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야... 너 왜..."와인을 뒤집어쓴 강우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가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드디어 화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었다."왜겠어. 다 네가 나보다 잘나고 예쁜 탓이지. 너 때문에 우리는 늘 조연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 어느 누가 그런 삶을 원하겠어?"한윤아가 잔뜩 표정을 찡그리며 강우연을 노려보았다."지금 네 꼴을 봐. 넌 그냥 천박한 걸레일 뿐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만약 네가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오늘은 봐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거부한다면 이 자리에서 네년을 망가뜨려 주겠어.""윤아 말이 맞아. 얼른 무릎 꿇고 우리에게 사과해.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부모님께 혼날 일도 없었을 거야."별 볼 일 없는 외모에 뚱뚱한 여자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강우연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너만 아니었으면 난 진작 우리 학교 킹카와 사귈 수 있었어!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너를 쫓아다니지만 않았어도... 생각할수록 열받네. 강우연, 당장 사과하지 않고 뭐해!"수수한 외모의 여자도 벌떡 일어서며 강우연에게 손가락질했다.강우연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진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몹시 두렵고 억울했던 그녀는 당장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한윤아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윽고 머리채마저 잡힌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한윤아가 사납게 소리 질렀다."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망한 집안 자식을 데려와. 네 눈엔 내가 호구로 보이지? 얘들아, 뭐해. 얼른 이년의 버릇을 고쳐주지 않고. 스스로 무릎 꿇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마."여자들이 사나운 기세로 강우연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이들은 강우연의 머리채를 잡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방 안은 마
한윤아가 차갑게 비웃었다."왜긴, 그냥 네가 강우연이라서 그래. 뭐해, 계속해."쾅!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믿을 수 없게도 방문은 거대한 위력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남자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붉게 핏발선 두 눈과 꽉 쥔 주먹에서 무지막지한 살기가 느껴졌다. 강우연을 모질게 괴롭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본 한지훈이 포악하게 고함을 질렀다."네놈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다."날렵하게 강우연 곁으로 다가간 한지훈의 발길질 한 번에 뚱뚱한 여자가 테이블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테이블이 두 조각나며 깨진 술병에서 온갖 술이 줄줄 흘러내렸다.땅에 고꾸라진 뚱뚱한 여자의 등에 날카로운 조각들이 박혔다. 살이 찢어지며 그녀의 등은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여자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아악! 내 등!"이윽고 한지훈은 강우연 곁에 서 있던 다른 여자의 뺨을 매섭게 내려쳤다. 뒤로 몇 미터나 날아간 그녀는 무서운 굉음과 함께 TV에 부딪혔다. 거대한 TV가 산산이 조각났다.이가 가득 부러진 여자는 몸이 바닥에 닿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우연아!"한지훈은 비틀거리는 강우연을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잔뜩 상처받은 강우연은 초라한 몰골로 한지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나 너무 지쳤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알았어. 집에 가자. 그렇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지훈이 싸늘한 시선으로 한윤아 무리를 훑었다.그는 먼저 강우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차 안으로 옮겼다. 뒷좌석에 누워 벌벌 떨고 있는 강우연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한지훈이 이내 야차 같은 얼굴로 온몸에 살의를 두른 채 파티룸으로 쳐들어갔다.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한기가 호텔을 순식간에 덮쳤다.호텔 내부에는 이미 한윤아의 명령을 받은 열몇 명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 호텔은 한윤아네 집안 소유였다."당
다른 사람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한지훈을 바라보며 한윤아 일행은 헛숨을 들이켰다. 마치 끔찍한 괴물을 마주한 듯 허옇게 질린 사람들이 허둥지둥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다... 당신, 가까이 오지 마! 여긴 우리 호텔이야. 감히 이곳에서 내게 손끝 하나라도 댔다간 우리 아빠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강우연 그년이나 강씨 집안도 마찬가지야!"현재 한윤아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한윤아는 사실 전형적인 부잣집 아가씨였다. 손에 쥔 권력을 한껏 누리며 모든 이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비뚤어진 성정에 자존심도 강했고 딱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가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그녀의 콧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그녀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그 옆에 뚱뚱한 여자는 S시 음지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최인호의 딸, 최지혜였다. 