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연도진한테 전화하지 않고 뭘 망설이는 거야. 아까 그렇게 화냈는데 지금 얼마나 속상하겠어. 이엘리아는 이엘리아고 연도진은 연도진이잖아. 이엘리아의 잘못은 연도진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하잖아. 연도진은 널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이엘리아는 연도진의 동생이야. 탓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봐. 이엘리아는 연도진이 필라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일을 꾸몄는데 앞으로 무사할 것 같아? 차라리 이번 기회에 완전히 연도진랑 헤어지는 게 나아.’김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통화 기록 맨 위에 있는 번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막 누르려던 직전에 멈췄다.다운이 비밀로 해달라고 얘기했으니 당분간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한편으로는 앞으로 연도진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필라시.이엘리아는 이미 퇴원했다.집에서 연도진을 본 이엘리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만난 듯 겁을 먹었고 어쩔 수 없이 서희수는 연도진에게 당분간 다른 곳에서 지내라고 했다.연도진은 흔쾌히 동의했다.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엘리아는 한껏 기쁨을 만끽했고 부모님 역시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오직 연도진만이 갈 곳 없는 유기견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다.겉으로는 이엘리아의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서희수도 남몰래 마음속으로는 연도진을 걱정하고 있었다.정신과 의사의 제안에 따라 열심히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며칠 동안 지켜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이엘리아는 오히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연도진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연도진은 권위 있고 명성이 높은 심리학자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엘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서희수는 그분을 모시고 싶었고 연도진은 역시나 흔쾌히 동의했다.동생이 빨리 회복하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돕는 연도진의 모습을 보니 이엘리아가 이렇게 된 게 어쩌면 연도진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심리치료사는 바로 다음 날 필라시로 날아와 윌슨 부부를 만났다.그는 허탈하다는 듯
웃음기조차 없는 헨리의 진지한 표정은 일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듯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서희수는 그의 전문성을 의심하여 단호하게 부인했다.“농담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손목을 그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은 뻔한 아이예요. 이게 어떻게 연기일 수 있죠?”그 말을 들은 헨리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제 소견에는 그 어떤 과장이나 추측도 없습니다. 자살하고 싶어서 손목을 그은 환자를 제가 처음 봤을까요? 수많은 사람을 거쳤지만 이엘리아 씨 같은 반응을 보이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엘리아 씨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세한 표정 변화, 눈빛, 행동까지 관찰해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입니다. 손목을 그은 건 맞지만 사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의사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 준 거예요. 저도 며칠 동안 병간호를 했고요.”서희수는 여전히 확고했다.“그 의사분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죠. 이엘리아 씨가 만약 조금의 의학 지식을 알고 있다면 손목을 어느 정도 그을지조차 계획했을 겁니다. 단언컨대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서희수는 기분이 언짢았다.“거짓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그쪽도 지금 거짓말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요?”표정이 돌변한 헨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사모님, 제 직업윤리와 존엄을 모욕하는 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 소견을 믿지 않으실 거면서 왜 카이사르 씨에게 모셔 오라고 부탁하신 거죠?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잠시만요.”윌슨은 떠나려는 헨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내 아내가 딸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고 이쪽에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 봅시다. 이렇게 급하게 모셔왔다는 건 그만큼 헨리 씨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헨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카이사르 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은
‘카이사르 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어 보복하려고 이런 일을 꾸민 건가?’서희수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애썼다.그녀는 이엘리아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이 일로 카이사르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정말로 아픈 걸 수도 있잖아.”윌슨은 옆에서 끊임없이 타일렀다.“진실을 알고 싶은 거면 아주 간단해. 이엘리아 그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게 될 거야.”“하지만 그건 사생활 침해가 아닐까요?”서희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어. 만약 아픈 게 사실이라면 혹시라도 자해하게 된다면 제때 발견할 수 있으니 좋은 거잖아. 어차피 비밀번호는 당신만 알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걱정은 안 해도 돼.”서희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동의를 받아낸 후 윌슨은 앨런에게 부탁해 최신 초소형 카메라와 사용 설명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동시에 서희수는 헨리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는 치료 명목으로 이엘리아를 다실로 불러냈고 그 틈을 타 윌슨과 서희수는 이엘리아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매번 식사 시간이 되면 도우미가 이엘리아의 음식을 방으로 배달해 줬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저녁 식사 30분 후에 서희수는 평소처럼 물 한 잔과 알약들을 들고 이엘리아를 찾아갔다.이를 먹은 이엘리아는 곧바로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엄마, 졸려서 자고 싶어요.”“그래. 푹 쉬어. 내일 보자. 잘자.”이엘리아의 방에서 나온 서희수는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컴퓨터에는 모니터링 화면이 떠올랐는데 그 어디에도 이엘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옷방이나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다며 서희수는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내적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만약 옷방에서 잠옷을 갈아입고 나온다면 정말 졸리고 아파서 자는 걸 수도 있기에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장실에서 약을 토해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건강하다는 걸 증명했으니 그
