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뒤에도 맹시현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그의 지인들이 장난치듯 말했다.“부회장, 누구 전화인데 그렇게 조심스러워? 우리 맹 부회장이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맹시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도영그룹.”그 말을 들은 지인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도영그룹에서 갑자기 왜? 여긴 S시잖아. 그쪽에서 우리한테 연락할 일이 뭐가 있다고.”맹시현은 차로 목을 축이고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강운그룹을 무너뜨릴 계획에 동참해 달라고 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그 말을 들은 지인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맹 부회장, 이건 기회야! 세력도 배경도 없는 회사 하나 무너뜨리면 도영이라는 큰 배에 탈 수 있는데! 그쪽 자금이 우리 S시로 들어오고 새 지사까지 설립한다는데 이만한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왕 사장 말이 맞아요. 형님, 그래서 도영그룹의 요구는 뭡니까?”“우리도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 나중에 도 회장 앞에서 얘기나 잘 해줘.”맹시현은 지인들을 바라보며 점차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 자네들 같은 든든한 아군이 잇는데 무서울 거 없지. 요구는 아주 간단해. 강운에서 최근에 공장을 하나 인수했는데 설비가 필요한가 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운에서 설비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야.”“내가 확인해 봤는데 강운에서 필요한 설비는 S시에 일곱 곳에서 판매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회사들을 찾아가서 강운그룹에 설비를 팔지 못하게 막는 거야.”그의 생각을 들은 지인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건 간단하지. 다 우리가 아는 회사들이니까 문제없을 거야.”잠시 후, 일곱 회사는 강운에 설비를 절대 팔지 말라는 상회의 공문을 받았다. 제한 기간은 3개월이었다.맹시현은 강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몇 달만 시간을 끌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납품 일자가 연기되어 알아서 와해될 것이라는 정황을 포착했다.한편, 강우연은 공장을 확보했다는 연락을 받고 설비 판매 회사 중 한 곳인 부영으
“자, 다 같이 한잔합시다!”그들이 흥에 겨워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강우연은 조형욱이 대표로 있는 헨리로 갔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입구를 지키던 경비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강우연은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조 대표님 좀 만나러 왔는데요. 생산 설비를 구매하려고요.”“우리 대표님? 예약은 하셨어요?”경비가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강우연이 말했다.“강운그룹 강우연 부장입니다.”“강우연 씨? 그냥 돌아가세요. 대표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나중에 다시 오세요.”경비 직원은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을 구기며 그녀의 어깨를 떠밀었다.뒤로 밀려난 강우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이 그대로 바닥에 부딪혀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났다.“부장님, 괜찮으세요?”비서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고는 분노한 눈빛으로 경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왜 사람을 밀치고 그러세요?”경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힐끗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그러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했잖아. 소란 피우지 말고 당장 꺼져!”비서가 이를 악물며 경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강우연은 그녀를 말렸다.“우영 씨, 난 괜찮으니까 다른 데로 가자.”그렇게 강우연은 비서와 함께 남은 다섯 공장을 찾아갔지만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며 받아주지 않았다.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그들을 비웃고 비난하기까지 했다.조바심이 난 비서는 발을 동동 굴렀다.“부장님, 이제 어떡할까요? 이 공장들 분명 서로 합의하고 우리만 안 만나주는 것 같아요.”강우연도 속이 타들어 갔다.오늘 설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도 생산을 가동할 수 없게 되고 납품 일자는 또 뒤로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되면 강문복은 모든 게 그녀가 무능한 탓이라며 비난할 게 분명했다.“일단 돌아가서 대책을 상의해 보자.”강우연이 말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회사로 돌아가 상황을 강문복에게 보고했다.소식을 들은 강문복은 크게 화를 내며 임
강우연은 한참을 울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물었다.“지훈 씨가 설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요?”한지훈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지훈 씨가 인맥이 풍부한 건 알지만 계속 도움만 받다가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면 어떡해요?”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한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 건 걱정하지 마. 다 친한 친구들이고 내가 부탁하는데 거절할 리 없어.”“하지만 S시에 설비를 가진 회사는 전부 우리한테 안 팔겠다고 선언했는데 무슨 수로 설비를 구해요?”강우연은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한지훈은 잠시 고민하고 말했다.“그럼 다른 지방에 가서 설비를 사 오면 되지. H시도 괜찮잖아. 