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 민지훈이 온하랑에 대한 감정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온하랑은 민지훈을 이용하는 데 자연스레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진실을 마주할 민지훈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했다.“누나, 더 먹을래요?”민지훈은 이미 비어버린 온하랑의 앞접시를 보며 물었다.온하랑은 포크를 내려놓고 대답했다.“괜찮아요. 많이 먹으면 물려서요.”“그럼 이제 갈까요? 아직 시간도 이른데 한강에 가서 산책이나 하죠.”민지훈이 웃으며 물었다.온하랑은 민지훈이 지금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신과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온하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좋아요.”두 사람은 이내 주차장으로 향했다. 민지훈이 자연스레 운전석으로 몸을 옮겼다.“누나, 저 면허 땄어요. 운전은 제가 할게요.”온하랑은 차 키를 건네주며 조수석에 앉았다.히터를 틀자 차 내부는 이내 따뜻해졌다.온하랑은 카시트 등받이에 몸을 기대 창밖으로 휙휙 스쳐 가는 길거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민지훈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조금 전, 사귀기로 한 사람들답지 않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마치 갑자기 좁혀진 둘 사이의 거리가 아직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한참이 지나 차가 신호등에 걸리고 나서야 민지훈이 별안간 입을 열어 물었다.“누나, 제 인스타에 우리 사귀는 거 공개해도 돼요?”온하랑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이내 공식 석상에서나 쓸법한 말투로 대답했다.“되긴 되는데 아저씨나 아주머니 같은 어르신분들에게는 안 보이게 해줄 수 있을까요? 우선 그분들한텐 알리고 싶지 않아요. 아, 그리고 인스타 팔로워들한테 우리 사이를 사이버 렉카들한테 몰래 알리지 말아 달라고 잘 얘기 해줬으면 좋겠어요. 난 내 사생활이 알려지는 게 싫거든요.”부승민의 전 아내로서 어느 정도의 사이버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온하랑이였기 하는 말이었다.온하랑은 일부 사이버 렉카들이 조회 수와 어그로를 위해 민지훈과의 관계를 폭로해 민성주
민지훈은 약속대로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에게 게시글을 숨겼다. 그들이 두 사람이 사귄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기 떠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인스타 팔로워까지 만든 목적부터 친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였으니까.인스타 피드를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 동창들, 동기들 모두가 축하의 댓글을 달았다.그중에는 부현승의 댓글도 눈에 띄었다.“오랫동안 사귀길.”그 밑에 민지훈이 답글을 달았다.“감사합니다. 부 매니저님.”뒤이어 부현승은 민지훈의 인스타 피드 게시물을 캡처해 부승민에게 보내주었다.부승민은 서로 다른 두 손이 손깍지를 꼭 끼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초점을 잃은 심연 같은 검은 눈동자는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허했다.사진 속의 하얗고 가는 손은 누가 봐도 여자의 손이었다.온하랑과 무려 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한 부승민인데 온하랑의 손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부현승은 친절하게도 밑에 자신이 단 댓글과 민지훈의 답글까지 함께 캡처해 부승민에게 보내주었다.인스타 피드에는 이모티콘 하나와 사진 한 장뿐이었지만 댓글 창에 있는 많은 축복의 말들과 민지훈의 반응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지금 공개연애를 암시하는 인스타 게시물이었다.휴대전화를 쥐고 있던 큰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손등에는 핏줄까지 울퉁불퉁 솟아있었다. 부승민의 평온한 표정과는 달리 눈빛에는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몸속의 야수가 봉인에서 깨어나 미친 듯 포효하며 당장이라고 민지훈을 찢어 죽일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온하랑! 참 잘하는 짓이다!어제 온하랑은 이미 부승민의 고백에 응하며 더는 그와 일부러 멀어지지 않겠다 약속했다. 민지훈과 부승민의 공평한 경쟁을 허락한 것이다.하지만 오늘, 온하랑은 부승민이 추서윤을 대하는 방식에서 부승민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그래놓고 오늘 밤, 온하랑은 민
