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여공공이 안으로 들어가자 원경능도 따라 들어갔다.우문호는 몸을 약간 일으키며 물었다. “공공, 부황께서 왜 남주를 거둬드리라 하시는가?”우문호가 전혀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목여공공도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왕야께서 하문하셨으니 소인도 몇 마디 하겠습니다. 부디 무례하다고 소인을 꾸짖지 마시길 바랍니다. 왕야께서 황후마마에게 효도할 기회는 많고 많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비가 남주를 하사 받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후한테 보내시다니요?”우문호의 눈빛은 예리한 칼이 되어 원경능의 얼굴을 찢어 놓을 것만 같았다. 원경능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도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우문호는 서서히 목여공공의 얼굴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먼저 돌아가 주게. 본왕이 왕비와 조용히 할말이 있네.” “왕비, 남은 남주 한 꿰미와 차용증을 먼저 돌려주시지요. 폐하께선 지금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목여공공이 말했다.원경능이 말했다. “공공, 남주 한 꿰미를 잃어버렸으니 내가 직접 폐하께 가서 죄를 청할 것이네. 먼저 돌아가시게.” 목여공공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이미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왕비께서는 더 이상 그리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럴수록 폐하께선 더 진노하실 겁니다.”우문호도 원경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공공께 내어드려.” 원경능은 그의 어둡고 노기 서린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잃어버린 겁니다. 제가 직접 가서 죄를 청할 겁니다.”목여공공이 싸늘하게 말했다. “왕비, 왕비께서 기어이 잃어버렸다고 하시니 저도 더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비가 잃어버렸던 그 남주 한 꿰미는 중신궁의 총관 시녀 옥보가 폐하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왕비가 실제로 잃어버렸다면 그건 중신궁을 바로 겨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위험성을 왕비께서 재삼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우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야, 소인
하지만 몹시 화가 난 명원제는 목여공공더러 원경경능을 불러들이게 하였다.손왕은 측은한 눈길로 원경능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미안했다. 자신을 대신하여 원경능이 부황의 노기를 직면해야 하다니. 듣자 하니 다섯째가 궁에서 상처를 치료받고 있다 하던데 가서 다섯째에게 말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에게 방법을 생각해 초왕비를 벗어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원경능이 궁 안에 들어서자 명원제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꿇어라!”원경능은 황제의 지시대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부황을 뵙습니다!” 궁전 안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목여공공이 땅바닥에 떨어진 벼루(砚台)며 상주문(奏章)들을 주었다. 보아하니 분노한 황제가 손왕을 향해 이 물건들을 던진 것 같았다.땅에는 남주도 조용히 놓여 있었다. 바로 원경능이 무릎 꿇고 앉은 곳에서 다섯 자 떨어진 곳에.명원제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좀 전에 목여공공이 말하기를 네가 짐이 하사한 남주 한 꿰미를 잃어버렸다 하던데 어디서 잃어버렸느냐?”“부황께 아룁니다. 건곤전에서 잃어버렸습니다.”원경능이 대답했다.“그럼 네가 보기엔 그 바닥에 있는 남주가 네가 건곤전에서 잃어버린 남주가 맞는 것 같으냐?”명원 제는 다시 물었다.원경능은 한번 힐끗 보고는 말했다.“네, 그렇습니다.” “이 한 꿰미의 남주는 황후의 사람이 짐한테 갖고 온 것이다. 네가 말해 보거라. 황후의 사람이 네 남주를 훔친 것이냐?”명원제의 목소리에는 이미 조금 노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원경능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누가 가져갔는지 알고 있습니다.” “뭐라?”명원제는 비웃으며 말했다.“누가 훔쳐갔는지 네가 알고 있다는 말이냐?”“알고 있습니다. 저는 누가 가져갔는지 보았습니다.”그녀는 계속 ‘가져갔다’는 단어를 고집했다. “누구더냐?”명원제는 화가 나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원경능은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희씨 어멈입니다.
