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주시온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언제요? 많이 다쳤어요? 지금은 괜찮아요?”촬영장에 괴한이 들어온 것도 이상한데 마침 소품실에 숨어있는 게 뭔가 꺼림칙했다.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주시온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몇 분 전 김시연에게 소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던 그 관계자가 보이지 않았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가보자.”“시온아, 어디가? 촬영 벌써 끝났어?”화장실을 다녀온 김시연은 감독과 함께 자리를 옮기는 주시온의 뒷모습을 보고선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주시온은 사건의 경과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시온이가 다쳤어요. 감독님 말로는 소품실에 숨어있던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칼에 찔렸대요.”김시연은 아연실색했다.“갑자기? 많이 다쳤어? 그 사람은 잡은 거야?”“모르겠어요. 저희도 이제 막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거든요.”“얼른 가자. 나도 같이 갈게.”김시연은 곧바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시온이가 나 대신 소품 가지러 간 게 아니었다면 내가 찔렸을 수도 있겠네?”그 말을 들은 감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김시연은 대충 설명해 줬다.“이렇게 우연일 수가 있나?”감독은 우연처럼 보이는 이 찝찝함이 너무 거슬렸다.“그렇죠? 저도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이때 주시온이 과감한 추측을 했다.“설마 그 괴한이 누나를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니겠죠?”주시온의 말을 듣고 난 김시연도 입술을 깨문 채 곰곰이 생각했다.‘정말 나를 타킷으로 삼은 건가? 누구지? 이엘리아?’“소품 가져오라고 부탁했던 그 사람은 누구야?”김시연은 생각에 잠겼다.“사원증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한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경찰이 오면 얘기하자.”그 시각 소품실 입구. 스태프 몇 명이 괴한을 제압했고 도망치지 못하게 밧줄로 꽁꽁 묶었다.바닥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다운이 누워있었는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복부에는 칼자루가 꽂혀있었고 그 주위는 피로 붉게
괴한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 받았어?”괴한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죽이는 데 실패했는데 그 사람이 과연 돈을 줄까?”그 말을 들은 괴한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김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귀를 찌르는 경적소리가 들려왔는데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로 느껴졌다.“구급차 도착한 거지?”두 눈이 번쩍 뜨인 감독은 급히 사람을 내보내 길을 안내했다.의료진들은 다운을 구급차에 실었고 김시연은 동행하겠다며 나섰다.따지고 보면 그녀를 대신해 칼을 맞았을 가능성이 컸기에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였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운은 수술실로 옮겨졌고 김시연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수술비와 입원비를 지불했다.그 후 증빙서류를 들고 수술실로 돌아와 앞에서 대기했다.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주시온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주시온은 경찰이 도착했을 때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고 말했고 경찰은 현장에서 바로 모든 소품 관계자를 불러 모았다고 한다.하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 김시연에게 부탁했던 그 남자는 없었다.드라마나 영화인 경우 제작진들이 배우 간의 케미나 현장이 에피소드가 담긴 비하인드 영상을 찍기 위해 늘 몇 대의 카메라를 돌린다.정말 다행히도 카메라 중 한대에 남자의 모습이 찍혔다.현장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니 몰래 들어온 사람이 틀림없었고 김시연과 주시온이 자리를 뜨자 곧바로 현장에서 사라졌다.경찰은 이미 수색에 돌입했다.주시온은 다운의 부상을 걱정하며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다시는 덤벙거린다고 혼내지 않을 거예요.”다운이 대본을 대기실에 놓고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수술실에 누워있는 건 김시연이다.김시연의 체력이나 몸집으로 봤을 때 괴한의 손에 잡힌 순간 바로 죽음이다.한 시간 뒤 수술이 끝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장기에 손상이 간 건 맞지만 제때 치료한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고 당분간은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며
경찰들은 이엘리아가 국내에 없으니 체포할 방법이 없다며 난감해했다.그 시각 김시연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기가 밀려와 당장이라도 이엘리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죽이겠다는 목적 하나로 생각 없이 행동한 이엘리아는 계획이 실패한 건 둘째 치고 무고한 사람까지 이 일에 끌어들였다. 정황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해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쓸 수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바로 이때 연도진의 국제전화가 걸 려왔다.그의 번호를 본 김시연은 고민도 없이 수신 거부를 눌렀다.연도진의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은 김시연은 싸늘하게 말했다.“왜?”“시연아, 너 괜찮아?”익숙한 그 목소리에 담긴 걱정과 불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연도진은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다.시차를 계산해 보면 새벽인데 이렇게 빨리 소식을 접한 게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대충 둘러대려던 김시연은 순간 생각이 번뜩였다.“안 괜찮아. 병원인데 지금 죽을 것 같아.”“기다려. 내가 바로 갈게.”“아니. 난 네가 보고 싶지 않아. 그냥 오지 마. 평생 안 왔으면 좋겠어.”“시연아, 화난 건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내가 반드시 꼭 설명해 줄게.”김시연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할 말 없으면 끊을게.”부모님이 목숨 걸고 이엘리아를 지켜주는 상황에 연도진이 할 수 있는 설명 따윈 없다.김시연은 이미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잠깐만.”그녀의 무심한 말투를 들은 연도진은 가슴이 미어졌다.김시연은 이제 그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연도진은 노력한다면 반드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왜?”“앞으로 촬영 현장에서 무슨 일 있으면 승기 찾아가. 도와줄 거야.”그 말에 김시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승기? 설마 그 어시스턴트를 말하는 건가?’“알겠어. 끊을게.”김시연은 연도진에게 말
