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웃으며 말했다.“강진성이 나한테 뭘 어쩌겠어요? 내가 그 사람에게 뭘 어떻게 안 했으면 된 거지.”성연 앞에서 쩔쩔매던 강진성의 모습을 떠올린 안금여의 비서가 실소를 금치 못하며, 잠시 전에 있었던 상황을 무진에게 설명했다.“도련님, 못 보셔서 그렇지, 셋째 도련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셨어요. 사모님, 정말 대단하세요.”무진의 눈에도 웃음기가 어렸다.“당하지만 않으면 돼.”좀 늦은 시각, 회의를 끝내고 회장실로 돌아온 안금여는 곧장 성연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다 앉혔다.“성연아, 오늘 어땠니? 시간 즐겁게 보냈어?”“네, 재미있었어요, 할머니. 비서 언니가 세심하게 살펴 줬어요.” 성연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비서를 칭찬했다.“즐거웠으면 됐다.”안금여와 성연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금세 오후가 되었다.식사를 위해 미리 음식점에 자리를 예약해 두었던 안금여가 성연과 무진을 데리고 나갔다.소담하면서도 운치가 뛰어난 음식점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한복 차림으로 서빙을 하는 직원들이 매우 독특했다.예약한 룸에 들어가 막 자리에 앉을 때, 강운경이 들어왔다.강운경은 전과 다름없이 마치 심사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연을 주시했다.“모두 한 가족이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편하게 식사하자.” 자리에 함께한 딸과 손자 부부를 바라보며 안금여는 썩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예전부터 내 손자 무진이는 언제쯤 손녀며느리를 데려오게 될까, 하고 늘 생각했었다.그렇게 오매불망하며 마음을 졸였더랬는데.드디어 손자 며느리를 본 것이다. 이제 증손자까지 얻게 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터.무진과 성연의 지금 분위기를 보면, 증손자도 조만간 보지 않을까 싶다.물론 성연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조급할 필욘 없겠지만.미리 주문한 음식들이 곧바로 테이블에 올라왔다.식사하는 동안 말을 삼가 해야 한다는 가풍 없는 강씨 집안이다 보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나직한 음성으로 업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오늘 회의와 관련된 중
할머니 안금여의 깜짝 발언에 놀라 멍해 있던 성연이 곧 정신을 차리고 도리질을 쳤다.“그럴 필요 없어요, 할머니. 너무 번거로운 걸요.”그런 것엔 별 흥미가 없는 성연이다.어찌 되었던 멀지 않아 강씨 집안을 떠날 터인데, 그때 조용히 나가면 된다. 지금 되는 대로 일을 벌이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어질 게 뻔하다.성대한 성년식을 치르는 것에는 강운경 역시 찬성하지 않았다.“그때 방해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강씨 집안의 다른 일족들이 절대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강무진이 잘되는 걸 절대 두고 보지 못하는 치들이니까.그런데 안금여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웃었다.“그럴수록 더 해야지. 그래야 우리 강씨 집안에서의 네 위치를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지.”이후 밖에서도 송성연이 강씨 집안의 사람임을 모두 알게 해야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할머니, 안 그러셔도 돼요. 전 간단한 게 좋아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성연이 우거지상을 했다. 그저 강씨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다 졸업할 생각이다.자신의 계획에서 미래의 배우자 또한 강무진이 아닐 것이다.지금의 두 사람은 동업자 마냥 상부상조하며 지내는 것일 뿐.다리를 치료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강씨 집안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무진이 보호해 주는 셈이다.“얘, 성연아, 긴 말 필요없이 이 할머니 시키는 대로 하거라.” 안금여는 성연의 말을 한 귀로 듣고 그대로 흘러버렸다.흥이 난 나머지 이미 머리 속에서는 성년식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보통의 사람들은 강씨 집안과 관계를 맺어 조금이라도 혜택을 누리지 못해 안달이다.그런데 성연이는 달랐다. 사리에 밝으면서도 악의가 없어 더 마음에 들었다.안금여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진 성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돌아가면 바로 강무진을 구슬려 볼 참이다.손자인 강무진이 말하면 안금여가 좀 들을 지도 모르겠다.불필요한 번거로움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무진은
