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경, 일행은 낭천에 도착했고 탑승했던 차는 일사천리로 이미 예약한 호텔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온하랑은 차에서 내린 뒤 부시아를 안아 내렸다. 그리고 캐리어를 챙기고는 김시연과 주현을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김시연이 캐리어를 끌면서 주위를 둘러봤다.“그 사람들은요?”“차를 저쪽에 세워뒀을 거예요. 우리가 먼저 올라가서 체크인하죠.”온하랑의 대답에 김시연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여기도 빈자리가 있는데 왜 굳이 저리로 가서 세웠대요.”“누가 알겠어요.”세 사람은 부시아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 체크인했다. 카운터의 여직원은 신분을 입력하고는 방 키를 건넸다.“다 됐습니다. 여러분들 방 번호는 1605번이고요, 이쪽에서 엘리베이터 탑승하시고 16층에 도착한 뒤에 좌회전해서 네 번째 방이에요.”그들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거실 하나에 방이 세 개 딸린 방을 선택했다. 한 사람이 한 방을 차지하고 온하랑은 부시아를 데리고 한 방을 썼다.“네.”온하랑은 방 키를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네 사람은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옆 지하 1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최동철 삼인방이 걸어 나왔다. 로비에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이석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최동철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아마 벌써 올라간 것 같아요.”“네.”젊은 남자는 무표정으로 말했다.방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모두 배가 고파질 때쯤,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우리 호텔 뷔페에 내려가서 먹죠?”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김시연이 냉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좋아요! 최동철 씨 일행도 부르죠.”온하랑은 눈썹을 꿈틀댔다.“그래요, 제가 물어볼게요.”“아, 저한테 연락처 좀 보내줘 봐요.”“그래요.”온하랑은 최동철에게 밥을 먹을지 문자를 보냈고 이내 그의 연락처를 김시연한테 보내주었다.“답장이 왔어요. 뷔페에서 보자네요. 얼른 가죠.”“네?”김
“시연아, 또 만나네? 새해 복 많이 받아.”연도진이 온화한 웃음을 띠며 김시연 옆의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김시연이 불편한 심기로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일이 있어서. 넌?”연도진은 옆의 벽에서 종이 타월 두 장을 뽑아내 손을 닦았는데 하나하나의 동작이 화보 속 한 장면 같았다.“놀려고.”김시연은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손의 물기를 털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 김시연의 팔을 연도진이 잡았다.“같이 밥 먹을 수 있을까?”“안 돼.”김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화장실을 걸어 나갔다. 식사 자리에 돌아오니 온하랑은 그녀의 안 좋은 안색을 눈치채고 물어왔다.“무슨 일 있어요?”김시연은 콧방귀를 끼더니 말했다.“쓰레기를 봤더니 기분이 안 좋네요.”온하랑은 이내 누굴 얘기하는지 알아차렸다.“그 사람 여기 있어요?”“네.”김시연은 집히는 대로 두 입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전 안 먹을래요. 먼저 방에 돌아가려고요. 밤에 나갈 계획 있나요?”온하랑은 최동철을 바라봤고 최동철은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8시에 나가서 야경 찍는 법 가르쳐 드릴게요.”“그래요, 그럼. 전 먼저 가서 좀 누워있을래요.”김시연은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숙모, 저도 배불러요. 그만 갈래요.”부시아도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온하랑은 최동철을 향해 말했다.“그럼 우린 먼저 가볼게요. 이따 8시에 로비에서 봐요.”“그래.”온하랑 일행이 뜨자 자리에는 최동철과 이석 두 사람만 남았다. 이석은 머뭇거리다 말했다.“최 대표님, 아까 꼬맹이가 온하랑 씨한테 숙모라고 부르던데요.”“들었어.”최동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온하랑 남편이 누군지 알아봐.”“네.”이때 연도진이 접시를 들고 걸어와 최동철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다 돌아갔어요?”“응.”이석이 놀리듯 말했다.“시연 씨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돌아가겠다던데요? 쓰레기를 봤다는지 하하하.