온하랑은 그런 부시아를 차마 깨울 수 없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부시아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볼을 콕콕 질렀다. 아이의 볼은 마치 갓 태어난 갓난 아기의 엉덩이처럼 탱글탱글 했다.뻗었다 손을 거두자 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뒤에 있던 사람과 부딪혔다.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모를 부승민이 온하랑의 뒤에 서서 눈도 깜빡 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한 방울 의 먹물이라도 흘러 나올 듯 새까맸다.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히자 온하랑은 귀신이라도 본 듯 등골이 오싹해져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부승민? 왜 이렇게 기척도 없이 와?”“네가 너무 집중해서 못 느꼈을 뿐이야.”“그래?”“응.”온하랑은 오늘 밤의 부승민에게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하지만 온하랑은 별로 개의치 않고 그저 부시아를 빨리 깨워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시…”입을 여는 순간, 온하랑은 순간적으로 목덜미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을 느끼고는 이내 머릿속이 하얘 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눈앞이 새까매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부승민은 정신을 잃은 온하랑을 받아 안은 채 우아하고 매혹적인 그녀의 얼굴을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부승민은 천천히 몸을 숙여 온하랑의 눈썹 위로 가볍에 입을 맞추고는 작게 속삭였다.“하랑아, 내 탓 하지 마…”…더원파크힐.정원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집 안에 있던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대표님, 병원에 계신 거 아니셨어요? 왜 지금 돌아오세요?”손자도 이미 상태가 많이 호전 된 상태였고 또한 부승민이 위 출혈로 입원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 알고 있었던 아주머니였기에 일부러 이틀이나 일찍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내일 당장 병원을 찾아 부승민의 병문안을 가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부승민은 운전석 문을 닫고, 조수석으로 가 정신을 잃은 온하랑을 안고 나왔다.“시아는 뒷좌석에서 잠들어버렸어
부승민은 바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나 구급상자를 꺼내 체온계를 찾아 온하랑의 체온을 쟀다.38.6도였다.부승민은 구급상자에서 해열제를 찾아 따뜻한 물 반 컵에 타 온하랑에게 먹였다. 그는 알코올을 수건에 적셔 온하랑의 이마와 목덜미를 가볍게 닦아주었다. 부승민은 수건을 한쪽에 두고 온하랑의 내복을 들어 올려 그녀의 겨드랑이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내복이 너무 타이트한 나머지 닦을 수가 없었다. 부승민은 30초 정도를 망설이다가 그녀의 내복을 벗겼다. 이것도 다 온하랑을 위한 것인데 뒤 늦게부승민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부승민은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수건을 들고 온하랑의 겨드랑이, 팔, 가슴을 닦아주었다.그녀의 가슴골에서 보이는 하얀 살결과 잘록한 허리에 부승민의 눈빛은 더욱 시커먼 속내로 가득 들어찼다.부승민은 온하랑의 몸을 다 닦아주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침대 옆을 지켜가며 20분마다 체온을 측정하고 알코올을 묻힌 수건으로 온하랑의 몸을 닦아주었다. 새벽 네 시가 되어야 온하랑의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승민은 마침내 안심한 듯 이불을 열어 피곤해 녹초가 된 몸을 뉘고는 차가운 몸으로 온하랑을 안아주었다. 하지만 감은 눈을 통해 전해지는 부드럽고 매끈한 온하랑의 피부 감촉에 부승민은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그의 몸속에서 사악한 불길이 일더니 부승민의 몸이 뜨거워졌다. 온하랑은 잠자리가 불편한 듯 부승민의 품속에서 계속하여 몸을 몇 번이고 뒤척였다. 동그랗게 힙업이 된 둔부가 여러 번 부승민의 민감한 부위를 자극하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기라고 한 듯 몸속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더 거세졌다.부승민이 더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온하랑이 몸을뒤척일 때마다 속옷을 지탱해주고 있던 그녀의 속옷 후크가 다 풀려 이제 그녀의 몸을 타고 미끄러지며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부승민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손을 내밀어 온하랑의 가슴에 묻었다.부시아가 말한 대로 좋은 향기가 났고 촉감도 말랑하니 좋
