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나온 사람들이 돌아간 후, 학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요 며칠 학교에서 발생한 골치 아픈 일들로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정도로 걱정인 교장이 손을 휘이 내저으며 당부했다.“학습 진도에 차질 없도록 수업 계속 진행하세요. 경찰이 공정하게 잘 처리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바로 앞에 서 있는 이윤하를 성연이 쓰윽, 흘겨보며 말했다.“이윤하 선생님, 아직 저에게 사과 안 하신 게 하나 있지 않나요?”이윤하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성연이 이 일을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다.아무 말 않고 서 있는 이윤하를 보며 성연이 가차없이 다그쳤다.“선생님, 조금 전에 많은 학우들 앞에서 나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설마 본인이 한 말도 책임 안 지시는 건 아니지요?”사실 조금 전, 이윤하가 그처럼 지나치게만 안 했어도, 성연은 그녀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얼굴이 새파래진 교장이 이윤하를 노려보며 질책했다.“이 선생은 어째서 늘 송성연 학우와 문제를 일으킵니까?”‘며칠 전에 사무실에서 한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단 말이야?’죽는 한이 있어도 이윤하가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별일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성연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 이윤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성연을 더 원망할 뿐이다.성연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반응했다.“별일 없다구요? 반에 그렇게 많은 학우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어째서 저만 지목하셨어요? 딱 잘라서 제가 한 것이라고 단정하셨잖아요?”눈에 굴욕감과 불쾌감이 떠오른 이윤하가 손가락을 꽉 그러모아 쥐었다.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송성연에게 사과하라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진배없었다.‘진짜 사과를 한다면 앞으로 누가 내 말을 듣겠어?’성연은 이윤하의 생각을 간파했다.‘여태 뭐 하다 이제서야 체면에 신경 쓰고 그래?’“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잖아요, 제가 강요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 되시면서 ‘약속 지키는 법’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두 눈이 허옇게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난 임수정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송종철의 안색은 더 엉망으로 구겨졌다. 아연이 다른 사람을 건드린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임씨 집안을 건드리다니.임씨 집안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상대였다.송종철은 곧바로 아연을 만나 어떤 상황인지 물어볼 수 있도록 경찰에게 요구했다.현재 유치장 구류 중인 아연은 면회가 허용되는 상태였기에, 경찰에서는 그들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줬다.헝클어진 머리에 울어서 빨갛게 부어 오른 눈, 눈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아연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세심하게 단장했던 평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하고 이기적인 임수정이지만 자신의 딸 송아연만큼은 누구보다 아꼈다.어려서부터 손에 올려 놓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운 딸이건만,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임수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아연아, 아이고, 불쌍한 내 딸.”송아연도 울었다.“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도와줘요. 나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유치장은 두 모녀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다.임씨 집안과의 문제로 마음이 복잡하던 송종철은 두 모녀의 울음소리에 더욱 골치가 아팠다.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울면, 지금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지금은 문제를 해결해야 해. 아연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을 해 봐!”그의 처 임수정과 딸 아연은 그저 모든 걸 누리기만 하고 살아왔다.그에 반해 송종철은 집안의 가장이었다. 큰일이 터졌을 때. 역시 집에서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두 모녀는 즉시 울음을 멈추었다. 임수정이 아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아연아, 걱정 말고 찬찬히 말해 봐. 아빠, 엄마가 죽을 힘을 다해 도와줄 테니까!”“송성연 때문이에요. 걔가 고의로 약을 내 서랍에 집어넣었어요. 당시 송성연만 교실에 남아 있었단 말이에요. 성연이가 임정용에게 준 약이 틀림없어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송성연 걔
송종철이 얼마나 크게 소리질렀는지, ‘짐승’이라는 단어가 거실 전체에 크게 울리며 강무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의 눈에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성연이 이런 소리로 불린다는 게 무척이나 맘에 안 드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성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이미 습관이 되고 마비되어서 그런 지도.게다가, 소위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있었는 지도 기억에 없다.성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받았다.“짐승이 송아연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짐승 맞네요.”화가 난 송종철의 가슴이 오르내렸고,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송성연, 나와 입씨름할 생각 마라. 아연일 모함해서 잡혀가게 해 놓고는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송아연이 또 경찰서에서 앞뒤 바꿔서 말했을 것이 뻔했다.그러나 성연 자신은 아무나 마음대로 뭉갠다고 뭉개지는 그런 홍시 같은 존재가 아니다.