그녀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그녀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오지 마! 이미 우리 아빠한테 연락했어!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빠가 누군지는 알고? 우리 아빠는 최인호란 말이야! 사업장도 열몇 개나 소유하고 있고, 거느리는 부하만 해도 오백이 넘는다고. 하나같이 싸움깨나 하는 사람들이야." "감히 날 건드린다면 우리 아빠가 가만있지 않을걸? 당신 사지를 부러뜨리고 산채로 껍질을 벗겨 강물에 던져버릴 거라고!"최지혜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평소 차를 마시며 명품 얘기나 하고, 심심하면 백화점에서 쇼핑이나 하던 그녀들이었다. 한지훈처럼 전혀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남은 사람들도 절박하게 외쳤다."맞아, 함부로 건드렸다간 두 집안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강우연도 마찬가지야.""듣기로는 딸도 있다면서? 딸 생각도 해야지. 우리가 사람을 사주해서 당신 딸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려고? 그땐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그들의 협박을 잠자코 들어주던 한지훈의 낯빛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의
최인호는 기침 소리 한 번에 한 구역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는 부하는 수백 명이 넘었고 또한 수많은 유흥업소와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재산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손짓으로 신호를 보낸 최인호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검은 파도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친 백 명의 사내들이 곧장 한지훈이 있는 파티룸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최지혜는 이미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피를 왈칵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숨을 붙인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돼지처럼 퉁퉁 부어오른 얼굴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탁탁탁, 일사불란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누가 감히 내 딸을 건드렸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 나 최인호가 어지간히도 얕보였나 봐."노기가 다분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 사나운 기세에 호텔 건물마저 휘청거리는 듯싶었다.목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등장했다. 이윽고 칼이나 각목처럼 살벌한 무기를 챙겨 든 몇십 명의 부하들이 우르르 파티룸에 들어섰다. 남은 이들은 물 샐 틈 없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을 기세였다."아빠... 왜 이제 왔어! 나 좀 살려줘. 흑흑..."바닥에 쓰러진 최지혜가 끔찍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드디어 그녀의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잔인하게 얻어터진 딸아이의 몰골을 본 최인호는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가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한지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 이놈! 감히 내 딸에게 손을 대! 당장 저놈의 손모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고 뭐해!"최인호가 몹시도 애지중지하는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주님처럼 키우느라 자신도 손찌검 한번 하지 않았건만, 겁대가리를 상실한 녀석이 딸아이를 이 꼴로 만들어 놓았으니 최인호가 분노를 터뜨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는 당장이라도 한지훈을 죽여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열 몇 명의 부하들이 칼을 휘두르며 한지훈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한지훈이
정도현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최인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정 회장님이 이 자식이랑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제 딸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다치게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이 놈을 죽여버릴 거예요! 정 회장님이 아니라 대통령 아버지가 와도 날 막을 수는 없어요!"최인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정도현을 쏘아보며 선전포고했다.그 역시 어둠의 세계에서는 정도현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자였다.어둠의 세계에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정도현을 제외하고도 비등한 실력을 가진 네 명의 2인자가 존재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최인호였다.인맥이나 자산으로 정도현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들은 정도현보다 더 잔인무도한 자들이었다!그리고 호시탐탐 정도현의 정점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기도 했다.하지만 순식간에 그들 모두를 경악하게 한 장면이 펼쳐졌다.정도현은 최인호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뒤돌아서 공손한 태도로 한지훈에게 허리를 숙였다."한 선생님!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시지요!"말을 마친 정도현은 한지훈이 허리 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 펴지 않을 것처럼 허리를 90도로 꺾었다.그 광경을 본 최인호는 경악한 얼굴로 두 눈을 부릅떴다. 이 땅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던 그 정도현이, S시 조폭 세계의 수장이라는 인물이 지금 젊은 청년 앞에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라니!