헨리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후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서희수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죠?”이엘리아에게 전부 다 알고 있으니 사실대로 얘기하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모든 잘못을 인정한 후에는 어떻게 이엘리아를 대해야 할지조차 몰랐다.생각하면 할수록 서희수는 머리가 점점 아파졌다.“내일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 오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일단 카이사르부터 불러오는 게 어때?”서희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이엘리아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성장 과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이엘리아를 낳을 때 사고가 생겨 카이사르가 실종되었다.서희수는 그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고 초반에 아이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에 몸과 마음 전부 망가져 갔다.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의 뜨거운 희망은 서서히 식어갔고 비슷한 아이를 봤다는 제보를 듣고서도 예전만큼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다.하여 서희수는 카이사르에 대한 모든 관심한 사랑을 이엘리아에게 줬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설령 공부에 재능이 없다 한들 혼내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자라는 거로 만족한다며 한없이 관대했다.어쩌면 이런 관대함이 지금의 이엘리아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자녀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한 건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동시에 서희수는 7, 8년 카이사르를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이미 실종된 지 20년이 되었기에 두 사람은 애초에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았다.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허무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다수였기에 열정은 점점 식어갔고 실망만 잔뜩 쌓였다.아이를 찾기 위해 투입됐던 인력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결국 소수의 인원이 남았지만 그들은 물러서는 게 아닌 의지력 하나만으로 끝까지 수색했다.그러다가 강남에서 카이사르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서희수의 마음은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나중에 제보자가 유전
카이사르가 어려서부터 필라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성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이날 밤, 서희수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옆에 있던 윌슨도 마찬가지였다.다음날 서희수는 연도진을 집으로 불러들이며 아예 들어와서 살라고 제안했다.그러자 연도진은 주뼛거리며 입을 열었다.“헨리 씨한테 들었어요. 이엘리아는 아마 저 때문에 이런 일을 꾸몄을 거예요. 제가 옮겨온다면 아마 더 싫어할 수도 있어요.”“이런 건 걔가 혼자 결정하는 일이 아니잖니.”지난 며칠 동안 남보다 못하게 카이사르를 대했던 서희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이엘리아는 아직 저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죠?”서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직 몰라.”어쩌면 이 상황을 정리해 줄 악역이 필요하여 연도진을 부른 걸 수도 있다.서희수는 이엘리아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단호하게 내쳐낸 용기가 없었다. 마음 독하게 먹었다면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질질 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연도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는 못 잡는 거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이거니 당분간 헨리 씨한테 치료를 받는다면 좋아질 거예요.”“그렇게 괴롭혔는데 넌 이엘리아가 밉지도 않니?”“그럴 리가요. 제 동생이잖아요. 동생이랑 싸워서 좋을 게 없잖아요.”“너 같은 오빠가 있으니 정말 든든하구나. 내가 대신 고마워. 어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애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엘리아가 치료받으러 가면 어머니도 한적한 곳에서 푹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서희수는 흐뭇한 눈빛으로 연도진을 바라봤다.“그래. 너는? 언제 시연이를 데려올 거니? 걱정 마,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한번 보고 싶구나.”“시연이가 최근에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촬영장에 숨어있던 괴한 때문에 동료 한 명이 다쳤는데 그분은 시연이를 대신해서 물건 가지러 갔다가 습격을 받
