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당탕,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는 어렴풋이 멀어졌다. 온하랑은 눈썹을 구겼다.“지훈 씨, 지금 어딘데요?”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지훈 씨?”민지훈의 황폐하고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누나... 누나... 난... 나도 모르겠어요, 나...”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무기력했으며 심지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온하랑은 민지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지훈 씨는 남자잖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해요. 일단 옷부터 입고 방문에 적힌 방 번호를 알려줘요.”몇 초 후 민지훈이 입을 열었다.“305호에요.”“알았어요. 금방 갈 테니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잘 생각해 봐요.”회사에서 단체로 예약한 방은 4층에 있었고, 305호의 사람은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 마침, 회사에서 민지훈에게 배정한 방은 405호였기에 아마도 민지훈이 술을 마시고 방에 잘 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온하랑은 305호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2분 정도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옷차림새가 어수선하고 얼굴이 초췌해진 민지훈은 온하랑을 보니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민지훈의 눈동자에 생기가 이내 시들어버렸다.“... 누나.”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온하랑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괜찮아요. 들어가서 얘기해요.”온하랑은 민지훈이 자신과 헤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 민지훈에게서 민성주의 말도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헤어질 수 있을까?방으로 들어간 온하랑은 문을 닫았다. 방안은 어느 정도 깔끔했고, 침대 옆만 유난히 지저분하고 옷가지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여자는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머리를 묻은 채 흐느끼고 있
그래서 민지훈이 밤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온하랑은 소파에 앉아 눈을 치켜뜨고 민지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두 손은 옷자락을 움켜쥔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누나, 정말 저를 믿으셔야 해요...”“서두르지 말고 먼저 앉아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떠올려 보세요.”온하랑이 말했다. 민지훈은 온하랑의 맞은편에 앉아 미간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두가 술을 권해서 저도 몇 잔 마셨는데 술이 그렇게 독할 줄 몰랐어요...”“마지막 기억은 어디에서 멈췄어요?”민지훈은 눈을 감고 생각하면 할수록 두통이 더 심해졌다.“기억이 안 나요. 동료가 저한테 술을 권했던 것 같아요...”온하랑이 물었다.“수현 씨가 305호에 있는 건 미리 알고 있었어요?”민지훈은 즉시 고개를 흔들며 황급히 말했다.“몰라요! 누나, 진짜 몰랐어요. 믿어 주세요. 그날 수현 씨가 양아치를 만나 제가 도와주고 수현 씨가 기절하는 바람에 호텔에 데려다준 게 전부예요...”온하랑은 생각에 잠겨 눈을 내리깔았다.그렇다면 이건 너무 우연의 일치인 것 같았다.민지훈은 술에 취해 한층 적게 올라가서 정확히 서수현의 방으로 갔다.“가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봐야겠어요.”온하랑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서수현 씨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겠다고 말했지만, 번복할 것도 대비해야 해요.”“알아요.”민지훈은 두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버려진 강아지처럼 온하랑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누나, 날 떠나지 않을 거죠?”그는 부승민이 바람을 피워 그들의 결혼 생활이 깨진 것을 알고 있었다. 온하랑은 분명히 이 문제에 대해 상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몇 초간의 침묵 후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지훈 씨, 지금은 장담할 수 없으니 감시카메라를 보고 동료들에게 물어 보고 나서 다시 말해요.”그녀가
온하랑은 멈칫했다.“진짜야?”사실이라면 민지훈은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방을 잘못 찾아간 거지?“그래, 못 믿겠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그럼 오빠는 언제 끝나서 돌아갔는데?”“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겼어. 어떻게 돌아왔는지 나도 기억나지 않아.”“알았어. 다음부턴 적당히 마셔. 몸에 좋지도 않은걸.”“방법이 없잖아. 사실 남자들은 밥 먹으며 술을 마시는 게 정상이야. 그러면서 정을 키우는 거지. 괜히 이런 일로 따지지 마.”부현승이 말했다.“그래, 알았어. 지훈 씨 챙겨줘서 고마워. 오빠가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왜 따지겠어. 그럼 방해 안 할게. 빠이.”“빠이.”전화를 끊은 후 온하랑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부현승은 민지훈이 많이 마시지 않았다 하고, 하필이면 감시카메라는 고장 났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었다.사실이 어떻든지 온하랑은 아직 민지훈이 필요 했기에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승민과의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녀는 민지훈을 바로 용서하면 안 된다. 무조건 그를 차갑게 대하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었다.게다가 이런 일까지 발생했는데 민지훈이 온하랑을 위해 장국호의 일을 물어 봐 줄 마음이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계획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온하랑과 민지훈이 방에서 나간 후 서수현은 온몸에 힘이 빠져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서글픔에 두 눈을 꾹 감았다.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빚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요란하게 울려댔다. 서수현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놓인 옷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휴대폰 액정에 떠 있는 번호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애써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섞여 있었다.“일 처리는 어떻게 됐어요?”서수현