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최인호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한지훈이 싸늘한 말투로 정도현에게 물었다."그래서 해결할 수 있겠어?"정도현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아무도 한 선생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겁니다!"사실 정도현도 자신이 오지 않아도 한지훈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이 자리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한승을 통해 한지훈의 신분을 일부 엿본 결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S시 경찰청 송 청장과 소 시장마저 그의 앞에서는 벌벌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아지트는 영업정지를 당하고 밑에 있는 애들은 전부 잡혀갔다니!‘이… 이럴 수는 없어!’최인호는 부하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당황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그의 연락을 받아주지 않았다.최인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그는 이 상황이 두렵고 당황스러웠다.최인호는 퍼렇게 질린 얼굴로 정도현에게 물었다."당신이 송호문 시켜서 우리 애들 다 잡아가게 했어?"정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최인호, 내가 경찰청장까지 동원할 실력은 못돼. 다 한 선생님 작품이지."그 말을 들은 최인호는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술을 음미하는 한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에는 한윤아와 수연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벌을 서고 있었다.처음 보는 이 상황에 그녀들은 두렵기만 했다.최인호의 등장만 해도 간담이 서늘한데 조폭 세게의 수장인 정도현까지 등장하다니! 게다가 정도현은 이 한지훈이라는 남자에게 강아지처럼 딸랑딸랑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그걸 두 눈으로 확인한 그녀들은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너… 도대체 누구야?"드디어 궁금증을 참지 못한 최인호가 물었다.겉모습은 분명 평범한 청년인데 이렇게 거대한 조직을 움직일 줄이야! 정도현이 그를 위해 달려온 것도 모자라, 송호문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점점 두려움이 몰려왔다.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내가 누군지 알 자격이 없어. 지금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죽거나, 살거나. 스스로 선택해."그 말을 들은 최인호는 가슴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 솟구쳤다.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정도현을 노려보았다. ‘설마 이거 정도현이 꾸민 연극 아니야? 일부러 이상한 놈 데려와서 나 엿 먹이려고!’이런 생각이 들자 최인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 어린 놈의 새끼가 잘나 봤자 얼마나 잘났겠어? 감히 나 최인호에게 거만을 떨어? 아가야, 꿈 깨! 애들아, 우린 죽어도 싸우다가
최인호는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평생 노력해서 쌓아 올린 것들이 오늘 통째로 붕괴될 것 같았다.눈앞의 남자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시 경찰청 청장까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그 대쪽 같던 송호문이 한지훈 앞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는 모습은 가히 충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이면 경찰 청장이 이렇게까지 할까!바닥에 무릎을 꿇은 최인호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다.고개를 돌린 송호문은 싸늘한 시선으로 최인호를 바라보며 호통쳤다."최인호! 더 하고 싶은 말 있어?"고개를 든 최인호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개처럼 네발로 허둥지둥 한지훈 앞에 기어가서 애원했다."한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제가 눈이 멀어서 거인을 못 알아봤습니다! 이번 한 번만 봐주시면 앞으로 평생 선생님의 노예로 살겠습니다!"그는 미친 사람처럼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마가 바닥에 부딪혀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최인호의 부하들도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한윤아 일행의 충격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최지혜는 손으로 하늘도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든든한 아버지가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한지훈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그 순간 그녀가 알던 세상이 무너졌다. 항상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든든하고 믿음직한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난 순간이었다.한지훈은 도대체 누구지? 어째서 그에게 이토록 무시무시한 힘이 있단 말인가!조폭 세계의 수장인 정도현도 부족해서 경찰청 청장까지 그의 앞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는 모습이라니!소문에 전해지던 가문에서 파면 당한 무능한 인간이 맞나 싶었다."한지훈 씨,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우리 아버지와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사람 볼 줄 몰라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강우연한테도 사과할게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한윤아가 시켜서 한 거예요. 한윤아가 강우
