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림은 워낙 도도하고 차가운 성격이라 누구에게 생일을 알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절친한 친구인 소지안조차 그녀의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를 먹는 것이 무서웠다. 생일은 곧 자기가 한 살 더 먹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의 생일을 쇠지 않다 보니 그녀 본인조차도 생일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아. 적어도 사람들이 내가 벌써 스물여덟 살이 되었다는 걸 금방 알지 못할 테니까.” 예우림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스물여덟이라니! 비록 관리를 잘해서 보기에는 스물셋이나 스물넷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자기가 더는 젊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생일 축하 문자를 받고 나서 예우림은 갑자기 고독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저도 몰래 텅 빈 방 안을 둘러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몰래 그 자식 생각나네.” 예우림은 당장이라도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참해질 수 있지? 해외파 박사이자 지성그룹의 대표인 그녀가 일개 직원에게 감정을 품었다니. “안 돼! 예우림. 그냥 직원일 뿐이야. 게다가 그 자식이 잘못했잖아. 그러니까 절대 먼저 연락해서는 안 돼. 자존심이 있어야지!” 예우림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저도 몰래 휴대폰을 켜고 엄진우의 연락처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 전화하자!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오해일 수도 있잖아. 난 이성적인 사람이니 적어도 엄진우에게 설명할 기회는 줘야지.” “예 대표, 어쩐 일이야?” 이내 전화기 너머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우림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당장 돌아와. 아까 일에 대한 설명이 듣고 싶어.” “설명? 당신이 어떻게 이해하든 그건 당신 마음이야. 내가 왜 당신 말대로 해야 하지? 업무상 당신이 상사일지 몰라도 사생활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예우림은 화가 났지만 자기가 이유 없이 화를 낸 것을 생각하니 더는 화를 낼 수 없어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부드럽게
“예우림! 그냥 죽어!” 예우림은 급히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 “그 자식 때문에 눈물이나 흘리고 있다니. 예우림, 언제부터 이렇게 천박해졌어? 당장 정신 차려! 나 예우림은 정상에 설 운명인 여자야. 남자 따윈 필요 없어!” 예우림은 턱을 치켜 올리며 다시 여왕의 아우라를 되찾았다. 고독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약이다. “가서 잠이나 자는 거야. 오늘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내일 아침이 오면 난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벨 소리가 들렸다. “예우림 고객님, 호텔 직원입니다. 오늘은 호텔 설립 30주년 기념일이라 모든 투숙객에게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우림은 무심코 대답했다. “그래요, 문 앞에 놔두시면 이따가 가져갈게요.” 하지만 상대는 고집을 부렸다. “죄송하지만 지배인님께서 반드시 한 분 한 분에게 직접 전달하시라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월급을 깎이게 됩니다.” “알겠어요.” 예우림은 하는 후 없이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렸다. “고마워요, 이 호텔...” 예우림은 말을 반쯤 하다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은 순간 휘둥그레졌다. 거대한 장미 케이크가 그녀 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흔아홉 송이의 장미, 열여덟 개의 촛불! 아홉 층의 크림으로 뒤덮인 초대형 케이크, 심지어 욕조보다 더 컸다. 위에는 ‘예우림’ 세 글자가 반듯하게 쓰여 있었는데 글씨체가 아주 근사했다. 그리고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목소리를 변조해 말했던 사람은 바로 그녀가 방금까지 욕했던 그 나쁜 자식이었다. 엄진우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예우림.” 그 말에 예우림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당신... 금 회장님과 온천 간 거 아니야?” 예우림은 떨리는 입술로 물었는데 동공이 계속 수축했다. 그러자 엄진우는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 “농담이야. 내가 어떻게 그래.” “그럼 아까 했던 말은...”
