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이미 태국에 도착해 있었던지라 공항에서 나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해일아, 이번은 확실히 누군가 뒤에서 꾸민 짓이 맞더구나. 내가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절이란 절은 다 가봤어. 그런데 이런 저주는 들어본 적 없다고 했어. 그런데 우연히 만난 동남아의 상인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내게 태국의 스님들이 이런 저주에 대해 안다고 하더라고. 구체적인 건 내일 만나서 직접 얘기를 해 봐야 알아.”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니 급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호텔에 도착하니 곧 해가 뜰 것 같았다.나는 핸드폰을 꺼내 숏폼을 보았다.마침 내가 구독하고 있던 뮤지션이 영상을 올렸다기에 얼른 클릭해 보았다. 올라온 영상은 진성균의 실체를 밝힌다는 내용이었다.그 뮤지션이 말하긴 진성균이 졸업한 대학교는 유명 음대가 아니라고 했다. 돈만 찔러주면 졸업장을 주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다.“제가 진성균 씨 해외 SNS 계정을 전부 보았거든요? 그런데 음악과 연관이 있는 사진이나 글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팔로우 목록도 전부 허구한 날 놀러만 다니는 재벌 2세만 골라 팔로우했더라고요. 그래서 전 진성균 씨가 자작곡이라고 공개한 세 곡 전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생각해요!”영상이 업로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상 아래엔 몇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그러게 제가 말했잖아요. 이상하다고요. 천재는 무슨! 그걸 믿은 사람이 바보죠!][전 진성균 씨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양아치였어요. 매일 담배 피우고 친구들 때리고 말이에요. 수능 때도 점수가 엄청 낮아 대학교도 못 갔죠. 음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연예계에 데뷔해 작곡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걸 보니 전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만 나오더라고요.]나는 즐겁게 댓글을 읽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노크 소리에 나는 그제야 날이 밝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버지는 흰색 옷을 입고 얼굴에 문신이 있는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남자는 눈을
“오늘 점심 12시에 네 신곡 공개가 될 거야.”“긴장하지 마. 네 이번 신곡은 올해 골든 뮤직 어워즈의 최고의 작곡상은 떼 놓은 당상일 테니까!”오민혁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금방 악몽에서 깨어났던지라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익숙한 거실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오민혁을 보니 나는 그제야 신곡 발표 당일로 회귀했음을 실감했다.“며칠 동안 밤샘 곡 작업하느라 수고했어. 다음 스케줄은 나중에 다시 정해줄 테니까 일단 푹 쉬어.”“잠깐만, 형!”나는 얼른 문 쪽으로 가고 있는 오민혁을 부르며 벽에 걸린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째깍째깍 크게 들려왔다. 분침이 10을 가리킬 때 나는 핸드폰을 열어 진성균의 SNS로 들어갔다.지난 생처럼 진성균은 음원 링크와 글귀를 SNS에 올렸다.[제 자작곡 ‘폐허 속의 햇빛' 음원이 공개되었으니 많이 들어주세요.]링크를 누르자 남자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거, 네 신곡이잖아!”오민혁은 바로 나에게로 다가와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멜로디랑 가사도 똑같아. 이건 네가 만든 곡인데 왜 진성균이 음원을 발표한 거냐고!”“설마 녹음실에서 누가 듣고 유출한 거 아니야? 기다려 봐, 내가 지금 바로 알아보라고 할게!”나는 얼른 그런 오민혁을 잡았다.“형, 일단 제가 신곡 발표한다는 것부터 회사에 연락해서 취소해줘요!”지난 생에 내가 진성균과 똑같은 곡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원치 않은 표절꾼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결백을 밝히기 위해 나는 음원 제작 과정을 전부 공개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표절했으면 표절한 거지 아직도 인정을 안 하네!”“하, 이젠 음원 제작 과정까지 조작해서 공개하는 거야? 정말 쓰레기네!”“표절 쟁이는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진성균 절대 지켜! 반드시 저 사람 집안도 망하게 해야 해!”나의 매니저 오민혁과 녹음실 담당자가 나와서 나의 결백을 증명해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네티즌들은 더
“소속사에서 이번 신곡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고. 네가 취소하라고 하면 취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위에다 설명하기 어렵단 말이야!”“이렇게 하자. 일단 내가 음원이 어디서 유출된 것인지 알아볼게. 그리고 넌 최대한 빨리 다른 곡을 써서 이번 신곡과 바꿀 수 있게 해줘.”오민혁이 나간 뒤 나는 혼자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진성균은 나의 톱배우 여자친구 이세리의 소꿉친구였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지금까지 친하게 지냈다.해외의 음대에서 졸업한 뒤 진성균은 이세리의 인맥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이세리 같은 톱배우가 소꿉친구이니 진성균은 바로 국내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소속사 유하 엔터와 계약하게 되었다.