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기 쪽에서 아주 잽싸게 움직여 강일헌이 맡고 있는 지사의 장부에서 문제를 발견했다.성연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이 정보들을 익명으로 무진에게 보냈다.출처가 불명확한 정보에 대해 무진은 경계심을 가진 채 바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한 둘째, 셋째 일가를 처벌할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무진은 눈 앞의 정보를 노려보았다.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강일헌을 처리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무진이 손에 들어온 정보를 손건호에게 보여주고는 사실 여부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정보를 본 손건호가 눈살을 찌푸렸다.“보스, 혹시 둘째, 셋째 일가에서 판 함정이 아닐까요?”순전히 호의로 자신들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어쨌든 이 정보 자체는 둘째, 셋째 일가를 압박하기에 충분한 이용 가치가 있었다.“먼저 가서 알아봐.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무진도 속으로 의심스러웠지만, 이 정보를 마냥 버릴 수도 없었다.미처 손을 쓸 겨를이 없던 차에 누군가 정보를 보내왔다. 기껍게 받지 않을 건 뭐란 말인가?“알겠습니다.” 무진의 지시를 받은 손건호가 바로 조사를 위해 자리를 떴다.그리고 조사 결과, 그 정보의 내용이 사실임이 드러났다.손건호는 눈 앞에서 보고한 데이터를 보면서도 다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둘째, 셋째 일가의 간이 커도 너무 크다.저들은 하나같이 WS 그룹을 자신들의 돈세탁 도구로 삼았다.만약 진짜 강상철, 강상규가 관리했다면, 그 결과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보스, 이 강일헌은 지사의 사업 항목에서 적어도 4억원을 횡령했습니다. 그 안의 빈 곳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해 두었지만, 자세히 조사해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손건호가 무진 앞에서 보고했다.무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과연 둘째, 셋째 일가야. 제대로 건실한 사람이 하나도 없군.”예전에 무진은 평소 둘째, 셋째 일가 쪽과 다투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만약 진짜 다투기 시작한다면, 둘째, 셋째 일가의 일들은 무조건 드러
강일헌이 착복한 40억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무진은 이 기회를 빌려서 강명재가 머무는 별장으로 직접 찾아왔다.그러나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 하던 무진은 저택 주위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에 의해 저지당했다.처음 이곳에 온 탓에 입구에서 제지를 받은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경비원이 저택 내에 보고하기를 끝까지 기다렸다.경비원의 보고를 들은 강일헌은 처음에 자신의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뭐라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강무진인 게 확실해?”지금 이 곳은 자신의 개인 별장이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그런데 강무진은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찾아온 거지?’‘게다가 뭐 때문에 이런 수고까지 해가면서 나를 찾는 거지?’“확실합니다. 어떻게, 들여보낼까요?” 경비원이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그 시각, 공교롭게 강명재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강일헌이 아버지 강명재를 쳐다보았다.“아버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강명재가 입꼬리를 당겨 올리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들어오겠다면 오라 해. 내가 여기에 있는데, 설마 너를 잡아 먹겠니?”졸아든 모습을 보이는 아들이 참 한심하게 생각되는 강명재다.보아하니 강무진이 회사에서 집안 사람들을 하도 많이 쳐내다 보니 그 영향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지금도 아들 강일헌이 강무진을 무서워하고 있는 게 보였다.‘내 아들이 강무진 그 놈을 무서워한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앞으로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할 아들이 이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변변찮은 놈이라고 생각하며 강명재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그 많은 돈을 들여 키워 놓았음에도 아무런 패기도 없이 약해 빠진 모습이 정말 화나게 했다.늘 아버지 강명재를 겁내던 강일헌은 그 순간 강명재의 눈동자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선 경비원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가, 가, 빨리 가서 강무진을 데리고 와.”경비원이 밖으로 나간 후에 강일헌은 강명재의 비위
무진의 질문 자체는 좋았지만, 강일헌 스스로 이미 대답을 준비해 두었던 부분들이었다.그러다 갑자기 무진이 말했다.“최근에 네가 맡고 있는 계열사의 회계장부를 다시 살펴보았더니, 40억이 비어.”무진의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강일헌이 당황하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그러나 강일헌의 곁에 앉은 강명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그저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계산이 틀린 거 아니냐? 만약 진짜 결손 부분이 있다면 내 돈으로 메꿔 넣으면 되지, 무슨 문제라고.”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강명재가 무진의 말을 받았다.40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대단히 무성의한 반응에 무진이 눈썹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회사 전체 재무에까지 관련되는 문제입니다.”크고 작은 계열사들로 이루어진 WS그룹.계열사에서 처리하는 모든 일이 WS그룹 본사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만약 무슨 부정이라도 저지른다면 바로 WS그룹에 영향을 주게 될 게 자명하다.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무진은 아주 엄하게 관리하고 있었다.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듯한 강명재의 태도는 무진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자신이 직접 방문해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 한마디 말로 대충 끝내 버리려 하다니.‘설마 이 횡령 건에 강명재도 관여했나? 그래서 자기 돈으로 메꿔 넣어서 일을 축소시키려는 의도인 건가?’강명재는 계속해서 대수롭지 않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그게 뭐 대수라고, 돈 메꿔 넣으면 되잖아? 그렇게 크게 부풀릴 필요가 뭐 있어?”강명재는 자연히 강일헌보다 머리가 좋았다. 이 일이 커져 봤자 자신들에게 하나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대충 덮으려 하는 것이다.만일 무진이 이 기회에 또 다시 회사 경영권을 회수해 간다면. 40억 손실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이 계열사의 경영권은 40억에 그치지 않는다.무진이 강명재의 생각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강명재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규정에 따르면, 이 일은 반드시 경찰에 넘겨야겠지요.”40억 공금 유
