부승민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자, 온하랑은 조용히 다가가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서프라이즈!”남자는 온몸이 움찔했다. 뜨거운 손이 온하랑이 교차한 두 손을 덮었고, 다른 손에서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담배꽁초를 발로 짓눌렀다.마침 그때, 앞쪽 코너에서 자동차 한 대가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남자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게 꿈인 것 같아.”낯설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4화

    “그러면 이젠...”“네가 기회를 봐서 사모님을 도발해 봐. 사모님이 열받아서 너를 미워하게 만들어야 해.”간하림이 말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간하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설윤이 내 의도를 알아챈 거 아니야?’“내가 임신한 척해서 사모님을 자극하고 사모님이 열받아서 나를 밀면 유산한 척한다... 이런 걸 말하는 거야?”“맞아.”간하림이 한숨을 내쉬며 맞장구쳤다.“바로 그거야!”‘때가 되면 사모님이 널 밀기는커녕 오히려 네 거짓 임신을 들춰내 버릴걸.’“근데...”“왜?”“나, 진짜 임신했어.”“진짜 임... 뭐라고? 네가 진짜로 임신했다고?”간하림이 깜짝 놀랐다.“응.”설윤 목소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어제 집에 돌아왔는데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매스꺼워서 문득 생리가 밀린 게 떠올라 임신 테스트기를 사 봤거든. 근데... 정말로 임신이라고 나오더라.”간하림은 속이 쓰린 듯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나이도 많은 최국환이 그녀를 임신시킬 줄도 몰랐다.‘운도 참 좋지.’만약 아이를 낳아서 최씨 가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면 설윤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늦둥이는 더 귀여움을 받기 마련이다.“맞다.”설윤은 혼잣말하듯 계속했다.“아직 병원에는 안 가 봤어. 언제 가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너 임신한 거 회장님한테 말했어?”간하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 병원에서 검사받은 다음에 보고서 들고 가서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그렇구나... 음, 윤아. 네가 임신했다면 아까 그 방법은 쓰면 안 돼. 네 몸 상하면 안 되지. 내가 좀 더 고민해 볼게.”‘사모님께 한번 물어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야겠다.’“하림아, 만약 내가 아이를 낳으면 회장님한테도 양육 의무가 생기지 않아? 그럼 사모님도 날 쉽게 쫓아내지 못할 텐데 굳이 지금 상대할 필요가 있나?”“...”전화를 끊고 나서, 간하림의 마음속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견딜

  • 위태로운 제안   제1273화

    임연지도 임가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임가희는 그녀가 너무 성급했다고 나무랐다.임연지는 입으로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녀는 일부러 설윤의 정체를 드러내서 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자, 임연지는 예상대로 점원에게서 설윤이 환불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가방을 예약하고 직접 가게에 가서 찾아왔다.가방을 손에 넣은 임연지는 후련한 기분으로 예쁜 사진을 찍어 한진에게 보냈다.[나 가방 받았어.]시간을 보니 이때쯤 한진은 막 일어났을 것 같았다.잠시 후 한진이 답장을 보냈다.[진짜 예쁘네! 처음 나왔을 때부터 딱 꽂혔는데 네가 준다니까 사양 안 할게.][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쪽에 맡겨뒀다가 네가 귀국할 때 가져갈래, 아니면 누가 대신 가져다주게 할까?][며칠 뒤에 우리 오빠가 갈 거야. 나 대신 가져다줄 수 있어. 너 언제 시간 돼? 시간 맞춰서 오빠를 보낼게.][난 지금도 괜찮아. 나 센트럴 백화점 4층 커피숍에 있어.][좋아,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 볼게.]몇 분 뒤, 한진이 다시 연락했다.[오빠가 지금은 바쁘대. 그래서 오빠 비서가 대신 갈 거야. 거기서 좀 기다려 줘. 곧 도착할 거야.][알겠어.]임연지는 커피를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한진과 채팅을 이어갔다.[진아, 근데 네 방법 진짜 효과 좋아. 내가 이틀 정도 오재*을 냉대했더니 바로 전처럼 나한테 잘하려고 해.][그 사람 몰래 귀국해서 부모나 친구들한테도 알리지 못하고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결국 너밖에 연락할 데가 없잖아? 계속 차갑게만 대하면 안 돼. 가끔 잘해주기도 하면서 밀당해 봐. 그래야 헷갈릴 거야.][알겠어.]카페에서 20분쯤 기다리자,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깔끔한 청년이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장 임연지에게 다가왔다.임연지는 그 청년이 비서임을 확인한 뒤 가방을 건네주고 커피숍을 나왔다....간하림은 임가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졌

  • 위태로운 제안   제1272화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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