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별장에서 샤워를 하고 있던 임유환은 갑자기 재채기를 하더니, 오한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지?" 임유환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 상황을 감지했지만, 살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누가 내 험담을 하고 있나?" 임유환은 중얼거리며 코를 훌쩍였다.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임유환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로 향했다. 그가 휴대폰을 살펴보자 조명주가 5분 전에 자신에게 전화한 것을 보았고, 재빨리 전화를 걸어 그녀의 현재 상태를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응?" 임유환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해독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거칠게 대해서 그 사람을 화나게 한 것 때문에 차단을 한 건가?하지만 이 일 이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 차단하라고 하지 뭐. 임유환은 속으로 생각했다.결국 조명주는 P 시에 있는 중령이었고, 이번에 S 시로 온 것은 밀입국한 외국인 용병들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이 무리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체포되면서 완전히 뿌리 뽑혔기에 조명주는 다시 P 시로 돌아갈 것이다. 이 여자는 앞으로 그 신경질적인 버릇을 고쳤으면 좋겠네. 임유환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그는 조 중령에 대한 인상이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한편, 조명주는 S 시 전체를 뒤져서 임유환을 찾고 있었고, 홧김에 임유환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놈을 찾아내 평생 불구로 살게 만들 수 있었던 건데! 뻔뻔한 자식, 이렇게 추잡한 짓을 저지르다니! 만약 그녀의 부하들이 극구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는 비행기와 탱크를 몰고 S 시로 넘어와 그녀의 순결을 빼앗아 간 놈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임유환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는 흑제가 자신에게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따르릉.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고, 임유환이 확인해 보니 흑제의 전화였다.그가 전화를 받자, 흑제의 공손
"연경이라고?"임유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에는 범위가 확 줄어들었다. "맞습니다, 주인님." 흑제가 대답했다. "다른 단서는 없는 건가?""네, 이게 알아낸 정보의 전부입니다." "알겠어. 이 정보를 서인아에게 전해줘. 그 사림이 이걸 알게 되면 우리보다 배후에 있는 고용주의 신원들 더 잘 알 것 같으니까 말이야." "네, 주인님. 사람을 보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제프 그 자식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남겨 두나요?""응, 남겨 두면 나중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그래."임유환은 전화를 끊었다.만약 J 여사라는 사람이 제프와 통화를 했을 때 음성 변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제프는 상대방의 목소리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확실히 어떤 돌파구가 될지도 몰랐다. 띠링. 임유환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윤서린이 보낸 메시지였다. "유환 씨, 자요?" 마지막에는 귀여운 물음표 표정의 이모티콘이 있었고, 임유환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직.""저기……할 말이 있어요."윤서린은 약간 쑥스러운 듯 말했다. "무슨 일이야?"임유환은 약간 놀랐다."그게……어젯밤에 저희 엄마가 또 저한테 잔소리를 하시면서 요즘 우리 사이가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또 언제 다시 밥을 먹으러 우리 집에 올 거냐고 물으셨어요……" 윤서린은 메시지를 보내면서 수치심에 베개에 머리를 파묻을 뻔했다. 임유환은 윤서린의 수줍은 마음을 알지 못했고, 메시지 내용을 보자 주저 없이 대답했다."그럼 내일 저녁에 어때? 너랑 부모님 모두 시간이 될까?" "물론이죠!" 윤서린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로 하지. 그런데 아주머니에게 자꾸 밥을 차리게 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네. 내일 내가 밖에 나가서 대접할게, 요즘 S 시에 새로 생긴 Y 식당이 인기라던데, 거기 가보자." 임유환이 말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부모
같은 시각, 연경. 높이 100미터 건물의 부회장 사무실 안. 한 중년 여성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사무실의 넓은 창문을 바라보며 소파 의자에 기대어 암호 전화를 받고 있다. "뭐야, 암살에 실패했다고?" "예, 부회장님. 제프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부회장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인력을 보내도록 해." 중년 여성의 말투는 매우 확고했다."하지만 부회장님, 이번 암살의 실패로 인해 서인아 아가씨의 경계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계속 일을 진행한다면 신원이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그러니까 더욱 속도를 내야지! 이건 서인아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중년 여성이 거칠게 말했다.지금이 서인아 주변의 보안이 가장 취약할 때였고, 그녀가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면 더 이상 기회는 없어진다. 그녀는 절대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더욱이 서인아와 정우빈과의 혼약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됐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추가 인력을 보내겠습니다."상대방이 대답했다."그래.""다음번에는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해! 아무리 많은 돈을 쓰더라도 최고의 킬러를 찾아와서 서인아를 제거하도록 해!" "네, 부회장님!" ...다음날 정오.S 시, Y 식당 안. 임유환과 윤서린은 약속된 시간에 식당 입구에서 만났고, 이곳은 S 시에서 가장 유명한 스카이뷰 레스토랑이었으며 글로벌 인터내셔널 빌딩 100층에 위치해 있었다.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S 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어 유명 인사들도 많이 찾는 곳이었고, 한 끼 식사는 최소 500만 원부터 시작됐다. "유환 씨, 여기요!"윤서린은 임유환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었고, 윤동호와 김선이 단정한 옷을 입은 채 윤서린 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임유환이 처음으로 대접하는 날이었고, Y 식당처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왔으니 당연히 격식을 갖춰 입어야 했다. "서린아!" 임유환도 윤서린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미소를