“...네...”연 비서는 숨을 참으며 겨우 대답했다. 부승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성큼성큼 사무실을 떠났다. 연 비서는 그제야 겨우 숨을 길게 내쉬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호텔을 예약했다.온하랑 일행은 8시경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도시 외곽을 따라 걸으면서 셔터를 눌러댔고 김시연은 가끔 모델 역할을 해주었다. 매번 온하랑이 찍은 사진을 보며 부족한 부분을 최동철은 직접 시범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부시아가 힘들어서 투덜대자 이석은 시아를 번쩍 안아 들고 걸었다.열 시가 조금 넘어서 호텔에 돌아와 세수를 마친 뒤 온하랑은 침대에 누워 오늘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다양한 지식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부시아는 이미 곯아떨어졌고 그녀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불을 끄고는 잠을 청했다.그날 밤, 이상하게도 온하랑은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도 깨어날 수 없었다. 꿈속에서 사람들과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어떤 옷차림이 멋진 남자가 술잔을 들고 헌팅하러 왔다. 온하랑은 간단하게 넘기고 귀찮다는 듯 화장실로 갔는데 무심코 거울을 본 뒤 놀라서 깨어났다.눈이 크게 떠졌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방안은 칠흑같이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는 눈을 감고 아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마치 만삭의 임산부 같았는데 배가 불러있었다.아니,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수가 있지? 설마 아이가 너무 갖고 싶은 건가?온하랑은 가까스로 숨을 토해내고는 부시아가 그녀의 품에 안겨서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손을 내밀어 아이의 볼을 꼬집었다. 하지만 꿈은 희한하게 최동철이 했던 얘기와 맞아떨어졌다. 그가 얘기한 다른 이야기들도 그녀를 속이는 것 같지 않았으나 그녀는 어떻게 머리를 쥐어짜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녀는 곰곰이 기억을 되새겼다. 그때, 머리에 날카로운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스읍.
“삼촌!”명랑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부시아가 먼저 반응하고 깡충깡충 뛰어왔다.“삼촌 여기 왜 왔어요?”“일이 있어서 왔지, 너랑 숙모도 볼 겸.”부시아한테 하는 얘기였지만 부승민의 눈은 온하랑을 보고 있었다. 걱정 섞인 말투로 부승민은 입을 열었다.“너도 그래. 이마에 난 상처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발목도 어제 금방 나았고.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 했는데 이렇게 나와서 탐사하면 어떡해. 몸 좀 잘 챙겨야지.”육감이 온하랑을 알려주고 있었다. 부승민은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온하랑은 모르는 척하며 평온하게 말했다.“끄떡없어. 가서 볼일 봐. 우린 탐사 나가야 해.”온하랑의 시선이 최동철에게로 옮겨졌다.“가죠, 가이드가 이미 도착했겠어요.”온하랑이 부승민을 차갑게 대하는 걸 보고 최동철의 얼굴에는 보일락말락 한 웃음이 서렸다.“그래.”온하랑은 잊지 않고 부시아한테도 물었다.“시아는 삼촌이랑 갈래 아니면...”온하랑이 채 말을 맺기도 전에 부승민이 대답했다.“어디 가서 탐사해? 나도 낭천은 처음이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같이 가자.”온하랑은 부승민을 째려봤다.“...”온하랑의 눈길에도 부승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네가 걷다가 힘들면 널 업어줄 수도 있고 말이야.”부승민을 바라보는 최동철의 눈이 번뜩였다.“부 대표님께서는 공사다망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이러한 취미도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최동철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최씨 가문을 책임지는 동시에 사진작가를 하면서 탐사를 다닐 여유도 있고.”부승민의 말투는 평온했다. 온하랑은 부승민의 옆구리를 꼬집고는 최동철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없으니 그만 출발하죠.”최동철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앞장서서 로비를 나섰다. 이석은 눈에 띄지 않게 부승민과 온하랑을 살피고는 뒤를 따랐다. 김시연은 부승민을 곁눈질하고 주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가며 작게 속삭였다.“연도진 그 자식이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했