같은 시각, 강변의 어느 한 식당. 강씨 집안 둘째, 셋째 일가가 모인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하다.지난 번 강씨 고택에서 열렸던 집안 모임보다, 지금 이 자리가 훨씬 더 집안 모임 같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즐거워 보였다.큰 형님이 살아있을 때는 그 위세에 눌려 쥐 죽은 듯 살았던 둘째 강상철과 셋째 강상규가 함께 모여 의기투합했다.강씨 그룹의 수장이던 큰 형님 강상중이 죽은 뒤에 이제 손자 강무진만 남은 셈이지만, 그 미치광이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다. 큰 형수 안금여도 나이가 들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테니, 강씨 집안의 WS그룹이 그들 수중에 들어오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눈이 마주쳤다. 야심으로 가득 찬 서로의 눈빛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통했다.손자 둘이 옆에서 식사를 거드니 두 노인의 마음은 더없이 흡족했다.자신들의 할아버지 강상철과 강상규가 강씨 집안의 진짜 실권자이며 자신들의 뒷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손자 강일헌과 강진성이다.식사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강진성은 무진이 오늘 성연을 회사에 데리고 온 일을 두 할아버지들에게 전했다.“보니까, 큰 할머님은 그 시골 계집애를 기어코 집안에 들일 셈이신 것 같아요. 쓸모없는 강무진이 쓰레기 같은 마누라를 들이는 건데, 도대체 큰 할머님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네요.”송성연에게 한 방 먹은 일로 가슴이 꽉 막혀 아직도 내려가지 않은 것 같다.‘시골 계집애가 말이야, 자신을 보면 열심히 아부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대들어?’강씨 집안에서 강무진은 폐인이나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큰집 손자며느리라고 제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다른 방식으로 송성연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강씨 집안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은 아직 큰 할머님이시니, 아무리 불만스럽고 눈가림용이라 해도 할 건 해야 한다.큰 할머님에게 약점을 잡혀 그들의 계획이 어그러지면 안되니까. 그리고 적당한 때가 오면 이 하늘 높은 줄
주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월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간 성연은 교실에서 송아연을 보게 되었다.교실에 들어온 학우들 대부분이 송아연을 손가락질했다.[송아연이 저런 애일 줄은 정말 몰랐다니깐. 임정용이 아연일 좋아했어도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잖아. 너무 심했어.][임정용이 좀 멍청하긴 했어도 송아연에게 잘 했지. 요새 남자애들 눈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니까, 정말. 송아연 꽁무니 쫓아다니는 애들, 우리 반에도 몇 명 있지.][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야, 뭐야? 완전 내숭이야. 나는 쟤 옆은 아예 가지도 않을 거야. 너무 구역질 나. 경찰서에도 갔던 애잖아. 저런 재수 덩어리에게 옮으면 안되잖아.]“…….”평소 송아연은 어디를 가든지 공주 대접을 받았고 반에서도 아이들과 잘 지낸 편이었다.이런 저런 상도 많이 타면서 추켜세움만 받던 애가 언제 이런 비난을 받아 보았겠는가.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아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손을 책상 아래로 내린 채 힘을 주어 말아 쥐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톱이 살에 파고들 정도였지만 아연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자신에게 향하던 것은 언제나 칭찬과 사랑이었다. 절대 이런 비난이 아니라.곁에 서 있던 추종자가 아연을 위해 애써 변명했다.“모든 건 오해야. 임정용이 깨어나서 말했어. 아연이 음료수를 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그랬다고, 완전히 오해라고 말이야. 그러니 너희들 더 이상 이상한 소리하지 마.”죽어라고 자기 손을 꼬집은 아연이 고개를 들며 눈시울을 붉혔다.“누가 내 서랍에 물건을 넣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경찰서에선 정말 무서웠어…….”말을 하던 아연이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듯 울음을 터뜨렸다.불쌍하게 책상에 엎드려 우는 모습이 무척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듯이 보여서 또다시 많은 아이들이 속아 넘어갔다.그러자 아연을 편들며 말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어쩌면 송아연은 진짜 아무 잘못 없을 지도 모르지. 임
