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임유환은 무방비 상태에서 수미에게 물리자, 근육에 통증이 몰려오며 소리를 질렀다. "수미 비서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서님을 구하러 온 건데 왜 날 무는 거예요!" 임유환은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쳤고, 수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 "수미 비서님 개 띠군요, 빨리 놓아요……" "당신이야말로 개 띠겠죠!" 그제야 수미는 눈을 붉히며 입을 뗐다. 임유환은 원래 그녀에게 한 마디 하려 했지만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고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에휴, 됐어요." 임유환은 수미가 겁을 먹을 대로 먹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됐다고요? 난 아직 볼 일이 있어요!" 수미는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임유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수미 비서님,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죠?" 임유환이 무기력하게 말했다."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요? 나쁜 자식, 내가 위험한 걸 보고도 구해주지 않으려 했으면서!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 이 말을 꺼내자 수미는 화를 내며 임유환에게 소리쳤고, 방금 겪은 모든 두려움과 불만을 이런 식으로 털어버리려는 듯했다."그 일 때문이었군요." 임유환이 그제야 반응했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건 다 비서님을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이죠!" 수미는 임유환의 말을 믿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수미 비서님, 생각을 해 보세요. 내가 아까 비서님을 중요하게 대했다면 조 중령님처럼 그 악당에게 당하지 않았겠어요? 그때 가서 악당이 나에게 반격을 할 기회를 줄 것 같나요?"임유환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그의 한 마디 말에 수미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그녀는 임유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이 다 사실인가요?" "물론이죠, 제가 그놈을 자극하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게 모두 그 사람의 허점이 드러날 때를 노리는 것임을 못 알아차렸나요?" 임유환이 이
임유환의 두피가 마비된 느낌이 들었고, 이 문제는 전보다 훨씬 더 컸다. 조명주에게 약효가 완전히 나타난 게 분명했다!"임유환 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수미는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조명주를 바라보며 후끈거리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조 중령님이 어떤 강력한 미약에 중독된 게 틀림없어요. 해독하려면 특수한 침이 필요한데,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일단 돌아가야 합니다.” 임유환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비침만 가지고 다닐 뿐,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되는 호침은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럼 조 중령님은 어떻게 하죠?"수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오고 가는데 적어도 한 시간을 걸릴 텐데, 조명주의 모습을 보아 그녀는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제가 중령님을 데리고 가겠습니다."임유환은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그 또한 시간이 촉박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최대한 빨리 조명주를 해독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현재 상태로 볼 때, 체내의 음욕을 발산하지 못하면 혈관이 터져 죽게 될 것이다. 그는 조명주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집에 데려가는 건가요?"수미는 가슴이 떨려왔고, 임유환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설마 이 기회를 틈타서…""수미 비서님, 지금 상황이 이런데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임유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흥, 남자들은 다 똑같은 걸 어떡해요!"수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상황이 긴급하고 임유환이 확실히 그녀를 살리고 싶어 하는 것을 보자 이내 말했다.“좋아요, 그럼 당신을 한 번만 믿어볼게요." 임유환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곧장 조명주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설마 나를 혼자 여기 두고 가려는 건 아니겠죠?!" 수미는 임유환이 떠나는 것을
B 호텔.임유환은 서둘러 돌아갈 시간이 없었기에 조명주를 가장 가까운 호텔로 데려가 흑제에게 호침을 전달할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에도 조명주의 욕망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해독을 빨리하지 않으면 몸 전체의 혈관이 터질 수도 있었다. 온몸이 뜨거운 조명주를 팔에 안고 침대 위에 눕힌 임유환은 침 주머니를 연 뒤 호침을 꺼냈다. "여기가 어디지...""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너무……너무 괴로워……" 이때, 조명주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방비 상태였던 임유환을 자극해 그의 몸을 살짝 떨리게 했다. 평소에는 호랑이 같은 성격의 조명주가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확실히, 좀 견디기 힘들었다. "후."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유환은 남의 위험을 틈타서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재빨리 정신을 집중한 뒤 손에 든 가느다란 침 여섯 개를 조명주에게 놓아 해독하려 했다.하지만, 조명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매섭게 떨려왔고 좀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조명주가 자신의 옷을 찢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녀는 몸이 나른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대참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드러나는 그녀의 살결은 여전히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쿨럭." 임유환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했고, 서둘러 침을 삼켰다. 젠장, 임유환, 정신 좀 차려! 임유환은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하며 머리를 세게 흔들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다.그런 뒤 그는 다시 집중해서 손에 있는 첫 번째 침을 조명주의 목 바로 아래 지점에 놓았다. "아~"조명주는 목을 치켜들었고, 분명히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 소리는 임유환의 심장을 다시 떨게 만들었다. 젠장, 이 해독을 하다가 내 목숨을 앗아가겠네……임유환은 다시 심호흡을 하고 두 번째 호침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때, 자신의 몸에 이상한 점을 발견한 조명주는 불안한 듯 손을 뻗어 침을 뽑아 땅바닥에 던졌다.그녀의 연
