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연은 물을 사러 간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그리고는 임정용을 옥상으로 불렀다.“공, 공주님.”손가락을 입안에 문 채 임정용이 송아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송아연은 혐오감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뚱뚱한 데다 머리와 귀가 컸다. 몸집은 어른만 했지만, 아이큐는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집안이 좋다는 것과 자신을 좋아한다 것 말고는 하등 볼게 없는 존재였다. 임정용은 송아연을 처음 볼 때부터 ‘공주님’이라고 불렀다.그녀는 그런 그가 귀찮고 싫었다. 하지만 이제 쓸모가 생겼다. 송아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정용아, 부탁할 일이 있어.”그는 그녀의 웃음에 넋을 잃은 듯했다.“공주님, 공주님!”송아연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음료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이건 너 주려고 산 거야. 비밀은 꼭 지켜야 해? 안 그러면 이 음료수를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길지도 몰라.”임정용은 그녀가 건네준 음료수를 온 힘을 다해 사수했다.“나는 공주님이 준 거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야."“우리 정용이 정말 착한 친구네.” 송아연은 음료수를 귀한 것이라도 되는 양 한 모금씩 마시는 임정용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그리고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정용아, 나랑 어디 좀 갔다 올래?”음료수를 품에 꼭 끌어안은 임정요이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임정용에게 교실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시킨 아연이 의기양양하게 운동장으로 갔다.‘음료수 안에다 무언가를 집어넣은 것도 모르고, 흥.’교실에 온 임정용은 온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이 충혈되며 눈동자에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안절부절하며 교실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교실은 이내 그의 무거운 발소리로 가득 찼다.그러다가 갑자기 성연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임정용의 두 눈이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하지만, 깊이 잠이 든 성연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임정용은 교실에 있는 유일한 사람, 성연에게 도움을 청하려
성연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아무도 없는 틈을 타 누군가 일부러 임정용을 들여보낸 것이 분명했다.자신을 향한 계략이 나름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다.‘대체 나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렇게 악랄하고 비열한 모략을 꾸며!’‘평범한 고등학생이 이런 지독한 방법을 쓰다니, 정말 무섭군,’성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누가 나를 해코지하려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글쎄? 일단, 내가 알았으니…….’마침 수업이 끝나는 음악 소리가 울렸고, 조용했던 교실 밖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성연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떠올렸다.‘만약 애들이 돌아와서 지금 장면을 보면, 나는 죽어도 누명을 벗을 수 없겠지?’그녀는 창가로 걸어가서 CCTV의 위치와 높이를 살펴봤다.그리고는 바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그녀가 있던 곳은 3층이었다.성연은 몹시 빨랐다. 다른 교실 창문에 붙어서 아래로 뛰어내렸다.그리고 긴 끈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높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또, 교묘하게 CCTV 사각 지대를 이용해 움직였다.일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성연은 바닥에 발을 디뎠다.그리고 치맛자락과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강의동 1층으로 향했다.바로 그 시각, 송아연과 그녀의 ‘친한 자매들’ 그리고 반 학우들이 하나 둘씩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송아연과 ‘학교 자매들’은 각자 밀크티 한 잔씩을 들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달짝지근한 밀크티가 입안에 들어갔지만 송아연은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마음은 다른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송성연의 처참한 몰골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생각만 해도 흥분되었다.‘송성연이 강씨 집안의 보호 아래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야?’복도는 학생들로 붐볐다.[문이 왜 잠겼어?][누가 마지막으로 나간 거야? 문은 왜 잠근 거야?][내가 나갈 때는 교실에 사람이 없었어. 그때만 해도 문이 열려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누가 양심도 없이 문을 잠갔지? 사이코지, 이건.]
