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선생님은 왜 진작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해 주지 않으신 걸까?’ ‘H선생님의 눈에 들 수 있다니, 그 여자분은 분명 큰 행운을 가진 분이실 거야.’문득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상언이 떠오른 이서가 눈물을 닦았다.‘맞다, 사모님께서 이 선생님과 H선생님은 오래된 친구라고 하셨었잖아. 이 선생님은 틀림없이 H선생님의 모든 걸 알고 계실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이서가 지체 없이 문을 열고 나와 옆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서재에 있던 상언은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노크 소리를 들은 그가 하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혼자 있고 싶어요.” 놀란 이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녀는 H선생님을 위하여 입술을 깨물었고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이 선생님, 저예요.” 이서의 목소리를 들은 상언이 어리둥절하여 얼굴의 초조함을 접고 문을 열었다.“이서 씨? 무슨 일 있어요?” 여태까지는 항상 상언이 주동적으로 이서를 찾았었다. 물론 이렇게 한 것은 임하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여 가능한 한 빨리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이서는 하나에 관한 일은 자신이 아는 것이라면 모두 상언에게 알려주었다. 매번 하나가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간통 현장을 잡으러 다녀야만 했다는 것을 들은 상언은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하나 씨를 구하고 싶어.’‘이전에는 하나 씨가 안정감이 부족한 이유가 아버지의 일탈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의 행동도 하나 씨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줬을 것 같아.’ “그게... H선생님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상언이 경계하며 이서를 바라보았다.“또 뭐가 알고 싶으신 거예요?” 이서가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단지 H선생님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니까요.”이서의 말을 들은 상언은 이유 없는 화가 치미는 듯했다.“어디 목숨만 내놓겠어요? 제가 보기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지독한 사랑을 하
이미 초대장을 열어버린 이서의 눈에 하이먼 스웨이가 정성을 다하여 붓글씨로 쓴 자신의 이름이 보였다. 그것은 이서의 이목을 확 끌었다. 상언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후였다. 그가 정신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을 때, 이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었다. 이서가 호기심이 만연한 눈빛으로 상언에게 물었다.“저한테 온 초대장인데, 왜 제게 전해주지 않으신 거예요? 그리고...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이 누구예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놀란 상언이 이서를 바라보았다. 상언은 며칠 전 유람선에서 심가은이 하이먼 스웨이의 이야기를 꺼내어, 이서가 기절했던 일이 눈에 선한 듯했다. 그러나 눈앞의 이서는 하이먼 스웨이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와 대화를 나누려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상언은 다소 격동되었다.“이서 씨, 잠시만요. 먼저 방에 돌아가 계세요. 제...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통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다급한 상언의 모습을 본 이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서가 떠나자, 상언이 곧바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두 사람이 말다툼으로 인한 냉전 상태라는 것을 완전히 잊은 듯했다. “정말 놀랄 일이야. 방금 이서 씨가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이름을 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상언이 컴퓨터 책상을 다가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지금 바로 마이클 천 선생님의 제자 분한테 전화를 걸어봐야 할 것 같아.” 수화기 너머의 지환이 긴장한 듯 입을 열었다.[그래, 알겠어.]상언은 머지않아 마이클 천의 제자와 연락이 닿았다. 상언의 묘사를 들은 마이클 천의 제자가 말했다.[지극히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많은 기억상실 환자분들이 겪는 단계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자면, 사람의 기억은 커다란 항아리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항아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비
“맞아요.”“그럼 제가 H선생님과 어떤 사이였는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죠?” “네.”상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가 입술을 오므리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H선생님의 애인이 누군지도, H선생님이 왜 이렇게까지 나를 도우려 하시는지도 물어볼 수 없겠어.’이서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상언이 마음속으로 가볍게 탄식했다.‘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건, 너무도 잔인한 일이야.’ 깊이 깨달은 그가 이서를 더욱 동정하고 있었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초대에 응하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이서가 되물었다.상언이 미소를 지었다.“물론이죠.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으니,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을 뵈러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초대에 응하고 싶어요.”