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은 온하랑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자세히 살펴보았다.조금 붉게 부어오른 이마에는 아무렇게나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상태였고 발갛게 부어오른 왼쪽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발은…그는 온하랑의 오른쪽 발을 들어 신고 있던 부츠를 벗기려 했지만 온하랑은 몸을 움츠리며 발을 뺐다. 온하랑의 종아리가 부승민에 의해 내리눌려졌고 신고 있던 부츠가 벗겨졌다.부츠를 벗으니 양말 너머로도 퉁퉁 부은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요약하자면 지금 온하랑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부승민의 눈빛이 심각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 상처들은 다 뭐고? 누구한테 맞은 거야?”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한 온하랑이 대꾸했다.“신경 쓸 거 없어.”“온하랑!”부승민의 집요한 눈빛에 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부승민은 착잡함과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온하랑이 말을 안 한다고 부승민이 정말 모를까?대체 누구일까? 이런 수모를 당해놓고도 온하랑이 숨겨주는 사람이라니.접대 자리에서 부승민은 단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술을 다 마신 비서는 차를 태워 집까지 보냈고 부승민은 온하랑을 차에 태워 병원까지 직접 운전해 갔다. 병원에 도착한 부승민은 온하랑을 안고 먼저 정형외과로 향했다. 그녀를 의자 위에 앉힌 부승민은 의사에게 온하랑의 증상을 설명했다.온하랑의 오른쪽 발을 집어 들어 벌겋게 부어오른 쪽을 살살 누르며 진찰을 시작했다./“여기 이렇게 누르면 아파요?”온하랑이 대답했다.“조금이요.”“여기는요?”“조금요, 선생님, 살살 눌러주시면 안 될까요? 세게 누르면 엄청 아플 것 같은데요.”“아, 그래요? 그럼 더 세게 눌러드려야겠네.”의사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온하랑 역시 의사의 말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저 딱딱한 진찰실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한 의사의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온하랑의 발목을 잘 고정한 의사는 곧바로 그녀의 발을 힘주어 꾹
부승민은 주방 입구에 서서 온하랑의 행동을 관찰하며 말했다.“아까 저녁에 말만 하느라 몇 입 먹지도 못했어. 나 물만두 좀 삶아줘.”온하랑은 고개를 돌리고는 그를 째려봤다. 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고는 거실로 떠났다. 그 순간, 식탁에 올려두었던 온하랑의 전화가 울렸다. 부승민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잠금화면에서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동철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고 무슨 내용인지는 뜨지 않았다.부시아가 예전에 최동철은 온하랑이 등록한 사진 학원의 사진작가라고 했고 두 사람이 같이 촬영 장소 탐사를 나갈 것이라고 부승민한테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현과 부시아가 온하랑과 함께라서 부승민은 온하랑이 정말 촬영을 잘 배워보려는 마음인 줄 알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들어와서 그릇 좀 내가!”주방에서 온하랑의 외침이 전해져왔다. 부승민은 들어가서 한 손에 한 그릇씩 들고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온하랑은 바로 뒤따라 나왔는데 손에는 젓가락과 접시가 들려있었고 접시 안에는 식초랑 다진 마늘이 담겨있었다.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물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부시아는 보면 볼수록 먹고 싶어져 보다 못한 부승민이 깨끗한 그릇을 가져와 몇 개 덜어내 부시아의 그릇에 놓아줬다.식사를 마친 뒤 부승민은 더 이상 남아있을 핑계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떠나야 했다. 그는 가기 직전에 신신당부하며 말했다.“이마에 상처 잊지 말고 제때 약 발라.”온하랑은 대답 없이 문을 닫았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부승민의 눈앞에는 문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는 겸연쩍은 듯 코를 문지르고는 엘리베이터에 앉아 차고로 향했다. 차에 앉은 뒤 그는 바로 시동 걸지 않고 온하랑이 오늘 저녁 레스토랑에서 있은 일을 알아보라고 연민우한테 문자를 보냈다.온하랑은 그릇들과 젓가락을 치운 뒤 노곤하게 소파를 파고들었다. 핸드폰 잠금을 해제해 보니 최동철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왜 오늘 수업 안 왔어?”