하지만 몸이 약해진 온하랑의 눈빛에는 위협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승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불 너머로 온하랑을 누르고는 큰 손으로 온하랑의 이마를 만지며 올려서 대충 온도를 파악했다. 이내 손을 거둔 부승민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배고파?”“…”온하랑의 질문은 그저 무시하는 건가?“내가 묻잖아. 왜 나를 기절시킨 거냐고? 내 옷은 또 어디 있고?”온하랑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 화를 냈다.하지만 부승민은 계속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아주머니께서 아침 준비해주셨어. 내가 조금 있다가 가져다줄게. 어젯밤에 열나던데, 지금은 어때? 어디 아픈 데 있어?”“옷부터 줘, 내가 직접 내려가서 먹을 거야!” “누워있으라고 했다. 말 들어. 내려가서 아침 갖다 줄 테니까.”말을 미친 부승민이 곧장 자리를 떴다.온하랑은 치밀어 오르는 화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온몸을 이불로 칭칭 휘감은 채 방에 있는 옷장 문을 열었다. 유감스럽게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단 하나의 옷가지더 없었다.온하랑의 두 눈이 커졌다.온하랑은 휘청이며 문 앞까지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 문은 이미 부승민에 의해 굳게 잠긴 상태였다.방을 쭉 둘러보았지만 그 어떤 전자기기도 보이지 않았다.온하랑은 허무하게 침대에 내려앉아 잔뜩 화난 표정으로 침대를 힘껏 내리쳤다.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부승민에 의해 감금당했다는 것을.마치 어제 부승민이 온하랑에게 했던 말처럼, 부승민은 그녀를 새장 속의 새처럼 영원히 자신의 곁에 묶어둘 생각이었다.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같이 사는 김시연이 분명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온하랑의 휴대전화는 지금 부승민에게 있다. 어쩌면 부승민은 지금 자신만의 핑계로 김시연을 속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김시연이 최대한 빨리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줘야만 한다.휴대전화 생각이 나자 온하랑은 또 민지훈이 떠올랐다.온하랑이 이마를 짚었다.금방 사귀기 시작한 사이이니 민지훈이라면 분명 온하랑에게 메시
온하랑의 침묵이 부승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듯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내 말 맞지?”온하랑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지었다. 내며 열심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당차던 온하랑도 그 순간만큼은 어딘가 미안한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뭐냐면….”부승민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온하랑이 민지훈을 좋아한다는 그 부분만 빼면 말이다.“뭔데?”부승민이 이를 꽉 깨물고 되물었다.온하랑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여전히 강인한 태도로 부승민을 노려보며 말했다.“별거 아니야. 네 말이 맞아. 난 민지훈을 더 좋아해. 그래서 고백했을 때 그냥 받아줬어. 거기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난 이제 솔로고 연애 좀 하겠다는데 전남편 눈치까지 봐야 해?”부승민은 온하랑을 살벌하게 노려보더니 분노에 찬 헛웃음을 흘렸다.부승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의 불길이 점점 거세졌다. 짙은 안개가 깃든 듯한 눈에, 칼날같이 날카로워진 눈빛에 이성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큰 손으로 이불을 젖혀 온하랑의 맨살을 강제로 드러냈다. 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쁘다, 하랑아. 만약 내가 이 상태로 네 사진 찍어서 민지훈한테 보내면, 그땐 너희 둘이 헤어지려나?”온하랑은 한 손으로 다급하게 자신의 속살을 가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부승민에게 빼앗긴 이불을 다시 뺏어오려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부승민의 말에 온하랑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분노에 가득 찬 부승민을 바라보았다.“부승민, 너 미쳤지!”“네가 나더러 미쳤다 그러는데, 내가 이런 미친 짓이라도 안 하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온하랑은 놀란 눈빛으로 부승민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부승민의 조각 같은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그는 몸을 숙여 온하랑의 입술을 삼켰다. 거칠게 물고 씹고 빨아댔다.힘껏 저항하던 온하랑의 두 손은 부승민에 의해 쉽게 제압되어 머리 위로 올려졌다. 그는 남는 한 손으로 온하랑의 말캉한 살을 지분거렸다
