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안금여의 깜짝 발언에 놀라 멍해 있던 성연이 곧 정신을 차리고 도리질을 쳤다.“그럴 필요 없어요, 할머니. 너무 번거로운 걸요.”그런 것엔 별 흥미가 없는 성연이다.어찌 되었던 멀지 않아 강씨 집안을 떠날 터인데, 그때 조용히 나가면 된다. 지금 되는 대로 일을 벌이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어질 게 뻔하다.성대한 성년식을 치르는 것에는 강운경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그때 방해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강씨 집안의 다른 일족들이 절대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강무진이 잘되는 걸 절대 두고 보지 못하는 치들이니까.그런데 안금여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웃었다.“그럴수록 더 해야지. 그래야 우리 강씨 집안에서의 네 위치를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지.”이후 밖에서도 송성연이 강씨 집안의 사람임을 모두 알게 해야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할머니, 안 그러셔도 돼요. 전 간단한 게 좋아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성연이 우거지상을 했다. 그저 강씨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다 졸업할 생각이다.자신의 계획에서 미래의 배우자 또한 강무진이 아닐 것이다.지금의 두 사람은 동업자 마냥 상부상조하며 지내는 것일 뿐.다리를 치료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강씨 집안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무진이 보호해 주는 셈이다.“얘, 성연아, 긴 말 필요없이 이 할머니 시키는 대로 하거라.” 안금여는 성연의 말을 한 귀로 듣고 그대로 흘러버렸다.흥이 난 나머지 이미 머리 속에서는 성년식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보통의 사람들은 강씨 집안과 관계를 맺어 조금이라도 혜택을 누리지 못해 안달이다.그런데 성연이는 달랐다. 사리에 밝으면서도 악의가 없어 더 마음에 들었다.안금여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진 성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돌아가면 바로 강무진을 구슬려 볼 참이다.손자인 강무진이 말하면 안금여가 좀 들을 지도 모르겠다.불필요한 번거로움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무진은
같은 시각, 강변의 어느 한 식당. 강씨 집안 둘째, 셋째 일가가 모인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하다.지난 번 강씨 고택에서 열렸던 집안 모임보다, 지금 이 자리가 훨씬 더 집안 모임 같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즐거워 보였다.큰 형님이 살아있을 때는 그 위세에 눌려 쥐 죽은 듯 살았던 둘째 강상철과 셋째 강상규가 함께 모여 의기투합했다.강씨 그룹의 수장이던 큰 형님 강상중이 죽은 뒤에 이제 손자 강무진만 남은 셈이지만, 그 미치광이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다. 큰 형수 안금여도 나이가 들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테니, 강씨 집안의 WS그룹이 그들 수중에 들어오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눈이 마주쳤다. 야심으로 가득 찬 서로의 눈빛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통했다.손자 둘이 옆에서 식사를 거드니 두 노인의 마음은 더없이 흡족했다.자신들의 할아버지 강상철과 강상규가 강씨 집안의 진짜 실권자이며 자신들의 뒷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손자 강일헌과 강진성이다.식사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강진성은 무진이 오늘 성연을 회사에 데리고 온 일을 두 할아버지들에게 전했다.“보니까, 큰 할머님은 그 시골 계집애를 기어코 집안에 들일 셈이신 것 같아요. 쓸모없는 강무진이 쓰레기 같은 마누라를 들이는 건데, 도대체 큰 할머님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네요.”송성연에게 한 방 먹은 일로 가슴이 꽉 막혀 아직도 내려가지 않은 것 같다.‘시골 계집애가 말이야, 자신을 보면 열심히 아부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대들어?’강씨 집안에서 강무진은 폐인이나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큰집 손자며느리라고 제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다른 방식으로 송성연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강씨 집안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은 아직 큰 할머님이시니, 아무리 불만스럽고 눈가림용이라 해도 할 건 해야 한다.큰 할머님에게 약점을 잡혀 그들의 계획이 어그러지면 안되니까. 그리고 적당한 때가 오면 이 하늘 높은 줄