“죄송해요. 오늘 밤에 일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우리도 방금 도착했어.”최동철은 온하랑을 한번 스캔해 보더니 물었다.“이마에 상처 뭐야? 심한 거야?”“괜찮아요.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몇 년이나 안 봤는데 넌 여전히 대학 때처럼 예쁘네.”“무슨 소리예요.”온하랑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동철 오빠, 소개를 못 했네요. 이 두 사람은 제 친한 친구예요. 여기는 김시연 씨고 여기는 주현 씨예요. 주현 씨도 사진작가예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아이는 제 조카고요.”김시연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잘생긴 오빠, 안녕하세요! 전 김시연이라고 해요.”속상하다는 감정은 김시연 몸에서 오래 머무른 적이 없었다. 김시연은 늘 저절로 소화해 내 훌훌 털어버리고 명랑함을 되찾곤 했다. 주현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주현입니다.”최동철의 눈길이 김시연에게로 옮겨졌다가 멈칫했다. 이내 그는 주현을 바라보며 젠틀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전 하랑이 선생님이고 최동철이라고 합니다. 낭천에 도착하면 우리 같이 토론해 보죠.”제일 마지막 한마디는 주현에게 하는 말이었다. 주현도 웃으며 답했다.“저야 고맙죠.”최동철 뒤로는 금방 차에서 내린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주동적으로 다가와 자기소개를 했다.“예쁜 아가씨들 안녕하세요? 저는 최 선생님 어시예요. 이름은 이석이고요. 편하게 석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온하랑의 눈썹이 꿈틀댔다.“그 시골의 이석 조교님인가요?”“네, 저 맞아요.”“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얼른 차에 타서 출발하죠?”최동철이 말을 꺼냈다.“그러죠.”일행은 각자의 차로 돌아가 낭천으로 향했다. 낭천은 바로 옆의 도, 강남 시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리적 위치와 지세 등 원인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사계절이 봄 같았다, 거기다 자연풍경이 아름다워 탐사를 나가기 적당한 도시였다.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시아가 뒷좌석의 온하랑을 돌아보며 말했다.“숙모, 저 차 주의 깊게 봤어요?”“응?”“내가 아까 봤을
오후 다섯 시경, 일행은 낭천에 도착했고 탑승했던 차는 일사천리로 이미 예약한 호텔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온하랑은 차에서 내린 뒤 부시아를 안아 내렸다. 그리고 캐리어를 챙기고는 김시연과 주현을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김시연이 캐리어를 끌면서 주위를 둘러봤다.“그 사람들은요?”“차를 저쪽에 세워뒀을 거예요. 우리가 먼저 올라가서 체크인하죠.”온하랑의 대답에 김시연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여기도 빈자리가 있는데 왜 굳이 저리로 가서 세웠대요.”“누가 알겠어요.”세 사람은 부시아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가 체크인했다. 카운터의 여직원은 신분을 입력하고는 방 키를 건넸다.“다 됐습니다. 여러분들 방 번호는 1605번이고요, 이쪽에서 엘리베이터 탑승하시고 16층에 도착한 뒤에 좌회전해서 네 번째 방이에요.”그들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거실 하나에 방이 세 개 딸린 방을 선택했다. 한 사람이 한 방을 차지하고 온하랑은 부시아를 데리고 한 방을 썼다.“네.”온하랑은 방 키를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네 사람은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옆 지하 1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최동철 삼인방이 걸어 나왔다. 로비에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이석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최동철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아마 벌써 올라간 것 같아요.”“네.”젊은 남자는 무표정으로 말했다.방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모두 배가 고파질 때쯤,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우리 호텔 뷔페에 내려가서 먹죠?”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김시연이 냉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좋아요! 최동철 씨 일행도 부르죠.”온하랑은 눈썹을 꿈틀댔다.“그래요, 제가 물어볼게요.”“아, 저한테 연락처 좀 보내줘 봐요.”“그래요.”온하랑은 최동철에게 밥을 먹을지 문자를 보냈고 이내 그의 연락처를 김시연한테 보내주었다.“답장이 왔어요. 뷔페에서 보자네요. 얼른 가죠.”“네?”김