"조 중령님, 저를 정말 가만두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하셨군요.”임유환은 당황해하며 코피를 재빨리 닦아냈다.그러나 이때 조명주의 섬세한 몸놀림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임유환의 마음도 덩달아 격렬하게 흔들렸다.해독을 더 미룬다면 분명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조 중령님."중얼거리던 임유환은 손날을 휘둘러 그녀의 의식을 잃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조명주가 계속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까 정말 두려웠다.단 한 번의 손짓에 조명주는 의식을 잃었고, 그제야 그녀는 몸부림을 멈췄다.임유환은 재빨리 이불을 집어 들고 조명주의 가슴을 덮었고, 눈부시도록 하얀 살결을 비로소 가릴 수 있었다."휴."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임유환은 다시 침을 집어 들고 조명주의 인중, 천돌, 내관, 외관, 양지, 태연의 6개 혈자리에 침을 놓았다. 조명주의 얼굴에 만연하던 홍조는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되었다.임유환은 그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명주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본 그는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조명주가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약효가 매우 강했기에 조명주의 기력이 많이 약해져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인 그가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고, 조명주의 셔츠가 찢어진 걸 생각한 임유환은 흑제에게 전화를 걸어 새 옷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일을 다 처리한 뒤, 그는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는 조명주를 살펴본 그는 살짝 미소를 지은 뒤 조용히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하지만, 방금 전 침대 시트에 코피 한 방울이 떨어진 걸 그는 보지 못했다.이불에 덮여 가려져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시간은 유유히 흘러갔다. 15분 뒤. 곯아떨어진 조명주는 갑자기 속눈썹을 몇 번 깜박이다가 멍하니 잠에서 깨어났다.조명주는 일어났을 때 머리가 무
"에취!"별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던 임유환은 갑자기 재채기를 하더니, 오한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지?" 임유환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 상황을 감지했지만, 살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누가 내 험담을 하고 있나?" 임유환은 중얼거리며 코를 훌쩍였다.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임유환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로 향했다. 그가 휴대폰을 살펴보자 조명주가 5분 전에 자신에게 전화한 것을 보았고, 재빨리 전화를 걸어 그녀의 현재 상태를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응?" 임유환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해독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거칠게 대해서 그 사람을 화나게 한 것 때문에 차단을 한 건가?하지만 이 일 이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 차단하라고 하지 뭐. 임유환은 속으로 생각했다.결국 조명주는 P 시에 있는 중령이었고, 이번에 S 시로 온 것은 밀입국한 외국인 용병들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이 무리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체포되면서 완전히 뿌리 뽑혔기에 조명주는 다시 P 시로 돌아갈 것이다. 이 여자는 앞으로 그 신경질적인 버릇을 고쳤으면 좋겠네. 임유환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그는 조 중령에 대한 인상이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한편, 조명주는 S 시 전체를 뒤져서 임유환을 찾고 있었고, 홧김에 임유환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놈을 찾아내 평생 불구로 살게 만들 수 있었던 건데! 뻔뻔한 자식, 이렇게 추잡한 짓을 저지르다니! 만약 그녀의 부하들이 극구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는 비행기와 탱크를 몰고 S 시로 넘어와 그녀의 순결을 빼앗아 간 놈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임유환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는 흑제가 자신에게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따르릉.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고, 임유환이 확인해 보니 흑제의 전화였다.그가 전화를 받자, 흑제의 공손