저녁이 되어 학교가 파한 후.수업을 마친 성연은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보통 때처럼 학교 뒷문을 통해 골목 쪽으로 나갔다.그런데 막 뒷문을 나선 순간 강씨 집안의 운전기사가 아니라 송종철이 앞에 나타났다.송종철이 이처럼 집요할 줄은 몰랐다.지난번 학교에 왔을 때 충분히 망신 주지 못한 게 짜증났는데, 감히 오늘 또 왔다.“볼 일 있어요?”담담한 모습의 성연이 송종철을 힐끗 쳐다보았다.성연의 저런 태도에 매번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나는 송종철이다.표정이 굳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해서 잠시 참았다.우는 것보다 못한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성연아, 네가 강씨 집안으로 간 지도 여러 날 되었지 않니?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해서 집에서 같이 밥 먹으려고 널 데리러 왔다.”송종철은 이번에 혼자 오지 않았다.꽤 큰 싸움을 준비한 듯하다. 옆에 모두 네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앞, 뒤로 두 명, 좌우로 붙어 선 두 명이 협공을 취하는 자세다. 만약 성연이 반항한다면 바로 붙잡을 수 있도록.성연의 능력으로 이 경호원들 몇 명쯤 해결하는 건 문제도 안된다.송종철은 정말 방법이 없는 사람이다. 데려온 이들마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꽃받침들이다. 경호원이라는 가죽을 덮어쓴 불량배들에 불과한.참, 송종철도 고생이다. 시골에서 온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크게 움직이다니, 정말 고마울 지경이다.성연 또한 반항할 생각은 없다. 우선 실력을 숨겨야 했고, 또 송종철이 직접 나선 걸 보니 상당히 급한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릴 작정인지 지켜볼 생각이다.일 없이 찾을 송종철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성연 역시 능청스럽게 예의상의 인사를 건넸다.“아버지가 이렇게 친절을 보이시다니요. 전화 한 통이면 되는데. 이처럼 과분한 대우에 정말 얼떨떨하네요.”송종철이 조급할수록 성연은 더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마치 고양이가 쥐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처럼, 아주 재미있어 하는
성연은 송종철의 명령에 반항하지 않았다. 도리어 영리하게도 강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진은 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일하는 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 보통 서재에 갈 때는 휴대폰을 지니고 가지 않는 무진이다.그때, 비서 손건호가 휴대폰을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휴대폰 화면이 계속 반짝거렸다.고개를 든 무진이 목을 주무르며 물었다. “왜?”“보스, 사모님의 전화입니다.”“이 시간이면 하교할 때 아니야? 운전기사가 데리러 가지 않았어?”무진의 날카롭게 뻗은 눈썹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손건호는 아무런 대답없이 휴대폰을 무진의 눈앞으로 내밀었다.그 순간 또 언제부터 보스는 사모님의 하교 시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모든 일들이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원래의 궤도를 이탈해서 말이다.휴대폰을 건네어 받은 무진이 수신 버튼을 누르며 귓가에 가져다 댔다.전화가 연결되자, 바로 성연의 음성이 들렸다.“우리 아버지가 무진 씨를 식사에 초대하셨어요. 방금 학교 교문 입구까지 절 데리러 오셨어요. 또 경호원도 같이 왔는데, 와 정말 볼 만했어요. 어찌나 정중한 지 제가 꼭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요. 무진 씨도 오면 좋겠어요.”성연의 말은 조롱기가 다분했다.어쨌든 성연은 자신의 친딸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은 혈연관계인 것이다.강무진을 불러 내기 위해서 여러 명의 경호원들로 협박을 했는데도.조롱의 말을 못 알아들은 송종철은 성연이 진짜 좋아한다고만 여겼다.정말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라고 생각하니 속에서 비웃음이 나왔다.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보아하니 강씨 집안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강씨 집안으로 간 지 오래 되었는데도, 부자들의 습관 같은 게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하지만, 무진은 송종철의 생각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성연의 음성을 듣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직설적이면서 냉담한 음성으로 대꾸했다.“자기가 뭐라고, 안 만나!