“시연아, 또 만나네? 새해 복 많이 받아.”연도진이 온화한 웃음을 띠며 김시연 옆의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김시연이 불편한 심기로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일이 있어서. 넌?”연도진은 옆의 벽에서 종이 타월 두 장을 뽑아내 손을 닦았는데 하나하나의 동작이 화보 속 한 장면 같았다.“놀려고.”김시연은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손의 물기를 털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 김시연의 팔을 연도진이 잡았다.“같이 밥 먹을 수 있을까?”“안 돼.”김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화장실을 걸어 나갔다. 식사 자리에 돌아오니 온하랑은 그녀의 안 좋은 안색을 눈치채고 물어왔다.“무슨 일 있어요?”김시연은 콧방귀를 끼더니 말했다.“쓰레기를 봤더니 기분이 안 좋네요.”온하랑은 이내 누굴 얘기하는지 알아차렸다.“그 사람 여기 있어요?”“네.”김시연은 집히는 대로 두 입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전 안 먹을래요. 먼저 방에 돌아가려고요. 밤에 나갈 계획 있나요?”온하랑은 최동철을 바라봤고 최동철은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8시에 나가서 야경 찍는 법 가르쳐 드릴게요.”“그래요, 그럼. 전 먼저 가서 좀 누워있을래요.”김시연은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숙모, 저도 배불러요. 그만 갈래요.”부시아도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온하랑은 최동철을 향해 말했다.“그럼 우린 먼저 가볼게요. 이따 8시에 로비에서 봐요.”“그래.”온하랑 일행이 뜨자 자리에는 최동철과 이석 두 사람만 남았다. 이석은 머뭇거리다 말했다.“최 대표님, 아까 꼬맹이가 온하랑 씨한테 숙모라고 부르던데요.”“들었어.”최동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온하랑 남편이 누군지 알아봐.”“네.”이때 연도진이 접시를 들고 걸어와 최동철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다 돌아갔어요?”“응.”이석이 놀리듯 말했다.“시연 씨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돌아가겠다던데요? 쓰레기를 봤다는지 하하하.
“...네...”연 비서는 숨을 참으며 겨우 대답했다. 부승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성큼성큼 사무실을 떠났다. 연 비서는 그제야 겨우 숨을 길게 내쉬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호텔을 예약했다.온하랑 일행은 8시경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도시 외곽을 따라 걸으면서 셔터를 눌러댔고 김시연은 가끔 모델 역할을 해주었다. 매번 온하랑이 찍은 사진을 보며 부족한 부분을 최동철은 직접 시범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부시아가 힘들어서 투덜대자 이석은 시아를 번쩍 안아 들고 걸었다.열 시가 조금 넘어서 호텔에 돌아와 세수를 마친 뒤 온하랑은 침대에 누워 오늘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다양한 지식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부시아는 이미 곯아떨어졌고 그녀도 핸드폰을 내려놓고 불을 끄고는 잠을 청했다.그날 밤, 이상하게도 온하랑은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도 깨어날 수 없었다. 꿈속에서 사람들과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어떤 옷차림이 멋진 남자가 술잔을 들고 헌팅하러 왔다. 온하랑은 간단하게 넘기고 귀찮다는 듯 화장실로 갔는데 무심코 거울을 본 뒤 놀라서 깨어났다.눈이 크게 떠졌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방안은 칠흑같이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는 눈을 감고 아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마치 만삭의 임산부 같았는데 배가 불러있었다.아니,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수가 있지? 설마 아이가 너무 갖고 싶은 건가?온하랑은 가까스로 숨을 토해내고는 부시아가 그녀의 품에 안겨서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손을 내밀어 아이의 볼을 꼬집었다. 하지만 꿈은 희한하게 최동철이 했던 얘기와 맞아떨어졌다. 그가 얘기한 다른 이야기들도 그녀를 속이는 것 같지 않았으나 그녀는 어떻게 머리를 쥐어짜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녀는 곰곰이 기억을 되새겼다. 그때, 머리에 날카로운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스읍.
