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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거기 서.”

배현수의 목소리는 무겁고 매력적이었다. 리더 특유의 위엄이 있었고 저항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두 발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배현수 씨 하실 말씀이 있나요?”

“돈 벌러 온 거라며 왜 그리 급하게 나가?”

조유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착!”

배현수는 두꺼운 현금 뭉치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연극을 보려는 것처럼 말했다.

“이 술을 병째로 다 마시면 이 돈은 네 거야.”

술을 마시라고...

조유진은 등이 뻣뻣해 났다. 그녀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배 대표님, 미안하지만 저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요.”

배현수는 웃으며 가볍게 툭 던졌다.

“그래? 기억 안 나네.”

무자비할 정도로 차가웠다.

기억이 안 난다고...

조유진은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 도수가 아주 낮은 과일맥주를 마셔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만약 소주를 마신다면 심각할 경우 쇼크도 올 것이다.

6년 전, 조유진은 모르고 알코올이 들어 있는 음료를 마셨다가 온몸에 큰 두드러기들이 났었다. 당시 배현수는 마음이 아파서 늦은 저녁에 그녀를 업고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링거 때문에 팔이 부어 배현수는 밤새 조유진의 옆에서 그녀의 팔을 주물러 주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직접 그녀의 몸에 약까지 발라줬었다.

그때 배현수는 조유진을 잃는 게 무서워 앞으로 다시는 그녀가 알코올 근처에도 가지않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 술을 피할 수 없다.

조유진은 눈시울이 뜨거워 나서 힘껏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눈가의 눈물을 닦고 돌아서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요. 마실게요. 배 사장님께서 꼭 약속을 지키셨으면 좋겠네요.”

배현수가 조유진에게 술을 마시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술을 마시지 않으면 여기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조유진은 배현수가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 병 안의 보드카는 56도나 된다. 칵테일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인데 만약 바로 마시면 알코올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도 한 병을 다 들이켰을 때 위에 구멍이 날 것이다.

아이가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술을 다 마시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조유진은 그 돈뭉치를 힐끗 쳐다보았다. 꽤 두꺼워 보였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600만 원 돼요?”

배현수는 차갑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700만 원이야. 이 술 한 병에 너 제대로 벌었어.”

“그렇네요. 많이 벌겠네요...”

아이의 어린이집 학비를 메꿀 수 있게 되었다.

말을 마친 조유진은 손을 내밀어 술병을 집었다...

강이찬은 다급히 술병을 잡으며 말했다.

“현수야! 이러다 큰일 나!”

강이찬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어쨌든 조유진도 대제주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강이찬의 후배였다. 6년 전, 강이찬과 조유진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강이찬은 배현수가 조유진에게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밤, 배현수의 생일이라는 이유로 조유진을 불러 그들의 관계를 풀어주고 싶었는데 이런 사단이 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찬아, 현수랑 유진이 사이의 일인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끼어들어? 유진이가 마신다고 말했으니 알아서 잘 마실 거야.”

육지율은 옆에서 구경하면서 일의 심각성에 대해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그는 원래부터 조유진을 싫어했다. 육지율은 조유진을 화근이라고 생각했다. 조유진만 아니었으면 배현수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을 일도 없었다고 늘 말했다.

조유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러나 그 맑고 예쁜 얼굴은 옅은 미소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 마실래요. 오늘은 배... 배 대표님 생일이니까요. 마실게요. 마실 수 있어요... 배 대표님의 흥을 깨뜨릴 수 없죠.”

조유진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술병을 들어 바로 입에 갖다 댔다. 그 독한 술은 입으로 들어가 목을 지났고 마치 유리파편이 그녀의 살점을 긁는 것 같았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빨리 마신 탓에 술이 다 흘러나왔다.

“콜록콜록...”

그리고 곧 조유진의 얼굴과 목에... 겉으로 드러난 피부가 전부 빨갛게 변했다. 알레르기가 분명했다.

강이찬은 술병을 낚아챘다.

“그만해! 유진이는 내가 부른 거야. 계속 마셔야 한다면 내가 대신 마실게!”

조유진은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정신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그녀는 손으로 입가에 묻은 술을 닦고 배현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배 대표님, 생일 축하드려요.”

배현수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간미가 없을 정도로 냉랭한 태도였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희미한 불빛과 그림자 속에 걸쳐있었다.

조유진은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보아낼 수가 없었다. 마치... 정말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 6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그것도 원래의 모습이 하나도 남지 않게 완전히.

6년 전의 배현수는 아주 싼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오늘의 그는 비싼 주문제작 셔츠를 입고 그녀의 눈앞에 앉아 있다. 조유진은 배현수와의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배현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조유진이 떠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육지율은 테이블 위의 돈뭉치를 들고 조유진에게 던졌지만 조유진은 그것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그 돈들은 조유진의 발 앞에 떨어졌다.

“조유진, 돈 버는 게 쉽지 않은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배 대표 생일이라 기분이 좋아서 그냥 보내주는 거야.”

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쭈그리고 앉아서 두드러기가 난 빨간 손으로 땅에 있는 돈을 주웠다.

“배 대표님, 육 대표님, 강 대표님, 감사합니다.”

조유진이 마지막 한 장을 주울 때, 주문 제작한 구두를 신은 누군가가 다가와 그 지폐를 꾹 밟았다.

배현수는 작디작은 먼지를 보는 것처럼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조유진은 손에 힘을 주어 그 지폐를 잡아당겼지만 배현수는 발을 들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눈물 한 방울이 그의 구두에 떨어졌다. 조유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배 대표님, 발을 들고 저를 놓아주세요.”

“유진아, 억울해?”

“아니요... 억울하지 않아요.”

감히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것은 그녀가 그에게 빚진 것이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차가운 미소에는 조금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안에 있는 3년 동안, 그 1095일 내내 난 지금의 너처럼 이랬어. 내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나갔지. 조유진, 넌 억울해할 자격이 없어. 오늘 밤은 내가 너에게서 3년 동안의 이자 일부분만 받은 걸로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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