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은 한 마디였지만 거대한 위압감이 느껴졌다.한지훈은 눈썹을 꿈틀하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중년 사내를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누구지?”갑자기 나타난 중년 사내는 그에게 무거운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상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기운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어쩌면 지금 상대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강력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한지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6성까지 도달했는데 상대가 나타난 순간에 그는 자신은 절대 맞은편 사내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그만큼 강한 적이었다.중년 사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원천걸, 원씨 가문의 현임 가주다!”‘원씨 가문의 가주라고?’한지훈은 인상을 찡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원천걸을 노려보았다.“가주님! 저 놈을 죽여버려요! 저놈이 우리의 장로님들을 살해했어요!”“가주님! 장로님들 너무 고통스럽게 돌아가셨어요! 이게 다 저 건방진 자식 때문이에요!”“반드시 죽여야 합니다!”원천걸 등 뒤의 원씨 가문 인원들은 목에서 피가 나도록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가주가 등장하자 그들은 이제 전혀 두렵지 않았다.원천걸은 여유만만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는 한지훈을 노려보며 물었다.“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아니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한지훈은 용검을 꽉 잡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원 가주, 내가 죽인 사람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들의 복수를 끝까지 하겠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죠. 가주님의 목도 치는 수밖에요!”“하!”원천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해일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기운을 방출하기 시작했다.그 기운은 마치 용암처럼 원천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천용산 전체를 감쌌다.한순간은 자신이 맨몸으로 바다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정말 강력한 상대였다.“고작 6성 따위가 지금 나 원천걸의 목을 베겠다고 했나? 북양왕, 내가 오랜 세월 폐관수련을 해서 외부 사정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지만
한지훈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반보천왕은 너무나 강했고, 이건 전투력에 따른 레벨 차이가 아닌 실력의 차이였다!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반보천왕 강자는 이미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육성 정상의 강자라도 반보천왕 강자 앞에서는 개미와 같은 존재가 되며 손만 들어도 멸망할 수 있었다!!!한지훈은 숨을 들이마신 뒤 용검을 손에 꽉 쥐었다. 원 씨 가문의 가주인 원천걸이 사실은 반보천왕의 무적의 강자였다니!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 원천걸은 비웃으며 한지훈을 바라보았다."한지훈, 자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육성을 돌파한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이런 인재가 다른 사람 손에 있는 체스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러니, 우리 원 씨 가문으로 와서 내 수양아들이 되게나. 나와 같이 천자각으로 가서 그 노망난 국왕을 바꿔버린 뒤 이 강산을 공유하자고, 어떤가?"원천걸의 말은 그의 야망을 완전히 드러냈다. 그는 정권을 바꾸고 싶어 했다!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고, 냉소하며 말했다. "원 씨 가주님, 정말 야심이 많으시군요. 국왕이 노하여 원 씨 가문을 멸망시킬까 두렵지 않은 겁니까?!"그러자 원천걸은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국왕이 우리 원 씨 가문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진작에 손을 썼겠지, 왜 지금까지 기다리겠나?! 설마 아직도 자네는 국왕이 우리 원 씨 가문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그자는 평범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이고,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전혀 없다! 용국은 야심을 품고 관리를 할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나 원천걸이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지! 자네가 나를 도와주고 일이 성사되면, 자네에게 대원수 자리를 주지! 모든 용국은 자네와 나의 것이 될걸세!"이 말을 들은 한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손에 쥔 용검을 들고 원천걸에게 겨누며 소리쳤다."원천걸! 당신은 하극상을 벌이고 국가에 반항하려 하니, 오늘 내가 이 용검으로 당신을 베어버리겠습니다!"그 순간, 용검에 영혼