“삼촌!”명랑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부시아가 먼저 반응하고 깡충깡충 뛰어왔다.“삼촌 여기 왜 왔어요?”“일이 있어서 왔지, 너랑 숙모도 볼 겸.”부시아한테 하는 얘기였지만 부승민의 눈은 온하랑을 보고 있었다. 걱정 섞인 말투로 부승민은 입을 열었다.“너도 그래. 이마에 난 상처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발목도 어제 금방 나았고.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 했는데 이렇게 나와서 탐사하면 어떡해. 몸 좀 잘 챙겨야지.”육감이 온하랑을 알려주고 있었다. 부승민은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온하랑은 모르는 척하며 평온하게 말했다.“끄떡없어. 가서 볼일 봐. 우린 탐사 나가야 해.”온하랑의 시선이 최동철에게로 옮겨졌다.“가죠, 가이드가 이미 도착했겠어요.”온하랑이 부승민을 차갑게 대하는 걸 보고 최동철의 얼굴에는 보일락말락 한 웃음이 서렸다.“그래.”온하랑은 잊지 않고 부시아한테도 물었다.“시아는 삼촌이랑 갈래 아니면...”온하랑이 채 말을 맺기도 전에 부승민이 대답했다.“어디 가서 탐사해? 나도 낭천은 처음이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같이 가자.”온하랑은 부승민을 째려봤다.“...”온하랑의 눈길에도 부승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네가 걷다가 힘들면 널 업어줄 수도 있고 말이야.”부승민을 바라보는 최동철의 눈이 번뜩였다.“부 대표님께서는 공사다망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이러한 취미도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최동철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최씨 가문을 책임지는 동시에 사진작가를 하면서 탐사를 다닐 여유도 있고.”부승민의 말투는 평온했다. 온하랑은 부승민의 옆구리를 꼬집고는 최동철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없으니 그만 출발하죠.”최동철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앞장서서 로비를 나섰다. 이석은 눈에 띄지 않게 부승민과 온하랑을 살피고는 뒤를 따랐다. 김시연은 부승민을 곁눈질하고 주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가며 작게 속삭였다.“연도진 그 자식이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했
낯선 아저씨의 입이 놀라움에 떡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멍청한 남자가 있단 말인가?186센티미터나 되는 높은 키는 관광버스 내를 한없이 비좁게 만들어 부승민은 허리를 살짝 굽히고 주위를 살폈다. 김시연은 머리를 써서 주현과 갈라앉아 온하랑이 차에 오르자마자 온하랑더러 자기 옆에 앉으라 손짓했다. 그래서 부승민은 부시아를 데리고 온하랑의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설 연휴가 지났어도 낭천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 자연경관 명소에 도착한 뒤 온하랑은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부동한 경치는 부동한 표현수법이 있는 법이라 최동철은 한쪽으로 걸으면서 한쪽으로 자신의 습관에 대해 소개했다. 온하랑은 열심히 그 말을 들었고 주현도 틈틈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다. 김시연은 촬영에 대해 잘 몰랐기에 옆에서 혼자 사진을 찍거나 모델이 되어주었다.부승민은 원망 섞인 눈으로 온하랑을 쳐다보며 부시아와 함께 경치를 감상했다. 관광지에는 많은 잡상인들이 현지 특색의 먹거리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부시아는 보는 족족 가서 구경하고 싶어 했다.“삼촌, 나 저거 먹고 싶어요.”부시아는 한 가게 앞에 우뚝 멈춰서 입술을 핥았다. 부승민이 가게 간판은 보니 떡꼬치를 파는 가게였다. 부승민은 가격을 물은 뒤 그 자리에서 10꼬치를 사버렸다. 부시아는 아직 위가 작아 한 꼬치를 들고 천천히 베어먹었다.부승민은 고개를 들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온하랑이 방금 찍은 사진을 최동철한테 보여주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깝다 못해 거의 머리와 머리가 닿을 지경이었다. 부승민은 얼른 한 손으로 부시아를 안아 들고 앞으로 걸어가 두 사람의 교류를 차단하고는 손에 들린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떡꼬치 너무 많이 샀는데 좀 먹을래?”고개를 들자 온하랑은 순식간에 군침이 돌았다. 그녀는 봉투를 건네받아 떡꼬치 하나를 입에 넣고는 옆에 있던 최동철에게 물었다.“동철 오빠, 먹을래요?”온하랑이 최동철을 부르는 호칭을 듣고 부승민은 안
