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의 말에 다른 학생들도 그녀가 옳다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이유 없이 억울함을 당하면 마음이 불편한 게 당연했다.하물며, 송성연은 전혀 이런 일을 할 사람 같지 않았다.이윤하는 학생들의 반응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송성연의 책상을 반드시 뒤지고야 말겠다고 이미 결심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 설마 찔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 돼서 그러니? 어제 우리 반에서 체육수업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야. 그리고 너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다 검사할 거야. 누구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야.”이윤하의 마음속에 이미 계산이 선 것을 안 성연은 웃음이 나왔다.“만약 제가 거절한다면요? 근거도 없이 검사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이에요. 만약, 선생님이 제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증거를 보여주세요. 지금 저는 전혀 협조할 필요가 없어요.”“그래도 검사하고 싶다면, 만약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경우에 학생들 앞에서 저에게 사과하세요. 지금 저는 매우 불쾌하거든요.”이윤하는 순간 화가 났다. ‘입만 열면 사과하라고 하잖아? 자기 집안이 배경 좀 있다고 해서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보지?’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억지스러운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냈다.“송성연,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정말 네가 한 짓은 아니겠지?”이윤하는 성연을 밀치고 책가방을 열어 그녀의 물건을 검사하려고 했다.성연도 더 이상 막지 않고 벽에 기대섰다.“그래요, 검사하세요. 마음대로 검사하세요! 이왕 검사하는 거 아주 샅샅이 검사해야 해요. 작은 틈이라도 절대 놓치지 마세요.”이윤하는 성연의 책가방과 책상을 뒤졌다.심지어 작은 틈새도 놓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마침내, 검사가 끝나자 성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윤하를 노려보았다.“어때요? 선생님, 사과하실 거죠?”성연은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며 비꼬았다.“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에서야 검사하다니, 범인도 아마 속으
이윤하가 고의로 자신을 겨냥한 것을 안 송성연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그래서 더는 망설이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이윤하도 막무가내로 나오는 판에 자신 역시 체면 따위 지켜줄 필요가 없었다.성연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이윤하는 매번 그녀 앞에 걸림돌을 만들었고, 이제 성연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지난번에는 강무진이 나서서 일이 잘 해결됐었는데, 얼마 안 돼 이윤하가 또 사건을 벌일 줄은 몰랐다. 성연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이윤하가 전에 그런 적이 없었다면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송성연, 그만해!”이윤하는 성연이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다.그녀는 개인적으로 송성연의 물건을 검사해 그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송성연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만약 정말 경찰이 온다면, 이 일은 온 학교가 다 알게 될 것이 뻔했다. 이윤하가 손을 들어 성연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전화는 연결됐고, 그녀는 재빨리 경찰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북성남고에 울려 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왔고 학교는 또 한 번 들썩였다.송아연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만약, 경찰이 더 깊이 조사하면 나는…….’송아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경찰 사람들과 학교 측 사람들이 모두 교실에 모였다.송성연이 입을 열었다.“경찰 아저씨, 바로 이 선생님이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범인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저를 찾아와 제 물건을 뒤졌어요. 그리고 제가 범인이라도 확신했어요. 경찰 아저씨가 해결해 주시길 부탁드려요.”성연은 말하는 중에 연신 눈시울이 붉어지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윤하, 송아연, 너희들만 연기할 수 있는 줄 알았지? 나도 연기 잘해!’성연은 고작 이런 일로 기죽지 않았다.교장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그는 이미 이윤하에게
경찰들이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빠짐없이 모두 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혐의가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그러자 경찰에서는 유일하게 체육 수업에 빠진 송성연이 진짜 보건실에 갔었는지를 의심했다.교장이 바로 보건실에 연락해서 보건교사를 오라고 불렀다.흰 가운 차림의 보건교사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섬세해서 여자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키가 커서 여자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교사였다.보건교사에게 다가간 경찰이 질문했다.“송성연 학생이 어제 오후 마지막 체육시간에 보건실에 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성연이 쪽을 한 번 쳐다본 보건교사가 얼굴을 확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송성연 학생이 배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와서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여서, 약 먹은 뒤에 보건실에서 좀 누워 쉬게 했습니다.”보건교사의 진술로 성연에 대한 모든 의심이 한순간에 풀려 버렸다.이로서 성연은 교실 사건의 용의자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보건실에 간 게 사실이라는 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송성연 학생이 아니라니, 잘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경찰은 보건교사의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아닙니다.” 가벼운 미소를 지은 보건교사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한 옆으로 비켜섰다.임정용에게 약을 먹인 사람이 성연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남으로서, 오늘의 탐문 조사는 대략 끝이 난 셈이다.교실에서 다른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우선은 학교에서 철수한 뒤, 다른 방면에서 단서를 찾아보기로 결론을 내렸다.하지만, 성연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성연이 이윤하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제 가방을 뒤졌으니, 이제 다른 애들 가방도 뒤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러면 선생님이 너무 편파적이라는 게 표나잖아요.”또 다시 성연이 자신을 걸고 넘어지자, 이윤하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난감한 기운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이윤하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수습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이제 됐어.