예우림은 눈물을 그친 후 흐느끼며 물었다. “내 생일은 알려준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엄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잊었나 보네. 당신 이력서 회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려 있잖아. 매일 지나가면서 봤어. 내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어떻게 그걸 잊어. 게다가 내 생일을 잊어도 사랑하는 여자의 생일은 잊으면 안 되지.” 그 말에 감동한 예우림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엄진우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기 생일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중요한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진우는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예우림의 생일을 잊을 뻔했다. 오늘 금복생의 호텔에서 벌어진 일 덕분에 그도 갑자기 기억났던 것이다. 그리고 금복생에게 부탁해서 초대형 고급 케이크를 준비했다. 예우림은 엄진우의 품에서 반 시간 정도 눈물을 흘린 후 아무 말 없이 두 눈을 감았다. 마치 어렵게 온 이 평화로운 행복의 순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엄진우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잘래?” “또 나랑 자고 싶은 거야?” 예우림은 눈을 부릅뜨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엄진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안 돼? 당신은 생각 없어?” 예우림은 귀엽게 콧방귀를 뀌더니 말없이 웃어 보였다. 순간 엄진우는 표정이 환해졌다. 이건 허락한다는 뜻 아닌가? 엄진우는 그녀가 마음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속옷과 브래지어를 벗기기 시작했다. “꺅, 땀 났잖아. 냄새나니까 먼저 씻어!” “안 씻을 거야.” “당신...” 온몸을 간지럽히는 야한 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예우림은 점점 말을 잇지 못하고 간드러진 신음만 낼 뿐이다. ...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예우림은 이미 씻고 돌아왔다.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몸에 수건만 두르고 있었는데 풍만하고 균형 잡힌 몸매는
엄진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런 압력이 두려운 게 아니다. 북강에서 마주한 압력은 지금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들 덕분에 단 7년 만에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거듭났다. 북강의 명왕. “빵은 한 입씩 먹어야 하고, 문제는 하나씩 해결해야지. 일단... 드래곤 크루부터 해결하자.” 엄진우는 전화를 걸었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보향은 명령을 받고 나타났다. “명왕님!” 이보향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요즘 성안에서 들은 소문 좀 말해봐.” 엄진우는 평온하게 말했다. 이보향은 전신으로서 성안에서 영향력과 인맥이 상당히 대단했기에 엄진우에게 많은 정보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보향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남성 각 대기업들은 어제부터 9대 수진 가문과 그 부속 명문가들과 관계를 끊으려는 의도를 보였고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중립? 그 늙은이들 분명히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야. 양쪽 모두에게 기대고 있는 거잖아.” 엄진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래도 9대 수진 가문과 관계를 끊은 건 다행이다. 적이 아닌 이상,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9대 수진 가문은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후의 세력이라 겉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보향이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엄진우가 말했다. “9대 수진 가문 문제는 아직 급하지 않으니 나중에 천천히 해결하자고. 보향아, 드래곤 크루에 대해 아는 걸 말해줘.” 그러자 이보향은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북강을 제외하고 드래곤 크루는 전국 각 성에 퍼져 있습니다. 저도 강남성에 막 와서 이곳 드래곤 크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드래곤 크루의 한 사람은 명왕님도 반드시 신경 쓰셔야 합니다.” “얘기해 봐.” 엄진우가 말했다. “강남성 드래곤 크루의 리더 시천민은 남방 군인 출신인데 그도 전신 후보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보향은 심각한 표정으
제트썬 카지노에서 예강호와 엄진우는 우연히 만나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 엄진우는 제트썬 카지노를 대범하게 예강호에게 넘겨주었고 나중에는 예강호도 그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엄진우 아버지의 묘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형님이 성안에 와서 정말 문제가 생길 줄 생각도 못 했어.” 엄진우는 눈동자가 세게 흔들렸다. “이 일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러자 이보향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바로 성부에 연락해 예강호를 풀어달라고 하겠습니다.” 이보향은 자기의 전신 신분을 내세우면 성부가 두려워서라도 죄수 하나쯤은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부 비서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다른 일은 다 얘기할 수 있지만 이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이보향은 분노하며 말했다. “성총리님과 직접 말하게 해주세요. 당신 같은 작은 비서장 따위가 감히 나에게 그런 태도로 말해요?” “봉황전신님, 이 일은 성총리님이 직접 명령하신 겁니다. 그분은 모든 청탁 연락을 거부하고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친 비서장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총리 같은 최고 장관은 군대의 힘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거절한다고 해도 그렇게 건방지게 굴 필요가 없었다. 혹시 그들 뒤에 군부와 직접 대적할 수 있는 배후라도 있는 걸까? 이보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병력을 모아 성부 감옥을 직접 공격해서라도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녀는 당당한 여전신으로 강남성의 문인들과 허풍쟁이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남성에 세 개의 장갑 사단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성안으로 진격하면 전체 상황을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이보향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원격으로 명령을 내렸을 때, 20km 떨어진 세 개의 장갑 사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보향은 화를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어 상대를 질책했다. “장갑 사단 사단장들 뭐야
뭐?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던 이보향은 엄진우의 도발적인 농담에 깜짝 놀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얼굴이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그게...” 그러자 엄진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넌 여전히 농담을 잘 못 받아들이는구나!” 이보향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전후가 확실한 여자를 보니 그녀가 시종관이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우연히 여러 번 피부가 맞닿았고 매번 엄진우는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결국 꾹 참았다. 그는 자기의 첫 경험을 평생 사랑할 가치가 있는 여자에게 주고 싶었다. 그의 눈에 이보향은 단지 자기를 동경하는 순진한 낭만주의자일 뿐, 그가 기다리는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 “됐으니까 돌아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굳이 네가 나설 필요는 없어.” 엄진우는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보향은 뜨거워진 뺨을 감싼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퇴장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사춘기 소녀와도 같았다. 엄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아직 어려.” 지금 예강호를 구하려면 드래곤 크루와 9대 수진 가문으로부터 시작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직접 성부를 찾아가 성총리를 만나는 것이다. 엄진우가 알기론 현 성총리는 황씨 성을 가진 창해시 출신으로 한때는 창해시 부시장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 총리를 알만한 사람은 바로... 창해시 집행청 청장 조연설! 엄진우는 바로 조연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청장, 오랜만이네?” “엄진우? 요즘 어디로 사라진 거지? 왜 갑자기 안 보여? 예우림 씨 일은 어떻게 됐어?” 조연설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엄진우를 많이 걱정했었다. 엄진우는 성안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조연설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맙소사! 배짱이 너무 큰 거 아니야? 드래콘 크루와 홍의회 사람을 죽이다니? 성안을 아주 쑤시고 다녔네!”