온하랑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동철 오빠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어쩌면 친자확인 결과가 나온 후 말해야 했다.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 최동철은 손을 뻗어 온하랑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단호하게 말했다.“하랑아, 그 마음을 이해해. 엄마로서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친자 확인은 가장 직접적인 증거이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어. 너는 잘못한 거 없어.”최동철의 눈을 바라본 온하랑은 그에게서 단서를 찾으려고 했지만 맑고 담담한 눈빛은 하나도 거리낌이 없었다.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고마워요. 동철 오빠.”“하랑아, 모든 사실을 알려준 남자가 잡혔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에 있어? 도대체 누구의 지시로 하랑이 너와 메이슨의 관계를 이간질 했는지 묻고 싶어.”“...그는...지금 경주에 없어요.”“경주에 없다고? 설마...승민이 손에 있는 건 아니지?”“...네.”말을 들은 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승민이가 그 남자를 잡은 거야? 그 말은 승민이가 그를 심문했고, 승민이가 심문 결과를 너에게 알려준 것이야?”“...네.”최동철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하랑아, 너희들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되지만 메이슨을 위하여 한마디만 말할게. 세상의 모든 남자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야.”온하랑은 침묵했다.그녀가 해외에서 출산한 사실을 알고 있는 부승민이 줄곧 비밀리에 그 아이를 찾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만약 그가 찾게 된다면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인지 아니면 그 아이를 숨겨 놓고 영원히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것인지 의문스러웠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내가 소심한 것일 수도 있어. 승민이도 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어.”온하랑이 말하려던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모니터 속에는 부승민의 얼굴이 보였다.온하랑이 문을 열려고 일어서자 최동철은 태연하게 차를 마셨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헤어스타일이 바뀐 최동철을 위아래로 훑어본 온하랑은 그는 다소 야위고 피곤해 보일 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최동철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괜찮아. 작은 상처일 뿐이야, 별일 아니야.”“다행이에요. 마침 잘 오셨어요. 앉아서 함께 식사하시면서 얘기 나누죠.”온하랑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최동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앉자 아줌마는 그릇과 젓가락을 추가하고 요리하러 갔다.흥분한 메이슨은 최동철의 옆에 앉아 계속 질문을 했다최동철은 인내심 있게 대답하며 가끔 메이슨과 장난도 했다.이 모습을 본 온하랑은 마음이 복잡했다.최동철의 모습을 자세히 본 온하랑은 그가 메이슨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식사 후 메이슨은 아줌마에 이끌려 낮잠을 자러 가고 거실에는 온하랑과 최동철만 남았다.아줌마가 차를 들고 오자 그들은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온하랑은 그제야 최동철에게 물었다.“동철 오빠, 경찰이 오빠가 실종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 이예요? 요즘 어디로 가셨던 거예요?”“누군가가 나를 해치려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했어. 다쳐서 잠시 숨을 수밖에 없었어.”최동철은 간단히 몇 마디를 건네고 화제를 돌렸다.“며칠 동안 메이슨을 돌봐주느라 고생했어.”“아니에요. 당연한걸요.”온하랑은 미소를 지었다.최동철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다정하게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지환이가 말하는데 급히 나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던데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심호흡을 한 온 하랑은 최동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표정에서 한 가닥의 단서를 포착하려고 했다.“동철 오빠,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메이슨...진짜 우리 아이예요?”온하랑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하게 잘 들렸다.온하랑의 말에 최동철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최동철은 온하랑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당연하지, 하랑아