"서린아, 이 요리 어때? 한번 먹어볼래?"임유환은 메뉴에서 ‘금옥만선’이라는 요리를 가리켰고,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서린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었고,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임유환은 윤서린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고, 멍하니 있는 윤서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서린아, 몸이 안 좋아?" "네?" 그제야 윤서린은 정신을 차렸고, 임유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다."아뇨……그냥 순간 프로젝트 일이 생각이 나서요……" 그녀는 다급하게 핑계를 댔다.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거야?" 임유환이 물었다."아니에요, 그냥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윤서린의 눈동자가 떨려왔고, 아무래도 그녀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임유환은 단순히 그녀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 부드럽게 위로했다."서린아, 약간의 스트레스는 괜찮지만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좋지 않아.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까 일단 먼저 밥부터 먹자. 배부르게 먹고 내가 같이 생각해 줄게.""알겠어요." 윤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이 요리 어때?" 임유환은 방금 전 대화를 이어가며 메뉴에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네, 맛있어 보이네요." 윤서린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이거로 할게." 임유환이 대답했다. "좋아요." 윤서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하지만 임유환은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녀를 잘 아는 윤동호와 김선만이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윤서린은 매우 부끄러워했고, 이성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녀는 임유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윤동호 부부의 눈에 매우 훌륭했고, 빨리 그들이 결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때, VIP 구역 앞에 갑자기 냉혹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문호 씨, 요즘 우리가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죠, 어딜 가도 그 간악한 두 커플이랑 엮이니 원!" 윤
"엄마, 아빠, 그게……" 윤서린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쨌든 이 일은 말하자면 매우 길었다. "두 분 설마 윤서린 이 계집애가 아직 임유환의 신분을 말하지 않은 거 아니겠죠?" 허미숙은 윤서린의 반응을 보고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고, 윤동호와 김선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설마 서린이가 자신들에게 뭔가 다른 걸 숨기고 있는 걸까? 허미숙은 두 사람의 반응을 보자, 비열한 목소리로 말했다."윤서린 이 계집애가 사실을 말하기 두려워서 그러는 것 같으니, 제가 대신 말해드리죠." "솔직히 다 말씀드리자면, 지금 맞은편에 계신 분은 제 딸의 전 남편이에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매우 게으르고 바람을 피워서 제 딸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죠." "이제는 돌아갈 집도 없으니 또 당신들의 딸을 속여서 윤 씨 가문에 빌붙으려는 속셈인 거겠죠." "바람이라니요? 허유나의 전 편이라고?!" 두 부부는 이 말을 듣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서린이가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 허미숙은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았고, 윤동호와 그의 아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아빠, 저 사람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지 마세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윤서린은 서둘러 임유환을 대신해서 해명했고, 허미숙은 이를 보고 냉소했다."서린아, 그 자식을 변호할 필요 없어. 임유환이 우리 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먹고 마셨는데, 내가 모를 리 있겠니?""이 계집애야, 말 잘 듣던 딸이 어떻게 이런 사람한테 속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부모님도 속이고 말이야." "아 참, 또 하나 깜빡하고 말을 안 했네." "서린이 부모님, 그 녀석은 오늘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조명주 중령님에게 끌려갔어요. 지금은 나왔지만 아마 또 왕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겠죠.""끌려갔다고요?" 두 부부는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아직도 모르고 계셨어요? 하긴, 이런 일을 말할 면목이 없겠죠." 말을 하며 허미숙은