데뷔하자마자 해외 유명 감독의 영화 주제곡을 불렀다.이것들은 진짜 남자친구인 나조차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들이었다.이세리는 늘 그에게 잘해주었던지라 질투를 하고 삐지는 쪽은 항상 그였다.하지만 이세리는 진성균과 집안끼리도 서로 잘 아는 사이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그녀가 난처해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결국 그녀가 진성균을 도와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진성균이 그녀가 그토록 마음에 담아왔던 사람일 줄은 몰랐다.나는 부단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진성균의 SNS로 들어가 실마리라도 찾으려고 했다. 드디어 한 달 전 진성균이 올린 게시물에서 낌새를 발견했다.8월 26일에 진성균은 사진 한 장과 글귀를 올렸다.[아이디어가 샘 솟네.]나는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보았다.그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트엔 나와 똑같은 아이디어를 적어 놓았다.심지어 내가 지워버린 가사마저도 글씨 하나 틀린 것 없이 똑같았다.이 곡의 가사는 나의 이야기로 쓴 것이었으니 내가 다른 사람의 것을 표절할 가능성은 없었다.‘설마 진성균도 나와 같은 날에 그 지진을 겪은 건가?'‘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진성균과 이세리는 같은 지역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작은
오민혁의 말은 다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회귀 후 다시 생겼던 용기가 사그라들었다.‘왜, 왜 회귀해도 바꿀 수 없는 건데! 왜!'‘설마 나는 앞으로도 음악할 수 없는 건 아니지? 계속 진성균의 그림자 속에 살아야 하는 거야?'귀찮은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해 나는 이번에 자주 쓰는 핸드폰을 베란다에 놓아두었고 노트북을 열어 작곡도 하지 않았다.진성균은 어떻게 내가 금방 만든 곡을 알고 있는 것일까?SNS에 진성균이 자작곡이라며 올린 음원 덕분에 진성균의 이름은 사흘 내내 실시간 인기 검색에서 내려오지 못했다.각종 음원 사이트에도 전부 진성균의 음원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그의 인기는 비밀 결혼이 폭로된 톱스타조차도 묻히게 되었다.어떤 팬들은 그가 공개한 새로운 음원 아래 왜 갑자기 스타일이 변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며칠 전 공개한 음원을 누군가 표절을 했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그 소식을 일찍 접하고 미리 시간을 바꾸어 먼저 공개를 해서 넘어갈 수 있었죠.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힘든 상황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신곡도 사실은 제 노래를 표절한 사람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만든 거예요. 재능은 싱어송라이터의 무기에요. 그러니 당신은 아무리 표절을 해도 절대 저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힘이 잔뜩 실린 그의 선언에 모든 SNS와 플랫폼에 인기 영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누군가는 소속사가 전에 올린 신곡 트레일러 홍보 글에서 내 SNS 계정을 찾은 후 미친 듯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우리 성균 오빠가 말한 표절꾼이 너지? 신곡 낸다고 하지 않았나? 며칠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잠잠해. 신곡 어디 있냐?][하, 이런 주제에 싱어송라이터 한다고? 전에 발표한 곡도 전부 표절이지?]나는 살면서 아직 곡을 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곡을 내기도 전에 나는 표절꾼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네티즌들은 내 계정 아래로 수많은 댓글을 달았다.진성균은 이제 금방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어송라이터였다. 대부분은 연습생 때부터 그를
축하 파티에서 나온 나는 바로 오민혁을 찾으러 갔다.오민혁은 내가 은퇴하겠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다급하게 설득했다.“회사에서 널 이렇게 포기하진 않을 거야. 너 계약 기간 아직도 3년이나 남았어. 해일아, 정말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린 선택 맞아?”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자유롭게 하늘을 날겠다는 새를 내가 굳이 잡아둘 필요는 없지. 잡아둘 수도 없고. 그래도 언젠가 다시 너랑 음악 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네.”나는 오민혁이 내민 손을 잡으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며칠 후 소속사에서는 나와 계약 해지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곧이어 나도 바로 은퇴한다는 글을 올렸다.나를 욕하던 안티팬들은 박수를 치며 잘됐다며 기뻐했다.“우리 균이 오빠가 말한 표절꾼이 분명 이 사람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왜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겠냐고!”“축하 파티에서도 우리 균이 오빠를 엄청 무시했다고 하잖아. 그래놓고 지금은 꼬리 자르고 도망가겠다고? 참 웃기는 사람이네!”“자기 실력이 안 되는 거면서 누굴 시험해보려고 했잖아. 그런데 은퇴를 한다고 하는 걸 보니 균이 오빠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줬나 봐.”“그래, 이런 사태가 일어났으면 알아서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적어도 주제 파악은 한다는 거잖아.”이미 은퇴를 한 나는 네티즌이 무슨 말을 하든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짐을 정리해 공항에 갈 준비하고 있던 때 오민혁이 영상을 보냈다.진성균은 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가식적인 연기를 하고 있었다.“전부 오햅니다. 전에 제가 말한 표절꾼은 지해일 씨가 아닙니다. 지해일 선배님은 가요계에 없어서는 안 될 천재예요. 전 얼른 이 오해가 풀어지고 선배님이 다시 가요계로 돌아오길 바랍니다.”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숙이며 인사도 했다.“선배님,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겠습니다. 전에 제가 어떤 무례를 저질렀던 넓은 아
