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를 부리는 부선월이 익숙해진 지 오래였던 부승민은 태연하게 말했다.“당연히 저한테 생명을 준 고마움을 잊을 리가 없죠.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게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부선원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게 무슨 말이니?”“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그 말속에 담긴 뜻을 곰곰이 생각하던 부선월은 순간 아래층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부선월은 재빨리 문을 열고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을 확인했고 그 순간 충격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거실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가득했고 바닥에 누워있던 육광태도 어느새 멀쩡하게 서 있었다.고개를 들자 육광태는 위층에 있는 부선월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재빨리 옆에 있던 사람에게 명령했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2층으로 돌진했는데 누가 봐도 타깃은 부선월이다.이를 본 부선월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도망칠 구석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부승민, 나는 널 낳아준 엄마라고. 엄마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고작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꾸며? 넌 양심이라는 게 없구나. 내가 왜 너 같은 아들을 낳고 키웠을까. 애초에 태어났을 때 깊은 산속에 버려서 늑대들의 먹이로...”부선월은 마치 초원의 맹수처럼 사납게 울부짖으며 발광했다.부승민은 한숨을 내쉬었다.“할 말 다했어요? 이번 생에 나누는 마지막 통화일 수도 있으니까 맘껏 얘기해요. 앞으로는 그럴 기회조차 없을 텐데.”부선월은 흠칫하더니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포효했다.“부승민!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딱히 할 말 없는 것 같으니까 이만 끊을게요. 앞으로 남은 인생 편안하게 살게 해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부선월은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벙끗했으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음뿐이었다.뚝.어느새 건장한 사내들이 부선월을 포위했고 단숨에 두 팔을 잡아 제압했다.부선월은 몸부림치며 반항했지만 그들
주시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럼 빨리 가서 가져와야지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야.”“아... 지금 바로 갈게요.”매니저는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대기실로 달려갔다.주시온은 허탈한 듯 김시연을 바라보며 한탄했다.“누나, 수아 알죠? 계속 저랑 같이 일하다가 이번에 출산 휴가를 썼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매니저 한 명 새로 뽑았는데 꼼꼼하지 못하고 실수가 너무 많아요.”“수아? 이미 애 낳은 거 아니었어?”김시연은 머리를 정리해 주며 주시온과 수다를 떨었다.“낳은 지 아마 두달정도 됐을걸요? 다음 달부터 출근할 수 있다던데 하루라도 빨리 복귀했으면 좋겠어요.”김시연은 빗으로 마지막 정리까지 마쳤다.“이제 됐어. 수아 이제 복귀하면 용돈 챙겨줘야겠네?”“당연히 챙겨야죠. 수아만큼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이때 사원증을 목에 건 소품 담당자가 다가왔다.“시연 씨, 혹시 시간 좀 괜찮아요? 촬영에 쓰일 엄청 중요한 소품을 놓고 와서 그런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요.”“뭔데요?”“유리로 만든 빨간색 옥패예요. 아마 소품실 좌측 서랍의 두 번째 케이스에 있을 거예요.”“알겠어요. 제가 다녀올게요.”“감사합니다.”말을 마친 담당자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그럼 나 먼저 갈게.”김시연이 이제 막 인사를 나누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주시온이 입을 열었다.“안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운이가 마침 대기실로 갔잖아요. 시간도 얼마 없는데 어차피 소품실이랑 가까우니까 제가 그냥 다운이한테 가져오라고 할게요.”다운이는 방금 대본 찾으러 간 주시온의 매니저다.“빨리 대본 봐야 하는 거 아니야?”“괜찮아요. 어차피 대사는 이미 외웠거든요.”“다행이네.”주시온은 핸드폰을 꺼내 다운에게 전화를 걸었고 옥패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오는 길에 가져오라고 했다.그 후 주시온은 상대 배우와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촬영에 돌입했고 말없이 집중해서 지켜보던 감독은 두 사람의
“뭐라고요?”주시온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언제요? 많이 다쳤어요? 지금은 괜찮아요?”촬영장에 괴한이 들어온 것도 이상한데 마침 소품실에 숨어있는 게 뭔가 꺼림칙했다.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주시온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몇 분 전 김시연에게 소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던 그 관계자가 보이지 않았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가보자.”“시온아, 어디가? 촬영 벌써 끝났어?”화장실을 다녀온 김시연은 감독과 함께 자리를 옮기는 주시온의 뒷모습을 보고선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주시온은 사건의 경과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시온이가 다쳤어요. 감독님 말로는 소품실에 숨어있던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칼에 찔렸대요.”김시연은 아연실색했다.“갑자기? 많이 다쳤어? 그 사람은 잡은 거야?”“모르겠어요. 저희도 이제 막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거든요.”“얼른 가자. 나도 같이 갈게.”김시연은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시온이가 나 대신 소품 가지러 간 게 아니었다면 내가 찔렸을 수도 있겠네?”그 말을 들은 감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김시연은 대충 설명해 줬다.“이렇게 우연일 수가 있나?”감독은 우연처럼 보이는 이 찝찝함이 너무 거슬렸다.“그렇죠? 저도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이때 주시온이 과감한 추측을 했다.“설마 그 괴한이 누나를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니겠죠?”주시온의 말을 듣고 난 김시연도 입술을 깨문 채 곰곰이 생각했다.‘정말 나를 타킷으로 삼은 건가? 누구지? 이엘리아?’“소품 가져오라고 부탁했던 그 사람은 누구야?”김시연은 생각에 잠겼다.“사원증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한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경찰이 오면 얘기하자.”그 시각 소품실 입구. 스태프 몇 명이 괴한을 제압했고 도망치지 못하게 밧줄로 꽁꽁 묶었다.바닥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다운이 누워있었는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복부에는 칼자루가 꽂혀있었고 그 주위는 피로 붉게