한정일 부녀는 연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감사합니다, 한 선생님! 내일 제가 딸아이를 데리고 직접 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나머지 인원들도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한지훈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한지훈이 떠난 뒤, 최인호는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든 게 끝이 났다.정도현은 한평생 막강한 부와 권력을 쌓아 올린 최인호가 하루아침에 망한 꼴을 보고 탄식하듯 말했다."최인호,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걸 망친 거야! 이게 자네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송호문이 경찰대원들에게 손짓했다."끌고 가!"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S시 전체를 뒤흔들었다.하룻밤 사이에 전인그룹 전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회장 최인호와 딸 최지혜는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산하의 오락시설과 각종 산업들은 정도현에게 흡수 당했다. 그리고 최인호의 세력들도 전부 정도현의 밑으로 흡수되었다.정도현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또 한번의 급부상을 이루어내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그와 동시에 강운그룹 강준상과 강문복 일가는 한창 인상을 쓰며 강우연을 훈계하고 있었다."강우연! 너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그랜드 호텔 일가한테 밉보이면 우리 가문까지 피해를 보는 거 알아, 몰라?"강문복은 회사 부회장으로써 근엄한 얼굴로 강우연을 꾸짖었다.강우연은 화장으로 어제 입은 상처를 덮었지만 안색이 굉장히 안 좋았다."최인호가 지역다툼으로 경찰에 끌려갔으니 망정이지! 최인호 딸을 잘못 건드린 대가로 우리 가문이 멸망할 수도 있었어!"설해연도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열심히 해댔다.오늘 아침, 그들은 어젯밤 강우연이 한윤아, 최지혜 등 일행과 갈등을 겪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그랜드 호텔 사장의 딸 한윤아, 그랜드 호텔은 전국에 수십 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호텔 기업으로 강운그룹에 비교해도 전혀 실력이 밀리지 않았다.게다가 강운그룹은 그랜드 호텔 측과 많은 제휴계약을 체결한 상태로 주요 대상 고객 중 하나였다. 그들
만약 이 없었더라면 한용은 지난 20년간, 무적천과 어깨를 겨누며 4성 천급 천신의 경지까지 쉽게 오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모색하고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적천과는 달리, 한 씨 집안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백전백승의 체계를 보유하게 됐다. 능력이 진화하는 속도든, 각종 역량에 대한 장악 정도든 그들은 그 어느 하나 무적천에 뒤쳐지는 게 없었다. “너...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어!”눈치 빠른 허연생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차갑게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난 오늘 반드시 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곧이어 한지훈은 쏜살같이 앞으로 한걸음 뛰어나와 한 주먹으로 허연생의 급소를 쳤다. 허연생은 비록 한지훈에 비해 얻은 깨달음도 적고 게다가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한 세대를 장악했던 강자였기에 역시나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한지훈의 주먹을 보아낸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도리여 한지훈의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 순간 한 줄기의 강한 바람과 기운이 한지훈의 급소를 공격하게 됐다. 분명 같은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허연생이 뻗은 이 주먹은 비록 보기에는 그렇게 큰 기세는 아니었지만 힘이 매우 강했다. 그는 모든 힘을 한 주먹에 집중하여 최대한 기운을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역공격에 당황한 한지훈은 더욱 정신을 다잡고는 급히 주먹을 휘두르며 방어하였다. “팍!”그렇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게 되었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 충돌 소리는 매우 컸다. 두 강자가 뿜어낸 엄청난 기운에, 마당에 있던 바위마저도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죽어!”허연생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그러자 푸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독기가 그의
‘허연생? 이 사람은 이미 30년 전에 무종에서 물러난 사람 아니야?’ 사실 허연생에게는 휘황찬란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종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 개 종문의 장교 문주들을 무너뜨리고는 무신종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였다. 당시 무적천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바로 허연생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2성 현급 천왕계 밖에 다다르지 못한 무적천과는 달리, 허연생은 당시 이미 4성 천급 천왕에 다다르게 됐다. 그러나 허연생은 무적천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중상까지 입어 하마터면 무신종에서 참사할 뻔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무적천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더라면, 허연생은 진작에 그곳에 무덤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무적천에게 패한 후로부터 허연생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줄곧 무종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동안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살하여 죽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취를 감췄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예상치 못한 허연생의 출현은 한지훈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그는 허연생을 꺼리는 것보다도, 낙 선생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 답답했다. 그동안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춰온 사람을 이렇게 손쉽게 드러내는 낙 선생의 절대적인 힘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한지훈의 모습에 허연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청년. 내 명성을 듣게 된 이상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릎 꿇어!”“한지훈, 어서 비켜.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강만용은 급히 앞으로 나가 한지훈을 타일렀다. 그 또한 허연생의 명성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허연생은 그야말로 모든 경계를 막론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강로 님은 그동안 용국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각로라는 칭호에 절대 부