내가 당신을 죽이고, 원씨 가문을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이 말이 천둥소리처럼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천용산을 휘감으며 원씨 가문 산장 안을 맴돌았다.포악무도하며 자신감이 가득한 그의 모습에 원천걸도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검은 가운을 입은 이 남자는 그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못과 같았다. 원천걸의 전력은 이미 반보천왕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갑자기 나타난 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의 실력을 아직 간파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원천걸이 침묵하고 감히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 직후 원천걸은 비웃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화를 냈다."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검은 가운의 남자는 냉소하며 대답했다."협박이라고 생각해도 되겠군.""건방지게! 여긴 원씨 가문이다! 원씨 가문의 가주로서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협박받을 수 있단 말이지?! 게다가 감히 우리 원씨 가문을 멸망시킨다는 망언을 하다니! 죽고 싶은 건가?!"원천걸은 화가 나서 순식간에 손을 올려 검은 가운의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내리치려 했다.마치 바다와도 같은 압도적인 힘으로 검은 가운의 남자를 향해 주먹이 돌진했고, 반보천왕의 주먹은 눈앞의 모든 걸 파괴하기에 충분했다!한지훈조차도 원천걸의 공격에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그는 이 주먹을 자신이 맞으면 죽거나 중상을 입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만큼 매우 강했고, 이것이 반보천왕의 전력이었다.한지훈의 눈에는 광적인 동경과 투지가 솟아올랐다!눈앞의 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는 한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듯 침착하게 말했다."반보천왕일 뿐, 대단할 거 없다! 이 세상에서 천왕에 이르지 못하면 영원히 개미 같은 존재일 뿐이지! 그러니 이제 반보천왕과 천왕 사이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 것인지 알려주마!"말을 마친 검은 가운의 남자는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더니, 직접 원천걸의 주먹을 맞았다. 이 광경을 본 한지훈과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
원천걸은 조급해졌다. 자신은 이미 반보천왕의 경지에 올랐는데, 눈앞에 있는 이 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를 건드릴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내가 말했지, 천왕 아래는 모두 개미 새끼에 불과하다고! 설령 네가 반보천왕의 실력에 도달했다고 해도,진정한 천왕 강자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검은 가운의 남자는 담담하게 말을 한 뒤, 다른 손을 들었다. "쉬익!"이때, 한지훈이 손에 쥐고 있던 용검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튀어나와 한 줄기 광음을 만들어내더니 금빛 검기를 뿜어내며 원천걸의 한쪽 팔을 그대로 잘라냈다!!!그 순간, 원천걸의 피가 허공을 휩쓸었고 그의 한쪽 팔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구른 뒤 땅으로 떨어졌다. 이 장면을 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원천걸이 상대방의 공격에 팔 하나가 잘려 나가다니!!더욱 무서운 것은 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는 마치 허공에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용검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이 마법 같은 장면은 모두의 세계관을 무너뜨렸다!천왕 강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그의 위력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퍽!다음 순간, 원천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발을 들어 원천걸을 걷어차자, 원천걸이 수십 미터나 날아가 뒤에 있던 거대한 돌기둥에 부딪쳐 쓰러졌다!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돌기둥이 부서져 무너졌고, 원천걸도 피투성이가 된 채 땅에 굴러떨어졌다!그는 잘려나간 피 묻은 팔을 감싼 채 땅에서 일어나려고 애썼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멀리서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검은 가운의 남자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천왕이란 말인가?!"검은 가운을 입은 남자는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원천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그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원씨 가주가 아직도 막을 텐가?"……현장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원천걸의 얼굴은 창백
반나절 후, 한지훈은 천자각으로 돌아와 용검을 돌려준 뒤 천자각 9층에서 국왕을 만났다.국왕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말했다. "원씨 가문을 물리친 걸 축하하네."한지훈은 살짝 몸을 굽히며 대답했다. "모든 것이 국왕 폐하의 덕택입니다.""하하하!"국왕은 큰 소리로 웃으며 한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자네는 또 언제 이런 능글맞게 아첨하는 걸 배운 건가?"한지훈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국왕과 마주 앉았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국왕 폐하, 원씨 가문의 가주인 원천걸이 반보천왕의 실력에 도달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이 말을 들은 국왕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대답했다."알고 있다."그의 대답에 한지훈도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국왕 폐하께서는 원천걸이 반보천왕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서 원천걸이 저를 원씨 가문으로 끌어들일까 걱정되지 않으신 겁니까?"그러자 국왕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한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감히 그럴 수 없지요."그러자 국왕은 일어서서 창틀로 걸어가 용경 전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지훈, 원씨 가문 가주는 필연코 움직이게 되어 있고, 이번이 바로 기회이다. 짐은 널 믿었기에 제지하지 않은 거지. 게다가 짐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도 마련되어 있다. 만약 일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짐은 당연히 최선을 다해 널 보호할 거다."한지훈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 뒤 국왕의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국왕 폐하, 만약 원씨 가문이 나라에 반역한다면 국왕 폐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이 말을 들은 국왕은 뒤를 돌아 한지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한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한 표정으로 국왕에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국왕 폐하의 마음속에 원씨 가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누 사람의 눈이 마