괴한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 받았어?”괴한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죽이는 데 실패했는데 그 사람이 과연 돈을 줄까?”그 말을 들은 괴한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김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귀를 찌르는 경적소리가 들려왔는데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로 느껴졌다.“구급차 도착한 거지?”두 눈이 번쩍 뜨인 감독은 급히 사람을 내보내 길을 안내했다.의료진들은 다운을 구급차에 실었고 김시연은 동행하겠다며 나섰다.따지고 보면 그녀를 대신해 칼을 맞았을 가능성이 컸기에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였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운은 수술실로 옮겨졌고 김시연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수술비와 입원비를 지불했다.그 후 증빙서류를 들고 수술실로 돌아와 앞에서 대기했다.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주시온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주시온은 경찰이 도착했을 때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고 말했고 경찰은 현장에서 바로 모든 소품 관계자를 불러 모았다고 한다.하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 김시연에게 부탁했던 그 남자는 없었다.드라마나 영화인 경우 제작진들이 배우 간의 케미나 현장이 에피소드가 담긴 비하인드 영상을 찍기 위해 늘 몇 대의 카메라를 돌린다.정말 다행히도 카메라 중 한대에 남자의 모습이 찍혔다.현장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니 몰래 들어온 사람이 틀림없었고 김시연과 주시온이 자리를 뜨자 곧바로 현장에서 사라졌다.경찰은 이미 수색에 돌입했다.주시온은 다운의 부상을 걱정하며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다시는 덤벙거린다고 혼내지 않을 거예요.”다운이 대본을 대기실에 놓고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수술실에 누워있는 건 김시연이다.김시연의 체력이나 몸집으로 봤을 때 괴한의 손에 잡힌 순간 바로 죽음이다.한 시간 뒤 수술이 끝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장기에 손상이 간 건 맞지만 제때 치료한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고 당분간은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며
경찰들은 이엘리아가 국내에 없으니 체포할 방법이 없다며 난감해했다.그 시각 김시연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기가 밀려와 당장이라도 이엘리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죽이겠다는 목적 하나로 생각 없이 행동한 이엘리아는 계획이 실패한 건 둘째 치고 무고한 사람까지 이 일에 끌어들였다. 정황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해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쓸 수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바로 이때 연도진의 국제전화가 걸 려왔다.그의 번호를 본 김시연은 고민도 없이 수신 거부를 눌렀다.연도진의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은 김시연은 싸늘하게 말했다.“왜?”“시연아, 너 괜찮아?”익숙한 그 목소리에 담긴 걱정과 불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연도진은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다.시차를 계산해 보면 새벽인데 이렇게 빨리 소식을 접한 게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대충 둘러대려던 김시연은 순간 생각이 번뜩였다.“안 괜찮아. 병원인데 지금 죽을 것 같아.”“기다려. 내가 바로 갈게.”“아니. 난 네가 보고 싶지 않아. 그냥 오지 마. 평생 안 왔으면 좋겠어.”“시연아, 화난 건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내가 반드시 꼭 설명해 줄게.”김시연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할 말 없으면 끊을게.”부모님이 목숨 걸고 이엘리아를 지켜주는 상황에 연도진이 할 수 있는 설명 따윈 없다.김시연은 이미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잠깐만.”그녀의 무심한 말투를 들은 연도진은 가슴이 미어졌다.김시연은 이제 그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연도진은 노력한다면 반드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왜?”“앞으로 촬영 현장에서 무슨 일 있으면 승기 찾아가. 도와줄 거야.”그 말에 김시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승기? 설마 그 어시스턴트를 말하는 건가?’“알겠어. 끊을게.”김시연은 연도진에게 말
‘얼른 연도진한테 전화하지 않고 뭘 망설이는 거야. 아까 그렇게 화냈는데 지금 얼마나 속상하겠어. 이엘리아는 이엘리아고 연도진은 연도진이잖아. 이엘리아의 잘못은 연도진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하잖아. 연도진은 널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이엘리아는 연도진의 동생이야. 탓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봐. 이엘리아는 연도진이 필라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일을 꾸몄는데 앞으로 무사할 것 같아? 차라리 이번 기회에 완전히 연도진랑 헤어지는 게 나아.’김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통화 기록 맨 위에 있는 번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막 누르려던 직전에 멈췄다.다운이 비밀로 해달라고 얘기했으니 당분간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한편으로는 앞으로 연도진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필라시.이엘리아는 이미 퇴원했다.집에서 연도진을 본 이엘리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만난 듯 겁을 먹었고 어쩔 수 없이 서희수는 연도진에게 당분간 다른 곳에서 지내라고 했다.연도진은 흔쾌히 동의했다.