내가 상황을 알아볼 테니 소식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한지훈은 그 길로 출발했다.강우연이 뒤에서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우아하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강우연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가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한편, 회사를 나선 한지훈은 곧장 고운그룹으로 직행했다.원 한정그룹을 개명한 고운그룹은 이제 완전히 한지훈의 소유가 되었다.안타깝게도 5년 전 사고로 그는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 남게 되었다.한지훈은 백 선생의 신분으로 원 한정그룹을 인수하고 부모님의 평생 피땀을 되찾았다.용일은 회사로 온다는 한지훈의 연락을 받고 곧장 고운그룹 임원들에게 사실을 알렸다.임원들 중 대부분은 한정그룹 때부터 함께한 직원들이었다.물론 새로 들어온 임원들도 있었다.“뭐라고요? 회장님이 방문하신다고요?”“백 선생 말씀하시는 건가요?”“소문에 아주 잘생긴 재력가라고 들었는데 얼굴이라도 봐야겠어요!”회사 직원들은 한지훈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술렁이기 시작했다.적지 않은 직원들은 회사의 새로운 주인이 된 백 선생의 얼굴을 보려고 회사 로비로 몰려들었다.며칠 사이에 백 선생이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문은
“회장님.”회사의 임원들은 일제히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구경하러 나온 여직원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세상에! 분위기가 너무 멋있잖아!”“저분이 회장님이라고? 가면을 쓴 신비주의라니!”“세상에! 내가 꿈꾸던 백마 탄 왕자님이야!”여직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잠시 후, 회사의 고위 임원들은 회의실에 모였다.상석으로 간 한지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긴장들 푸시고 자리에 앉으세요.”솔직히 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부모님이 평생을 바쳐 일군 회사가 드디어 그의 손에 돌아왔다.그리고 임원들 중에는 한지훈이 아는 얼굴도 보였다.예전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위해 일하던 부하직원들이었다.한지훈이 손짓하자 옆에서 대기하던 용일이 정중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오늘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 건 중요한 사안이 있어서입니다. 회사 명의로 H시에서 인테리어 자재 생산 설비를 구입할 예정인데 나눠드린 서류에 리스트가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오늘 안에 무조건 구매를 완료해야 할 설비들입니다. 돈은 문제가 아니니 다들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임원들은 다급히 서류를 펼치고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회장님,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설비는 아닌 것 같은데요.”“맞아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시려는 겁니까?”사람들의 의혹에도 한지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응대했다.“일단은 그렇게 진행하세요.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요. 최대한 빨리 설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내놓으세요.”말을 마친 한지훈은 회의실을 나가 회장 사무실로 갔다.회사를 인수한 직후, 그는 용일에게 부탁해서 사무실을 예전에 아버지가 있을 때와 똑같이 꾸몄다.전에 있었던 고전 명화와 화분들도 경매장에서 구매해서 원래 있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사무실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던 한지훈의 눈시울이
용일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신속히 동원 주군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전화를 받은 서효양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북양 총사령관께서 나한테 부탁을 했다고?”“네, 서 사령관님. 저희 사령관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용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잠시 침묵하던 서효양이 말했다.“좋아요. 북양 총사령관의 부탁인데 당연히 도와야지요.”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참모장을 호출했다.“당장 군공장이나 군부와 협력 계약을 맺은 회사에 연락해서 이 리스트에 있는 설비들을 천향 공장으로 보내라고 지시해! 오늘 안에 무조건 도착해야 해!”“북양 총사령관께서 그런 부탁을 하셨다고요?”참모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서효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니까? 높으신 분께서 여자 한 명을 위해 나한테 부탁을 다 하시다니. 재밌어! 지금 당장 움직이도록 해!”“네, 알겠습니다!”참모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지휘관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설비 구매 문제를 해결한 한지훈은 용일에게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이 사람들 어디 사는지 알아보고 나랑 같이 나가자.”말을 마친 한지훈은 그에게 리스트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다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이들은 예전 한정그룹에서 한지훈의 아버지를 위해 일했던 심복들이자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우들이었다.5년 전 사고로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룹이 무너지자 그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4대 가문에서 그들의 재취업을 방해했기에 한정그룹에서 고위 임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현재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그중 두 명의 이름 옆에는 특별한 기호로 체크해 두었다.그들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룹의 기밀을 팔아넘긴 배신자였다.이 둘이 아니었으면 아마 한정그럽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둘은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와 한정그룹에 칼을 겨누었다.한지훈은 이 원한을 한순간도 잊은 적