용린의 얼굴은 창백했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괜찮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그러자 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약을 조제해 줄 테니 일단 푹 쉬고 있어라.""고맙습니다, 용왕님."네 사람이 웃으며 대답했고, 한지훈은 지체하지 않고 돌아서서 병원을 떠났다. 문 앞에 군용차 한 대가 멈춰 섰고, 장군 한 명이 차량에서 내려 한지훈에게 경례했다."북양왕님, 국왕 폐하께서 전달하라고 하신 물건입니다. 원씨 가문에서 부인을 치료하기 위해 보내온 해독제라고 합니다."한지훈은 장군에게서 파란 약제를 받아 몇 번 살펴보고는 손에 쥐여 주며 장군에게 말했다."국왕 폐하께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해 드리도록 해."그 후 한지훈은 돌아서 군용 차량을 타고 곧바로 용경 군용 비행장으로 향했고, 비행기를 타고 용일과 함께 오군으로 돌아갔다.사대 용존은 요양을 위해 잠시 용경에 머물렀고, 용이부터 용팔까지는 계속해서 북양구 전역에 남았다. 오군으로 돌아온 한지훈은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가 강우연에게 해독제를 먹였다.약 30분 정도 기다리자, 강우연은 천천히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눈을 뜨고 한지훈의 친숙한 얼굴을 보자 곧바로 한지훈을 껴안고 울며 소리쳤다."여보,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 줄 알았어요……"한지훈은 침대 옆에 앉아 강우연을 안은 채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한참이 지나고, 강우연은 정신을 차린 뒤 병원 침대에 앉더니 말을 꺼냈다."참, 여보. 누군가 날 창고로 끌고 가서 기절시켰었잖아요. 그런데 그때 난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무서워서 기절한 척 한 거란 말이죠. 그때 그 납치범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말이 있는데……""뭐라고 했는데?"한지훈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사과를 깎고 있었다.결국 원문준은 그에 의해 살해되었고 원씨 가문의 다섯 장로도 용검에 죽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지훈은 껍질을 벗긴 사과를 강우연에게 건넸고, 강우연은
한편, 용일도 재빨리 북양구 전역의 정보부에 연락해 명령했다."즉시 적염왕과 적염 군단 및 용염 번호 부대의 존재를 조사하라! 모든 보고는 나에게 직접 보고되어야 한다!"전화를 끊은 후 용일은 재빨리 다시 용각으로 전화를 걸었다."여긴 북양의 용일입니다, 용각 장로님에게 전달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한지훈은 직접 전화를 받아 차갑게 말했다. "진 원로님, 적염왕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야겠습니다!""적염왕? 왜 갑자기 그를 조사할 생각을 한 거지? 그 자는 죽지 않았나?"신한국은 현재 용각의 회의실에 앉아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그러자 한지훈은 직설적으로 대답했다."아직 잘 모릅니다! 저는 적염왕이 죽지 않았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듭니다! 방금 우연이가 저에게 화재 현장에서 그녀를 쓰러뜨린 사람이 전화를 걸어 번호 용염이라는 단어를 말했다고 했습니다!""번호, 용염이라고?! 확실해?!"이 단어를 들은 신한국도 화들짝 놀라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색하고 말했다."좋다! 한지훈, 일단은 조급해하지 말거라. 난 즉시 용각의 정 요원들을 동원해서 적염왕의 과거를 낱낱이 파헤치마!"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고, 신한국은 다른 세 명의 장로를 바라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장로님들, 큰일 났네!""무슨 일이오,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건가?"팽진국이 묻자, 신한국이 나머지 장로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방금 전 한지훈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화재 현장에서 강우연을 쓰러뜨린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 번호 용염이라는 네 글자를 말했다고 하네!"두둥!이 말에 세 장로들도 넋을 잃고 말았다."번호, 용염이라고?!!"이 순간 팽진국의 얼굴이 얼어붙으며,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이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는 적염왕이 한지훈의 손에 죽는 걸 두 눈으로 봤어! 그 당시에는 용 선생도 있었다고!"팽진국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그들은 번호 용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그것