‘얼른 연도진한테 전화하지 않고 뭘 망설이는 거야. 아까 그렇게 화냈는데 지금 얼마나 속상하겠어. 이엘리아는 이엘리아고 연도진은 연도진이잖아. 이엘리아의 잘못은 연도진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하잖아. 연도진은 널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이엘리아는 연도진의 동생이야. 탓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봐. 이엘리아는 연도진이 필라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일을 꾸몄는데 앞으로 무사할 것 같아? 차라리 이번 기회에 완전히 연도진랑 헤어지는 게 나아.’김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통화 기록 맨 위에 있는 번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막 누르려던 직전에 멈췄다.다운이 비밀로 해달라고 얘기했으니 당분간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한편으로는 앞으로 연도진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필라시.이엘리아는 이미 퇴원했다.집에서 연도진을 본 이엘리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만난 듯 겁을 먹었고 어쩔 수 없이 서희수는 연도진에게 당분간 다른 곳에서 지내라고 했다.연도진은 흔쾌히 동의했다.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엘리아는 한껏 기쁨을 만끽했고 부모님 역시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오직 연도진만이 갈 곳 없는 유기견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다.겉으로는 이엘리아의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서희수도 남몰래 마음속으로는 연도진을 걱정하고 있었다.정신과 의사의 제안에 따라 열심히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며칠 동안 지켜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이엘리아는 오히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순간 그녀는 연도진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연도진은 권위 있고 명성이 높은 심리학자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엘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서희수는 그분을 모시고 싶었고 연도진은 역시나 흔쾌히 동의했다.동생이 빨리 회복하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돕는 연도진의 모습을 보니 이엘리아가 이렇게 된 게 어쩌면 연도진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심리치료사는 바로 다음 날 필라시로 날아와 윌슨 부부를 만났다.그는 허탈하다는 듯
웃음기조차 없는 헨리의 진지한 표정은 일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듯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서희수는 그의 전문성을 의심하여 단호하게 부인했다.“농담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손목을 그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은 뻔한 아이예요. 이게 어떻게 연기일 수 있죠?”그 말을 들은 헨리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제 소견에는 그 어떤 과장이나 추측도 없습니다. 자살하고 싶어서 손목을 그은 환자를 제가 처음 봤을까요? 수많은 사람을 거쳤지만 이엘리아 씨 같은 반응을 보이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엘리아 씨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세한 표정 변화, 눈빛, 행동까지 관찰해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입니다. 손목을 그은 건 맞지만 사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의사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 준 거예요. 저도 며칠 동안 병간호를 했고요.”서희수는 여전히 확고했다.“그 의사분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죠. 이엘리아 씨가 만약 조금의 의학 지식을 알고 있다면 손목을 어느 정도 그을지조차 계획했을 겁니다. 단언컨대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서희수는 기분이 언짢았다.“거짓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그쪽도 지금 거짓말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요?”표정이 돌변한 헨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사모님, 제 직업윤리와 존엄을 모욕하는 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 소견을 믿지 않으실 거면서 왜 카이사르 씨에게 모셔 오라고 부탁하신 거죠?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잠시만요.”윌슨은 떠나려는 헨리를 다급하게 붙잡았다.“내 아내가 딸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고 이쪽에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 봅시다. 이렇게 급하게 모셔왔다는 건 그만큼 헨리 씨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헨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카이사르 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은
‘카이사르 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어 보복하려고 이런 일을 꾸민 건가?’서희수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애썼다.그녀는 이엘리아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이 일로 카이사르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정말로 아픈 걸 수도 있잖아.”윌슨은 옆에서 끊임없이 타일렀다.“진실을 알고 싶은 거면 아주 간단해. 이엘리아 그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게 될 거야.”“하지만 그건 사생활 침해가 아닐까요?”서희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어. 만약 아픈 게 사실이라면 혹시라도 자해하게 된다면 제때 발견할 수 있으니 좋은 거잖아. 어차피 비밀번호는 당신만 알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걱정은 안 해도 돼.”