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조 씨 어르신이 임유환과 윤서린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느라 연회에 늦은 거라니!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허유나도 넋을 잃고 말았다. 조 씨 어르신이 이 말을 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조 씨 어르신이 어떻게 임유환 같은 폐물이랑 엮이게 된 거지? "당신 모습을 보니 나한테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때 조재용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아…아니…”허유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겁에 질린 얼굴로 앞에 있는 조재용을 바라봤다.그녀가 어떻게 감히 조재용에게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럼 빨리 자리에 앉는 게 어떤가? 연회가 진행되는 걸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말이야!” 조재용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위세와 참을성이 담겨 있었다. "예, 조 씨 어르신…” 허유나는 즉시 자리에 앉았고, 머리는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장문호도 어안이 벙벙해 입을 크게 벌리고 움직이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현장은 매우 고요했고, 모두가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이 침묵의 순간에, 조재용은 임유환과 윤서린을 바라보았고 그의 표정이 즉시 부드러워졌다. "임 선생님, 윤서린 씨, 방금 전 일 때문에 두 분의 기분에 영향이 가진 않았겠죠?” "네…네, 감사합니다 조 씨 어르신.” 윤서린의 눈이 떨리더니, 이내 충격에서 회복됐다.그녀는 조재용이 이 연회를 준비한 목적이 허유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재용이 방금 한 말처럼 자신과 임유환을 위해 선물도 준비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별말씀을요, 윤서린 씨.”조재용은 정중하게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임 선생님과 윤서린 씨가 화가 나지 않으면 되었고, 그의 공손한 태도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도대체 임유환이 어떤 신분이길래 조 씨 어르신이 이런 태도로 그를 대하고, 게다가 직접 선물까지 준비하게 하는 걸까! 조재용은 이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않았고, 게다가 이 정도
맙소사!조재용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임유환의 눈은 격렬하게 떨리고 마음속으로 조재용을 저주하고 있었다.선물은 룸의 불빛 아래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크리스털 조각품이었다.그 조각상은 남녀가 서로를 다정하게 포옹하고 보고 있었고,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성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이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의 얼굴이 바로 그 임유환이고, 여자는 바로 윤서린이라는 것이다! 그와 윤서린은 지금은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했고, 만약 윤서린이 자신의 뜻을 오해하고 잘못 생각하여 앞으로 그와 거리를 두게 된다면, 그는 정말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조재용은 무슨 이런 서프라이즈를 계획한 거지? 이 순간 임유환은 조재용의 머리를 눌러 땅에 문지르고 싶었다.윤서린은 얼굴이 붉어져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조재용은 왜 그들에게 이런 선물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는 걸까……조재용은 여전히 이 눈부신 크리스털 조각품을 감상하고 있었고, 보면 볼수록 더욱 마음에 들어하며 이 순간 임유환의 변화된 얼굴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그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그의 지능을 스스로 칭찬했다!이 크리스털 조각품은 국내 최고의 조각가 수십 명이 하룻밤 사이에 조각한 것으로, 사용된 크리스털 역시 세계 최고의 천연 크리스털로 제작하는데 수천만 달러가 들었다.그는 자신이 대마왕의 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임 선생님, 윤서린 씨, 두 분의 백년해로를 기원합니다..."조재용은 임유환과 윤서린을 바라보며 축복의 말을 절반쯤 했을 때 즉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윤서린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었기에 말할 것도 없었지만, 임유환의 안색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특히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칼로 찌를 것 같았다! 조재용은 가슴이 떨리며 다급히 물었다."임…임 선생님, 제가 준비한 선물이... 만족스럽지 않으신가요?""하하, 조회장님 생각
윤서린이 이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임유환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윤서린이 아마 조재용을 너무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하하, 그래. 네가 마음에 들면 됐어.” 임유환은 웃으며 연기에 협조했다."네."윤서린은 붉은 입술을 오므렸고, 눈동자는 떨려왔다. "하하, 윤서린 씨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조재용은 그녀의 말을 듣자 기뻐서 허벅지를 쳤다, 윤서린이 좋아한다면 임유환도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역시 제대로 선물을 준 게 맞았다! "여기, 어서 크리스털 조각상을 천으로 덮어줘. 이건 임 선생님과 윤서린 씨를 위한 선물이니 먼지가 쌓이면 안 돼!"조재용은 손을 흔들며 부하에게 명령했고, 순식간에 기세를 되찾았다."예 보스!"그의 부하가 앞으로 나아와 크리스털 조각품을 다시 천으로 덮었다."임 선생님, 윤서린 씨, 연회를 계속 진행하시죠.”조재용이 열정적으로 말했다."네, 조 씨 어르신.” 윤서린이 부드럽게 말했고, 이때 임유환이 조재용에게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조재용은 전혀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대마왕이 자신을 칭찬하는 줄 알며 더욱 호기롭게 말했다. “여기, 와서 임 선생님과 윤서린 씨에게 술을 따라줘!” "예 보스!"부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와 두 잔에 와인을 채웠다."자, 임 선생님, 윤서린 씨, 건배하시죠!” 조재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위해 건배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 윤서린이 재빨리 일어서서 말했지만, 임유환은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조재용은 여전히 알아채지 못했고, 즐겁게 술을 마셨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조재용이 임유환과 윤서린에게 직접 건배하는 것을 보고 임유환의 신분이 분명 특별할 것이라는 걸 확신했고, 다시 허유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경멸로 가득했다. 이 여자는 방금 전까지도 말을 너무 많이 해 하마터면 그녀에게 속을 뻔했지만, 다행히 조 씨 어르신이 제시간에 도착해 그