온하랑은 머리가 복잡했다.‘메이슨이 나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럼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메이슨에게 감정이 없었던 그녀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그를 보러 왔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메이슨에게 정들기 시작했을 무렵 누군가가 메이슨이 그녀의 친자가 아니라며 진짜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온하랑의 마음은 지쳐있었다.한순간 그녀는 지금처럼 메이슨을 자기 친자식처럼 키우며 모두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가 낳은 아이가 지금 어딘가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며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었다.만약 그 아이를 찾지 못한다면 그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전화를 걸어온 부승민은 부드럽게 말했다.“다 봤어?”온하랑은 몇 초간 침묵을 이어갔다.“응, 봤어...동철 씨한테 잘 물어볼게.”“동철이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그러나 혈연관계는 옳으면 옳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야. 유전자 검사를 다시 의뢰할 거야.”“그래, 내가 내일 갈게. 나와 함께 동철이를 만나러 가자.”부승민이 말했다.만약 계략이 탄로 나 화가 치밀어 오르면 최동철은 온하랑을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부승민은 철저하게 최동철을 방어하며 그에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럴 일 없을 거야.”“불안해서 안 돼.”“...”부승민은 화제를 바꾸었다.“병원에 다녀왔는데 간호사가 원녕이의 검사 수치가 서서히 정상 수치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어. 보름 정도 지나면 퇴원할 가능성이 있대.”부승민에게서 원녕의 소식을 전해 들은 온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됐어. 수고했어, 승민아.”통화를 마치고 온하랑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메이슨은 이미 여러 개의 곰 모형 쿠키를 만들어 놓았다.그 남자는 최동철이 유전자 검사서를 위조했다고 했다.하지만 온하랑은 메이슨의 신분을 의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최동철은 친자확인서를 그녀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온하랑은 메이슨이 그녀에게 경계심이 없기에 모낭이
반죽을 열심히 다루는 메이슨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온하랑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부승민의 말에 그녀는 마치 큰 바위에 가슴을 짓눌린 듯 숨이 막혔다.‘메이슨이 친자가 아니라면 최동철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최동철은 어떻게 먼저 메이슨을 찾아서 그의 존재를 알렸을까? 그러면 진짜 아이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그녀는 메이슨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도록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엄마, 이것 보세요. 곰돌이 같아요?”메이슨은 갓 눌러놓은 곰돌이 쿠키 틀을 들어 올리며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온하랑은 웃으면서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곰돌이와 똑같아. 참 잘했어, 메이슨.”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메이슨은 머리를 숙여 계속 쿠키를 만들었다.그러나 온하랑은 더 이상 집중할 수가 없었다.부승민이 그녀 몰래 핸드폰 설정을 변경했을 당시 그 남자는 서우현의 핸드폰을 훔쳐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렸다.비록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이었으나 그의 등장은 여전히 수상했다.‘예를 들어 그는 누구일까? 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왜 이제야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것일까?’심호흡을 한 그녀는 잠시 마음속의 의심을 가라앉혔다.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온하랑은 그 남자가 메이슨이 겪었던 일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불쌍하고 죄가 없는 어린 메이슨은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 휘말리지 말아야 했다.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괜찮아, 아빠가 돌아오시면 네가 만든 쿠키를 보고 기뻐하실 거야.”그녀는 멈칫했다.“메이슨, 먼저 천천히 쿠키를 만들고 있어. 엄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위층에 다녀올게.”“네.”메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태연하게 위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닫자 온하랑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이메일을 열고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부승민이 보낸 동영상을 클릭했다.영상 속 심문실에는 마른 얼굴에 몇 군데가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가 의자