서희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동의를 받아낸 후 윌슨은 앨런에게 부탁해 최신 초소형 카메라와 사용 설명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동시에 서희수는 헨리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는 치료 명목으로 이엘리아를 다실로 불러냈고 그 틈을 타 윌슨과 서희수는 이엘리아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매번 식사 시간이 되면 도우미가 이엘리아의 음식을 방으로 배달해 줬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저녁 식사 30분 후에 서희수는 평소처럼 물 한 잔과 알약들을 들고 이엘리아를 찾아갔다.이를 먹은 이엘리아는 곧바로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엄마, 졸려서 자고 싶어요.”“그래. 푹 쉬어. 내일 보자. 잘자.”이엘리아의 방에서 나온 서희수는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컴퓨터에는 모니터링 화면이 떠올랐는데 그 어디에도 이엘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옷방이나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다며 서희수는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내적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만약 옷방에서 잠옷을 갈아입고 나온다면 정말 졸리고 아파서 자는 걸 수도 있기에 차라리 그러기를 바랐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장실에서 약을 토해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건강하다는 걸 증명했으니 그
헨리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후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서희수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죠?”이엘리아에게 전부 다 알고 있으니 사실대로 얘기하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모든 잘못을 인정한 후에는 어떻게 이엘리아를 대해야 할지조차 몰랐다.생각하면 할수록 서희수는 머리가 점점 아파졌다.“내일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 오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일단 카이사르부터 불러오는 게 어때?”서희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이엘리아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성장 과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이엘리아를 낳을 때 사고가 생겨 카이사르가 실종되었다.서희수는 그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고 초반에 아이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에 몸과 마음 전부 망가져 갔다.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의 뜨거운 희망은 서서히 식어갔고 비슷한 아이를 봤다는 제보를 듣고서도 예전만큼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다.하여 서희수는 카이사르에 대한 모든 관심한 사랑을 이엘리아에게 줬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설령 공부에 재능이 없다 한들 혼내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자라는 거로 만족한다며 한없이 관대했다.어쩌면 이런 관대함이 지금의 이엘리아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자녀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한 건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동시에 서희수는 7, 8년 카이사르를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이미 실종된 지 20년이 되었기에 두 사람은 애초에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았다.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허무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다수였기에 열정은 점점 식어갔고 실망만 잔뜩 쌓였다.아이를 찾기 위해 투입됐던 인력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결국 소수의 인원이 남았지만 그들은 물러서는 게 아닌 의지력 하나만으로 끝까지 수색했다.그러다가 강남에서 카이사르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서희수의 마음은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나중에 제보자가 유전
카이사르가 어려서부터 필라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성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이날 밤, 서희수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옆에 있던 윌슨도 마찬가지였다.다음날 서희수는 연도진을 집으로 불러들이며 아예 들어와서 살라고 제안했다.그러자 연도진은 주뼛거리며 입을 열었다.“헨리 씨한테 들었어요. 이엘리아는 아마 저 때문에 이런 일을 꾸몄을 거예요. 제가 옮겨온다면 아마 더 싫어할 수도 있어요.”“이런 건 걔가 혼자 결정하는 일이 아니잖니.”지난 며칠 동안 남보다 못하게 카이사르를 대했던 서희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이엘리아는 아직 저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죠?”서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직 몰라.”어쩌면 이 상황을 정리해 줄 악역이 필요하여 연도진을 부른 걸 수도 있다.서희수는 이엘리아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단호하게 내쳐낸 용기가 없었다. 마음 독하게 먹었다면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질질 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연도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는 못 잡는 거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이거니 당분간 헨리 씨한테 치료를 받는다면 좋아질 거예요.”“그렇게 괴롭혔는데 넌 이엘리아가 밉지도 않니?”“그럴 리가요. 제 동생이잖아요. 동생이랑 싸워서 좋을 게 없잖아요.”“너 같은 오빠가 있으니 정말 든든하구나. 내가 대신 고마워. 어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애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엘리아가 치료받으러 가면 어머니도 한적한 곳에서 푹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서희수는 흐뭇한 눈빛으로 연도진을 바라봤다.“그래. 너는? 언제 시연이를 데려올 거니? 걱정 마,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한번 보고 싶구나.”“시연이가 최근에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촬영장에 숨어있던 괴한 때문에 동료 한 명이 다쳤는데 그분은 시연이를 대신해서 물건 가지러 갔다가 습격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