순간 어안이 벙벙 해난 집행 대원은 떨어진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손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아악! 내 손!”이내 집행 대원이 손을 뻗어 상처를 부여잡자, 피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장문로도 깜짝 놀랐다. “나야!”바로 그때, 한지훈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손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풀어주면 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한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장문로는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한지훈이 더 이상 북양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장문로는 얼굴에 흉악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 역시나 너희 사이에 뭔가 결탁이 있긴 하나 보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강중까지 찾아가서 사람 잡을 일은 덜게 됐네!”“여봐라, 당장 한지훈을 치워내!” 곧이어 10여 명의 집법 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총구를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겨누었다. 필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양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한지훈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십여 자루의 권총을 마주하고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크흠!”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복을 입은 한 노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지훈, 낙 선생은 진작에 네가 이렇게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훑어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또한 그 노인을 훑어보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삼성 천왕계의 고수였다. 보아하니 낙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벼른 듯했다. “난 바로 낙 선생의 명령을 받들고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좀 거칠어질 수도 있거든.” 삼성 지급 천왕계는 역시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큰 손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고는 절대 울지를 않았다. “장문로! 당시 넌 용국의 여자 아이를 추행했잖아. 그때 그 아이, 겨우 16살이었어. 하지만 넌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능욕했었지!”“용국의 전관으로서 그런 짓을 벌이면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런데 만약 그 당시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들 불공평할 거라고 생각할게 뻔하잖아?”강만용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그러자 장문로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아이를 다른 한 집법 대원에게로 밀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친 중산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만용, 너 지금 혹시 나를 질투하는 거야?”“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현명하신 낙 선생이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난 지금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잖아. 반면 너는 비참한 미래를 앞두고 있고!”“너희들 정말 한통속이었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럽게 벌 받게 될 거야!”잔뜩 화가 난 강만용은 씩씩대며 눈을 부릅 떴지만, 장문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당장 네 죄나 인정하라고!”이내 장문로는 이미 완벽하게 작성된 진술서 한 장을 강만용에게 던졌다. 위에 적힌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그들 용각 삼로가 한지훈과 함께 군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 진술서를 확인한 강만용은 크게 웃었다. “왕년에 천 평이 넘는 땅을 국가에 순순히 바친 나인데, 내가 굳이 이 몇 조원의 군비를 횡령할 이유가 있을까?” “아휴...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네. 이렇게나 간사한 놈이 용권의 정권을 잡게 놔두시다니. 정말 보는 눈도 없으시네!” 강만용이 진술서를 찢으려 하자 장문로는 바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어 단칼에 남자아이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용, 너 잘 생각해. 내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는 더 이상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얼핏 봐도 방금 전,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지훈! 