용지 안에는 늙은 노인처럼 구부정한 모습의 적염왕이 있었고, 커튼 너머로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알겠다, 이만 물러나도록.""예!"검은 옷의 남자는 재빨리 지하실을 떠났다.그리고 이때, 용지 가장자리에 서 있던 그림자가 몸을 돌려 옷을 벗고 있는 적염왕에게 물었다."적염왕 님, 이제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용각이 적염왕 님이 죽지 않은 사실을 알았으니, 아마 국왕과 한지훈도 알게 되었을 겁니다."적염왕은 큼직한 흰 가운을 걸치고, 시원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앉았다.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한 병을 집어 들고 잔에 따른 뒤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어차피 다 알게 될 일이었다, 다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이를 뿐이지만.""한성, 이제 네가 나서야 할 때다. 용염 사사를 파견해 반드시 한지훈의 아내와 딸을 잡아와야 할 거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한지훈과 대항할 수 있는 카드다! 그리고, 4대 가문과 연락해서 나 적염왕이 그들과 협력하고 싶어한다고 전하도록.""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한성은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떠났다.적염왕은 소파에 앉아 흐릿한 눈망울로 다시 말을 꺼냈다."국왕, 한지훈, 이번 판에는 내가 직접 나서주지."...같은 시각, 한지훈은 용각으로부터 긴급 밀보를 전해 받았다."사령관님, 용각에서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적염왕의 무덤에는 빈 관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적염왕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용일의 안색이 굳어졌다. 한지훈은 뒷짐을 진 채 병원 입구에 서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더니, 살의가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적염왕, 그 자가 죽지 않았으니 내가 다시 한번 더 죽여줄 테다!""용일, 지금 당장 인력을 동원해 병원 주변 지역을 보호하도록 해! 적염왕 그 늙은 여우는 지금 우리가 그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는 반드시 내 주변 사람들을 건드릴 거야."한지훈은 재빨리 조치를 취했다."예! 지금 바로 준비
동방 오우가 손을 휘두르자, 백일봉 전체가 진동하며 땅에서는 우르릉거리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수많은 바위들이 이 거대한 흔들림에 의해 절벽에서 굴러떨어졌고, 이 장면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동방 오우를 바라보았다. 백일봉은 용경 서쪽에 위치한 진령 산맥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산봉우리 중 하나였다.그러나 이곳은 진령 산맥 전체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백일봉의 진동과 함께 북방의 대지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고, 마치 하늘의 재앙이 곧 닥쳐올 것만 같았다.“이... 이것이 천지를 흔든다는 것인가? 나는 이런 존재가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천왕계 강자가 정말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좌항도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망원경을 들고 멀리 내다보며, 진령 산맥 전체가 진동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 방금 전의 구름과 안개는 단순한 환영일 수 있었지만, 천 리에 걸친 진령 산맥이 모두 흔들리는 것은 결코 환각일 수 없었다.“그래, 이제야 믿어지는군. 천왕계가 정말 이렇게 두려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니! 이제 보니 우리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진우는 쓰라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는 이전까지 천왕계를 기벽 같은 자연의 일부 힘을 다루는 경지로만 이해했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천왕계를 얼마나 미미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아마 동방 오우는 이미 삼성 천왕계에 있을 때부터 자신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명산에 이르지 않으면 자신의 미미함을 알지 못하고, 명산에 들어가 고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나약함을 알지 못한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명산의 제자들과 비교하자면, 자신은 마치 연줄을 이용해 억지로 따낸 자격증 같은 존재였다.이것이 삼성 천왕계의 차이라면, 오성 천왕계는 어떻겠는가?그렇다면 천신계는 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아무도 몇몇 명산에 단 한 명의 천왕계 강자만 있을 것이라 장담하지 못했고, 아무도 천왕계가 명산의 진정한 내력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
지금이 한여름임에도, 주변의 모든 풍경은 마치 늦가을처럼 변해 있었다.이 기술은 단순히 신묘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야말로 귀신이 빚어낸 솜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어떠나, 한지훈! 너와 나는 동갑이지만,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미 이러한 신적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발끝조차 따라올 수 없지 않느냐?”“네가 말해보아라. 내가 이렇게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느냔 말이지!”동방 오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극도의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의 시선은 천하를 굽어보는 듯했고, 발아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미미한 벌레에 불과한 듯 보였다.적어도 겉보기에는 동방 오우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존재임이 분명해 보였고, 그는 사계절을 통제하고 천기를 움직이는 손길을 가진 사람이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껏 아무도 그의 진정한 실력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심지어 흑병대조차 그의 실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가 오성 용급 천왕계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다.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비로소 동방 오우가 왜 그렇게 오만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그는 진정으로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그리고 또 하나 알려주지! 내가 너와 싸우려는 이유는 결코 동방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사대 가문을 위해서도 아니지!”이 말에 동방소와 원상용 등은 깜짝 놀라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특히 동방소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동방 오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동방 오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동방소와 원상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나는 화산 진종의 직계 제자로, 사대 가문 따위가 함부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내 눈에, 동방 가문은 물론이고 사대 가문 또한 하찮게 보일 뿐! 내가 너와 싸우려는 이유는 단 하나, 나 동방 오우가 너의 피로 내 검을 제사 지내기 위해서다!”“오늘부로, 나 동방 오우가 용국의 최고 존재가 될