황후는 놀란 눈으로 총관 시녀를 보았다. “뭘 잘못 들었다는 것이냐? 본궁이 너더러 남주를 돌려주라 했을 때 대체 뭐라 아뢴 것이냐?”“마마…”총관 시녀는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소인 스스로 총명하다 자만했습니다. 초왕비가 남주를 보내온 것이 초왕을 위한 거라 생각하여 한마디 더 보탰습니다. 초왕비가 마마께 폐하 앞에서 초왕을 위해 덕담 좀 해달라 부탁했다고 아뢰었습니다.”황후는 분노했다.“네가 감히 제멋대로 추측했단 말이더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저 황후는 별안간 정신을 차렸다. 옥보는 그녀의 시중을 든 지 몇 년이 되었다. 성격이 워낙 차분하여 황제 앞에서 절대로 자신의 추측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대뜸 저명취를 떠올렸다.전에 명취가 현비를 찾아가겠다고 했었지만, 지금은 현비와 정면으로 대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비는 태후의 조카였다. 현비의 미움을 산다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명원제는 졸지에 안색이 아주 흉해졌다. 옥보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황후의 분부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싸늘한 눈길로 황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황후는 나서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총관 시녀의 뺨을 후려치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무엄하다. 어찌 자신의 허튼 생각을 감히 폐하께 아뢸 수 있단 말이냐? 목숨이 여러 개라도 달린 것이냐?”총관 시녀는 땅에 꿇어 앉아 감히 얼굴도 감싸지 못한 채 그저 끊임없이 빌기만 했다. “폐하, 용서하여 주십시오. 용서하여 주십시오!”명원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명했다. “여봐라. 옥보를 끌어내 곤장 서른 대를 호되게 쳐라.”저 황후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녀를 감싸주지 못하고 그저 화를 내며 한마디 했다. “이걸로 끝내는걸 다행으로 알거라.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고 뭐하느냐?”총관 시녀는 이미 힘이 풀려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말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그녀는 끌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퍽
희씨 어멈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했습니다. 지난해 소인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제왕비가 좋은 약을 지어 줘서 병이 완치되었습니다. 이번에 그녀를 한번 도왔으니 그 은혜를 갚은 셈입니다. 소인은 초왕비가 벌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태상황은 아직도 초왕비가 필요하니, 몇 마디 꾸지람만 하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소인 누구도 해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오랫동안 머리를 조아린 채로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평온한 얼굴이었다.“소인 이젠 더 할말이 없습니다. 독주를 하사하여 주십시오, 폐하!” 이 생에 진 빚을 그녀는 이젠 다 갚았다. 곧 걸을 황천길에서도 더 이상 그에게 미안한 것이 없었다 명원제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배후의 인물을 말한다면 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겠다.”희씨 어멈은 침묵을 지켰다. 얼굴에는 생사를 도외시하는 결연함이 묻어 있었다. 명원제는 죽도록 미우면서도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당연히 희씨 어멈을 죽이지 못한다. 심지어 이 일을 태상황께 알리지도 못한다. 태상황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데, 어찌 수십 년 동안 당신 곁에서 보필하던 사람이 당신을 독해하려 했단 충격을 견딜 수 있겠는가?오랜 침묵 끝에 그는 담담히 말했다. “자네가 태상황을 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하니, 짐도 자네를 믿겠다. 책임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멈도 이젠 연세가 있으니 태상황 곁에서 시중들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어멈이 초왕비와도 인연이 있으니 짐이 초왕비를 위해 태상황께 청을 드리겠다. 어멈은 초왕비를 따라 왕부로 가서 초왕비의 시중을 들도록 하라.” 명원제는 끝내 자신의 손으로 희씨 어멈을 처리하지 않았다. 희씨 어멈이 원경능을 해하려 했으니, 원경능에게 보내 그녀더러 처리하게 내버려 둘 셈이었다.원경능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희씨 어멈은 이만 물러가거라.”명원제가 노기를 거두고 담담하게 명령했다.희씨 어멈은 복잡한 눈길로 원경능을