"연경이라고?"임유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에는 범위가 확 줄어들었다. "맞습니다, 주인님." 흑제가 대답했다. "다른 단서는 없는 건가?""네, 이게 알아낸 정보의 전부입니다." "알겠어. 이 정보를 서인아에게 전해줘. 그 사림이 이걸 알게 되면 우리보다 배후에 있는 고용주의 신원들 더 잘 알 것 같으니까 말이야." "네, 주인님. 사람을 보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제프 그 자식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남겨 두나요?""응, 남겨 두면 나중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그래."임유환은 전화를 끊었다.만약 J 여사라는 사람이 제프와 통화를 했을 때 음성 변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제프는 상대방의 목소리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확실히 어떤 돌파구가 될지도 몰랐다. 띠링. 임유환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윤서린이 보낸 메시지였다. "유환 씨, 자요?" 마지막에는 귀여운 물음표 표정의 이모티콘이 있었고, 임유환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직.""저기……할 말이 있어요."윤서린은 약간 쑥스러운 듯 말했다. "무슨 일이야?"임유환은 약간 놀랐다."그게……어젯밤에 저희 엄마가 또 저한테 잔소리를 하시면서 요즘 우리 사이가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또 언제 다시 밥을 먹으러 우리 집에 올 거냐고 물으셨어요……" 윤서린은 메시지를 보내면서 수치심에 베개에 머리를 파묻을 뻔했다. 임유환은 윤서린의 수줍은 마음을 알지 못했고, 메시지 내용을 보자 주저 없이 대답했다."그럼 내일 저녁에 어때? 너랑 부모님 모두 시간이 될까?" "물론이죠!" 윤서린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로 하지. 그런데 아주머니에게 자꾸 밥을 차리게 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네. 내일 내가 밖에 나가서 대접할게, 요즘 S 시에 새로 생긴 Y 식당이 인기라던데, 거기 가보자." 임유환이 말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부모
같은 시각, 연경. 높이 100미터 건물의 부회장 사무실 안. 한 중년 여성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사무실의 넓은 창문을 바라보며 소파 의자에 기대어 암호 전화를 받고 있다. "뭐야, 암살에 실패했다고?" "예, 부회장님. 제프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부회장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인력을 보내도록 해." 중년 여성의 말투는 매우 확고했다."하지만 부회장님, 이번 암살의 실패로 인해 서인아 아가씨의 경계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계속 일을 진행한다면 신원이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그러니까 더욱 속도를 내야지! 이건 서인아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중년 여성이 거칠게 말했다.지금이 서인아 주변의 보안이 가장 취약할 때였고, 그녀가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면 더 이상 기회는 없어진다. 그녀는 절대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더욱이 서인아와 정우빈과의 혼약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됐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추가 인력을 보내겠습니다."상대방이 대답했다."그래.""다음번에는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해! 아무리 많은 돈을 쓰더라도 최고의 킬러를 찾아와서 서인아를 제거하도록 해!" "네, 부회장님!" ...다음날 정오.S 시, Y 식당 안. 임유환과 윤서린은 약속된 시간에 식당 입구에서 만났고, 이곳은 S 시에서 가장 유명한 스카이뷰 레스토랑이었으며 글로벌 인터내셔널 빌딩 100층에 위치해 있었다.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S 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어 유명 인사들도 많이 찾는 곳이었고, 한 끼 식사는 최소 500만 원부터 시작됐다. "유환 씨, 여기요!"윤서린은 임유환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었고, 윤동호와 김선이 단정한 옷을 입은 채 윤서린 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임유환이 처음으로 대접하는 날이었고, Y 식당처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왔으니 당연히 격식을 갖춰 입어야 했다. "서린아!" 임유환도 윤서린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미소를
"서린아, 이 요리 어때? 한번 먹어볼래?"임유환은 메뉴에서 ‘금옥만선’이라는 요리를 가리켰고,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서린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었고,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임유환은 윤서린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고, 멍하니 있는 윤서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서린아, 몸이 안 좋아?" "네?" 그제야 윤서린은 정신을 차렸고, 임유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다."아뇨……그냥 순간 프로젝트 일이 생각이 나서요……" 그녀는 다급하게 핑계를 댔다.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거야?" 임유환이 물었다."아니에요, 그냥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윤서린의 눈동자가 떨려왔고, 아무래도 그녀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임유환은 단순히 그녀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 부드럽게 위로했다."서린아, 약간의 스트레스는 괜찮지만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좋지 않아.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까 일단 먼저 밥부터 먹자. 배부르게 먹고 내가 같이 생각해 줄게.""알겠어요." 윤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이 요리 어때?" 임유환은 방금 전 대화를 이어가며 메뉴에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네, 맛있어 보이네요." 윤서린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이거로 할게." 임유환이 대답했다. "좋아요." 윤서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하지만 임유환은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녀를 잘 아는 윤동호와 김선만이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윤서린은 매우 부끄러워했고, 이성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녀는 임유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윤동호 부부의 눈에 매우 훌륭했고, 빨리 그들이 결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때, VIP 구역 앞에 갑자기 냉혹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문호 씨, 요즘 우리가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죠, 어딜 가도 그 간악한 두 커플이랑 엮이니 원!" 윤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