‘어차피 나는 매일 하는 일도 없잖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질 뿐이니까 차라리 할 일을 찾는 게 낫겠어.’그녀가 초대장의 날짜를 확인하였다.[17일.]‘내일이네.’“그래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네, 감사합니다.”상언과의 대화를 마친 이서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상언이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고택으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하이먼 스웨이가 아닌 심가은이었다. 초대장을 보낸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서가 아무런 답장을 보내오지 않자, 가은은 조급해하던 참이었다. 하루 종일 이씨 가문의 소식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서가 내일 하이먼 스웨이의 고택을 방문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심가은이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준비해 둘게요.]수화기 너머의 열정 넘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상언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하인일 거야.’ 전화를 끊은 심가은은 이 좋은 소식을 되새기느라 위층에서 내려오는 하이먼 스웨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가은아,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가은이를 다시 만난 이후로, 저렇게 기뻐하
심가은이 빠르게 잔꾀를 굴렸다.“엄마,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이서 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엄마, 저는 엄마가 이서 씨를 좋아하시는 게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서 씨와의 만남을 특히 기대하고 있는 거고요.” 하이먼 스웨이는 심가은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그럼 됐어. 엄마는 가은이가 이서와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구나. 이서는 또래보다 식견과 경력이 풍부한 아이거든. 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가은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요, 엄마, 우선 손님맞이 준비부터 할게요.”가은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은이가 차츰 철이 드는구나.’하이먼 스웨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얘야, 엄마는 네가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구나.’ 주방에 들어간 가은이 요리사에게 설명을 마치고, 홀로 주방의 뒷문으로 나와 변태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획대로 하죠.”수화기 너머에서 변태남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은은 즉시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이서가 고문당해 죽는 장면으로 가득한 듯했다. ‘윤이서가 죽기만 하면 지엽 씨는 분명 의기소침해질 거야. 그때가 되면 나도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소씨 가문과의 결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그 여자의 말이 맞아, 지엽 씨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뭐 어때? 어차피 마지막에 지엽 씨의 곁에 있는 사람은 내가 될 텐데!’ ...이튿날 이른 아침, 이서가 일어났다.배미희는 명문가인 하이먼 스웨이의 고택에 가기 위해서는 고급스러운 옷이 필요하다며 이서에게 옷을 한 벌 사다 주었다. ‘옷도 사주시고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고택까지 데려다주려 하시다니.’ 옷의 가격을 알게 된 이서는 놀라서 나자빠질 뻔했다. ‘치마 한 벌에 60억?!’ 그녀가 정중하게 고가의 선물을 사양하려 했으나, 배미희가 말했다.“60억이면 별거 아니에요. 그동안 이서 씨가 우리 집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니까 아무 말
이상언이 말했다.“엄마가 어린 세대의 사람과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그러게, 이서는 이상한 마력이 있어서 왜인지 계속 다가가고 싶단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딸과는 정말 달라.”심가은을 떠올린 배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거들먹거리는 걸로도 모자라, 겸손하지 못하고, 교양까지 없더구나. 아, 전에 어떤 대단한 가문의 딸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쩜 그럴 수가 있니?” 상언은 가은에 관한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기에, 배미희가 수다를 떨도록 내버려둔 채, 2층으로 올라갔다.같은 시각, 하이먼 스웨이의 고택으로 향하는 이서는 호기심이 가득한 아기처럼 차장에 붙어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그녀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을 만나도 이런 느낌일까?’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바로 이때, 차량이 점점 외진 곳을 향해 들어갔다. 불안감을 느낀 그녀가 운전기사에게 물었다.“기사님, 왜 점점 더 외진 곳으로 가시는 거예요?” 운전기사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아, 이곳의 길은 모두 이렇습니다. 거주하는 사람이 적은 탓이죠.”“하지만...”이서가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거리에 아무도 없는데요...” 운전기사가 웃으며 말했다.“이서 씨, 안심하세요. 이 길은 제가 20년간 운전해 온 길입니다. 올해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풍채의 사람이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망치를 들어 올린 그는 단번에 차량의 앞 유리를 깨뜨렸으며, 또 한 번 손을 들어 운전기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시뻘건 선혈이 차 안에 흩뿌려졌다. 자극적인 피비린내를 맡은 이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몇 초 후, 망치를 든 그 남자가 운전석에서 운전기사를 끌어냈고, 바닥에 버리듯이 내팽개쳤다. 운전석에 앉은 그 남자가 뒷좌석의 이서를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누..