주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월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간 성연은 교실에서 송아연을 보게 되었다.교실에 들어온 학우들 대부분이 송아연을 손가락질했다.[송아연이 저런 애일 줄은 정말 몰랐다니깐. 임정용이 아연일 좋아했어도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잖아. 너무 심했어.][임정용이 좀 멍청하긴 했어도 송아연에게 잘 했지. 요새 남자애들 눈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니까, 정말. 송아연 꽁무니 쫓아다니는 애들, 우리 반에도 몇 명 있지.][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야, 뭐야? 완전 내숭이야. 나는 쟤 옆은 아예 가지도 않을 거야. 너무 구역질 나. 경찰서에도 갔던 애잖아. 저런 재수 덩어리에게 옮으면 안되잖아.]“…….”평소 송아연은 어디를 가든지 공주 대접을 받았고 반에서도 아이들과 잘 지낸 편이었다.이런 저런 상도 많이 타면서 추켜세움만 받던 애가 언제 이런 비난을 받아 보았겠는가.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아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손을 책상 아래로 내린 채 힘을 주어 말아 쥐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톱이 살에 파고들 정도였지만 아연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자신에게 향하던 것은 언제나 칭찬과 사랑이었다. 절대 이런 비난이 아니라.곁에 서 있던 추종자가 아연을 위해 애써 변명했다.“모든 건 오해야. 임정용이 깨어나서 말했어. 아연이 음료수를 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그랬다고, 완전히 오해라고 말이야. 그러니 너희들 더 이상 이상한 소리하지 마.”죽어라고 자기 손을 꼬집은 아연이 고개를 들며 눈시울을 붉혔다.“누가 내 서랍에 물건을 넣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경찰서에선 정말 무서웠어…….”말을 하던 아연이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듯 울음을 터뜨렸다.불쌍하게 책상에 엎드려 우는 모습이 무척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듯이 보여서 또다시 많은 아이들이 속아 넘어갔다.그러자 아연을 편들며 말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어쩌면 송아연은 진짜 아무 잘못 없을 지도 모르지. 임
저녁이 되어 학교가 파한 후.수업을 마친 성연은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보통 때처럼 학교 뒷문을 통해 골목 쪽으로 나갔다.그런데 막 뒷문을 나선 순간 강씨 집안의 운전기사가 아니라 송종철이 앞에 나타났다.송종철이 이처럼 집요할 줄은 몰랐다.지난번 학교에 왔을 때 충분히 망신 주지 못한 게 짜증났는데, 감히 오늘 또 왔다.“볼 일 있어요?”담담한 모습의 성연이 송종철을 힐끗 쳐다보았다.성연의 저런 태도에 매번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나는 송종철이다.표정이 굳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해서 잠시 참았다.우는 것보다 못한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성연아, 네가 강씨 집안으로 간 지도 여러 날 되었지 않니?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해서 집에서 같이 밥 먹으려고 널 데리러 왔다.”송종철은 이번에 혼자 오지 않았다.꽤 큰 싸움을 준비한 듯하다. 옆에 모두 네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앞, 뒤로 두 명, 좌우로 붙어 선 두 명이 협공을 취하는 자세다. 만약 성연이 반항한다면 바로 붙잡을 수 있도록.성연의 능력으로 이 경호원들 몇 명쯤 해결하는 건 문제도 안된다.송종철은 정말 방법이 없는 사람이다. 데려온 이들마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꽃받침들이다. 경호원이라는 가죽을 덮어쓴 불량배들에 불과한.참, 송종철도 고생이다. 시골에서 온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크게 움직이다니, 정말 고마울 지경이다.성연 또한 반항할 생각은 없다. 우선 실력을 숨겨야 했고, 또 송종철이 직접 나선 걸 보니 상당히 급한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릴 작정인지 지켜볼 생각이다.일 없이 찾을 송종철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성연 역시 능청스럽게 예의상의 인사를 건넸다.“아버지가 이렇게 친절을 보이시다니요. 전화 한 통이면 되는데. 이처럼 과분한 대우에 정말 얼떨떨하네요.”송종철이 조급할수록 성연은 더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마치 고양이가 쥐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처럼, 아주 재미있어 하는