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강만용은 한지훈과 용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금치 못하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용경에서 온 한 무리의 문관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무고하게 산채로 맞아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강만용은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신한국의 아들인 신국호 또한 몽둥이로 수차례 얻어맞아 두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야말로 두 집안이 하룻밤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누구예요! 대체 누굽니까? 어느 개자식이 감히 이렇게 잔인한 수를...”잔인하게 놈들의 수단에, 용운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휴, 됐어. 아마도 이 늙은이가 그동안 사는 동안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이 날 벌하려나보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는데 일단 방에 가서 앉아있어!”신한국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한지훈과 용운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로님, 국왕께서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랍니까? 낙 선생은 대체 또 어떤 구실로 강로 님의 가족을 건들게 된 건가요?”한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강만용은 결국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물려받은 천 평 넘는 가택이 있는데, 낙 선생은 내가 군비를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국왕이 직접 장문로까지 파견하여 조사하게 한 거고.”“조사요?”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찬 용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조사라는 거지? 사람이 죽게 됐잖아!’ “용운아!”한지훈이 낮은 소리로 호통을 치자 용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놈들은 어젯밤, 강로 님을 끌고 가기라도 했나요?”한지훈
“뭐라고?”그 소식을 들은 한지훈은 순간 대경실색하였다. 강만용과 신한국 두 사람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낙 선생이 굳이 그 둘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는 급급히 말했다.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인데?”“바로 어제저녁, 낙 선생이 파견한 사람들은 이미 두 각로의 거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저의 부하들이 찾아와서 보고한 데에 따르면 두 각로의 아들들 역시 모두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한 상황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두 각로님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저희 쪽에서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한참을 깊이 생각하던 한지훈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거듭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갈게!”사실 신룡전은 충분히 강만용과 신한국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낙선생에게 약점을 잡혀 다시 국왕 앞에 불려갈 가봐 신경이 쓰였다. “용왕 님, 차라리 제가 사람들을 먼저 보낼까요?”용운은 내심 걱정이 됐다. “괜찮아. 나 곧 출발할 거니까 바로 헬리콥터를 안배시켜!”한지훈은 말을 마치자 전화를 끊었다. “여보, 이렇게나 많이 다쳤는데 당분간은 외출하지 마요. 아무리 그래도 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야죠...”약재 한 그릇을 든 채 마침 마당으로 나온 강우연은 한지훈을 걱정하며 말했다. 그녀는 한지훈과 용운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잘 듣지는 못했지만 헬리콥터를 보낸다는 얘기는 듣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상처가 낫지 않은 한지훈을,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었다. “아니. 듣자 하니 두 각로가 큰 일을 당한 것 같아. 오양 각로께서 이미 나를 구하려다 희생하게 됐어. 더 이상 강로와 신로도 그 뒤를 따르게 놔둘 수는 없다고!”한지훈은 말을 마치고는 약재를 꿀꺽 마셨다. 이내 국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강우연을 달래주었다. “나 괜찮아. 내가 강중에 없는 사이, 만
심지어 도청 전인의 나이는 강우연의 할아버지보다도 열몇 살이나 더 많았다. “이렇게 위급할 때일수록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가는 주상만 또 다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희 천검종은 얼마든지 주상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감히 반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겁니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한비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셋째 삼촌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서 다행이지, 아니면 나 씨 집안 역시 풍비박산 날 뻔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피비린내 나지 않을까요?”강우연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리 복수를 한다 하더라도 아예 온 집안을 몰살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사모님, 절대로 한 치의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오늘 반대로 주상께서 원효천에게 패하게 됐다면...” 감정이 북받친 도청 전인은 순간 멈칫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아요. 만약 오늘 한 선생님이 패하기라도 했다면 저희 나 씨 집안 또한 다른 가문에게 몰살당했을 것입니다!”나계홍은 극히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두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한지후는 담담하게 강우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이번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강우연에게 맡겼다. 