잠옷을 받아든 온하랑은 부승민의 시선을 느끼자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나가.”“못 본 것도 아닌데.”부승민의 눈빛이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옷을 입은 온하랑은 그제야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사실 온하랑의 배는 진작 꼬르륵 소리로 난리가 나 있었다. 아주머니가 한 반찬들이 하나같이 다 입맛에 맞았던 탓에 온하랑은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쳤다.쟁반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던 온하랑은 식탁 앞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부시아를 발견했다. 부시아 역시 온하랑을 발견하고는 신난 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작은 엄마!”“시아 밥 꼭꼭 씹어 먹어. 작은 엄마는 지금 감기에 걸려서 시아랑 같이 놀아줄 수가 없을 것 같아…”온하랑은 쟁반을 주방에 갖다 놓았다. 아주머니는 미리 설거짓거리를 정리하고 있었다.온하랑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아주머니, 손자분이 앓고 있던 병은 나았나요?”“많이 좋아졌어요. 며칠만 지나면 완치될 것 같아요.”“잘됐네요.”온하랑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럼 수고하세요. 먼저 가보겠습니다.”“아, 사모님!”아주머니가 온하랑을 불러세웠다.“까먹으신 것 같은데. 저는 이제 사모님이 아니에요.”“제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사모님이세요. 사모님, 사모님께서는 모르시겠죠? 어젯밤에 열이 39도까지 오르셔서 대표님께서 밤새 간호해주고 계셨어요. 약도 먹여주고 몸도 닦아주고, 열 내리실 때까지 옆에서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줬는지 몰라요. 지금 대표님도 환자예요. 가끔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봐도 대표님이 사모님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다 보일 때가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사모님께서 대표님께 한 번만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네요…”“아주머니, 부승민이 절 위해 해준 일에 대해선 저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이미 남자친구가 따로 생겨버려서요.”도우미 아주머니의 놀란 표정이 보였다.“남… 남자친구가 생겼다고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방금 뭐라고 했어?”부승민이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응시했다.온하랑이 다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무 말도 안 했어. 잘못 들었나 보네. 휴대폰 돌려줘!”온하랑은 강경한 태도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어쨌든 휴대전화에는 비밀이 많았고 온하랑은 그것들을 부승민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만약 부승민이 온하랑의 휴대전화로 민지훈에게 이상한 메시지라도 보내면 이때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리고 온하랑은 부승민이 자신과 서우현의 채팅 기록을 보고 민지훈에게 접근한 목적을 알아채기라도 할까 봐 그게 두려웠다.온하랑이 사실 민지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 부승민은 그 전보다 더 심하게 온하랑을 꽉 붙잡고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을 테니.“휴대폰이 그렇게 중요해?”온하랑의 마음속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 두 눈을 부릅뜨고 부승민을 째려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쉬며 겨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어차피 지금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휴대폰 돌려준다고 해도 별 쓸모는 없겠다.”부승민은 무언가 떠오른 듯 눈빛이 반짝이더니 온하랑을 가만히 응시했다.“뽀뽀 해주면, 휴대전화 돌려줄게.”부승민의 말투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우월감까지 느껴졌다.온하랑은 놀란 나머지 턱까지 빠질 뻔했다.그녀는 놀란 눈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 그 놀라움의 눈빛이 경멸스러움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부승민, 넌 진짜 또라이야!”“넌 그냥 나한테 뽀뽀할 건지 안 할 건지 대답만 해.”화가 난 온하랑이 그대로 이를 악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경계심이 온몸의 털이 바짝 선 고양이가부승민에게 하악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결정했어? 나 병원 가봐야 하는데.”부승민은 일부러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한 기세를보였다.보폭이 큰 편이었던 부승민은 몇 걸음 안 가 곧장 거실 현관에 도착했다.온하랑은 부승민이 현관을 열고 나가려던 그 순간, 등 뒤에서 부승민을 불러 세웠다.“잠깐만!”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