“왔어?”문을 두드린 사람이 앨리스인걸 본 이엘리아는 재빨리 다가가 마중하고선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앨리스는 이엘리아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요즘 몸 상태가 별로인가 보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이렇게 해야 엄마랑 아빠가 믿지.”이엘리아는 거울을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선 푹 꺼진 볼을 만졌다.“내가 요즘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아?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인데 참았다니까? 눈앞에 있는 음식을 전부 입에 넣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면서 입맛 없는 척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매일 밤 졸려서 죽을 것 같아도 절대 안 잤어. 그래야 다음 날 아침에 초췌해 보이거든. 연기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누가 봐도 환자처럼 보이잖아?”앨리스는 혀를 내둘렀다.“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그 시각 서재에서 화면을 지켜보던 서희수는 앨리스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았다.어려서부터 고생 한번 한적없는 이엘리아가 꾀병을 부리기 위해 이 정도로 치밀하게 행동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끈기가 비범한데 애석하게도 삐뚤어진 방식에 사용됐다.앨리스는 이엘리아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이엘리아는 뿌듯함을 드러냈다.“가혹한 건 맞는데 효과가 아주 직방이야. 이틀 전에 엄마가 오빠를 내쫓았거든. 내 생각에 얼마 안 있으면 이 집에 발 디딜 자리도 없을걸?”“그래? 내가 아까 왔을 때는 서로 얘기하고 있던데?”이엘리아는 표정이 돌변했다.“정말이야?”“응.”“물건 가지러 온 건가?”“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다정해 보였어.”이엘리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뭐라고? 이대로는 안 되겠어.”앨리스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이 정도면 솔직히 대단한 거야. 여기서 더 오바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걸?”“그게 무슨 뜻이야?”“어제 심리치료사가 왔다며? 오빠가 소개해 준 거야?”“응.”이엘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내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냥 가던데?”“사람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노아는 삼촌인 애버트 위슨의 아들이자 이엘리아의 사촌이다.“오빠를 완벽하게 제외하는 방법은 뭐야?”“그건 쉽잖아. 아저씨는 가족의 이익을 해는 사람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 카이사르 오빠가 만약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 기밀을 누설하면 어떻게 될까? 설령 아저씨가 지켜준다 한들 다른 삼촌들과 이모들이 용서하지 않을걸?”“무슨 뜻인지 알겠어.”이엘리아는 두 눈이 반짝였다.“몸이 좋아지면 아빠 회사에 한번 가볼게.”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서희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이엘리아가 똑똑하지 않다는 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멍청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먼 이엘리아는 다른 사람의 부추김만 듣고 회사의 기밀을 누설해 카이사르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계획을 꾸몄다.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두 사람 모두 윌슨의 자식이기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면 윌슨은 모든 가족의 질타를 받게 될 수도 있다.‘어쩜 이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은 거지? 앨리스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거야?’그 시각 앨리스는 이엘리아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날 준비를 했다.위층에서 내려온 그녀는 넓은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카이사르를 발견했다.앨리스는 카이사르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김시연과 결혼했으니 이미 이용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나중에 노아가 윌슨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면 사모님 자리에 앉는 건 시간문제다.김시연이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아쉽긴 하지만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시도해도 된다.이때 연도진이 입을 열었다.“앨리스.”앨리스는 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연도진도 웃으며 답했다.“이엘리아랑 무슨 얘기를 나눴어요?”그 질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앨리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시선을 피해 애써 초조함 마음을 가라앉혔다.“긴장하지 마요. 그냥 평소에 이엘리아랑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
깜짝 놀란 김시연은 순식간에 정신을 번쩍 차렸고 하마터면 핸드폰을 던질뻔했다.화면을 가득 채운 선홍색의 피를 보니 손가락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포토샵이겠지? 하긴 이게 진짜일 리가 없잖아.’표정을 잔뜩 찌푸린 채 사진 속에서 포토샵의 흔적을 찾으려 노렸지만 그 어떤 결점도 보이지 않았고 모든 게 현실적이었다.사진 속의 가늘고 섬세한 세 손가락은 손톱마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어 누가 봐도 여자의 손가락이었다.‘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인가? 설마... 이엘리아의 손가락은 아니겠지?’잔인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 김시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떠보듯이 물었다.[설마... 이거 진짜야?][응.]연도진은 칼답했다.[영상 보여줄까?][아니. 됐어.]김시연은 믿기지 않았다.[이엘리아 손가락이야? 네가 잘랐어?]김시연은 연도진이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껏해 봤자 지난번처럼 유치장에 보내는 게 전부이기에 모범적인 시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엘리아는 이엘리아의 이름을 도용해서 나쁜 짓을 저지른 쓰레기의 손가락이야.]김시연은 더 이상 그런 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너 정말 괜찮아? 그 사람이 신고하면 어쩌려고.][신고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거야.][아...]김시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여러 차례 편집하다가 결국 전부 삭제했다.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모티콘을 보내려던 찰나 연도진의 메시지가 떴다.[내가 무서워?]당황함 김시연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런 건 아닌데... 조금 놀랐어...]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태연하게 행동하는 연도진이 믿기지 않았다.김시연은 그제야 연도진이 더 이상 예전의 정직하고 순한 모범생이 아니라는 걸 인지했다. 그는 윌슨의 아들이자 윌슨 가문의 차기 후계자다.곧이어 연도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김시연은 마치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쥐고 있는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침대에 누워있어?”“내 방에 카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