낯선 아저씨의 입이 놀라움에 떡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멍청한 남자가 있단 말인가?186센티미터나 되는 높은 키는 관광버스 내를 한없이 비좁게 만들어 부승민은 허리를 살짝 굽히고 주위를 살폈다. 김시연은 머리를 써서 주현과 갈라앉아 온하랑이 차에 오르자마자 온하랑더러 자기 옆에 앉으라 손짓했다. 그래서 부승민은 부시아를 데리고 온하랑의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설 연휴가 지났어도 낭천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 자연경관 명소에 도착한 뒤 온하랑은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부동한 경치는 부동한 표현수법이 있는 법이라 최동철은 한쪽으로 걸으면서 한쪽으로 자신의 습관에 대해 소개했다. 온하랑은 열심히 그 말을 들었고 주현도 틈틈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다. 김시연은 촬영에 대해 잘 몰랐기에 옆에서 혼자 사진을 찍거나 모델이 되어주었다.부승민은 원망 섞인 눈으로 온하랑을 쳐다보며 부시아와 함께 경치를 감상했다. 관광지에는 많은 잡상인들이 현지 특색의 먹거리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부시아는 보는 족족 가서 구경하고 싶어 했다.“삼촌, 나 저거 먹고 싶어요.”부시아는 한 가게 앞에 우뚝 멈춰서 입술을 핥았다. 부승민이 가게 간판은 보니 떡꼬치를 파는 가게였다. 부승민은 가격을 물은 뒤 그 자리에서 10꼬치를 사버렸다. 부시아는 아직 위가 작아 한 꼬치를 들고 천천히 베어먹었다.부승민은 고개를 들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온하랑이 방금 찍은 사진을 최동철한테 보여주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깝다 못해 거의 머리와 머리가 닿을 지경이었다. 부승민은 얼른 한 손으로 부시아를 안아 들고 앞으로 걸어가 두 사람의 교류를 차단하고는 손에 들린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떡꼬치 너무 많이 샀는데 좀 먹을래?”고개를 들자 온하랑은 순식간에 군침이 돌았다. 그녀는 봉투를 건네받아 떡꼬치 하나를 입에 넣고는 옆에 있던 최동철에게 물었다.“동철 오빠, 먹을래요?”온하랑이 최동철을 부르는 호칭을 듣고 부승민은 안
멀지 않은 곳에서 온하랑이 최동철에게 카메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몇 장의 사진들은 각도나 색감 모두 괜찮다고 최동철은 긍정을 보냈고 또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저 온하랑이 몇 번이나 촬영 각도를 바꿨으나 마음에 드는 각도를 찾지 못해 최동철이 온하랑 뒤에 서서 그녀에게 제일 좋은 각도를 찾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부승민의 시선에서 그 장면은 마치 최동철이 온하랑을 품에 안은 것처럼 더없이 다정하게 보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마에는 푸른 핏줄이 서렸고 그는 부시아를 데리고 성큼성큼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거의 다 왔는데 최동철이 손을 놓고 온하랑의 옆에 와 카메라를 보이며 말했다.“어때?”온하랑은 카메라속의 사진을 자세히 살피더니 웃으며 최동철을 힐끔 쳐다봤다.“정말이네요? 같은 경치인데 이 각도에서 찍으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네요.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토그래퍼답네요!”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고 최동철은 온하랑의 티 없이 맑은 피부, 탄력 가득한 얼굴, 길고 짙은 속눈썹, 검고 빛나는 아름다운 동공, 진솔함이 담긴 명랑한 웃음을 더없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최동철은 그 모습에 홀려 심장이 멈추는 듯 해 입꼬리를 올렸다.그 모습에 부승민은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눈언저리에는 깊은 분노가 넘실거렸고 금방이라도 분출해 낼 것 같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하랑아, 다코야키 먹을래?”말을 듣고 온하랑이 머리를 돌리고는 웃으며 말했다.“먹을래.”온하랑은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손목을 풀고는 꼬챙이로 다코야키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아 뜨, 아 뜨거워...이게 다코야키야? 우 씨, 이거 그냥 반죽 덩어리 아니고?”부승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옆의 최동철의 입꼬리가 굳어졌고 부승민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최동철 씨도 드실래요?”최동철은 웃으면서 거절했다.“두 분이 드세요. 전 저쪽에 가볼 테니.”멀어져