무진은 저들에게 대놓고 싫은 내색을 했다. 오촌 당숙인 강명재의 체면도 일절 세워주지 않았다.무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강일헌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 분노가 저 밑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만약 강무진, 진짜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 절대 나 혼자 죽지 않아. 반드시 네 놈도 죽여버릴 테다!”강무진이 WS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참고 또 참았다.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강무진은 자신의 양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지금 또 다시 우리 둘째, 셋째 일가 모두를 기어코 감옥에 보내야 만족할 테지!’‘강무진, 그 놈은 진짜 자신을 뭘로 생각하는 거야?’만약 진짜 자신을 감옥에 보내려 한다면, 그 전에 그 놈부터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내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물귀신처럼 그 놈을 꽉 붙잡고 놔주지 않을 테다!’아버지 강명재가 옆에서 만류했다.“경거망동하지 마. 내가 큰어머니 안금여를 찾아가 무진에게 말하도록 압력을 넣을 테니까.”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무진의 태도를 생각하던 강명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지금 강무진 그 놈은 점점 더 미쳐 날뛰고 있어. 우리 같은 집안 어른들도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거지?’언젠가는 강무진 그 놈에게 알려줄 것이다. 필경 강씨 집안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다.“아버지, 보셨죠? 저 놈, 아버지한테도 이럴 정도인데. 저희가 집에서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강무진 그 놈이 WS그룹 경영을 맡은 이후로 제가 마치 절대군주라도 되는 양 눈 앞의 모든 사람을 공기처럼 취급합니다.”화가 나서 죽을 것 같은 강일헌이 제 아버지 강명재에게 하소연했다.두 할아버지 강상철, 강상규를 감옥에 보내 버린 강무진이 지금 자신을 타겟으로 삼았다.이 분노를 참기만 한다면 남자도 아니다.강무진은 이 강씨 집안에서 진짜 자기 혼자만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네가 참 뻔뻔스럽게도 말하는구나.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배워서 실력을 쌓으라고 너를 집에 두고 갔었건만,
성연은 오늘 기혈을 보충해 주는 약재들을 잔뜩 넣고 탕을 끓였다.할머니 안금여를 위해 자신이 끓인 탕을 가지고 고택에 들렸던 성연은 입구에서 강명재와 맞닥뜨렸다.예의상 성연은 ‘당숙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했다.하지만 강명재는 성연을 한 차례 흘깃하더니 없는 사람마냥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성연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저 오촌 당숙의 무시하는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앞으로 깊게 왕래할 사이도 아니니까.둘째, 셋째 일가에서는 성연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별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성연 자신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전부 쓰레기 같은 작자들뿐이다.강명재가 고택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지금 고택에는 할머니 안금여 밖에 없음을 가리 늦게 깨닫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강명재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할머니 안금여를 향해 분노에 찬 말들을 사정없이 쏟아내고 있었다,“큰어머님, 제발 당신 손자 좀 잘 관리하셔야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만약 큰집이 자신의 말을 듣는다면, 강명재는 큰집 사람들에게 며칠 더 유예를 줄 용의가 있었다.그러나 큰집에서는 끝까지 아무도 자신들을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저들 마음대로였다.만약 큰집을 눌러 자신의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강명재 자신이 이번에 돌아온 의미가 없는 것이다.성질이 그에 못지 않게 만만치 않은 안금여가 강명재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무슨 생각이냐?”안금여는 강명재가 지금 왜 여기에 와서 미쳐 날뛰는지 까닭을 알지 못했다.다만 분명 무진이 먼저 행동에 나섰고, 그래서 강명재가 여기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라 짐작만 할 뿐.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든 강명재 저놈들의 자업자득이 아니겠는가?그런데도 강명재 저 놈은 감히 이곳에 와서 깽판을 부린다. 저놈들한테는 양심이나 도리라는 게 전혀 없다.어찌 저리 뻔뻔스럽게도 여기를 찾아와서 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다시 강명재에게 시선을 돌린 안금여가 차가운 음성으로 비웃었다.“도대체 누가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해서 내 손자를 화나게 한 거야?”‘만약 강명재 저 놈들 쪽에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 무진이가 저들에게 눈길을 주었을 리가 없지.’‘제 놈들 잘못이 분명한데도 어찌 저리 당당하게 말하는지, 참.’안금여가 생각하기에, 저 둘째, 셋째 일가 쪽 사람들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지금도 자신들이 피해자인 척 허세를 부리는 게 분명했다.그룹 내 실적? 저들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그에 반해 남을 모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수단도 가지가지다.강명재는 안금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큰어머님, 저랑 명기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우리 같은 집안 어른이 눈에 거슬려도 무진이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요.”