화가 나 씩씩 대며 가슴을 들썩이던 송종철의 얼굴이 시뻘게졌다.역시 송성연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저런 이용 가치도 없는 애한테 희망을 걸다니.지금 당장 100억이 필요한 상황인데, 강무진이 아니면 어디 가서 구하단 말인가?지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월등히 많은 실정이다. 회사는 자금을 필요로 했고, 집, 차 등 생활 곳곳에서 돈이 들었다.이전에 돈이 있을 때는 몰랐었다. 그런데 지금 돈이 없으니, 회사의 구멍이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임수정도 잔소리만 해댔다. 그라고 어디 쉬웠겠나?정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나머지, 성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거지.송종철이 거래를 하듯 성연을 어르기 시작했다.“널 시집보낼 때, 강씨 집안에서 지참금으로 10억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주지 않으려 한다. 만약 네가 이 돈을 받도록 도우면 2억을 떼서 주마.”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제까짓 게’ 하며 성연을 얕잡아보았다.시골 사람이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2억을 준다고 했으니, 이만하면 많이 생각해 준 셈이다.소탐대실 하다 한 푼도 건지지 못할까 봐 눈물을 머금고 2억을 주겠다고 했지만,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송성연은 자신의 딸이다. 딸이 시집 가며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을 넘겨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도 있고.성연이 뭔가를 한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약간의 역할만 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런 생각에 성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송종철이다.오로지 성연이 가진 모든 것을 뽑아 먹을 생각뿐이다.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속셈을 성연이 모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성연의 눈에는 그 속셈이 투명할 정도로 속속들이 다 보였다.참 가소로울 뿐이다.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바보 취급하며 휘두를 생각인 모양이다. 분명 결혼 지참금은 100억인데도, 자신에겐 10억이라고 사기치는 것 좀 보소.‘하, 그 100억, 진짜 한 톨 부담감 없이 다 가져도 되겠네.’
송종철이 손을 휘두르는 순간, 성연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아챘다.미미한 통증과 함께 팔이 흔들리며 저렸다.송종철이 얼마나 힘을 줬는지.성연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차가운 비수를 품은 듯한 눈동자가 곧바로 송종철을 찔러왔다.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송종철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무섭도록 매서운 기세에 꼼짝 할 수가 없었다.그저 놀라 멍하니 입만 벌린 채 제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그러나 한순간 뭔가 휙 지나간 듯 성연은 금세 원래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몸으로 확실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착각이라고 생각할 뻔했다.‘송성연, 이 아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불현듯 이 딸의 속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송종철이다.시골에서 올라온 성연을 쉽게 휘두를 수 있다고 줄곧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계략에도 한 번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설마 운이 좋아서만은 아닐 것이다.그가 볼 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송종철의 마음속에서 점점 의심이 커져갔다.이때 차가운 시선으로 송종철을 바라보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진짜 때리실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잠시간이지만 강씨 집안의 며느리예요. 제 뺨을 치는 건 강씨 집안의 뺨을 친 것이나 다름없어요. 저는 보잘것없지만, 강씨 집안은 다르지요. 아버지, 잘 생각하세요.”조금 전 성연의 눈빛을 떠올리며 또 강씨 집안과의 여러 관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결론은, 누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돈을 요구하려던 계획은 이렇게 또 다시 허사가 되고 말았다.성연을 쳐다보니 화가 더 치미는지, 송종철이 연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얼른 가, 가, 빨리.”성연이 차문을 열고 내리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은 듯 송종철은 운전기사를 재촉해서 떠나버렸다.이때, 강무진이 보낸 차가 서서히 성연의 앞으로 와서 섰다.아까 전부터 계속 송종철의 차를 뒤쫓았던 차다.경거망동 말라는 강무진의 지시를 받았던 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