지환이 이서를 안고 나오자, 한 무리의 부하들이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들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차 대기시켜요!”부하 직원 중 대장 격인 안토니오가 즉시 반응하며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차를 대기시켜라, 오버.”이내 검은 산타나 한 대가 나타났고, 지환은 즉시 이서를 안고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그가 말한 주소는 마이클 천의 제자의 심리 진료실이었다. 멍하니 있던 운전기사는 급히 차를 몰고 심리 진료실로 향했다. 운전기사는 수시로 고개를 들어 뒷좌석에 앉은 채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한 지환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아는 대표님이 맞는 거야?’차량이 마침내 심리 진료실에 다다랐다. 이서를 안고 심리 진료실에 들어선 지환은 마이클 천을 마주했다. 약간의 긴장이 풀린 지환이 물었다.“언제 오신 겁니까?” “오늘 아침이요.”마이클 천이 지환의 품에 안긴 창백한 이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누군가의 습격에 자극을 좀 받았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신 겁니까? 만약 다친 곳이 있다면 먼저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제가 이미 확인했거든요.” 지환이 다급하게 말했다.“마침 선생님께서 오셔서 다행입니다. 얼른 이서를 좀...” 지환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극받은 이서에게 어떠한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마이클 천이 뒤돌아서서 간호사 몇 명을 불렀다.“지금 바로 이동식 침대를 준비하고, 이서 아가씨를 검사실로 모시도록 하세요!” 간호사 몇 명이 즉시 이동식 침대를 가지고 돌아왔다.“선생님, 여자분을 얼른 침대로 옮겨 주시겠어요?” 지환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비로움을 뽐내는 사람이었기에, 이 간호사들은 지환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었다.하물며 지금 지환의 얼굴에는 가면이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간호사
마이클 천이 떠난 후, 천천히 몸을 웅크린 지환이 눈물에 젖은 이서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말했다. “이서야, 나 여기 있어.”가볍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는 어둠을 뚫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처럼 따스했다. 이서의 떨리던 속눈썹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이내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눈을 떴다. 지환을 마주한 그녀가 눈물을 글썽였다. “H선생님.”“괜찮아.”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이서를 위로했다.“여기는 안전해.”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던 이서가 입술을 움찔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 물었다.“아까 그 사람은 대체... 누구길래...”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서의 몸이 다시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두려워할 거 없어, 그 사람은 이미 붙잡혔으니까. 그 일에 관해서는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철저히 조사받게 할 거야.” 이서는 지환의 말을 듣고서야 두려움을 거둘 수 있었으며, 그제야 자신이 지환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H선생님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어.’‘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내 마음은...’ 이서가 손을 움츠렸다.“죄송해요, 저는 그저...” 고개를 숙여 멀어지는 이서의 손을 본 지환은 마음속의 무언가가 뽑혀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서운한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또 죄송하다는 거야...” “그거야...”이서가 몸을 뒤로 움츠러들었다.“H선생님... 마음속에 이미 다른 분을 품고 계시다는 거 잘 알아요. 우리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지환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내가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람은... 바로 너였어.’하지만 지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가 말했다.“그 사람... 그 사람은 우리의 사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서는 다소 화가 난 듯했다.“H선생님,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마이클 천이 지환을 바라보았다. ‘대표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아주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이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 이서 아가씨의 곁에 머물 수 없었던 대표님께서는 아주 고통스러워하시면서 매일 멀리서 이서 아가씨를 지켜만 보셨다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어.’ ‘그런데 이젠 가면을 쓰고 이서 아가씨의 앞에 나타날 수 있게 되셨잖아.’ ‘게다가 더욱 오래 이서 아가씨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는데, 왜 대표님께서는 뛸 듯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거지?’“이서는 제가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가 있다는 것만 알지, 그 여자가 본인이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어요. 그런데도 저는... 이서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어요.” 털썩 의자에 앉은 지환은 대단히 허탈한 듯했다. 마이클 천은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설마...”‘이제야 거리낌 없이 이서 아가씨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는데, 오해를 하신 이서 아가씨께서 대표님을 밀어내는 상황이구나.’ 마이클 천은 한동안 지환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면 무슨 소용이야, 그토록 원하는 사랑은 얻지 못하고 있는걸.’...하이먼 스웨이의 별채 안.온종일 기다려도 이서가 나타나지 않자, 하이먼 스웨이는 다소 조급해졌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유유히 사과를 깎아 먹는 가은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은아,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씨 가문에 연락해 보는 게 어떨까?” 입을 크게 벌린 가은이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그녀는 그 사과가 이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은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아닐 거예요. 단지 오는 길이 좀 멀어서 지체된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잖니, 안 되겠다, 나라도 이씨 가문에 전화해 봐야겠어.”하이먼 스웨이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배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은은 하이먼 스웨이의 뒷모습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윤이서는 절대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