강명재는 슬그머니 딴 데로 말을 돌리며 요점을 흐리려 했다.입만 열었다 하면 사실을 부풀리거나 엉터리로 말하는 강명재이기에, 안금여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안금여가 입을 다물고 있자 강명재는 기가 더 살아서 신중함은 완전히 내던진 채 안금여 앞에서 마구 떠들어댔다.“그 정도 돈은 저한테 있어서 별 거 아닙니다. 제가 그룹에 환납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 일을 파고 들겠다면 제가 안면몰수하고 끝장을 본다고 탓하지 마세요.”강명재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시무시한 위협이었다.한 마디로 돈을 줄 테니 더 이상 따지지 말라는 뜻.그러나 만약 무진이 경찰에 고발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미이다.아직은 서로 완전히 끝장을 본 상태는 아니니 당연히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갈 있을 터.그러나 일단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댄다면 간단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아저씨,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무진 씨에게 가서 말씀하시는 게 좋겠어요. 아시겠지만, 할머니께서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으신 지도 오래되신 터라 여기서 말씀하셔도 소용이
당황한 안금여가 뒤로 물러섰고, 강명재는 흡사 이성을 잃은 사람 같았다.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 성연 역시 당황했다. 성연은 소매자락을 더듬어 숨겨두었던 은침 하나를 빼냈다. 동시에 할머니 안금여의 앞을 막아선 채 강명재의 오른쪽 허벅지 혈자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 순간 다리에 마비 증세가 온 강명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눈을 휘둥그레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성연을 쳐다보았다.여태 성연을 얕잡아 보았었는데, 놀랍게도 이런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은침을 사용할 줄이야.’조그마한 은침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은침을 사용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혈자리를 찾는 것이다. 강명재는 요 몇 년간 해외에서 적지 않게 보았다.성연은 이렇게 한 번 찌르는 것으로 정확하게 자신의 혈자리를 찾아 내었다. 여간한 공력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을 터.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강무진의 약혼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니.자신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 정도였다.강명재가 성연을 쳐다보며 입을 벌렸지만 한마디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이런 돌발 상황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안금여는 처음에는 성연이 자신을 보호하다 다칠까 걱정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이 바로 강명재를 쓰러뜨린 것이다.깜짝 놀란 안금여가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이 뒤를 돌아보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걸 봤으니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테지만, 성연은 후회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긴박했던 상황이었다. 강명재가 할머니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할머니 안금여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분명 더 후회할 테니까.은침을 놓는 의술이야,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늘 할머니가 다치셨다면 쉽게 낫기는 힘드셨을 것이다.양쪽 상황을 저울질했을 때,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그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할머니를
성연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온 강운경과 조승호가 안금여와 성연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보호했다.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강운경은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강운경이 바닥에 누워 있는 강명재를 향해 소리를 쳤다.“오라버니, 나이가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하세요? 창피하지도 않아요?”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할 수 없어 강운경과의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던 강명재는 그저 강운경이 자신을 욕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강운경이 잠시간 강명재를 비난하는 동안에 다리 감각을 회복한 강명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쳤다.“소란 떨고 싶으면 어디 한 번 제대로 떨어보던가!”겨우 한 마디 뱉은 강명재는 난처한 모습으로 부리나케 고택을 떠났다.강명재가 떠난 후에야 엄마 안금여를 돌아본 강운경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엄마, 괜찮아요? 강명재가 엄마랑 성연이한테 어떻게 한 거예요?”강명재는 미친 놈 같았다. 내내 집안에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그리고 엄마 안금여 혼자 집에 있을 때를 노렸다. 노인인 엄마가 자신에게 반격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안금여에게 이처럼 대한 것이다.만약 성연이가 오늘 여기에 없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나는 괜찮아. 그저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야. 강명재 저 놈이 이리 나올 줄은 정말 몰랐구나.” 안금여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거렸다.방금 강명재가 달려드는 순간에도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어쨌든 자신에게 무척 불리했을 것은 분명했다.성연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꼴이 되었을지 정말 모르는 일이다.“이게 바로 저들 둘째 일가들의 품성이야. 엄마, 앞으로 혼자 집에 있게 되면 절대 저 미친 놈들에게 문 열어주지 마세요. 아니면 전화해서 우리 불러요. 알았죠?” 내내 안금여 생각인 강운경은 옆에서 걱정하며 재차 당부했다.“누가 생각이나 했겠니? 대낮에, 여기 고택에서, 저 놈이 저렇게 날뛸 줄! 조심하는 기색을 전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