성연은 송종철의 명령에 반항하지 않았다. 도리어 영리하게도 강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진은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일하는 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 보통 서재에 갈 때는 휴대폰을 지니고 가지 않는 무진이다.그때, 비서 손건호가 휴대폰을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휴대폰 화면이 계속 반짝거렸다.고개를 든 무진이 목을 주무르며 물었다. “왜?”“보스, 사모님의 전화입니다.”“이 시간이면 하교할 때 아니야? 운전기사가 데리러 가지 않았어?”무진의 날카롭게 뻗은 눈썹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손건호는 아무런 대답없이 휴대폰을 무진의 눈앞으로 내밀었다.그 순간 또 언제부터 보스는 사모님의 하교 시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모든 일들이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원래의 궤도를 이탈해서 말이다.휴대폰을 건네어 받은 무진이 수신 버튼을 누르며 귓가에 가져다 댔다.전화가 연결되자, 바로 성연의 음성이 들렸다.“우리 아버지가 무진 씨를 식사에 초대하셨어요. 방금 학교 교문 입구까지 절 데리러 오셨어요. 또 경호원도 같이 왔는데, 와 정말 볼 만했어요. 어찌나 정중한 지 제가 꼭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요. 무진 씨도 오면 좋겠어요.”성연의 말은 조롱기가 다분했다.어쨌든 성연은 자신의 친딸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은 혈연관계인 것이다.강무진을 불러 내기 위해서 여러 명의 경호원들로 협박을 했는데도.조롱의 말을 못 알아들은 송종철은 성연이 진짜 좋아한다고만 여겼다.정말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라고 생각하니 속에서 비웃음이 나왔다.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보아하니 강씨 집안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강씨 집안으로 간 지 오래 되었는데도, 부자들의 습관 같은 게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하지만, 무진은 송종철의 생각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성연의 음성을 듣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직설적이면서 냉담한 음성으로 대꾸했다.“자기가 뭐라고, 안 만나!
화가 나 씩씩 대며 가슴을 들썩이던 송종철의 얼굴이 시뻘게졌다.역시 송성연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저런 이용 가치도 없는 애한테 희망을 걸다니.지금 당장 100억이 필요한 상황인데, 강무진이 아니면 어디 가서 구하단 말인가?지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월등히 많은 실정이다. 회사는 자금을 필요로 했고, 집, 차 등 생활 곳곳에서 돈이 들었다.이전에 돈이 있을 때는 몰랐었다. 그런데 지금 돈이 없으니, 회사의 구멍이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임수정도 잔소리만 해댔다. 그라고 어디 쉬웠겠나?정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나머지, 성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거지.송종철이 거래를 하듯 성연을 어르기 시작했다.“널 시집보낼 때, 강씨 집안에서 지참금으로 10억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주지 않으려 한다. 만약 네가 이 돈을 받도록 도우면 2억을 떼서 주마.”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제까짓 게’ 하며 성연을 얕잡아보았다.시골 사람이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2억을 준다고 했으니, 이만하면 많이 생각해 준 셈이다.소탐대실 하다 한 푼도 건지지 못할까 봐 눈물을 머금고 2억을 주겠다고 했지만,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송성연은 자신의 딸이다. 딸이 시집 가며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을 넘겨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도 있고.성연이 뭔가를 한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약간의 역할만 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런 생각에 성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송종철이다.오로지 성연이 가진 모든 것을 뽑아 먹을 생각뿐이다.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속셈을 성연이 모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성연의 눈에는 그 속셈이 투명할 정도로 속속들이 다 보였다.참 가소로울 뿐이다.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바보 취급하며 휘두를 생각인 모양이다. 분명 결혼 지참금은 100억인데도, 자신에겐 10억이라고 사기치는 것 좀 보소.‘하, 그 100억, 진짜 한 톨 부담감 없이 다 가져도 되겠네.’