...음식점에 가서 아침밥을 산 온하랑은 민지훈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민지훈은 허겁지겁 달려 나와 문을 열었다. 그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누나, 드디어 왔네요.”온하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지금 밥 먹으러 식당에 갈 기분이 아닐 것 같아서 아침을 사 왔어요.”그녀는 아침 식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모니터링실에 다녀왔는데 공교롭게도 어젯밤 본관 감시카메라가 고장 났다네요.”민지훈은 당황해서 해명했다.“누나, 전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감시카메라를 고장 내겠어요...”“그런 뜻이 아니에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요. 승현 오빠에게 물어봤는데 지훈 씨가 확실히 취했다고 했어요... 됐어요. 우선 밥부터 먹어요. 진정하고 나서 다시 말해요. 저도 신중하게 생각해 볼게요.”뭘 신중하게 생각한단 말이지?분명 그와 계속 만날지 고민한단 말일 것이다.민지훈은 바짝 긴장했다.“누나,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우리 헤어지지 말아요. 전 정말 헤어지기 싫어요!”그는 자기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다 제 탓이에요.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게 된 거예요! 전 정말 죽어도 싸요...”“이러지 마세요.”온하랑은 그를 제지했다.“헤어진단 말은 안 했어요. 다만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지훈 씨만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해요.”“그럼...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데요...”민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사흘이요. 사흘 후에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 그동안은 진정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죠.”민지훈은 입술을 깨물며 마치 길가에 버려진 대형견처럼 귀를 축 늘어뜨렸다.“알았어요... 사흘 후에 누나를 찾으러 갈게요.”“네. 전 일단 방으로 돌아갈게요.”온하랑은 아침밥을 챙겨서 민지훈의 방을 나갔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온하랑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후 부승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짜증이 나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부시아가 그녀를 찾고 있을까 봐 걱정
그 끈이 달린 심플한 천 쪼가리는 텅 빈 베란다에서 유독 눈에 확 띄었다. 온하랑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부승민! 너...”“내가 뭐?”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던 부승민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다 알면서 굳이 되물었다. 온하랑은 이를 악물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부시아의 앞에서 다투고 싶지 않았고, 이 일로 부승민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온하랑은 곧바로 베란다로 달려가 비키니를 거두었다.온하랑이 얼른 비키니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는데 부승민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는 온하랑의 손에 들린 비키니를 낚아챘다.“뭐 하는 거야?”“내가 뭐 하는 것 같아?”온하랑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키니를 뺏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부승민이 긴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온하랑은 손이 닿지 않아 화가 나서 옆구리에 손을 짚고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당장 돌려줘!”“이건 내 건데 왜 너한테 줘야 해?”부승민이 당당하게 말했다. 온하랑은 그의 이런 뻔뻔스러운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뭐가 오빠 거야? 그건 내 거야...”“네가 버린 걸 내가 주웠으니 이제 내 거야!”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허 벌린 온하랑은 갑자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하지만...”“하지만 뭐?”부승민이 되물었다.“내 말 틀렸어?”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작은 얼굴은 붉어지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몹시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차마 터뜨릴 수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부풀어 오른 복어 같았다.부승민은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비키니를 코끝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너무 좋아!”“!!!”온하랑은 온몸에 닭살이 돋아 오르고 두 귀는 빨개지다 못해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허파는 분노로 당장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부승민! 너... 너 어쩜 이렇게 유치해?”“그런데.”