저것이 무엇인지 다른 학생들은 모두 몰랐지만, 송아연은 알아차렸다.‘이건 그냥 약일까? 아니면 그 약일까?’‘아까 분명히 전부 다 깨끗이 치웠는데, 어째서 내 서랍 속에서 나오는 거지?’경찰을 쳐다보던 아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학생, 설명 좀 해 주겠어요?” 아연을 놀라게 할까 걱정한 경찰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의심할 순 없었다.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던 아연이 입만 뻐끔거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누가 떨어뜨린 것 같아요.”억울한 척하는 아연이 정말 가소로웠다.‘겉으로 순진해 보이는 여자애의 속이 이처럼 더럽고 시커멀 줄 누군들 생각이나 했을까?’성연이 차가운 눈빛으로 아연을 응시하며 말했다.“조금 전까지 선생님한테 계속 나를 검사하라고 말씀드렸잖아. 설마 악의를 품고 그랬던 건 아니겠지? 무슨 마음으로 그런 거야?”아연은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분노를 느꼈다. 성연을 노렸던 계략이 실패한 것도 모자라 도리어 자신이 완전히 당한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심란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연한 척 애써 가장하며 대꾸했다.“엄한 사람 잡지 마.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어. 단지 네가 시골에서 왔다는 걸 생각했을 뿐이야. 시골 사람들은 늘 행동에 문제가 있으니, 너를 의심하는 게 정상 아냐?”“송아연 학생, 도대체 시골 사람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가지게 된 근거가 뭐지? 먹고, 입는 것, 그리고 시장의 채소까지 어느 것 하나 시골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응석받이로 자란 아가씨가 시골 사람보다 못하군. 무슨 자격으로 시골을 비하하는 거지?”성연 역시 화가 났다.시골 마을은 모두 순박하고 인심이 좋았다. 시골에서 지내며 행복했던 성연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순수 지대를 짓밟게 놔 둘 수가 없었다.현장에 있던 경찰들 모두 지방 농촌 지역 출신들이었다. 시골을 비하하는 아연의 말을 듣고서 모두
“경찰 아저씨, 전 정말 몰라요. 이것들이 어떻게 내 서랍에 있는지요.”아연이 목이 메이는 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두 뺨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또 가련한 모습으로 동정심을 유발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작이다.연약하면서 청순한 분위기의 송아연이 흘리는 눈물방울은 사람들의 보호 본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과연 곧 바로 아연을 편드는 소리가 들렸다.입을 여는 아이들은 모두 평소 아연을 쫓아다니던 남학생들이었다.[아연이가 얼마나 착한데, 이런 일을 어떻게 한 단 말이에요?][맞아, 지난번에 보니까 달팽이 한 마리도 못 밟고 지나가더라. 게다가 다른 사람이 밟을까 딴 곳에 옮겨 주기도 하고 말이야.][아연이가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잖아. 아마 바보가 하는 짓이 눈에 거슬린 누군가 대신 응징하려 한 게 아닐까?]남학생들의 말을 듣고 있던 여학생들은 대체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평소 보여주기 위해 연출한 송아연의 모습을 남자 아이들은 진짜로 믿었다.가증스러울 정도로 꾸며낸 청순 가련한 얼굴이 좀 예쁘게 생긴 것 외에는 달리 내세울 것도 없는데 말이다.분위기에 편승한 송아연의 또 다른 추종자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아연을 보았다. 모두가 송아연을 나쁘게만 생각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하지만 송아연은 분명 착하고, 실력도 뛰어난 여자아이야.’즉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너희들 쓸데없는 소리 마. 아연이 어제 그 바보에게 음료수를 주는 걸 봤어. 얼마나 친절하게 대했는데.”그러자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의 안색이 확 변했다.보건교사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제 기억이 맞다면, 지금도 병상에 누워 있을 임정용 학생은 병원의 검사 결과, 약을 탄 주스를 마셨다고 하던데. 정말 너였나 보구나.”아연은 속으로 대충 넘어가길 바랬다. 그런데 저 덜 떨어진 녀석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짜증이 치밀어 사납게 치 떤 눈으로 망할 녀석을 노려보았다.입 방정을 떤 녀석 역시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곧 아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
경찰에서 나온 사람들이 돌아간 후, 학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요 며칠 학교에서 발생한 골치 아픈 일들로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정도로 걱정인 교장이 손을 휘이 내저으며 당부했다.“학습 진도에 차질 없도록 수업 계속 진행하세요. 경찰이 공정하게 잘 처리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바로 앞에 서 있는 이윤하를 성연이 쓰윽, 흘겨보며 말했다.“이윤하 선생님, 아직 저에게 사과 안 하신 게 하나 있지 않나요?”이윤하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성연이 이 일을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다.아무 말 않고 서 있는 이윤하를 보며 성연이 가차없이 다그쳤다.“선생님, 조금 전에 많은 학우들 앞에서 나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설마 본인이 한 말도 책임 안 지시는 건 아니지요?”사실 조금 전, 이윤하가 그처럼 지나치게만 안 했어도, 성연은 그녀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얼굴이 새파래진 교장이 이윤하를 노려보며 질책했다.“이 선생은 어째서 늘 송성연 학우와 문제를 일으킵니까?”‘며칠 전에 사무실에서 한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단 말이야?’