눈을 동그랗게 튼 뜬 송아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송성연이 없는 거야?’‘혹시 숨은 건가? 그럴 리가 없지. 교실에는 숨을 데가 없는데.’학생들은 교실 안의 장면을 보며 너무 놀라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게다가 다른 반 학생들도 와서 구경하는 바람에 사람들로 가득 찬 복도가 시끌벅적했다.학생들 몇은 선생님을 부르러 갔다.학생들 뒤쪽에 선 성연은 표정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송아연을 뚫어져라 주시했다.조금 전의 사건이 누구의 계략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성연의 표정이 가라앉으며, 눈빛도 차가워졌다.송아연이 단지 자신을 싫어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자신을 미워할 줄은 몰랐다. 송성연을 과소평가한 것이다.송아연이 이렇게 지독하다니! ‘순결이 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성연은 마음속으로 송아연의 악행 하나를 더 추가했다.선생님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그는 교실 안의 장면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일단 몸집이 큰 너희들이 가서 옷을 입혀. 여학생들은 잠시 다른 곳에 가서 기다리고. 더 이상 보지 않는 게 좋겠다.”선생님은 애써 진정하며 학생들을 안내했다.다른 반 여학생들은 모두 자기 반으로 돌아갔지만, 같은 반 여학생들은 교실을 등지고 서서 감히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현장을 정리했다. 몇몇 키 큰 남학생들이 힘을 모아 임정용을 일으켜 옷을 입혔다. 옷이 너덜너덜 찢어져 있어서 한참을 낑낑댄 후에야 겨우 입힐 수 있었다.옷을 입힌 후 얼마 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요원들이 임정용을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임정용을 보내고 나서야 학생들은 다시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로 돌아왔다.임정용이 누워있던 곳에 방향제를 뿌렸다.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성연은 느릿느릿 교실로 들어갔다.학생들은 대부분 임정용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그 바보 같은 녀석이 약을 잘못 먹
송아연의 말에 수군대던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이쪽을 바라봤다.그녀의 사악한 마음은 식견을 넓혀줄 뿐, 그런 수작은 성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그녀를 골탕먹이고 싶다면, 몇백 년은 더 수련하고 다시 붙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는 전혀 성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반박했다.“너 내가 교실에 계속 있는 것을 봤어? 설마 너 다시 교실에 왔던 거야?”그러자 송아연은 안색이 변하며 목이 잠겨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수업 가기 전에 다들 봤잖아.”“그래?”성연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어떡하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보건실에서 자다가, 선생님이 수업 끝났다고 깨워줘서 지금 온 건데 내가 들어오는 거 다들 봤잖아.”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아연에게 다가갔다.“뭐 하는 거야?”송아연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성연은 아무 말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갔고, 송아연은 계속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성연은 걸음을 멈췄다.송아연은 그녀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몸을 빼며 뒤로 기울였다.성연은 몸을 굽혀 송아연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시선이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난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송아연, 넌 나와 친하지 않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이상하게도 왜 사사건건 그렇게 관심이 많지? 온종일 나만 보고 있잖아. 그 임정용이라는 애, 네가 교실로 데려온 거지?”그녀는 원래 그 바보의 이름을 몰랐지만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송아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송성연, 함부로 남을 모함하지 마!”그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워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성연은 차가운 눈으로 송아연을 바라보았다.“내가 겨우 이 정도 말한 것 가지고 모함이라니? 너는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전학 오자마자 내 몸에 더러운 물을 끼얹고는 내가 억울해 할 것은 왜 생각 못 해?”“너!
송성연은 속으로 대답했다.‘난 정말 3층에서 뛰어내렸어.’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해명을 해주는 것만 같아 그녀는 기뻤다. 이로써 같은 반 학생들이 모두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그녀는 자리로 돌아와 책상에 엎드려 계속 잠을 잤다.조금 전 3층에서 뛰어내리느라 너무 힘을 많이 썼는지 배가 더 아픈 것 같았다.그녀는 배를 문지르며 어떻게든 다시 잠을 청해 보려고 노력했다.잠이 들면 고통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드디어 하교 시간이 되었다.임정용의 일로 학교는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몇몇 말하기 좋아하는 학생들이 그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학교 측은 임정용 일가의 체면을 고려해 이번 사건을 덮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소문이 퍼져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학교 측은 할 수 없이 그의 부모를 모셔왔다.교장은 임정용의 부모 앞에 서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버님, 어머님. 저는 임정용 학생을 위해 전학을 제안합니다. 우리 학교에 계속 다니게 되면, 임정용 학생의 학교생활이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소문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아무리 바보라 하더라도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전학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정용의 아버지는 늘씬한 몸매에 정장 차림이었다. 어머니는 예쁜 얼굴에 정성 들인 화장을 하고 있었다.아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약간 초췌해 보였다.그들 부부는 각각 자신의 사업이 있어 지위가 꽤 높았다.하지만 부부의 하나뿐인 아들은 바보였다. 둘은 매일 일하느라 바빠서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해 그가 이렇게 되었다며 자책했다.임정용의 상태는 그들 일생의 고통일지도 몰랐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아들을 사랑했고,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그들은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에 대해 분노했다.임정용은 분명히 스스로 약을 먹