여기까지 생각하자 허유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후회가 솟아올랐다.아니…절대 이럴 수 없어! 그 자식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지! 허유나는 미친 듯이 자신을 위로했다.분명 그녀가 놓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괴로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연회가 끝이 났다.조재용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을 마셨고, 몸을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임 선생님과 윤서린 씨를 초대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 모두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이 와인은 제가 마시겠습니다!” 조재용은 그렇게 말하고 통쾌하게 한 잔을 비워냈고, 이번에도 임유환에게 사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이 보였다. "조 씨 어르신, 너무 호탕하십니다!” 모두가 그에게 아첨하기 시작했고, 윤서린은 작은 잔의 와인으로 화답했다.연회가 끝난 뒤, 장문호와 허유나는 즉시 현장을 떠났다.이 당황스럽고 우울한 분위기에 단 1초라도 더 머물 수는 없었다!"임 선생님, 윤서린 씨, 오늘 연회는 만족하시나요?"조재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매우 만족합니다. 환대해 주신 조회장님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윤서린은 붉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하하, 별말씀을요.” 조재용은 웃으며 임유환을 바라보았고, 대마왕의 칭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의 차가운 눈빛이었으며, 그 추위 속에는 희미한 살인의 의도마저도 남아 있었다."꿀꺽.”목젖이 무겁게 굴러갔고, 조재용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설마, 그가 또 오해한 건 아닐까?까닭을 물을 겨를도 없이, 임유환의 무서운 눈빛을 느낀 조재용은 우선은 도망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기…임 선생님, 윤서린 씨. 제가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화장실이 급하네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발에 기름칠을 한 듯 재빨리 룸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가 나가자마자 손님을 맞이
"이 천한 것은 언제 또 왕 사장님과 만난 거야?"허유나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고, 더 나아가 그것은 일종의 질투였다.그녀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는 게 정말 인정하기 싫었다!그녀가 처음에 왕 사장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이 여자, 겉으로는 청순해 보이지만 뒤에서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장문호가 비웃으며 말했다."문호 씨,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너무 큰 손실을 입었는데, 저 자식들이 계속 우쭐하도록 놔둬야 할까요?"허유나는 이를 악물었고, 얼굴은 여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늘 일은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장문호는 눈을 가늘게 떴고, 눈에는 한기가 서렸다."하지만 약간의 조급함은 큰 계획을 망칠 수 있는 법이지. 지금 저 자식들은 왕 사장님과 조재용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아직은 건드릴 수 없어.”"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허유나가 물었다.그녀는 포기할 의지가 없었다!그녀는 이렇게 자신의 각광을 빼앗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잊지 마, 서인아 씨가 모레 S 시에 온다고.” 장문호는 차분하게 웃었다."이게 서인아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허유나는 장문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물론 상관이 있지."장문호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내일모레 픽업 일정은 이미 준비를 다 해놨으니 그때쯤이면 서인아 씨가 확실히 우리 장 씨 집안의 성의를 인정해 줄 거야!” "서인아 씨의 호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조재용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럼 왕 사장님은요? 그 사람의 뒤에는 흑제 어르신이 계신데요!” 허유나는 여전히 걱정했다. "당신은 왕 사장님이 여자 하나 때문에 서인아 씨를 화나게 하고 흑제 어르신에게 도움을 청할 거라고 생각해?” 장문호는 차갑게 웃으며 전략을 세웠다."아뇨!"허유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럼 문제없는 거지! 이제 볼거리는 뒤에 있다고!” 장문호는 눈을