죽는 한이 있어도 이윤하가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별일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성연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 이윤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성연을 더 원망할 뿐이다.성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반응했다.“별일 없다구요? 반에 그렇게 많은 학우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어째서 저만 지목하셨어요? 딱 잘라서 제가 한 것이라고 단정하셨잖아요?”눈에 굴욕감과 불쾌감이 떠오른 이윤하가 손가락을 꽉 그러모아 쥐었다.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송성연에게 사과하라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진배없었다.‘진짜 사과를 한다면 앞으로 누가 내 말을 듣겠어?’성연은 이윤하의 생각을 간파했다.‘여태 뭐 하다 이제서야 체면에 신경 쓰고 그래?’“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잖아요, 제가 강요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 되시면서 ‘약속 지키는 법’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두 눈이 허옇게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난 임수정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송종철의 안색은 더 엉망으로 구겨졌다. 아연이 다른 사람을 건드린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임씨 집안을 건드리다니.임씨 집안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상대였다.송종철은 곧바로 아연을 만나 어떤 상황인지 물어볼 수 있도록 경찰에게 요구했다.현재 유치장 구류 중인 아연은 면회가 허용되는 상태였기에, 경찰에서는 그들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줬다.헝클어진 머리에 울어서 빨갛게 부어 오른 눈, 눈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아연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세심하게 단장했던 평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하고 이기적인 임수정이지만 자신의 딸 송아연만큼은 누구보다 아꼈다.어려서부터 손에 올려 놓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운 딸이건만,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임수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아연아, 아이고, 불쌍한 내 딸.”송아연도 울었다.“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도와줘요. 나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유치장은 두 모녀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다.임씨 집안과의 문제로 마음이 복잡하던 송종철은 두 모녀의 울음소리에 더욱 골치가 아팠다.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울면, 지금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지금은 문제를 해결해야 해. 아연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을 해 봐!”그의 처 임수정과 딸 아연은 그저 모든 걸 누리기만 하고 살아왔다.그에 반해 송종철은 집안의 가장이었다. 큰일이 터졌을 때. 역시 집에서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두 모녀는 즉시 울음을 멈추었다. 임수정이 아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아연아, 걱정 말고 찬찬히 말해 봐. 아빠, 엄마가 죽을 힘을 다해 도와줄 테니까!”“송성연 때문이에요. 걔가 고의로 약을 내 서랍에 집어넣었어요. 당시 송성연만 교실에 남아 있었단 말이에요. 성연이가 임정용에게 준 약이 틀림없어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송성연 걔
송종철이 얼마나 크게 소리질렀는지, ‘짐승’이라는 단어가 거실 전체에 크게 울리며 강무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의 눈에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성연이 이런 소리로 불린다는 게 무척이나 맘에 안 드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성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이미 습관이 되고 마비되어서 그런 지도.게다가, 소위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있었는 지도 기억에 없다.성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받았다.“짐승이 송아연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짐승 맞네요.”화가 난 송종철의 가슴이 오르내렸고,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송성연, 나와 입씨름할 생각 마라. 아연일 모함해서 잡혀가게 해 놓고는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송아연이 또 경찰서에서 앞뒤 바꿔서 말했을 것이 뻔했다.그러나 성연 자신은 아무나 마음대로 뭉갠다고 뭉개지는 그런 홍시 같은 존재가 아니다.“제가 무슨 낯짝이 없어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송아연이에요. 걔가 저지른 비양심적인 일은 전교생이 다 알아요. 잘 모르시면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설명해 드릴 수도 있고요!”“아연이 약을 탄 음료수를 임정용에게 줬어요. 그래서 임정용이 교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벌였고요. 약은 모두 경찰이 직접 아연이 가방에서 찾아낸 거예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요. 왜 또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던가요?”성연이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 이어서 말했다.