송종철이 손을 휘두르는 순간, 성연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아챘다.미미한 통증과 함께 팔이 흔들리며 저렸다.송종철이 얼마나 힘을 줬는지.성연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차가운 비수를 품은 듯한 눈동자가 곧바로 송종철을 찔러왔다.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송종철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무섭도록 매서운 기세에 꼼짝 할 수가 없었다.그저 놀라 멍하니 입만 벌린 채 제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그러나 한순간 뭔가 휙 지나간 듯 성연은 금세 원래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몸으로 확실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착각이라고 생각할 뻔했다.‘송성연, 이 아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불현듯 이 딸의 속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송종철이다.시골에서 올라온 성연을 쉽게 휘두를 수 있다고 줄곧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계략에도 한 번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설마 운이 좋아서만은 아닐 것이다.그가 볼 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송종철의 마음속에서 점점 의심이 커져갔다.이때 차가운 시선으로 송종철을 바라보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진짜 때리실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잠시간이지만 강씨 집안의 며느리예요. 제 뺨을 치는 건 강씨 집안의 뺨을 친 것이나 다름없어요. 저는 보잘것없지만, 강씨 집안은 다르지요. 아버지, 잘 생각하세요.”조금 전 성연의 눈빛을 떠올리며 또 강씨 집안과의 여러 관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결론은, 누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돈을 요구하려던 계획은 이렇게 또 다시 허사가 되고 말았다.성연을 쳐다보니 화가 더 치미는지, 송종철이 연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얼른 가, 가, 빨리.”성연이 차문을 열고 내리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은 듯 송종철은 운전기사를 재촉해서 떠나버렸다.이때, 강무진이 보낸 차가 서서히 성연의 앞으로 와서 섰다.아까 전부터 계속 송종철의 차를 뒤쫓았던 차다.경거망동 말라는 강무진의 지시를 받았던 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까처럼 계속해서 그렇게 맞춰 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결혼 지참금이 10억이라고 거짓말을 하시네요.”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으쓱 어깨를 들어올렸다.집안의 허물은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법. 성연 또한 원래는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달려들어 뺨을 때리려는 판국이니,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무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지참금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이 나가면,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 망신스럽다고 질색할 것이다.손건호는 또 참지 못하고 속으로 궁시렁댔다.‘송종철, 참 인물은 인물이다. 10억이라고 딸을 속여?’‘북성 제일의 유력 가문 강씨 집안에서 10억이면 껌 값도 안 되는구만.’‘강씨 집안 장손의 결혼 지참금이 10억이라는 건 말도 안되지.’저런 아버지를 둔 사모님에게 동정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정말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딸한테?’하지만 성연은 외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뭐 어쨌든, 100억이 성연의 손에 들어온 이상 송씨 일가는 더 이상 이 돈에 손대지 못할 것이다.‘땡전 한 푼도 줄 수 없어.’송종철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임수정이 득달같이 달려와 다그쳤다.“성연이는?”“그 계집애 얘기는 하지도 마! 재수없어!”송종철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었다.“아니 어떻게 된 거야?” 임수정은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일이 잘못되었구나 싶으니, 자연 말투도 날카로워졌다.성연과 무진이 했던 말을 송종철이 그대로 들려주었다.잔뜩 성이 난 임수정이 성질을 부리며 송종철을 닦아세웠다.“정말 하나 도움이 안돼. 어떻게 어린 여자애 하나 못 데려와요? 강씨 미치광이가 사람을 괄시해도 유분수지 말이야. 그래도 명색이 자기 장인이잖아?”강무진이 제아무리 대단한 신분이라 한들 겨우 절름발이, 미친 놈일 뿐이야,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누가 누굴 업신여긴다는 건지.송종철 역시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할머니의 비호 아래에서 제마음대로 구는 저 미치광이를 상대로는.강씨 집안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