“제가 무슨 낯짝이 없어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송아연이에요. 걔가 저지른 비양심적인 일은 전교생이 다 알아요. 잘 모르시면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설명해 드릴 수도 있고요!”“아연이 약을 탄 음료수를 임정용에게 줬어요. 그래서 임정용이 교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벌였고요. 약은 모두 경찰이 직접 아연이 가방에서 찾아낸 거예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요. 왜 또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던가요?”성연이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 이어서 말했다.“송아연이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다고 해도 그건 모두 자신이 자초한 거라고요!”아연이 경찰서에서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아연인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그들의 자랑거리였다.임수정은 당연히 자신의 딸을 더 믿었다. 아연이 결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줄곧 송종철 옆에서 성연의 말을 듣고 있던 임수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고서는 욕설을 퍼부었다.“거짓말 마! 아연이 어떤 아이인지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알아. 너, 나이도 어린 게 어쩜 이렇게 못돼 쳐먹
통화를 끝낸 성연은 망설임 없이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송종철과 임수정이 미친 개처럼 짖어대는 말에 또다시 상처받지 않게.컵을 테이블 위에 놓은 성연이 소파에 웅크린 채 넋을 빼고 있었다.성연을 조사 했었던 무진은 각자 재혼을 한 그녀 부모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정도까지 최악일 줄은 몰랐다.“너네 가족들, 설마 계속 이런 식으로 너와 대화한 거야?”무진이 성연에게 물었다.성연이 입술 끝에 힘을 주었다. 집안의 추태는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아니다. 이처럼 창피한 일을 그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미 강무진이 다 들어 버렸다. 아마 앞으로 이런 장면을 볼 기회는 더 많을 것이다. 머리 속에서 계산이 끝난 성연이 솔직하게 말했다.“아뇨. 저들은 아예 나와는 대화라는 걸 하지 않아요.”먼 곳을 바라보던 동공에 점차 초점이 사라지며, 성연은 오래전의 추억에 빠졌다.“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유일하게 나에게 관심 가져 주신 분이었어요. 제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저 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만 생각 했지만요…….”송종철이 자신을 시골에서 데려온 목적을 생각하자 참지 못한 성연이 물었다.“송종철이 나를 강씨 집안에 보낼 때, 엄청 많은 예물을 요구했겠죠?”강무진을 강씨 집안의 미치광이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딸을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다.워낙 명성이 자자한 강무진이었기에 이런 방법을 쓴 것이고.하지만 성연이 볼 때, 강무진은 아주 정상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두 사람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고.강씨 집안의 입장에서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아니, 꽤 좋았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음, 확실히.”그까짓 돈, 강씨 집안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아직 안 줬죠?” 성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직은.”그녀가 묻는 질문마다 무진이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반색을 한 성연이 흥분해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기왕 이렇게 된 거, 그 돈 나한테 줘요. 송종철의 행위는 딸을 판 거
성연이 그제서야 무진이 일부러 자신의 애를 태우려 했음을 눈치챘다.갑자기 어이가 없어진 성연이 속으로 혀를 찼다.‘이 사람 진짜 손해라고는 조금도 안 볼 사람이네.’“문제없어요. 돈만 주신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죠.” 성연이 마지못한 듯 승낙했다.‘신분만 드러내지 않으면 돼.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두는 거야.’성연이 집사를 찾았다.“집사 아저씨, 오늘 아침에 나가면서 사와야 할 약재 목록을 드렸는데, 모두 사셨어요?”“네. 작은 사모님.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집사가 즉시 창고로 가서 약재를 꺼내 왔다.주로 강무진의 약욕에 사용될 이 약재들은 성연이 직접 그 분량과 배합을 조절해야 했다.약마다 그 효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성연이 고개를 숙인 채 약재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최상품의 약재들은 가격도 엄청나게 비싼 만큼 그 사용 효과 또한 분명해서, 들인 노력의 배로 큰 성과를 거둘 것이었다.성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말했다.“좋아요.” 상자 안의 약재를 받아 든 성연이 필요한 분량을 손으로 가늠해서 덜어내고, 곧바로 약을 배합해냈다.그리고 약재들마다 얼마만큼의 중량이 필요한지 일일이 집사에게 말했다.절반쯤 말하다 집사가 다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이 된 성연이 아예 약재의 중량을 펜으로 써내려 갔다.다 쓴 후, 쪽지를 집사에게 건네며 당부했다.“집사 아저씨, 나중에 꺼내기 편하도록 약재들을 잘 분류해서 보관하라고 이르세요. 그리고 정확한 중량을 꼭 기억하세요. 절대 틀리면 안돼요. 안 그러면 오히려 아주 심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요.”성연의 의술은 아주 뛰어났다. 그만큼 약효도 빠르다.하지만 성연의 약제법은 꽤 과감한 편이라서, 자신이 직접 처방할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지, 다른 사람에게 처방전을 함부로 줄 수는 없었다.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아주 컸다.“네, 작은 사모님.”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는 도련님의 병세를 위해 열심인 성연을 보며