“송아연이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다고 해도 그건 모두 자신이 자초한 거라고요!”아연이 경찰서에서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아연인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그들의 자랑거리였다.임수정은 당연히 자신의 딸을 더 믿었다. 아연이 결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줄곧 송종철 옆에서 성연의 말을 듣고 있던 임수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고서는 욕설을 퍼부었다.“거짓말 마! 아연이 어떤 아이인지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알아. 너, 나이도 어린 게 어쩜 이렇게 못돼 쳐먹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던 성연이 뭔가를 떠올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전히 채연 언니를 잊지 않았어요? 어쩐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사형이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하지 않더라니.”그래함은 속내를 들킨 듯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잠시 후에 성연이 비로소 말했다.“사형의 생각을 알겠어요. 괜찮아요.”“이틀만 있다가 가자.” 그래함의 심정은 사실 좀 불안했다.자신이 한결같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돌아가서 한 번 보려던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그래요.” 성연이 대답했다.모처럼 그래함이 국내에 왔는데, 이 작은 소원을 성연이 어떻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성연도 오랫동안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기에 할머니를 뵈러 가야 했다.‘할머니는 나를 기대하시면서 잘 지내셨을 거야.’‘이제는 할머니에게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별장에서 돌아간 성연은 무진에게 이 일을 알려주었다.“시골 마을로 돌아간다고? 왜 갑자기 시골에 갈 생각을 했어?” 무진은 여전히 호텔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을 했다.‘지금은 정말 안전하지 않아.’‘시골 마을에 가면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그래요, 사형이 부탁한 건데 어쨌든 같이 가 봐야죠.” 성연은 이런 일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좀 보자, 성연아. 네가 시골 마을에 있을 때 그래함도 너하고 함께 살았어?”무진이 물었다.‘알고 보니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구나.’‘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거야.’성연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말하자면 길어요.”원래 당시 성연이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있을 때 그래함도 있었다.스승님은 그래함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해외 유학을 하고 사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다만, 지금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스
무진이 며칠 동안 조사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매일 자신이 직접 이 일의 진척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성연도 서한기에게 이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결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겠어.’지금은 누구라도 성연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다.성연이 만약 계속 이렇게 있다면, 아마 그 사람들은 성연이 만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성연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만약 이번에 이로 인해서 정말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성연은 필연적으로 그 일당을 잡아내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앞서 무진이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성연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성연이 이 일에 관여해야 했다.이 일을 수하에게 맡긴 뒤, 성연은 수시로 그래함과 함께 북성을 돌아다녔다.이제 그래함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호텔에 있으면 또 비슷한 일이 생길까 봐 무진이 그래함에게 한적한 별장을 준비했다.그리고 하인 두 명을 뽑아서 보냈다.모두 우리 편이기에 마음 놓고 사람을 쓸 수 있었다.“사형, 아니면 사형이 국내로 돌아오세요. 여기는 사람도 많아서 우리도 자주 만날 수 있어요. 사형 혼자 외국에서 외톨이로 지내면서 고독하게 명절을 보내잖아요.” 성연은 그래함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그래함이 가까스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성연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성연도 사형들을 가족으로 여긴다는 것이다.“됐어, 나도 요 몇 년 동안 외국에 있으면서 익숙해졌어. 적응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 그래함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 동작은 다른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사랑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사형, 잘 생각해보세요.” 성연은 애교를 부렸다.“그래, 생각해 볼게. 넌 지금 강무진이 좋지 않아? 나보고 너희 훼방꾼이 되라는 거야?”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