“맞아요. 도망자 신세인지 얼굴에 가면이나 쓰고 나타나서는!”“회사가 발전하려면 우리 방 부장님 말을 따라야죠!”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한지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한지훈을 본 방 부장이 싸늘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길 막지 말고 비켜.”방준우는 어딘가 낯이 익은 한지훈을 자세히 보더니 놀란 말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당신은… 한지훈?”한지훈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방준우를 바라보았다.예전 한정그룹에서 일반 사원에 지나지 않았던 방준우가 부장까지 승진했을 줄이야!조금 전 회의실에서는 존재감도 없던 인물이었다.과거 방준우는 능력이 출중한 직원은 아니었다. 그가 잘리지 않고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후계자였던 한지훈에게 열심히 아부한 결과였다.“오랜만이야.”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해 주었다.방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이런 우연이 있을 줄이야! 전대 회장님 아들을 여기서 만나다니! 참, 이제는 한정그룹이 아니라 고운그룹으로 개명했지? 당신도 이제 후계자가 아니고.”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용히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하지만 방준우는 그를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예전에 개처럼 한지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었다.그때는 그런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한정그룹이 무너지면서 그는 아부 신공으로 쾌속 승진하여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그래서인지 한지훈을 다시 만나자 알 수 없는 보복 욕구가 치밀었다.“잠깐, 이대로 간다고?”방준우는 자리를 떠나려는 한지훈의 어깨를 잡고 비웃음을 머금더니 동료들에게 그를 소개했다.“다들 초면이지? 이분이 바로 한때 유명했던 한정그룹 후계자였어. 전대 회장님의 아들이자 전임 이사님이셨지.”방준우의 부하직원들은 그 말을 듣자 다들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저 사람이 그 한지훈?”“세상에! 저 사람이 여긴 왜 왔대? 회사 주인이 바뀌었다니까 면접이라도 보러 왔나?”“자존심도 없는 사
강렬한 수치심이 방준우의 가슴에 차올랐다.그의 부하직원들은 다급히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고 한지훈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너 미쳤어? 감히 우리 방 부장님한테!”“백수 주제에 뭐가 그렇게 잘났어? 아직도 네가 재벌가 도련님인 줄 알아?”“당장 방 부장님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말을 마친 직원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당장이라도 한지훈에게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한지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너희 넷이서 내 몸에 상처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겁을 집어먹은 직원들은 연신 뒤로 뒷걸음질 쳤다.어떻게 사람 눈빛이 저렇게 매서울 수 있지?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방준우는 직원들을 밀치고 나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질렀다.“한지훈, 죽고 싶어? 여긴 이제 한정그룹이 아니라 고운그룹이라고! 너도 더 이상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야! 내 이놈을 그냥 확!”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연기를 방준우의 얼굴에 뱉으며 말했다.“이 회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그 말을 들은 방준우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저 자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지훈, 너 미쳤어? 망상증이라도 걸린 거야? 아직도 회사가 네 것 같아?”“잘 들어. 지금 이 회사는 우리 회장님께서 거금을 주고 인수하고 고운그룹이라고 이름을 바꿨다고!”“한정그룹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이 되었어. 그것도 아주 치욕스러운 역사로.”방준우의 부하직원들도 팔짱을 끼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한지훈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얘기를 하다가 생각난 건데 회사에 너희같이 밥이나 축내는 직원들이 너무 많네. 지금부터 방준우, 그리고 너희 네 명은 해고야.”그 말을 끝으로 주변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방준우 일행은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한지훈이 회장?어떻게 이런 일이!나머지 네 직원들도 경악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무명 백수로 전락했던 한지훈이 어떻게 또 회사의 주인이 된 거지?그렇다면 아까 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사람이 바로 한지훈?방준우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떠나는 한지훈의 뒤통수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회장님, 제발 해고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 집에 먹여 살려야 할 마누라와 자식이 있단 말입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해고 명령은 철회해 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바닥에 쿵쿵 머리를 찧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한 마디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떠나버렸다.