부승민은 온하랑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까 얘기를 듣고서야 온하랑이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려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으니. 도대체 누군 거야?온하랑은 차석 졸업이었고 그 뒤에 BX 그룹에 입사했다. 이런 이력은 이미 상당히 대단한 수준이었고 거기다가 부씨 가문의 배경까지 더해져 누구와 만나도 아깝지 않을 수준이었는데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온하랑을 눈에 차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도 그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안 그러면 부승민한테 기회도 없었을 것이었다. 부승민은 모래라도 삼킨 듯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고백은 안 해봤어?”“아니. 내가 그 사람을 알게 됐을 때 이미 그 사람한테 여자 친구가 있었어. 두 사람 관계도 돈독했고...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 한 번도 내 감정을 드러내 본 적 없어...”부승민은 주먹을 너무 꽉 쥔 나머지 피부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마치 바닷물이라도 마신 듯 씁쓸하고 떫은 것이 입안까지 셔왔다. 그 사람이 여자 친구와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걸 보면서 온하랑이 얼마나 아파하고 그럼에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환히 웃어 보이며 그저 구석에 숨어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깊은 밤에 숨죽여 흐느꼈을 장면을 떠올리니 부승민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부승민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질투가 끓어올랐다. 만약 온하랑이 사랑하는 게 그였다면 그는 절대 온하랑을 이리 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럼 넌 아직도 그 사람이 좋아? 그 사람과 다시 만나볼 생각이 있는 거야? 그 사람이 만약 지금 널 좋아해서 따라다니면 너 만나줄 거야?”“아니.”온하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원래 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제대로 보아내는 법이지. 그땐 사랑에 빠져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을 무시하고 우점만 확대했거든. 제삼자가 돼서 보니까 그 사람도 결국 그저 그렇더라고. 남성우월주의에 속도 좁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감도 아주 낮고 갑질에 다른 사람 존중할 줄도 모르더라고.”부승민은 티 안
연도진이 핸드폰을 빼앗아 김시연한테 전달할 때 김시연은 하나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김시연은 어쩔 수 없이 건네받고는 화면을 닦았다.“고마워.”“괜찮아. 별것도 아닌데 뭘.”연도진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금테 안경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김시연이 차갑게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여기가 경치가 좋다길래 와서 산책 좀 하다가 우연히 널 보게 됐어.”김시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연도진은 사람들이 붙잡은 도적을 보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김시연한테 말했다.“경찰 금방 온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온하랑은 큰 발걸음으로 걸어왔다.“시연 씨, 괜찮아요?”김시연이 얘기했다.“괜찮아요. 다들 먼저 가서 볼일 봐요. 경찰이 오면 진술하고 나서 찾으러 갈게요.”“연도진은 왜 여기 있는 거예요?”온하랑은 옆에 있는 연도진을 힐끔 쳐다봤다. 김시연은 눈을 흘기고는 옆의 부승민을 힐끔 쳐다봤다.“여기 와서 산책했대요. 누가 알겠어요?”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부승민은 평온한 표정으로 연도진을 힐긋 쳐다봤다. 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연도진은 시선을 거두고 김시연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부승민도 시선을 돌려 품에 안긴 부시아한테 다코야키를 찍어 입에 넣어줬다.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원래 시간이 부족한데 얼른 탐사해요.”“그럼 일이 끝나면 전화해요.”“네.”온하랑은 부승민한테 말했다.“가자.”두 사람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연도진은 힐끔 부승민의 옆모습을 살폈다. 문득 낯에 익은 것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미묘한 익숙함은 최동철과 닮아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봤던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부승민이 해외로 출장 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연도진은 두 사람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저 사람이 BX 그룹 새 회장 부승민 씨야?”“그래.”“두 사람 이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