“네? 황 총리님의 조카요?” 상대는 그 말을 듣더니 잔뜩 당황한 채 얼굴을 감싸며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신참이라 잘 몰랐어요.” 그들은 비록 경비원일 뿐이지만 그래도 성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목소리가 남다르게 컸다. 그래서 거만한 태도를 취했지만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반대로 강한 사람에게는 개처럼 꼬리를 흔들어댔다. 뒤에 왔던 경비원은 급히 예의를 차리며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지난번에 조 시장님과 방문하셨을 때는 열 살쯤으로 기억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엿한 숙녀가 되셨네요.” 조연설은 공손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는 잘 지내고 계시죠?” “황 총리님은 잘 계십니다.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상대는 허둥지둥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엄진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보아하니 성 총리님이 조 청장과 꽤 친한 모양이네?” “꽤 친한 것 같아. 어렸을 때 우리 아빠는 시청 직원이라 가끔 성부에 들리셨고 나도 자주 따라다녔어.” 여기까지 말한 조연설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시 황 총리님도 그저 작은 사무실장이었는데 날 많이 예뻐해 주셨지. 가끔 무릎에 앉히고 사탕도 주면서 정말 친딸처럼 대해주셨어.”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릎에 앉힌다고? 무릎, 아니면 허벅지? 뭔가 이상한데?” 그러자 조연설은 바로 안색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진우, 넌 왜 항상 그런 이상한 생각만 하는 거야? 아저씨는 강남성 성총리야. 나이로 치면 나한텐 거의 할아버지라고! 네가 상상하는 그런 더러운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그때 난 겨우 열 살이었어.” 조연설에게 욕설을 먹은 엄진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 “당연히 틀렸지.” 조연설은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었고 엄진우는 그 뒤를 바싹 따랐다. 성부 청사 로비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류 가방을 든 채
와규 등심 스테이크, 알비노 벨루가 캐비어, 이탈리아산 화이트 알바 트러플, 자연산 참다랑어 초밥... 이 요리들은 기본적으로 TV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어떤 요리는 심지어 조연설의 연봉에 맞먹는 고가를 자랑한다. “하하, 연설이 왔구나. 못 본 사이 많이 컸네!” 이때 흰 셔츠에 뚱뚱한 배를 겨우 쑤셔 넣은 듯한 대머리 중년 남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낡아빠진 옷을 입고 있었지만 손목에는 최신형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차고 있었고 발에는 이탈리아산 수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엄진우는 상대의 흐리멍덩한 눈빛이 조연설의 얼굴과 가슴을 스칠 때 순간적으로 빛나는 것을 빠르게 캐치했다. “여자들은 변화도 많아.” 어릴 때의 조연설은 막대기처럼 날씬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몸매가 풍만한 것이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그러자 조연설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강남성의 권력자, 성총리 황덕진이다. 전에는 단지 자그마한 관리라 승진 속도가 이상적이지 않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제경의 권력자와 친하게 되어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10년 만에 작은 도시의 부시장직에서 성총리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은퇴하기 전 제경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안녕하지, 그럼!” 황덕진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선을 엄진우에게 옮기는 순간, 그의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호 실장? 내 말 못 알아들어? 연설이 혼자 들여보내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꼬리가 붙었어! 실장 자리가 만만해?” 그러자 실장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총리님, 전 그대로 전했는데 조연설 씨가 친구분이 아니면 안 들어오시겠다고 하셔서...” 그 말에 황덕진은 이내 안색이 친절하게 바뀌었다. “그래, 우리 연설이가 그렇게 말했으니 어쩔 수 없지. 어렵사리 왔으니 한 번쯤은 룰을 깨는 것도 괜찮아! 나가봐!” 황덕진은 실장을 밖으로 내쫓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