부시아는 곧바로 방에서 총총 뛰어나오며 물었다.“삼촌은 안 가요?”“안 가.”“가.”두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울려 퍼졌다. 부시아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한 바퀴 굴리더니 온하랑과 부승민 사이를 번갈아 보았다.“삼촌은 대체 가요, 안 가요?”온하랑은 이를 악물고 마치 네가 가면 내가 안 간다는 기세로 부승민을 째려보았다.“안 가.”부시아는 부승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승민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시아야, 삼촌은 안 갈 테니 숙모랑 재밌게 놀아.”“알았어요.”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오전 내내 놀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부시아가 물었다.“숙모, 우리 오후면 돌아갈 건데 나랑 같이 갈래요?”온하랑은 머뭇거렸다. 사실 그녀는 오후에 김시연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이미 민지훈과는 사흘 후에 다시 보기로 약속했으니 굳이 버스를 타고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녀는 어떤 초딩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온하랑은 옆에 있는 부승민을 흘겨보았다. 부승민도 깊은 눈동자로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온하랑이 자신을 쳐다보자 시선을 거둔 부승민은 웃으며 말했다.“왜 나를 쳐다봐?”온하랑은 싸늘하게 대꾸했다.“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져 주면 참 좋을 텐데.”부승민은 피식 웃었다.“미안, 이건 들어줄 방법이 없네.”무표정으로 흥, 코웃음을 친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시연은 일이 있어 본가에 있어서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온하랑은 허탈하게 이마를 문질렀다. 아마도 이 초딩과 한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시아에게 물었다.“언제 떠나?”“저녁 먹기 전에요.”“그래, 그럼 같이 가자.”부승민은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민지훈과 함께 돌아갈 계획이 없었다. 아마 어젯밤 일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민지훈과 헤어지자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테이블 위에 주제가 바뀌었다. 부시아는 부승민에
부승민의 눈빛에는 장난기와 함께 간교함이 섞여 있었다. 눈을 부릅뜬 온하랑은 그를 무시하고 돌아서서 부시아를 찾으러 갔다....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또 온천에서 온 오후 몸을 담갔다. 이윽고 그들은 짐을 정리하고 리조트를 떠났다. 가는 길에 왕대운의 창고를 지나며 온하랑은 반사적으로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민지훈과 왕대운을 만나게 할 계획이었다. 적당한 계기를 빌어 민지훈 앞에서 왕대운을 언급하여 왕대운의 신분과 과거를 밝힐 최적의 장소가 바로 창고였다. 그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왕대운의 재산 문제도 드러낼 수 있는 완벽한 선택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양아치 몇 명을 찾아 일부러 저번 사고를 일으켰다. 이제 그녀는 장국호가 양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민지훈을 통해 민성주와 장국호의 관계를 알아내어 작은 단서라도 찾으려고 했지만, 인질이 나서서 범인을 지목하지 않을 가능성은 물론이고 아직 민지훈 쪽에서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설령 결과가 있다고 해도 이미 단서를 지웠을 가능성이 컸다.그래서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장국호를 자연스럽게 국내로 유인하여 경찰에 넘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해외에서 누군가를 체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장국호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게 조용히 움직여야만 한다.온하랑은 이마를 문지르다가 무심코 눈을 들어 백미러를 통해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부승민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백미러에서 부승민의 몸으로 향했다.그녀의 각도에서 보니 그의 턱선은 날렵하게 각이 잡혀 있었고, 목뒤의 머리카락은 윤기있고 깨끗했다. 곧게 뻗은 어깨는 슈트를 받쳐주고 커다란 손은 핸들을 잡고 있었다. 구겨진 옷 주름을 따라 튼튼하고 힘 있는 팔뚝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모든 점이 그녀의 취향에 꼭 부합됐다. 과거의 모든 일을 제쳐두고 부승민을 다시 만난다면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빠?”조용한 차 안에서 온하랑이 돌연 그를 불렀다.
부승민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갔다....강성 시내로 돌아왔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부승민은 어느 음식점 앞에 차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풀었다.“먼저 저녁 먹고 데려다줄게.”온하랑과 부시아는 차에서 내렸다. 세 사람은 함께 음식점 2층에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기 전 온하랑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비상계단을 지나갈 때 온하랑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감독님, 이러지 마세요... 여긴 음식점이잖아요. 밤에 호텔에 가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이윽고 음란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밤에? 지금 이미 참을 수 없어...”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프로그램은...”“걱정하지 마, 널 꽂아 줄 거야. 빨리 내가 예뻐해 줄게...”“안 돼용...”여자의 앙칼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연예계의 은밀한 비리를 직접 마주친 순간이었다. 온하랑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조용히 계단 앞을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나와 눈을 들어 올리자 비상계단에서 중년 남자가 옷깃을 여미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온하랑이 똑바로 바라보니 방금 전에 여자 연예인이 성 상납을 한 중년 남자는 바로 예전에 온하랑에게 민폐를 끼치던 이상수 감독이었다!다만 온하랑은 이 감독이 이렇게 빨리 끝낼 줄은 몰랐다. 대충 시간을 헤아려보니 5분도 채 안 됐다.온하랑이 비상계단을 통과할 때 한 여자가 안에서 머리를 정리하며 걸어 나왔다. 온하랑을 보자 여자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그녀의 얼굴은 본 온하랑의 눈가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온하랑은 추서윤이 이 지경까지 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부승민의 지원 없이 연예계에서 계속 활동하려면 어두운 수렁과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애초에 할아버지를 화병으로 돌아가시게 하지만 않았다면 부승민의 태도를 놓고 볼 때 분명 추서윤의 부귀영화를 보장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건 그녀의 자업자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