한지훈의 말이 끝나자, 그는 한 걸음 내디뎌 몸을 순식간에 공중으로 띄워 백일봉의 꼭대기에 올랐다.동방 오우도 백장산 벼랑을 올려다보며 경멸적인 미소를 지었고, 곧 천천히 몸을 날려 정상으로 올라갔다. 한지훈과 달리, 동방 오우는 거의 바람에 날려 올라간 듯 천천히 떠오르며, 마치 신선과 같은 자태를 보였다.이 놀라운 장면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지 않은가!“말도 안 돼! 저건......마치 바람에 밀려 올라간 것 같잖아?”“바람에 밀려간 게 아니라, 저건 날아간 거지!”“후, 역시 동방 오우가 한 수 위로군!”사람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며 수군거렸고, 이들의 말소리를 들은 동방 오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지훈, 죽기 전에 이 찬란한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도록 해라. 이것이 네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다. 너 같은 놈은 정말 말할 가치도 없다!”“하지만, 네놈도 거의 백 년 동안 젊은 세대들 중 뛰어난 인물인 건 인정하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뒤흔들고 군림할 정도의 위세를 가졌으니, 널 죽이는 것은 내 명예를 깎는 일도 아닐 테야.”동방 오우는 한 손을 뒤로 한 채 깔보는 듯한 태도로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진법을 더해 수십 리 밖까지 전달되게 했고, 그의 목소리는 산 아래뿐 아니라, 용경 전체에 울려 퍼졌다.용각과 무종의 여러 장로들은 이 소리를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몇몇 종묘의 장로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탁자를 두드리고 말했다. “동방 오우, 저 오만한 놈! 자신이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아는군! 만약 계속해서 이렇게 오만하게 굴었다간, 우리가 합심해서라도 그를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이 시각, 백일봉 꼭대기에 서 있던 한지훈은 평온한 시선으로 동방 오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자신감이 대단한 듯하군.”동방 오우는 오만하게 한지훈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기세를 순식간에 사성 천급 천왕계까지 끌어올렸다!주변
“한용 아닌가!”“한용이라고?!”“정말 한용인가?!”모든 시선이 한용에게 쏠렸고, 대다수의 눈빛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몇십 년 전, 용경에서는 한용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런데 지금, 비록 나이가 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한용이 살아 있는 모습으로, 그것도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로 나타났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하하! 오늘 사람들이 잘 모였군그래!”한지훈은 우천존과 사신 쪽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한용!”우천존은 불꽃이 튀는 듯한 눈빛으로 한용을 노려보았다.“우천존, 흥분하지 마시오. 오늘은 두 후배의 비무를 관전하기 위해 온 자리 아니겠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나설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기라도 한다면,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 않겠소.”궁본 현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분명히 살기가 스며 있었다!“쳇...”동방소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올 줄 몰랐다는 듯, 불안한 눈길로 우천존 일행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우천존과 사신의 안색도 매우 어두웠다. 궁본 현일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그는 한용의 편에 서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기에, 2 대 2의 상황에서 그들은 승산이 없었다.동방 오우가 당당히 일어서더니, 차갑게 맞은편을 응시했다.한지훈 측의 위세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는 자신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산에서 자라며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다.그가 맞아서 부러진 회초리만 해도 백 개가 넘었고, 오늘 한지훈은 반드시 그의 발 아래 밟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는 동방 가문을 위해서, 더욱이 사대 가문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신의 앞날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그의 몸에서 분노와 위엄이 뒤섞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 순간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어 이곳 하늘을 뒤덮었다. 한지훈은 느릿느릿 백일봉의 공터로 걸어 나와, 동방 오우를 조용히