온하랑은 쪼그리고 앉아 메이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메이슨은 경주에 집이 있기에 낯선 강남시에 가고 싶지 않은 거잖아? 마찬가지로 엄마에게도 이곳은 낯선 곳이야, 엄마의 집은 강남시에 있어.”슬퍼하는 메이슨을 온하랑은 계속 달래주었다.“앞으로 엄마가 메이슨 보러 자주 올게. 메이슨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강남시에 찾아와도 돼.”그녀가 조산을 앞두고 있을 당시 부승민이 보낸 사람들이 한발 늦은 탓에 먼저 메이슨을 데려간 최동철이 각종 절차를 밟아 양육권을 가졌고 그 사이 메이슨도 이미 이곳에 적응해 버렸다.최동철은 온갖 정성을 쏟아서 메이슨을 돌봤으며 마음이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생활환경을 자주 바꿀 수 없으므로 여기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메이슨은 의기소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그의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이모가 만들었던 쿠키를 기억해? 엄마가 메이슨이 도움이 필요한데 함께 만들 수 있을까? 아빠가 돌아오시면 메이슨의 솜씨가 어떤지 맛보라고 하자.”기분이 언짢았던 메이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쿠키를 만들기 시작하자 곰돌이 모양의 틀로 반죽을 찍던 그는 천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쿠키를 만들던 중 온하랑은 부승민의 전화를 받았다.그가 물었다.“출발했어?”“아니, 깜빡했어. 아까 최 회장님 다녀가셨는데 동철 오빠의 소식이 있다고 하셨어.이틀 더 머물다 그가 돌아오면 돌아갈게.”부승민은 몇 초간 침묵을 이어갔다.그가 기분이 언짢다고만 생각한 온하랑은 웃으면서 말했다.“며칠인데 못 기다리겠어?”“아니.”부승민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우현 씨 핸드폰을 훔쳤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어?”“응, 기억해.”바로 서우현이 그 남자를 찾았고 그의 입에서 메이슨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온하랑은 식탁에서 쿠키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메이슨을 바라보았다.“그가 왜?”“줄곧 그가 나타난 것이 좀 이상하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터라 사적으로 사람을 시켜 그를 찾으라고 했는데 며칠 전 그를 찾아서 잡고 심문하니 진
최국환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멈칫했다.“최 회장님,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메이슨은 상황이 특별하기에 반드시 진심으로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동철 씨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 회장님은 정성껏 메이슨을 보살필 수 있을까?’게다가 최씨 가문에는 임가희가 있기 때문에 온하랑은 그녀가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최동림의 후계자 계승을 위하여 걸림돌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메이슨은 최동림보다 두세 살 어렸다.“동철이가 현재 실종되었기에 나의 손자인 메이슨을 내가 반드시 잘 돌볼 거야. 이미 결정된 일이야. 하랑이 너랑 상의하려고 온 거 아니야.”최국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온하랑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해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아니면 경호원더러 메이슨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온하랑은 최국환이 끝까지 막으면 그와 메이슨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최 회장님께서 메이슨을 위하여 저의 몇 가지 조건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말해봐.”“첫째, 제가 떠난 후 메이슨을 최씨 가문에 데려가서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이 계속 돌보게 해주세요. 최 회장님께서는 매일 시간을 내셔서 메이슨의 학습 상황을 물어봐 주세요.”온하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국환은 메이슨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언젠가 임가희는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기에 최국환의 옆에 둔다면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메이슨이 계속 별장에 머물면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은 권력과 힘이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를 노릴 기회를 줄 수 있다.온하랑의 말을 들은 최국환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는 메이슨을 옆에 두고 잘 가르칠 생각이었다. 만약 좋은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그가 자질이 평범해도 최국환은 그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잠시 후 최국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잠깐만. 먼저 통화 좀 할게.”“네, 최 회장님. 편안한 대로 하세요.”통화 중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