“넌 언제든 회사를 배신할 놈이라 너 같은 놈을 남겨둘 이유가 없어.”용일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방준우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다 네가 자초한 거야. 오늘부터 너희는 해고야. 다른 회사에도 공문을 보낼 거니까 앞으로 최소 3년 안에는 재취직이 어려울 거다!”“아, 그리고 오늘 본 거, 들은 거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회장님 신분이 알려지면 너희를 찾아갈 거니까 알아서 해!”말을 마친 그는 재빨리 앞서가는 한지훈을 뒤쫓아갔다.잠시 후, 방준우 일행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한편, 한지훈은 차에서 리스트를 꼼꼼히 훑어보았다.그가 가장 먼저 만나볼 사람은 고일우였다.“아저씨는 잘 지내실까?”한지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고일우는 아버지의 가장 충실한 오른팔이자 친구였다.그는 한지훈이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어린 한지훈도 고일우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다.한정그룹이 무너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자존심 다 버리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이 고일우였다.하지만 혼자 힘으로 강력한 4대 가문의 음모를 막을 수는 없었다.나중에 그 일로 그는 자본 세력의 미움을 사 사업판을 떠나 작은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빨리 가자!”한지훈이 말했다.용일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서랑 거리
“한지훈! 당장 나오지 못할까! 진 씨 어르신께서는 국왕 폐하의 명을 받고…”중년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두 명의 천검종 제자는 별장 안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잠시 후, 한지훈이 걸어 나와 문 앞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세 사람을 살펴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성지를 내려놓고 돌아가십시오!”뭐라고?진 씨 어르신과 두 명의 중년 남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지훈이 이게 무슨 뜻인가?“한지훈, 나는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여기로…”“성지를 가져오십시오!”한지훈은 냉랭하게 손을 내밀며, 진 씨 어르신에게 말했다.“한지훈! 나는 흠차한 것이오!”진 씨 어르신이 겨우 한마디를 하자, 한지훈은 손을 휘둘러 진 씨 어르신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그리고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성지를 빨리 가져오지 못할까!”진 씨 어르신은 따귀를 맞고, 부르튼 얼굴을 감싸며 분노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노려보았다.한지훈은 이미 실권이 없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하지만 한지훈의 냉혹한 눈빛을 마주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록 불만이 가득했지만, 그는 결국 떨리는 손으로 국왕의 친필로 된 성지를 꺼내 한지훈에게 건넸다.그 순간, 강우연이 회사에서 막 귀가를 하며 차를 별장 앞에 세웠을 때, 한지훈이 진 씨 어르신의 얼굴에 따귀를 날리는 장면을 목격했다.진 씨 어르신을 한 번 보고, 강우연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여보, 왜 이렇게 화를 내요?”한지훈은 성지를 받아서 품에 넣은 뒤, 진 씨 어르신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라!”그 후, 그는 강우연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진 씨 어르신과 두 명의 중년 남자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그들이 생각했던 환대와 풍성한 만찬은 모두 꿈에 불과했다! “한지훈!”진 씨 어르신은 이를 갈며 한지훈의 등을 노려보았다.하지만, 용국 전체에서 누가 감히 한지훈을 건드릴 수 있겠는
바로 그때, 문밖에서 천검종의 한 제자가 서둘러 한씨 가문 별장으로 뛰어 들어왔다.“한지훈 선생님, 밖에 한 노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용경에서 오셨다고 하시며, 선생님께서 직접 나가 맞이하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만약 늦으시면... 늦으시면... ”“늦으면 어쩐다는 거냐?”한지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오늘은 대체 뭐 하는 날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런 얼간이들만 계속 만나게 되다니!왜 다들 그를 직접 맞이하라고 하는 건지.“죄를 물으시겠답니다!”죄를 묻겠다고?한지훈은 콧방귀를 뀌며 냉소를 흘렸고, 천검종 제자에게 차갑게 말했다.“그렇다면 기다리라고 하는 수밖에!”천검종의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한편, 밖에서는 진 씨 어르신이 성지를 높이 들고 서 있었고, 중년 남자 몇 명은 뒷짐을 진 채 한씨 가문 별장 입구에 서 있었다. 한지훈이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진 씨 어르신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뒤에 있던 두 중년 남자들에게 말했다.“내가 뭐랬더냐? 한지훈 따위가 이제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다고? 이 몸이 국왕의 성지를 들고 와서 무릎을 꿇게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봐준 것이거늘!”뒤의 중년 남자 두 명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한지훈은 이제 북양왕이란 명함만 걸친 상태이고, 북양의 군권은 모두 유청이 쥐고 있지 않습니까!”“어르신께서 직접 찾아와 맞이하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위신을 세워주신 겁니다!”두 사람의 아첨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을 지키던 천검종 제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20분이 넘었지만 한지훈은커녕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아니, 이 한지훈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거지?”그중 한 중년 남자가 시계를 힐끗 보며 짜증스럽게 물었다.“아마도 진 씨 어르신을 맞이하기 위해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아니면 레드 카펫이라도 깔고 있는 것 아닐까요?!”두 중년 남자는 서로 말을