“저 사람은 누구길래 저렇게 성대하게 나타나는 거요?!”좌항도는 아래쪽에 있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말했고, 심지어 공중에는 헬리콥터까지 따라다니며 경호를 맡고 있었다.경호원만 해도 백 명이 넘는 듯했으며, 산 정상으로 향하는 모습은 꽤 위압적이었다.“러셀로란 가문의 2순위 후계자이니, 저자는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오. 오륙 최대 암흑 조직의 수장이자, 그의 손아귀 안에는 몇 개의 다국적 기업도 있소!”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좌항도에게 설명했다.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차량 행렬이 천천히 멈췄고, 차에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백인 남자가 나왔다. 그를 본 순간, 진우는 미간을 찌푸려지며 말했다.“저 사람은 왜 온 거지?!”“저 사람은…”좌항도도 중년 남자를 힐끗 보았다. “세계 최대 킬러 조직인 암전의 창립자이자 수장인 빅터가 아니오! 저 사람은 정말 전설적인 인물이오. 열 살에 몇 차례나 탈옥에 성공했고, 열다섯 살에는 천왕계 강자의 고수를 쓰러뜨렸소. 지금은 몇 안 되는 삼성 천왕계 경지의 암살자이기도 하오!”“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큰 킬러 조직의 창립자이기도 하지요!”말을 마친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동방 가문의 인맥이 이렇게나 넓었다니!그때, 산을 걸어 올라오는 두 사람이 주변 강자들의 시선을 모두 끌었고 심지어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우천존! 사신!”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화려하게 등장해도 이는 허울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강자는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이 등장만으로 엄청난 분위기를 내뿜었다! 우천존과 시신은 길을 따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마치 산책을 나온 듯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백일봉 근처에 다다랐을 때 우천존은 좌항도 일행 쪽을 한 번 바라봤고, 그 눈빛에는 잠시 후 상대방을 모조리 저세상으로 보내줄 거라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통복 차림의 부상 사람 무리도 산
진우는 자신의 신분이 특별하지만 않았다면, 진작에 동방 소를 처단할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어르신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그럼 저는 이만!”말을 마치자마자 진우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별장을 떠났다. 저 멀리 떠나가는 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동방 오우의 얼굴에는 하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와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니,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네! 한지훈 이놈... 흥!”악에 받친 동방 소는 진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중얼거렸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매우 싸늘했다. 그날 밤, 이미 백일봉 부근에 도착하여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용경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역사적인 대전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계홍 또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는 강중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도착하였다. 족히 20여 명은 되는 나 씨 집안 친지들은 오직 한지훈을 응원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나 씨 집안은 오늘날까지 줄곧 한마음 한뜻으로 한 씨 집안과 협력을 해왔기에, 그들은 이번 대전에 반드시 한지훈이 이기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도청 전인 또한, 한 씨 별장을 지켜야 하는 임무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그들과 함께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한편 천검종 역시 제자 수십 명과 함께 백일봉에 도착하여 벌써 아지트까지 만들었다. 낙구영 또한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긴 했지만, 일단 이번에는 백일봉으로 오게 됐다. 하지만 그는 한지훈을 응원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려 온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그동안 추앙해 온 용국 천교의 위엄 가득한 풍채를 보고 싶었다. 그 시각 용경에서는, 이른 아침에 위수군 무리를 데리고 백일봉에 도착한 좌항도는 역시나 아지트를 만들고는 조용히 앉아서 대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진우 일행도 선후로 도착하였고, 양 씨 어르신과 양령아의 좌항도의 초대를 받고는 관전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백일봉 주변에는 어느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물들이
“국왕이 내린 명령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용경성 내에서 대군이 이동한 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고 계시겠죠!”“그래서 말인데 가능만 하다면 내일 일전은 취소했으면 합니다. 제가 어르신께 충고를 하나 하자면, 굳이 동방 가문과 국왕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지 마시죠!”진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동방 소는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혹시 진 선생은 한지훈을 대신해서 사정하러 여기까지 온 건가?”“그런데 정작 한지훈이 우리 동방 자제를 죽일 때는, 왜 진 선생이 나서서 사정하지 않았지? 동방 자제가 백골이 되어 돌아왔는데, 내가 대체 왜 한지훈에게 살 길을 남겨줘야지?”“이제 와서야 우리 동방 가문까지 찾아와서 부탁하는 건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담을 수는 없어. 그러니 진 선생은 이미 돌아가게!”어느새 동방 소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더 이상 진우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국왕은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4대 가문을 압박하고 있었기에, 동방 가문은 결코 한지훈의 일에 관해서는 누구와도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한지훈을 죽이기만 하면, 국왕은 신심을 잃게 되고 앞으로 4대 가문과의 관계가 다시 재정리될 거라 믿었다. 