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엘리아는 한껏 기쁨을 만끽했고 부모님 역시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오직 연도진만이 갈 곳 없는 유기견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다.겉으로는 이엘리아의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서희수도 남몰래 마음속으로는 연도진을 걱정하고 있었다.정신과 의사의 제안에 따라 열심히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며칠 동안 지켜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이엘리아는 오히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연도진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연도진은 권위 있고 명성이 높은 심리학자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엘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서희수는 그분을 모시고 싶었고 연도진은 역시나 흔쾌히 동의했다.동생이 빨리 회복하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돕는 연도진의 모습을 보니 이엘리아가 이렇게 된 게 어쩌면 연도진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심리치료사는 바로 다음 날 필라시로 날아와 윌슨 부부를 만났다.그는 허탈하다는 듯
웃음기조차 없는 헨리의 진지한 표정은 일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듯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서희수는 그의 전문성을 의심하여 단호하게 부인했다.“농담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손목을 그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은 뻔한 아이예요. 이게 어떻게 연기일 수 있죠?”그 말을 들은 헨리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제 소견에는 그 어떤 과장이나 추측도 없습니다. 자살하고 싶어서 손목을 그은 환자를 제가 처음 봤을까요? 수많은 사람을 거쳤지만 이엘리아 씨 같은 반응을 보이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엘리아 씨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세한 표정 변화, 눈빛, 행동까지 관찰해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입니다. 손목을 그은 건 맞지만 사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의사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 준 거예요. 저도 며칠 동안 병간호를 했고요.”서희수는 여전히 확고했다.“그 의사분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죠. 이엘리아 씨가 만약 조금의 의학 지식을 알고 있다면 손목을 어느 정도 그을지조차 계획했을 겁니다. 단언컨대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서희수는 기분이 언짢았다.“거짓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그쪽도 지금 거짓말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요?”표정이 돌변한 헨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사모님, 제 직업윤리와 존엄을 모욕하는 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 소견을 믿지 않으실 거면서 왜 카이사르 씨에게 모셔 오라고 부탁하신 거죠?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잠시만요.”윌슨은 떠나려는 헨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내 아내가 딸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고 이쪽에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 봅시다. 이렇게 급하게 모셔왔다는 건 그만큼 헨리 씨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헨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카이사르 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은
‘카이사르 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어 보복하려고 이런 일을 꾸민 건가?’서희수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애썼다.그녀는 이엘리아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이 일로 카이사르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정말로 아픈 걸 수도 있잖아.”윌슨은 옆에서 끊임없이 타일렀다.“진실을 알고 싶은 거면 아주 간단해. 이엘리아 그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게 될 거야.”“하지만 그건 사생활 침해가 아닐까요?”서희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어. 만약 아픈 게 사실이라면 혹시라도 자해하게 된다면 제때 발견할 수 있으니 좋은 거잖아. 어차피 비밀번호는 당신만 알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걱정은 안 해도 돼.”서희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동의를 받아낸 후 윌슨은 앨런에게 부탁해 최신 초소형 카메라와 사용 설명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동시에 서희수는 헨리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는 치료 명목으로 이엘리아를 다실로 불러냈고 그 틈을 타 윌슨과 서희수는 이엘리아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매번 식사 시간이 되면 도우미가 이엘리아의 음식을 방으로 배달해 줬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저녁 식사 30분 후에 서희수는 평소처럼 물 한 잔과 알약들을 들고 이엘리아를 찾아갔다.이를 먹은 이엘리아는 곧바로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엄마, 졸려서 자고 싶어요.”“그래. 푹 쉬어. 내일 보자. 잘자.”이엘리아의 방에서 나온 서희수는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컴퓨터에는 모니터링 화면이 떠올랐는데 그 어디에도 이엘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옷방이나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다며 서희수는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내적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만약 옷방에서 잠옷을 갈아입고 나온다면 정말 졸리고 아파서 자는 걸 수도 있기에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장실에서 약을 토해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건강하다는 걸 증명했으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