사흘 뒤, 나는 어머니랑 함께 여행을 떠났다.제일 먼저 이집트에 도착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구경했고 다음 행선지로 모로코로 떠나 흰색의 도시 카사블랑카로 갔다. 어느새 겨울이 되자 우리는 북유럽으로 오로라 구경하러 떠났다.밤하늘 가득한 별과 몽환적인 오로라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지만 더는 곡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어머니는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채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인생은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면 되는 게 아니란다. 가끔 뒤도 돌아보고 해야 해. 아들아, 이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 나랑 네 아빠는 영원히 널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줄 거란다.”4개월의 여행은 끝이 났다. 마음도 정리되어 나는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갔다.바쁜 하루에 궁둥이 붙일 새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하루하루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공급업체의 접대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 이세리가 나한테 연락했다.“지해일, 성질 그만 부리고 얼른 돌아와. 자꾸 나 화나게 하지 말라고. 정말로 널 연예계에 발도 못 들이게 할 수 있으니까! 그땐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해!”이세리는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청초한 겉모습과 달리 사실 돈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연예계에서 돈을 벌기는 아주 쉬웠기에 이세리는 인력을 뛰는 사람의 아들인 내가 절대 이런 성공하기만 하면 빛나는 인생을 포기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그제야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성균이가 이미 사과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고 용서해줘! 해일아, 나도 너 보고 싶어. 이제 그만 돌아와 줘.”“자기야, 자기는 내게 피아노 쳐주는 걸 좋아했잖아. 최근에 뭐 곡 작업한 거 없어? 나 들려주면 안 될까?”이세리의 너무도 다른 태도에 나는 이세리와 진성균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충동적으로 전화번호를 차단해 버렸다.복잡하고 시끄러운 연예계를 벗어나고 나니 일상은 아주 평화로웠다.나는 앞으로도
“형도 봤다시피 아버지께선 매일 쉬겠다는 말을 달고 사세요. 전 매일 눈만 뜨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라 눕기만 하면 바로 잠들 수 있죠. 저 이젠 곡을 못 써요. 그럴 체력도 없고요.”오민혁은 내 말에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떠보았다.“형, 솔직히 말해요. 혹시 누가 시켜서 온 거예요?”그는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며 결국 입을 열었다.“하, 그래.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허예지가 소속사랑 곧 계약이 끝나가거든. 그런데 허예지가 네가 만든 곡만 부르겠대. 누가 먼저 네가 만든 곡을 가져오면 바로 계약하겠다잖아. 이렇게 좋은 일을 듣고도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그래서 나더러 널 설득해 보라고 회사에서 시킨 거야.”그의 말에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허예지는 이세리와 아주 친한 사이였다.그녀는 늘 내가 톱배우인 이세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런 조건을 내걸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누군가 시켜 억지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해일아, 그냥 대충 한 곡 써주면 안 되겠냐. 빈손으로 돌아가기엔 조금 그래.”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생각한 후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다음 날에도 출근해야 했던지라 오민혁은 밤 비행기로 바로 돌아갔다.나는 일을 미뤄두고 굳게 닫아버린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잠깐 복잡한 생각을 지워버린 순간 머릿속 깊이 봉인되었던 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듯 떠올랐다.4시간 만에 나는 곡을 만들어냈다.샘플을 먼저 오민혁의 메일에 보낸 뒤 나는 자러 갔다.나는 일부러 샘플에 함정을 파놓았던지라 결과는 내일이면 알 수 있게 된다.다시 눈을 떴을 때 핸드폰을 보니 오민혁이 내게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를 보내왔다.[해일아, 네 신곡을 또 진성균이 공개했어!][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난 분명 네가 보내준 샘플을 회사에 보냈어. 그런데 진성균은 대체 언제 그걸 손에 넣고 녹음까지 해서 공개한 거지?]나는 얼른 SNS로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