윤동호와 그의 아내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고, 윤서린의 마음도 불안해져만 갔다. 훗. 허미숙의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임유환 이 자식이 정말 인정을 하다니. "유환 씨, 그럼 허미숙 아주머니가 방금 말한 유환 씨의 바람에 관한 것도 사실인가요?" 윤동호 부부가 심호흡을 하며 물었고, 이것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아저씨, 아주머니, 이 일은 전적으로 그들이 저를 모함하는 겁니다. 이혼은 확실히 바람이 이유였지만, 바람을 피운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임유환이 사실대로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설마 내 딸이 바람이라도 피웠다는 말이야?!"임유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허미숙의 얼굴이 붉어졌다. 확실히 이런 일을 입 밖에 내는 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가 바람을 피웠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임유환은 허미숙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허유나가 결혼 중에 바람을 피운 이유 중 절반은 가난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늙은 여자의 꼬드김 때문이었다."너......"허미숙은 임유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 말문이 막혔고, 다시 윤동호 부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윤 씨 어르신, 윤 씨 부인, 절대 이 자식의 겉모습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조 중령님에게 잡혀간 사람이 무슨 대단한 인품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러자 윤동호 부부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며 물었다. "유환 씨, 조 중령님의 일은 어떻게 된 거죠?" "아저씨, 아주머니, 조 중령님께서 저를 찾아온 건 정보를 얻고자 함이었고, 만약 제가 정말 법을 어기는 일을 저질렀다면 저는 지금 이곳에 있지 않고 진작에 감옥에 들어갔을 겁니다." 임유환은 침착하게 대답했다."그런 거였군." 윤동호 부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를 본 허미숙은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윤 씨 어르신, 윤 씨 부인, 절대 저 자식의 거짓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저 자식이 가장 잘하는 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라고요! 게다가 방금 전 윗사람에게 대드는 인성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서린아 이 요리 어때? 한번 먹어볼래?"임유환은 메뉴를 집어 들고는 메뉴에 있는 ‘금지옥엽’이라는 요리를 가리키며 윤서린에게 물었다.윤서린은 가격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무려 80만 원이나 하는 요리였다! "괜찮아요 유환 씨, 너무 비싸요." 윤서린은 조용히 임유환에게 말했고, 이렇게 비싼 요리를 먹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이 말을 들은 임유환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때 허유나가 경멸 가득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무 비싸다고? 못 먹을 거면 애초에 이런 데를 오지 말았어야지." 윤서린은 넋을 잃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알던 허유나가 맞는 걸까?정말 갈수록 냉혹해지는군…… 윤 씨 부부는 이 말을 듣자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말했다. "허유나,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지?" 방금 전 허유나가 자신들의 딸과 임유환이 불륜 커플이라고 욕했을 때 그들은 이미 참고 있었는데, 어째서 점점 더 말이 심해지는 걸까? "내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건가요?" 윤 씨 부부의 비난에 허유나는 역겨운 표정을 하고 말했다."이런 곳은 원래 비싼 돈을 들여서 오는 건데, 돈을 쓰지도 않고 VIP 자리까지 차지를 하고 있으니 볼 일도 안 보면서 화장실을 차지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허유나, 왜 말을 그렇게 하니? 너와 우리 서린이는 예전에 절친이었잖아?" 김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절친이요? 나랑 윤서린이?" 허유나가 비웃었다."너......"김선은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졌다."허유나, 비록 우리 서린이가 예전에 너랑 갈등을 겪었다고 해서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윤동호의 성격은 매우 좋았지만, 아내와 딸이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하, 당신 딸이 나 몰래 전 남편과 바람을 피웠는데 내가 몇 마디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정말 다들 똑같이 이기적이네요!" 허유나가 원망하며 말했고, 그녀는 속으로 윤서린을 증오했다. 윤서린은 자신의 전 남편과 함께 원래 그녀와
"네, 알겠습니다." 임유환은 웨이터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허유나를 바라봤다.허유나는 임유환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웨이터를 불러서 날 겁주려고? 임유환, 당신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 "보시다시피 이 사람은 들어왔을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큰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임유환은 허유나를 무시하고 미소를 지으며 웨이터에게 계속 질문했다. "레스토랑 규정에 따라 그녀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거나, 이곳을 떠나라고 해야겠죠?" "맞습니다, 임 선생님." 웨이터가 말했다.만약 평범한 손님이라면 그들도 그냥 눈감아줄 것이었고, 어쨌든 이곳에 와서 소비를 할 수 있는 손님이라면 모두 지위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장님이 특별히 부탁한 손님이지 않은가! "왜요, 당신 같은 웨이터가 지금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는 거예요?" 상황을 보던 허유나는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임유환을 바라보며 얼굴의 비아냥거림이 더욱 짙어졌다."임유환, 넌 그렇게 항상 허풍을 떨 줄 밖에 모르지. 하지만 이번에는 대상을 잘못 짚었다는 걸 분명히 알려줄게!" "잘 들어, 하찮은 웨이터가 우리를 쫓아낼 자격이 없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매니저가 와도 소용없을 거야!" "그래?" 임유환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번졌다. "자신감이 있나 보지?" 허유나는 임유환을 바라보며 말했고, 비아냥거림은 더욱 심해졌다."내가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이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문호 씨 아버지의 절친이라고!" "그러니까 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너야!" 허유나는 그 말을 마친 후 바로 옆에 있는 장문호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문호 씨, 이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너무 거슬리게 해요. 매니저랑 전화를 해서 저 사람들을 쫓아낼 수는 없을까요?" "하하, 당연히 가능하지." 장문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또한 오랫동안 임유환을 싫어했지만 좀처럼 그에게 반격할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 자식이 죽으려고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