조수경은 바로 손민철을 찾아갔다.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만났다.칸막이가 쳐진 룸에서 손민철은 조수경을 껴안고 뺨에 키스를 했다.“왜 그래, 우리 자기, 겨우 며칠 못 봤을 뿐인데 내가 보고 싶었어?”“나도 보고 싶었어요.” 조수경이 당당하게 대답했다.손민철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자신이 보고싶었다고 조수경이 자신의 입으로 처음 시인한 것이다.손민철이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말을 하면서 조수경에게 입을 맞추었다.조수경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목을 껴안고 고개를 들어 키스를 받아들였다.키스를 마친 두 사람은 모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부족하다고 느낀 손민철은 다시 키스하고 싶었다.조수경이 손민철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면서 가로막았다.“민철 씨에게 할 말이 있어.”손민철은 키스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무슨 일인데?”“내가 더 큰 성과를 올리게 해 줘요. 지금으로서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해!”조수경의 눈에 모질고 포악한 기색이 번쩍였다.‘내가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무진 씨가 나를 다시 보게 될 거야.’손민철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그러지.”그러고는 조수경의 손을 더듬거리면서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무조건 나와 같이 있어야 해!”농담하듯이 웃는 조수경의 표정에는 이전의 내키지 않아 하던 모습은 전혀 없었다.“그래.”“밤은 짧아. 지금 가자!” 손민철은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다.다급한 모습으로 조수경을 이끌고 호텔로 가서 방을 잡았다.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조수경을 벽에다 밀어붙인 채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조수경의 옷을 벗기려던 순간, 조수경이 손민철의 손을 잡고 말했다.“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아요. 오늘 밤은 충분히 기니까 천천히 즐겨요.”손민철은 애가 타면서도 속으로는 동시에 조수경이 자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지 기대감마저 가지고 있었다.천천히 객실 안으로 들어선 조수경이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나왔다.베란다로 나가 앉은 조수경이 손민철에게 손을 흔들었
조수경은 두 사람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이를 갈았다.‘나는 지금 무진 씨를 만날 수도 없건만.’‘송성연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불러낼 수 있는 거지?’‘도대체 송성연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조수경은 이렇게 앉아서 무진의 처분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계속 이러면 무진 씨가 나를 거들떠보기나 하겠어?’저녁에 퇴근한 조수경은 또 다시 많은 선물과 건강기능식품을 사서 고택으로 찾아갔다.집사는 바로 안으로 들이는 대신 조수경의 방문을 먼저 안금여에게 보고했다.안금여와 강운경이 고개를 돌려 서로 쳐다보았다.그날 밤의 일에 대해 나중에야 알게 된 두 사람.정말이지 조수경이 무진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하마터면 무진과 성연 사이에 오해가 생길 뻔했던 것.조수경을 쉽게 믿었던 안금여는 마음속으로 성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수경에서 고택 외부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주었다.옛 친구의 체면을 고려해서 안금여는 그래도 조수경이 계속 회사에 남아있게 해서 체면을 세워주었다.조수경이 방문했다는 말에 안금여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가서 한번 만나 봐야겠어.”강운경이 안금여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회사에서부터 화를 참고 왔던 조수경은 자신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자 더 화가 났다.‘이전에는 이 집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거절당하다니!’안금여와 강운경이 나타나자 조수경은 억지로 눈물 몇 방울을 쥐어짜내며 불쌍한 척 쇼를 하기 시작했다.“할머니, 고모, 제가 잘못한 거 알고 있어요.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부드럽고 여리여리한 외모의 조수경의 두 눈은 촉촉하면서 약간 충혈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이 더 동정심을 갖게 했다.안금여는 조수경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여린 마음을 가진데다가 지금 조수경이 보이는 모습에 더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안금여는 강씨 가문의 입장 또한 잊지 않았다.안금여 또한 차마 조수경에게 심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