건곤전에 도착하니 태황상은 반쯤 일어나 앉은 채로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었다.건곤전 안에는 상공공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온몸에 검은 옷을 두르고 검을 차고 있었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것으로 보아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그는 원경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천둥번개가 치듯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었다. 태상황이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그에게 명령했다.“이만 물러가거라.”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손을 모아 인사하고 물러갔다. 그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서 걸음을 옮길 때 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는 듯했다. 그는 잠깐 사이에 건곤전 밖으로 종적을 감췄다.“뭘 그리 쳐다보는 게야? 저 자는 암위(暗卫)이니라. 일은 잘 해결됐느냐?”그녀를 흘겨본 태상황이 한가로이 물어왔다. 그는 꽤 기운이 있어 보였다. 문득 원경능은 이 영감이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희씨 어멈을 사주한 사람까지도.영감은 그녀를 보더니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원경능은 머리털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이 영감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상공공, 내 태상황께 따로 할말이 있으니 잠깐 자리를 비켜주시게.”원경능은 혼자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제대로 알아내야 했다. 상공공은 매우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곧 밖으로 나갔다.태상황은 여전히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얄밉기까지 했다.“물어볼 거라도 있느냐? 과인이 대답해 줄지는 모르겠다만.”“누가 약을 바꿨습니까?”원경능이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알고 계시지요?”“알지!”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소나자.”“어디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십니까?”“방자하도다!”태상황이 화내며 소리쳤다.“지금 어느 안전에 말하는 것이냐?”원경능은 눈을 내리 깔고 가슴에 가득 맺힌 억울함을 참으며 말했다.“송구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태상황은 ‘흥’하며 콧방귀를 뀌고는 계속해서 해바라기 껍질을 깠다. 그러다가 사실대로
손왕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난 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큰형님도 하고 싶으시겠지, 그러나 난 큰형님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를 천거할 일은 없지 않겠느냐.”탕양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손왕 전하, 전하의 이번 천거는 초왕 전하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손왕은 깜짝 놀랐다.“어찌 해를 끼친단 말이냐? 본왕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정식으로 천거한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부황도 내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탕양 자네는 너무 조심성이 많아. 자네와 같이 처신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탕양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손왕은 본인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폐하께서 본인의 말을 듣지 않을 걸 아는데 왜 굳이 수고스럽게 말씀 드린단 말인가? 손왕 전하는 참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그들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한 손왕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을 수도 있음을 깨닫았다. 그는 자신의 입술을 찰싹찰싹 쳤다.“어리석은 주둥이 같으니라고. 또 내가 실언한 게지?”“괜찮습니다.”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실언하신 게 아닙니다. 둘째 형님께서 저를 알아봐 주셨으니, 천거하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그의 시선은 계속 밖을 향해 있었다. 원경능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부황은 지금 진노하고 계시고. 부황은 과연 그녀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가?손왕은 과자를 다 먹고는 떠났다. 가기 전에 분노를 가득 담아 우문호를 대신해 범인을 몇 마디 저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로써 형제간의 우애를 다 보여준 셈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금단도 꺼내 탕양에게 건넸다.우문호가 거절하자 그는 아예 우문호에게 던져버렸다.“이 맛도 없는 걸 내가 갖고 있어서 뭐하느냐? 게다가 본왕은 태자 자리에 뜻이 없으니 본왕을 상대하려는 자도 없을 것이다.”그는 던지고는 곧 도망치듯 나왔다. 탕양이 보물을 얻은 듯 얼른 주워 들며 말했다.“손왕 전하께서는 그래도 왕야를 신경 써 주시는군요.”우문호가 덤덤히 대답했다.“본왕도 알고 있다.”둘째 형님은