그러자 임천덕은 히죽거리며 말했다.“허허, 장 도련님,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제가 연락을 드린 건 아주 좋은 일이 있어서입니다.”아주 좋은 일이라고?!장월동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임천덕이 어떤 사람인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임천덕 같은 자가 자신을 찾아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한낱 소규모 문파의 문주일뿐인데, 돈도 없고, 체면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들의 장씨 가문 위세를 따라올 수는 없을 터였다.“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지. 임 문주가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을 찾으셨을까. 하지만 한 가지 미리 말해두자면, 내가 만족하지 못할 시 다음 약값은…하하…”장월동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물론입니다!”임천덕은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장 도련님, 혹시 한지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한지훈?장월동은 그 이름을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그 북양왕을 말하는 건가? 지금은 그냥 초라한 평민 아니야? 그 놈이 뭐 대단하다고.“장월동의 말을 들은 엄천덕은 웃으며 대답했다. “한지훈이 지금 천성에서는 아주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많은 상업계 거물들이 그를 우러러보며 눈치를 보지요!”“천성이라... 흥,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장월동은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장 도련님, 제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얼마 전, 도련님께서 주머니 사정이 좀 빠듯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뭘 할 줄 아는지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임천덕은 아첨 섞인 말투로 그를 떠보며 말했고, 장월동의 눈동자가 몇 번 굴러갔다. 그래, 임천덕 이놈의 변장술 하나는 기가 막히지 않았던가, 만약 내 얼굴을…이 생각을 하자마자 장월동은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임 문주, 그 말은 내가 한지훈으로 변장해 상인들에게 돈을 뜯으라는 거야?”“그뿐이겠습니까! 그들의 재산까지 모조리 내놓게 만들어야죠. 누구 하나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도청전인으로 변장해 놈들을 철저히 응징할 겁니다!
노 씨 어르신은 임천덕을 힐끗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방법이란 말이냐?”“어르신께서 혹시 조룡 묘지를 수호하는 천산 장씨 가문을 알고 계십니까?”임천덕은 악랄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조룡 묘지를 지키는 가문이라니?!천산 장씨 가문은 무종 내에서도 대단한 고수라 할 순 없었다.심지어 수백 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삼성 천왕 이상의 고수를 배출한 적도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어디를 가든 무종은 물론, 심지어 조정에서도 장씨 가문에 예를 갖췄다.조룡 묘지를 수호한다는 것은 곧 용국의 기운을 지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며, 덕분에 용국은 5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번영을 이어올 수 있었다.따라서 장씨 가문의 공적은 용국 전체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설마 장씨 가문과 연이 있다는 말이냐?”노 씨 어르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 자신이 무맹의 장로임에도, 장씨 가문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물론입니다. 다만, 장씨 가문의 현손과 연이 있을 뿐이고, 올해 스물셋이나 넷쯤 되었을 겁니다. 여색을 무척 밝히는 자이기에, 종종 저를 찾아와 약을 부탁하곤 합니다. 그래서 조금 친분이 생겼죠.”“이자를 이용해 한지훈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겁니다. 설사 한지훈이 라이언 킹 찰리의 손에 죽지 않더라도, 국법으로 죽게 만들 수 있습니다!”임천덕은 음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법으로 죽인다고?용국의 법 중에는 한지훈을 처벌할 법 조항이 없었고,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며 국가를 위해 싸운 북양왕을 누가 함부로 모함할 수 있단 말인가?이전의 낙 씨 어르신도 결국 국왕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한지훈을 모함하는 것은 조금 위험이 따를 듯한데…”노 씨 어르신은 여전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어르신, 만약 한지훈이 협박과 강탈을 일삼으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용국 안에서 누가 감히 그를 용서하겠습니까?”임천덕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하… 하
“짝!”한지훈의 손이 번개처럼 임천덕의 뺨을 강타했다.임천덕은 그 자리에서 바닥을 뒹굴며 마당으로 나가떨어졌고, 그의 광대뼈까지 함몰되었다.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임천덕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들어와라!”한지훈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호통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태도로 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이때가 돼서야 도청전인은 사태의 전말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는 한지훈의 손에 들린 약환 세 알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한지훈의 의도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천덕은 손으로 함몰된 얼굴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기어 다시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한지훈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말해라. 