그래함은 모든 일의 과정을 자세히 돌이켜보았다.풀리지 않는 의혹이 가득한 표정이었다“나는 방금 이곳에 왔고 다른 사람과 원한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런 거지?”‘일부러 내 방으로 물건을 보낸 건 분명히 나를 해치려는 거야.’그래함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에게 미움을 샀다면, 나는 방금 북성에 왔기에 불가능한 일이야.’성연도 일찌감치 이 문제를 생각했다.그래함이 문제를 제기한 이상 성연이 바로 말했다.“그자가 나를 목표로 했을 거예요. 독을 쓴 대상이 아마도 나였을 거예요. 다만 그때 내가 먹을 수 없었지요.”‘그때 성연이 정말 음식을 다 먹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상상할 수도 없어.’‘지금 그래함이 성연을 대신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무진은 갑자기 당황스러웠다.‘지금 결국 누군가가 성연에게 독수를 썼어.’바로 옆을 보고 말했다.“손 비서, 사람을 보내서 그 대체되었다는 종업원을 추적해!”“예.”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갔다.그래함의 마음속에는 더욱 많은 의문이 들었다.“성연이는 줄곧 선량했고 또 의술을 익혀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악랄한 인간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겠어?”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다 큰 남자인 나도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는데, 여린 소녀인 성연은 더 말할 것도 없어.’무진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성연이 상처를 받은 것은 십중팔구 모두 나 때문이야.’‘만약 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성연이가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지는 않았을 거야.’‘성연을 잘 보호해야 했어.’무진이 자신 때문이라고 막 입을 열려고 했다.옆에 있던 성연이 바로 말했다.“사형, 이 일은 얘기하자면 길어요. 다음에 다시 사형에게 얘기해 줄게요. 때로는 사형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도 귀찮은 일이 찾아오는 법이지요.”성연은 이런 것들이 모두 무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모두 나쁜 마음을 품은 그 인간들이 소란을 피웠을 뿐이야.’“네 말도 맞지만, 이런 일은
집에 돌아온 성연은 약재를 가지고 황급히 해독약을 조제했다.다 만든 뒤에 바로 그래함에게 보냈다.“사형, 이건 해독환이에요. 빨리 먹어요.”그래함이 바로 해독환을 먹자 작용도 빨랐다. 그래함의 배는 곧 아프지 않게 되었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괜찮아요? 사형?” 성연은 시종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그래함이 위로하며 말했다.“네 약이 아주 효과가 있네.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어.”“그럼 됐어요.”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혹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 오는 도중에 성연의 마음은 시종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안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야.’이때 무진도 병원에 도착해서 그래함에게 조사 결과를 알려주었다.“원래의 종업원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매수되었을 겁니다. 제가 지배인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무진은 눈썹을 찌푸렸다.대신한 사람에 관해서도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누가 자신의 눈앞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생각하니 무진은 정말 화가 났다.“강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그래함도 이런 일은 성연과 무진이 바라던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닙니다. 총재님의 몸은 좀 어떻습니까?” 무진도 걱정이 되었다.그래함은 성연에게 있어서 당연히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성연이가 방금 약을 가져와서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습니다. 강 대표님께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래함의 손에는 아직 링거가 꼽혀 있었다.병원의 약효는 성연 자신이 배합한 약보다 못했다.효과도 느렸다.성연의 약이 있어서 그래함의 몸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제가 배후에 있는 자를 잡아낼 테니, 그 점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만약 이런 작은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래함 그들도 틀림없이 내가 성연이를 잘 보호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거야.’“저는 걱정하지
성연이 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서 그래함을 긴급히 병원으로 호송했다.그리고 남아서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수집한 성연은 무진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다.무진은 서류들을 다 처리하고 마침 호텔 방향으로 달려오던 중이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무진이 운전기사에게 다급하게 지시했다.“빨리 가자!”조수석에 앉아 있던 손건호도 무진의 초조한 말투를 듣고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그래함에게 사고가 생겼어. 서둘러.” 무진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손건호도 그래함 이 사람의 중요성을 알기에 눈썹을 찌푸리면서 표정이 굳어졌다.곧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성연이 뛰어나와서 무진에게 말했다.“음식에 독이 있었어요. 무진 씨가 여기를 조사해 보세요. 난 돌아가서 물건을 좀 가져올게요.”