누구나 한 번씩 겪어보게 될 과정이었기에, 그는 강우연의 선택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록 내심 그 또한 도청 전인의 의견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만일 강우연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 그 또한 지지할 생각이었다. “그...”강우연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창백한 얼굴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후에야 한지훈에게 말했다. “여보, 저랑 얘기 좀...”“네가 어떻게 결정하든 뭐든지 지지해!”한지훈은 강우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계홍의 시선은 곧바로 강우연에게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앞으로 강중의 세력 구분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전투에서 나 씨 집안의 역할 또한 강우연의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사모님!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서는
낙 선생의 말을 들은 국왕은 뜻밖의 소식에 다소 놀라긴 했다. 신한국과 강만용의 저택이 천 평이 넘을 줄이야. 이 모든 건 진작에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무려 30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 저택들은 모두 두 집안의 조상이 직접 물려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30년 전, 신한국과 강만용 두 사람은 용각에 들어간 날 바로 천 평의 가옥을 모두 국가에 상납하여 자신들의 청렴을 증명하였다. “폐하, 왜... 왜 그러십니까?”국왕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아낸 낙 선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내 국왕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제 보니 너무 가증스러워서! 당장 사람들을 보내서 더욱 자세히 조사하고, 결과를 나한테 보고해!”“네!”발걸음을 옮기던 낙 선생은 뭔가 떠오른 듯이 다시 몸을 돌려 국왕에게 말했다. “폐하, 그 한지훈은...”“그것도 조사해. 하지만 한지훈한테는 들키지 않게 암암리에서 조사하고 있어!” 말을 마치자마자 국왕은 손을 살짝 흔들며 낙 선생더러 물러나라고 하였다. 그렇게 낙 선생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국왕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한 궁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폐하, 저 자는 짐승 같은 야망을 갖고 있는데 정말 그냥 방심하실 생각이신겁니까?”“방심?”그러자 국왕의 눈빛에서는 갑자기 두 줄기의 차가운 빛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낚시를 하려면 미끼도 잘 골라야 해. 던지는 미끼가 클수록 물고기도 더 큰 걸 낚을 수가 있는 거야!”뒤이어 국왕은 천자각 9층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는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 그 또한 낙 선생의 꿍꿍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용국을 향한 오양 각로의 충성도 대단했기에, 그는 애초에 조사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낙 선생은 애초에 의도를 품은 채 국왕의 곁에 와서 그를 모시며 상위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이런 사람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큰 세력이 숨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는 결코 드러난 무신종의 존재
지금 그들에게 있어 가장 비참하게 느껴진 것은 바로 자신들의 운명이었다. 오늘 원 씨 집안이 허무하게 패배하게 된 이상,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이 대충 짐작이 갔다. 그 와중에도 매우 분통한 것은, 원효천 이 늙은 영감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한 수도 이겨내지 못하고 한지훈의 졸개 손에 죽게 되다니. 줄곧 원 씨 집안을 믿고 자신들의 모든 가산과 목숨마저 걸었던 그들은 이제 막막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패가망신하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원 씨 집안까지 끌어들여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우린... 일단 용경으로 돌아간다!”원상용은 겨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내 그는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강중의 세력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원 씨 집안, 어찌 한지훈 어린놈한테 휘둘릴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용경으로 돌아간 후, 바로 남은 세 명의 노조한테 도움을 청할 겁니다. 반드시 한지훈을 죽일 수 있게!”말을 마치자마자 원상용은 성큼성큼 링 아래로 내려갔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비할 데 없는 후회감이 들었다. 애초에 원 씨 집안을 굳게 믿은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도 원 씨 집안이 자신들을 위협하려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원상용이 방금 한 말은,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원 씨 집안에는 아직 세 명의 노조가 있으니, 그들은 어떻게든 마음만 먹으면 복수를 할 수가 있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뒤이어 원 씨 집안사람들은 원상용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링에서 내려왔다. 한편 그 시각, 멀리 용경에 있는 국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지훈이 멋지게 전투를 치를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원 씨 집안에서 두 노조가 돌아가시게 된 것도, 이는 다른 가문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게 뻔했다. “폐하, 낙 선생께서 찾아오셨습니다!”바로 그때 한 궁인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