하물며 황약파 또한 한편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한지훈만 죽이게 되면 국왕은 4대 가문에 무조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넓은 시야를 보는 것에 능통한 동방 소가 진작에 이런 이치를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어르신, 고작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우천존 게다가 광명파와 손잡는 것을 마다하지도 않고, 저희 용국의 군신을 말살하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만약 한지훈이 정말 죽게 되면 동방 가문이 여전히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지훈
동그랗게 뜬 창안백의 눈동자에서는 두 줄기의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선생님, 방금 말씀하신 무도에는 국경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저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이내 동방 오우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산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광명파와 비밀리에 무엇을 의논하고 있는지 동방 오우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여태 그는 줄곧 동양 가문과 자신의 미래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화산에서 자라온 동방 오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 부모에 대한 감정조차도 극히 옅었다. “자고로 세계에는 양극이 있어. 바로 서방의 교황청과 동방의 곤윤이지. 우리 명산들도 그리고 무종들도 결국 모두 이 양극에 복종해야 하는 거야!”“만약 서방이 협의를 체결하여 천신계의 강자가 세속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곤윤도 압박에 못 이겨 결국 협의를 체결할 거야. 때가 되면 드디어 난 세속에 들어서서 내 진가를 발휘할 수가 있지.”“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출세야. 내 나라? 흥!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는 나라든 뭐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이 세상은 언제나 강자들이 움직이게 되는 거야!” “그러나 선견 지명이 확실한 사람만이 이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지. 그래서 내가 너더러 하산하고 한지훈을 유인하여 죽이라고 한 거야! 그의 손에 있는 용심과 천생 서문, 우리 화산이 반드시 얻어야 되거든!”창안백은 그윽한 눈빛으로 입구 쪽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주먹을 꽉 쥐었다. 이는 또한 화산이 그에게 직접 맡긴 사명 중 하나였기에, 만약 명령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결하여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동방 오우든 동방 소든 누구든지 마찬가지였다. 비록 동방 가문은 줄곧 화산을 자신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화산의 눈에 그들은 세상에 널린 수많은 바둑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 바둑 돌은 일단 효력을 잃게 되면 결국 모래알이 되는 것이다. “그럼 음양존은...”동방 오우는 여전히
한편 그 시각, 동방 가문의 별장에서는 동방소와 동방 오우의 두 사람이 한 노인의 양 측에 서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맞은편에는, 우천존과 기모노를 입은 또 다른 중년 남자가 한 명 앉아있었다.그가 바로 사신이었다. 그는 부상국에서, 궁본 현일에 버금가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게다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천신계를 돌파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없는 높이에 이르기도 했다. “우천존, 우리 둘 사이의 약속, 혹은 화산과 광명파 사이의 약속을 이제는 지켜야겠지?”이내 가운데에 앉은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인은 바로 화산과 세속 사이를 지키는 장로로서, 화산과 세속의 모든 사무 결책권을 쥐고 있었다. 화산과 광명파 사이에 암암리에 체결된 계약 역시 바로 이 노인이 주도하는 것이다. “어르신, 저희 광명파가 화산을 도울 거라는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하지만 여기 남은 반쪽의 흑룡심을 얻어내려면 여전히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게다가 저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피라미드에는 인왕급 강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하는데, 과연 화산이 정말 무사히 용심을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우천존은 미소를 띤 얼굴로, 남은 반쪽 용심의 행방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럼 한지훈 그 몸에 있는 두 개의 용심을, 대체 어떻게 나눌 생각인 건가?” 창안백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저희 광명파는 금룡심만 있으면 됩니다! 적룡심은 얼마든지 화산한테 넘겨줄 수 있습니다! 다만, 천생 서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저희가 서로 공유를 해야 합니다!”“어르신도 아시다시피 천생 서문 없이는, 설령 용심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쓸모도 없고 스스로 융합의 방법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우천존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동방 오우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천존 님 그리고 창 씨 어르신, 제가 듣기로는 무적천도 한창 흑룡심을 융합시키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럼 차라리 그의 손에 있는 그 용심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