급하게 나온 성연은 몸에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방금 그래함에게 은침을 놓아서 독소의 확산을 어느 정도는 억제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독은 일반적인 독이 아니라서 반드시 성연이 돌아가서 조제해야 했다.병원이라고 반드시 잘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무진은 성연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건호와 함께 들어갔다.호텔의 지배인이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여기서 큰 인물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말에 지배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는 정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지배인 앞으로 다가간 무진이 바로 노여워하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네 호텔 음식에 누가 독을 넣었어요?”지배인은 정말 억울했다.무진의 앞에 선 채 땀도 감히 닦지 못했다.“강 대표님, 저희 음식은 모두 겹겹이 점검해서 깨끗하지 못하거나 누가 독을 넣는 상황은 생길 수 없습니다.”“손 비서, 가서 물건을 가져와.” 무진이 지시했다.손건호는 무진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바로 그래함의 방으로 가서 그 음식들을 모두 가져왔다.그리고 검사를 담당하는 의사도 왔다. 음
성연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물을 좀 마시자 많이 좋아졌다.가슴에서 솟구치던 메스꺼움도 이렇게 내려갔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에는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그래서 성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그래함이 휴지를 주면서 말했다.“괜찮아. 불편하면 억지로 먹지 마. 나 혼자 먹으면 돼.”“그래요, 옆에서 과일이나 좀 먹으면서 기다릴게요.” 성연도 자신이 왜 이런지 의아했다.이전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곧 개의치 않았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포도를 먹자 많이 완화되었다.그래함은 혼자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아주 깔끔하게 먹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다.성연은 정말 아쉬워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 주변의 사형들은 모두 최고의 남자들이야.’‘내게 절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최고인 사형들을 다른 여자들이 채 가는 걸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성연은 아쉬운 표정이었다.그래도 다행히 성연이 주문한 음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식량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래함은 앞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깨끗하게 먹었다.성연이 때맞춰서 그래함에게 물 한 잔을 꺼냈다.“사형, 물 드세요.”그래함이 물컵을 받으며 말했다.“너는 정말 철이 들었어”성연은 다소 불복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당연하지요. 나는 지금 성인인데요, 그렇죠? 사형들은 나를 어린애로 보지 말아요.”“너 근데 애잖아?”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다.그래함의 눈에 성연은 줄곧 자신이 보살펴야 할 여동생이었다.“나야말로 아니거든요. 난 결혼도 할 건데요.” 성연이 불만스럽게 반박했다.그래함이 감탄하면서 말했다.“맞아,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네.”“빨리 사형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요. 혼자는 외롭잖아요.” 성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함이 막 대답하려고 하는데 배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이 통증은 너무 심해서 그래함처럼 인내심이 좋은 사람조차 허리를 굽힐 정도로 아팠다.심
무진은 그래함에게 로얄 스위트룸을 마련해 주었다.안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고 그래함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다.그래함과 밥을 먹은 후, 무진은 아직 처리해야 할 급한 서류가 남아 있었다.성연을 남겨두고서 회사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했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무릎 위에 땅콩 한 봉지를 놓고 먹으면서 아주 쾌적한 모습이었다.그리고 그래함의 앞에는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강무진을 선택했어?”“사형,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또 물어봐요?” 성연은 그래함이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고 느꼈다.“난 잘 모르겠어. 네 마음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함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장난도 심한 데다가 애교도 잘 부려서, 거의 아무도 굴복시킬 수 없었지.’‘엄격한 고학중 사부님조차도 성연이를 대하면서 총애할 수밖에 없었어.’‘성연이가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인연이 오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잖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거릴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돼.” 그래함은 담소하면서 성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사실 성연 자신도 무진과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잘 몰랐다.애초에 두 사람이 상대방에게 접근했을 때 목적은 모두 단순하지 않았다.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보살피고 고백하면서 성연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성연은 이렇게 발동이 늦게 걸리는 사람이다.무진만 성연을 원하면서 인내심 있게 성연이 깨닫기를 기다렸을 뿐이다.무진의 성연에 대한 이 인내심만으로도 성연은 완전히 마음이 기울었다.“사형, 정말로, 감정 이런 일은 인연에 달려 있어요.” 성연은 자신의 생각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느끼면서 말했다.“그래.” 그래함의 시선은 어딘가 아련해 보였다.마치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것 같았다.성연이 말한 인연이 있는 그곳...“그 얘기는 그만해요