저녁 식사는 기씨 어멈이 준비했다. 원경능은 입맛이 없어 국물을 한 모금만 삼키고는 상을 치우게 했다.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 챈 기씨 어멈은 다른 일은 묻지 않은 채 녹아를 불러 함께 음식을 정리했다. 기씨 어멈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 그때 원경능이 물어왔다.“어멈, 화가는 괜찮은 것이냐?”그녀가 입을 열자 기씨 어멈이 급히 돌아서며 말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왕비. 그 아이는 이젠 괜찮습니다.”“내일 그를 보러 가마.”원경능이 말했다.“네, 감사합니다!”기씨 어멈은 그녀의 심기가 불편할 때에도 화가 걱정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가슴이 뭉클해졌다.원경능은 책을 조금 읽다가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부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때 희씨 어멈이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면서 문까지 닫았다.원경능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무슨 일인가?”희씨 어멈이 양 손을 공손히 드리우며 담담히 말했다.“왕비, 차라리 직접 말씀해주십시오. 소인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시렵니까?”원경능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그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을 것이네.”그러자 기씨 어멈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인 잘 알아들었습니다. 왕비께선 소인 스스로 자결하라는 말씀이시겠지요. 아마 이건 폐하의 뜻이기도 할 테지요.”원경능이 담담하게 말했다.“폐하의 뜻은 나도 모르네. 성심을 어찌 함부로 짐작하겠는가? 허나 태상황께서 내게 말씀하셨네. 나더러 자네를 잘 대하라고.”희씨 어멈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곧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태상황께서 진정으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내가 자네에게 왜 거짓을 말하겠는가? 목숨을 끊어 은혜와 원한을 없애든, 잘 살아서 태상황의 은혜에 보답하든 자네 스스로 고민해보게. 내가 자네를 대신해 결정해주진 못하니 말이야. 이만 돌아가게, 쉬어야 하겠네.”원경능은 바로 축객령을 내렸다.희씨 어멈은 무거운 기분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가 한참을 걸어갔는데도 원경능은 멀리서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
현비는 여전히 걱정이 태산 같았다.“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독한 짓을 벌인다는 말이냐?”“누구의 미움도 산 적 없습니다.”우문호가 그녀를 위로했다.“됐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죽여 없앴으니 전 이제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어미가 바보도 아니고….”그녀는 고개를 들고 원경능을 쳐다보았다. 볼수록 화가 났다. “왜 거기서 멍청히 서있는 게냐? 아랫것들에게 분부해 왕야께 국물이라도 올릴 생각은 못하는 것이냐? 너처럼 시중드는 사람은 처음 보는구나.”원경능이 우문호를 보며 물었다.“드시고 싶으신 거라도 있나요, 왕야?”현비가 화를 냈다.“만들라 명하면 되지 않느냐? 뭔들 나쁠까? 부상당했는데 뭘 먹어야 하는 지도 물어봐야 하다니, 넌 이렇게 작은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구나. 그러니 왕부의 일도 감당하지 못하지. 차라리 너를 대신해 일을 할 사람을 찾는 편이 좋겠구나.”원경능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녀는 측비를 맞이하는 일 때문에 걸음 한 듯싶었다. 자신이 난동을 부릴까 걱정되었던 것일까? 현비는 원경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녀는 난동을 부릴 수 없는 처지였다.현비가 천천히 몸을 꼿꼿하게 일으키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미가 걸음한 것은 네 상처를 살피러 온 것 외에도 너와 상의할 일이 있어서란다.”우문호는 그녀가 뭘 말할 지 알고 있었다.“나중에요, 소자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꼭 말해야 한다.”현비가 강경하게 말했다.“어미는 이 일에 대해 네 부황께 이미 말씀드렸다. 네 부황께선 반대하지 않으셨어. 그저 저씨 집안의 의향을 물어보라고만 명하셨을 뿐이다. 만약 저씨 집안에서 동의한다면 이 혼사는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네 부황께서 너 대신 부탁하는 일인데, 저씨 집안에서 어찌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마음 편히 상처 회복에만 힘쓰거라. 부상이 다 나으면 곧 혼인할 수 있을 것이다.”“됐습니다. 그만하세요.”우문호는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