이 약은 대체 무슨 약이지? 그리고 네 몸에 해독제는 있는 거냐?!”한지훈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이 약은 ‘백일단장단’이라 불리는 약입니다. 이걸 먹으면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아무리 경지가 높은 강자라도 창자가 썩어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임천덕은 말을 하며 몰래 한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한지훈의 살기가 서린 시선을 마주친 순간, 그는 몸을 움츠리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그러더니 서둘러 몸에서 파란색 작은 병을 꺼내 들고는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하, 한지훈 선생님! 이… 이게 해독제입니다!”한지훈이 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왔고, 확실히 해독제임이 틀림없었다. 한지훈은 다시 임천덕에게 차갑게 물었다.“이 약을 더 가지고 있나?”임천덕은 고개를 들어 한지훈의 손끝을 보았고,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백일단장단이었다.임천덕은 서둘러 남은 다섯 알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 약은 총 여덟 알뿐입니다. 이것은 제 스승님께서 임종 전에 물려주신 것입니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 약을 조제할 줄 모릅니다!”한지훈은 약환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천덕은 품에서 검붉은 약환 세 알을 꺼내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약은 현재 다섯 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 알이면 한지훈 선생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예를 갖추며 약환 세 알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은 약환 한 알을 집어 들고 코밑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고, 순간 지독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면, 그 향기가 반드시 은은하게 퍼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이처럼 비린내가 나는 약은 독약임이 분명했다.초보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알아챌 수 있는 이런 속임수는 한지훈 앞에서 더더욱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오호, 약이 꽤 좋아 보이는군요.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백생단입니까?”한지훈은 약환을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척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임천덕은 순간 당황했다. 이건 명백한 만성 독약인데, 백생단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귀의문의 역대 종사들은 독약을 연구하는 데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전혀 열의가 없었다.한지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천덕은 대답을 망설이다 결국 떠듬거리며 말했다.“그, 그것이... 이 약을 복용하면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살이 돋아나며, 오장을 보양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어서 백생단이라 부릅니다!”“임 문주, 이렇게 좋은 약이라면 문주께서도 하나 드셔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한지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약환을 들고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아, 아뇨!”임천덕은 두 손을 흔들며 급히 말했다.“이 약은 너무나 귀해서 제가 먹으면 낭비일 뿐입니다! 필요한 분께 써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갑자기 임천덕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임천덕, 정말 내가 의술에 대해 모를 줄 알았나? 이 약의 냄새가 이토록 비릿한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성이 섞인 것이지?”“아, 아뇨! 한지훈 선생님, 오해십니다! 저희
한지훈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에이, 사람이 이렇게 선의로 다가오는데, 우리가 너무 차갑게 대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임 문주?”임천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진료하겠습니다!”그는 한지훈의 맞은편에 앉아 손을 뻗어 맥을 짚기 시작했다.약 오 분 정도 지나, 임천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제 진단에 따르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상처가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장육부에 손상이 갔습니다. 만약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한지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오? 제 상처가 그렇게 심각합니까? 얼마나 심한 상태란 말이죠? 치료를 미루면 어떻게 됩니까?”“그게... 치료를 미루면 오장이 손상되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임천덕은 신중한 척하며 답했다.하지만 그의 말은 전부 허풍이었고, 그는 한지훈이 의술에 무지하리라 믿고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지 못했다.한지훈 앞에서 그의 의술은 고사하고 황약사조차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말이다! 천생서문에는 만 가지 학문이 담겨 있었으며, 의술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게다가 한지훈은 본래 의술에 관심이 많아, 용국군에서도 ‘신의’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다.천생서문의 여러 학문 중에서도 한지훈이 가장 정통한 분야는 바로 의학이었다.“아이고, 이렇게 위험할 줄이야! 임 문주께서 제때 와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무지한 채로 있을 뻔했군요. 오늘 아침만 해도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한지훈이 이런 말을 하자, 도청전인은 다급해지며 황급히 손을 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런 자의 말만 믿어선 안 됩니다. 비록 제가 부족하지만, 의학에 조금 식견이 있으니, 제가 직접 진맥을 해보겠습니다!”하지만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선생님, 저희