다음날 송성연은 등교해 수업을 들었다.이윤하는 강단에 서있었다. 그녀는 담임으로서 반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조용히 해. 모두 어제 교실에서 발생한 일을 잘 알고 있을 거야. 나는 개인 소지품을 검사해서라도 고의로 학우를 망신시킨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찾아야겠어.”그녀는 억지스러운 발언으로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개인 소지품을 검사하는 것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것과 같아요.][비밀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렇게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아요.][대놓고 우리 물건을 뒤지는 것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학생이지만 독립된 개체로서 인권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에요!]많은 학생이 내키지 않아 하며 불만의 소리가 커져갔다.그러나 자기 반에서 사건이 터진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윤하는 송성연의 약점을 잡고 싶었다.전에 사무실에서 체면을 구겼으니 이번에 반드시 복수해야 했다.그녀는 송성연과 그녀의 보호자의 태도 그리고, 교장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머리 숙여 사과한 굴욕적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무 화가 나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송성연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았다.만약 송성연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아무리 힘 있는 보호자라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게다가 어제 다른 학생들은 모두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나갔는데 송성연만 가지 않았었다.“이 일은 학교의 명성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또 학생들의 도덕성과도 관련되어 있으니, 너희들이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검사해야 해."이윤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송아연이 제일 먼저 나서서 그녀의 말을 두둔했다.“선생님, 주범을 잡기 위해 모두 적극적으로 협조할 거예요. 먼저 서랍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건을 숨기기에 제일 좋은 곳이잖아요.”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웃으며 성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송성연, 너도 참 운이 좋은 애야! 여러 번 내 계획을 무산시켰
성연의 말에 다른 학생들도 그녀가 옳다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이유 없이 억울함을 당하면 마음이 불편한 게 당연했다.하물며, 송성연은 전혀 이런 일을 할 사람 같지 않았다.이윤하는 학생들의 반응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송성연의 책상을 반드시 뒤지고야 말겠다고 이미 결심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 설마 찔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 돼서 그러니? 어제 우리 반에서 체육수업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야. 그리고 너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다 검사할 거야. 누구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야.”이윤하의 마음속에 이미 계산이 선 것을 안 성연은 웃음이 나왔다.“만약 제가 거절한다면요? 근거도 없이 검사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이에요. 만약, 선생님이 제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증거를 보여주세요. 지금 저는 전혀 협조할 필요가 없어요.”“그래도 검사하고 싶다면, 만약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경우에 학생들 앞에서 저에게 사과하세요. 지금 저는 매우 불쾌하거든요.”이윤하는 순간 화가 났다. ‘입만 열면 사과하라고 하잖아? 자기 집안이 배경 좀 있다고 해서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보지?’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억지스러운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냈다.“송성연,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정말 네가 한 짓은 아니겠지?”이윤하는 성연을 밀치고 책가방을 열어 그녀의 물건을 검사하려고 했다.성연도 더 이상 막지 않고 벽에 기대섰다.“그래요, 검사하세요. 마음대로 검사하세요! 이왕 검사하는 거 아주 샅샅이 검사해야 해요. 작은 틈이라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이윤하는 성연의 책가방과 책상을 뒤졌다.심지어 작은 틈새도 놓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마침내, 검사가 끝나자 성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윤하를 노려보았다.“어때요? 선생님, 사과하실 거죠?”성연은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며 비꼬았다.“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에서야 검사하다니, 범인도 아마 속으
이윤하가 고의로 자신을 겨냥한 것을 안 송성연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그래서 더는 망설이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이윤하도 막무가내로 나오는 판에 자신 역시 체면 따위 지켜줄 필요가 없었다.성연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이윤하는 매번 그녀 앞에 걸림돌을 만들었고, 이제 성연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지난번에는 강무진이 나서서 일이 잘 해결됐었는데, 얼마 안 돼 이윤하가 또 사건을 벌일 줄은 몰랐다. 성연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이윤하가 전에 그런 적이 없었다면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송성연, 그만해!”이윤하는 성연이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다.그녀는 개인적으로 송성연의 물건을 검사해 그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송성연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만약 정말 경찰이 온다면, 이 일은 온 학교가 다 알게 될 것이 뻔했다. 이윤하가 손을 들어 성연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전화는 연결됐고, 그녀는 재빨리 경찰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북성남고에 울려 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왔고 학교는 또 한 번 들썩였다.송아연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만약, 경찰이 더 깊이 조사하면 나는…….’송아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경찰 사람들과 학교 측 사람들이 모두 교실에 모였다.송성연이 입을 열었다.“경찰 아저씨, 바로 이 선생님이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범인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저를 찾아와 제 물건을 뒤졌어요. 그리고 제가 범인이라도 확신했어요. 경찰 아저씨가 해결해 주시길 부탁드려요.”성연은 말하는 중에 연신 눈시울이 붉어지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윤하, 송아연, 너희들만 연기할 수 있는 줄 알았지? 나도 연기 잘해!’성연은 고작 이런 일로 기죽지 않았다.교장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그는 이미 이윤하에게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