윤서린은 낯빛이 어두워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죄송해요, 시간 없어요.”몇 초 지나지 않아 윤서린은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곧,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이번에는 큰엄마였다.그녀는 전화를 받고 소리쳤다. “큰엄마, 전 그 사람 만나기 싫다고 했잖아요.”“서린아, 얘도 참. 큰엄마도 다 너희 집안 잘 되라고 하는 일이야. 지금 너네 집 사정 몰라서 그래? 태수 이미 우리 집에 와 있어. 나랑 큰아빠도 있으니까 빨리 들어와. 저녁까지 기다리게 하지 마!”“큰엄마, 저......”뚜뚜뚜말을 맺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하...”윤서린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들어가야 한다.“무슨 일이야?”윤서린의 안색을 살피던 임유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우리 큰엄마에요.”윤서린은 곤란해하면서 대답했다. “자꾸 소개팅하라고 그러셔서...”“소개팅?”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네.”윤서린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혹시 임유환이 오해할까 봐 설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집이 요즘 형편이 좋지 못해서 돈 쓸 데가 많거든요. 큰엄마랑 큰아빠가 회사 지켜보겠다고 돈 많은 남자라며 소개해 주셨어요.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애쓰시는 중이고요.”“근데 전 그 사람 별로에요. 그래서 거절했는데도 툭하면 집에 불러들이시고...... 제 말은 듣지도 않으시네요.”“그렇구나.”임유환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너는 그 사람이 더 집적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지?”“네.”윤서린이 세게 끄덕였다.“그러면 내가 같이 가줄게.”임유환이 말했다.“진짜요?”윤서린은 기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하지만 곧 내키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근데... 집에는 누구라고 소개하지...”상대방을 거절하기에 그냥 친구는 역부족이었다.이미 핑계를 생각해 놓은 임유환은 머리를 굴리는 윤서린을 보면서 얘기했다. “너만 괜찮으면 내가 네 남자친구라고 할까?”남자친구?윤서린은 심장이 두근댔다.핑계에 불과하다고는 하
거안 빌라.오래된 일반 빌라였다.윤서린의 집이 바로 여기였다.좁은 복도를 걸으면서 윤서린은 멋쩍게 말했다. “미안해요, 전에 살던 별장을 팔아서 잠시 옛날 집으로 들어왔어요...”“괜찮아.”임유환은 다정하게 웃으며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미간이 찌푸려졌다.요즘 서린이네 집안이 형편이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이 정도로 가난한 줄은 몰랐다.아마도 전에 도와준 걸로는 부족했나 보다.“여기에요.”한창 생각에 잠겨있는데 윤서린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환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눈앞의 302호라 적혀있는 문을 바라봤다.“유환 씨, 저희 큰엄마 성깔 장난 아니셔요. 마음 단단히 먹어요.”윤서린은 본인도 깊게 숨을 들이쉬고 가방에서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서린아. 빨리도 왔다, 이 기집애야!”집에 들어서자마자 예상대로 파마머리에 꽃치마를 입은 정미선이 씩씩거리면서 다가왔다.윤서린 뒤의 임유환을 보고는 세모눈을 치켜뜨고 쏘아붙였다. “서린아, 얘는 또 누구니? 태수가 있는데 외간 남자를 함부로 집에 들여?”이 말에 윤서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말을 왜 이렇게 하시지?하지만 그래도 어른이신지라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큰엄마, 임유환이라고 제 남자친구예요.”“뭐? 남자친구? 큰엄마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정미선은 분에 못 이겨 윤서린을 나무랐다. “태수가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큰엄마, 말씀드렸잖아요. 저 그 사람 안 좋아해요. 그리고, 저도 행복하게 살 자격 있어요.”윤서린이 말했다.“너!”“형수님,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요.”이때 윤서린의 부모님이 인기척을 듣고 말했다.“일단 들어가!”정미선은 양손으로 허리를 짚으면서 눈을 흘겼다.“이런 꼴 보여서 미안해요.”윤서린은 등 뒤의 임유환을 향해 씁쓸하게 웃었다.정미선은 평소에 집에서도 늘 이런 식이었다.“괜찮아.”임유환은 별일 아니라는다는 듯이 웃었다.둘은 신발을 갈아 신고 거실로 들어왔다.“아빠, 엄마.”윤서린은 거실의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서린 씨.”조태수가 먼저 호의를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윤서린은 조태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중하게 인사를 받았다.“윤서린, 너 자꾸 이런 식으로 할래?”윤태호는 또 다그쳤다.“큰아빠, 저는 이 사람 안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전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요!”윤서린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말했다.일단 그녀는 정말로 조태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보다 자기를 팔아 집안을 일으키려는 큰아빠네 식구의 의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서린아, 너!”윤태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윤서린을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태수같이 훌륭하고 너한테 잘해주기까지 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네 남자친구란 놈 꼴을 좀 봐라. 자기 일자리 하나 찾지 못하는 등신 아니냐!”“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유환 씨가 대단한 걸 여러분들이 모를 뿐이에요!”윤서린도 덩달아 언성을 높이면서 임유환을 감싸주었다.다른 사람들이 임유환을 깎아내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대단하다고? 일도 없는 놈이 뭐가 잘나서?”윤태호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우리 태수 좀 봐라!”“큰아빠, 맹세코 진짜예요! 그리고, 태수 씨가 정 그렇게 마음에 드시면 큰아빠 딸한테 소개해 주시지 그러세요?”“난......”윤태호는 말문이 막혔다.늘 나긋하고 다정한 서린이가 오늘 이렇게 과격해져서 자신에게 말대꾸를 할 줄 몰랐다.조태수와 혜정이의 만남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조태수가 너무도 못생겨서 혜정이는 사진만 보고서 싫다 했을 뿐이다. 혜정이를 늘 예뻐했던 친아빠로서 자기 딸을 몰아붙일 수가 없었다!“서린이, 큰아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니?”정미선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큰엄마,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했어요. 하지만 유환 씨를 그렇게 말씀하셔서는 안 됐어요.”윤서린은 자신이 감정적이었음을 깨닫고 언성을 낮췄다.“어른들이 뭐라고 좀 할 수도 있지!”정미선은 까칠하게 말했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