문에 들어서자마자, 임천덕은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제자의 뺨을 연달아 갈기고는 한지훈의 발치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아직도 뭐 하고 있느냐! 어서 한지훈 선생님께 무릎 꿇고 사죄드려라!”그러자 한지훈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됐습니다. 저도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니,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십시오.”“어서 한지훈 선생님의 너그러운 은혜에 감사드려라!”임천덕이 제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한지훈 선생님의 관대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두 제자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물러났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임천덕은 한지훈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평소 문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제자들이 감히 한지훈 선생님을 모독하는 불경을 저질렀습니다!”“괜찮습니다, 임 문주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한지훈은 손을 휘저으며 미소를 띠고 물었다.임천덕은 도청전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잠시 머뭇거렸고, 다시 한지훈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사실 요 몇 년간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다름 아닌 한지훈 선생님이십니다!”“무엇보다 한지훈 선생님께서 친히 파용군을 이끄시어 오국 연합군을 격파한 그 업적은, 용국의 국경을 수호하신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위대한 공로입니다!”한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이 늙은이는 말만 열었다 하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군, 이런 자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법!“며칠 전, 제가 강중 지역을 지나던 중 라이언 킹 찰리가 한지훈 선생님께 도전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얼마 전, 한지훈 선생님께서 청봉문에서 부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제가 알기로 이 찰리라는 자는 내력이 대단하며, 아시란치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래서 한지훈 선생님의 상태를 염려하여 이렇게 진료를 도와드리려 온 것입니다. 제 의술은 변변찮습니다만, 그래도 귀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지훈 선생님께 조금이
한지훈은 그들을 다시 볼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며, 천검종의 두 제자에게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쫓아내라. 나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말을 마친 그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임천덕의 두 제자는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돌아와 임천덕에게 울며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노 씨 어르신은 반쯤 감긴 눈으로 둘을 훑어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쓸모없는 놈들! 이런 네놈들의 태도에 한지훈이 어찌 고분고분 따를 거란 말이냐!"노 씨 어르신이 화를 내자 임천덕이 앞으로 나와 다급히 말했다. “노 씨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제가 직접 가서 반드시 한지훈이 고분고분 따르게 만들겠습니다!”그렇게 말하며 그는 두 제자를 흘겨보고 소리쳤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당장 따라와라!”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임천덕의 뒤를 따라 한지훈의 별장 앞에 다시 도착했다.별장 입구에 있던 천검종의 제자 두 명은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자 눈썹을 치켜세우며 칼자루를 움켜쥐고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아까 준 교훈이 부족했나 보군!”“아뇨, 아닙니다! 두 분은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저는 임덕천이라고 하고, 특별히 한지훈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임천덕은 상냥하고 공손한 태도로 두 천검종 제자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못하는 법.게다가 임천덕은 어쨌든 귀의문 문주로서 나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검종 제자들도 함부로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의 두 제자와는 다르게 임천덕은 상황 판단이 빨랐으며 처음부터 태도에서 격식과 진지함이 느껴졌다.“너희 둘, 당장 이리 와라!”임천덕이 뒤에 있던 두 제자를 향해 소리치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얼굴로 다가갔다. “두 분께 사과드려라!”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며 임천덕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하지만 그들이 주저하는 사이, 임천덕이 그들의 뺨을 갈겼다. “귀가 먹었느냐?!”임천덕이 또다시 호통을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