“만약 강 대표님이 관심이 있다면 저와 함께 미주 시장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가장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그래함은 무진의 명성이 과연 헛된 것이 아님을 발견하였다.‘그는 정말 사업에 소질이 있어.’‘이 점에서는 다른 사람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어.’무진에 대해 그래함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그런 의향이 있다면 총재님께 연락하겠습니다.” 무진에게는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일이 너무 많다.지금 WS그룹의 근간이 북성에 있다는 건 차치하고라도.안금여와 강운경도 동분서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발전 프로젝트는 괜찮지만, 미국에 간다면 아마 통하지 않을 것이다.“강 대표님이 가든 안 가든, 나와 강 대표님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에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함의 표정은 온화했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무진의 차가움과는 다르다.그래함은 뼛속까지 온유함이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그건 당연하지요.” 무진도 그래함이라는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단히 만족했다.“무진 씨와 성연이는 언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입니까?” 그래함이 이번에 온 것은 역시 주로 이 일 때문이다.지난 번에 목현수가 소식을 알려주었지만, 그는 시종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반드시 와서 직접 봐야 했다.“이미 준비 중입니다.” 무진의 표정은 온화했고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부드러움이 가득했다.“그럼 정말 좋지요, 그러면 제가 남아서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겠군요.” 그래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그래함이 무진에게 아주 만족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쉬었다가 그래함이 계속 말했다.“예전에 성연이 스승님이 우리 사형들에게 성연이를 돌봐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약속이자 책임이지요. 저희는 모두 성연이의 친정 식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연이를 강 대표에게 맡기면 우리 모두 정말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강무진의 사람됨을
특별히 외국에서 돌아온 그래함이 성연을 방문했다.성연에게 재미있는 선물도 많이 가져왔다.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이다.성연은 선물을 들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그래함은 성연을 아주 잘 알고 있다.선물한 물건은 그야말로 모두 성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고른 것이다.“네가 좋아하니 됐어, 내가 이번에 괜히 오지는 않았구나.” 그래함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바쁜 사람인데 시간을 내서 저를 보러 온 걸로 이미 만족해요. 또 무슨 선물까지 가지고 왔어요?” 성연은 그래함이 정말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매일 발을 땅에 댈 사이도 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한가할 때가 드물었다.“다 들었어. 우리 성연이가 약혼자를 정했다고. 나는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한번 보러 온 거야.”그래함이 담담하게 말했다.오히려 목현수처럼 무진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성연이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모두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성연이가 행복하면 돼.’그 이유를 들은 성연은 좀 어이가 없었다.“좋아요. 저녁에 데리고 와서 보게 해 줄게요.”“기다릴게.” 그래함의 말은 온화함이 가득했다.성연은 조치하기 전에 먼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렸다.성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었을 때 무진은 한순간 멍해졌다.“그 그래함 씨야?”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무진 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 같네요.”무진은 잠잠해졌다.‘성연이가 도대체 또 얼마나 많은 큰 인물을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그러나 성연이 소지한과 목현수와 아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 그래함을 아는 걸 기이하게 여기는 것도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오늘 저녁에 시간이 돼요?” 성연이 물었다.“돼, 걱정하지 마. 내가 준비할게.” 무진이 바로 대답했다.‘만약 정말 그 그래함이라면, 어쨌든 예의를 잃어서는 안 돼.’저녁.성연, 무진과 그래함이 식당에서 만났다.‘자료상으로는 그래함은 줄곧 미국에서 거주해왔어.’‘그가 국내에 왔지만 국내 음식에 익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