멍하니 쳐다보던 성연은 금세 알아차렸다.그날 강씨 집안의 모임에서 드러난 모습이 다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야 겨우 입으로만 찧고 빻을 뿐이지만, 등뒤에서는 어떤 떳떳치 못한 일들을 할지 알 수 없는 터.이 대단한 가족들의 내부 암투는 확실히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강씨 집안은 사람을 유혹하는 커다란 케이크 같았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 더 큰 케익을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가운데, 무진이 지난 번처럼 다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성연은 분별 있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자, 옷 벗어요.”그녀가 돌연 말을 던졌다.서로 눈을 마주친 집사와 손건호는 상대방의 눈에서 똑같은 놀라움을 보았다.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얼른 방에서 물러나왔다.무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거의 도망가는 듯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성연이 움찔했다.성연의 볼 양쪽에 불시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홍조는 곧 볼에서 눈가의 미간으로 번져갔다.성연이 다소 어색한 듯이 바닥만 노려보았다.수줍어하는 성연을 무진이 시종 여유로운 모습으로 관찰했다.하얀 성연의 피부는 수줍은 빛을 띄자 온통 연분홍 가루를 덮어쓴 듯했다. 손톱마저 연분홍 빛을 띈 모습이 말도 안되게 귀여웠다.작열하듯 뜨거운 시선에 정신을 차린 성연이 강무진을 보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오해하지 마세요. 침을 놓으려면 옷을 벗어야 해요. 안 그러면 침을 놓기 힘들어요.”무의식 중에 말하고 나서야 성연은 깨달았다.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말이다.성연의 의중을 파악한 무진이 곧 하얀 실크 셔츠의 단추를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 내리며, 탄탄한 상체를 드러내었다.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데도 무진의 몸은 전혀 약해 보이지 않았다.탄탄한 몸의 근육들은 보기만 해도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였다.조명 아래 하얗게 부서지는 광택은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싶게 했다.물론 이런 생각은 그저 성연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무진을 환
성연은 너무도 피곤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이처럼 무리한 적은 없었다.몸을 쭉 늘어뜨렸다 카펫을 짚고 일어난 성연이 한쪽편에 놓인 쿠션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약효가 다 되어서인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무진이 번쩍 눈을 떴다.엎드려 있는 그의 등에는 온통 은침이 꽂혀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벽에 기대어 잠든 성연을 쳐다보았다.눈을 감았을 때 오히려 더 깜찍해 보였다. 조명이 날렵한 콧등 위로 부서지며 도자기처럼 새하얗고 매끈한 볼을 뒤덮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교하게 빚은 예쁜 인형 같기도 하고.单纯,无害,让人心生宁静的美好和向往。단순하고 무해하며,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다.눈을 떴을 때, 뼛속 깊은 곳에서 칼날처럼 예리한 기운이 절로 튀어나왔다.무진이 성연을 뚫어져라 본 지 한참이 지났다.오래전부터 훈련을 통해 시선에 대해 예민한 성연이다.무진이 그녀를 주시했을 때, 이미 그의 시선을 알아챘었다.하지만 워낙 피곤한지라, 생각을 비웠다.‘볼 테면 봐라.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닌데, 뭐.’성연의 체력이 거진 회복되었는데도 무진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참지 못한 성연이 눈살을 찌푸린 채 차가운 시선으로 무진의 몸을 한 번 훑었다.“얼마나 더 볼 거예요?”눈을 뜬 그녀는 곧바로 깊은 동굴과도 같은 무진의 눈과 마주했다.삽시간에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무진이 흥미로운 듯 말했다. “언제까지 잠든 척하는지 보려고.”성연이 웃는 듯 마는 듯 쳐다보며 대꾸했다.“이 침, 안 뽑아도 되겠네!”“나를 실험실의 쥐처럼 다루고 싶은 건 아니고?” 무진이 일부러 성연을 자극했다.그에 성연이 아예 아랑곳도 하지 않고 대꾸했다.“맞아요. 독살을 당한다 해도, 난 몰라요.”두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말장난을 이어갔다. 마치 즐기고 있는 듯하다.우습게도 정작 자신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결국 성연이 말장난을 끝냈다.손을 들어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 성연이 침대로 다
은색 잠옷을 입은 무진이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그의 컨디션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상태였다.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던 성연이 곁눈질하듯이 슬쩍 한 번 쳐다보았다.약을 사용한 후,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만약 조금이라도 능력이 되지 않았다면, 성연이 하겠다고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기본이다.휴대폰을 내려놓은 성연이 고개를 치켜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내일 저녁엔 다리에 집중해서 침을 놓을 거예요. 약욕의 재료도 다를 거고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 상태가 잘 느껴졌다. 성연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평소에 주의해야 할 건?”무진이 물었다.미간을 살짝 문지르며 대답하는 성연의 안색은 피로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틈날 때마다 많이 걷는 게 좋아요. 위축된 근육을 단련시키려면,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건 안 좋아요.”하품을 한 성연이 침대에 올라가 머리를 대더니 곧바로 잠이 들었다.무진도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온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작고 연약한 동물 같았다.무진이 픽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여자애는 도무지 경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듯 아무 생각없이 군다.‘하, 아니 나도 남자인데, 이렇게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거야?’천천히 성연의 옆에 누운 무진은 은은하고 맑은 약향을 맡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로 잠들었다.이튿날, 깨어난 무진은 활기가 넘쳤다. 안색 또한 평소의 창백한 빛이 아니라, 건강한 붉은 빛이 더해졌다.이렇듯 눈에 띌 정도로 변화를 보이자, 집사와 손건호는 놀랍도록 반가웠다.‘어린 사모님이 정말 대단하셔. 허풍이 아니었어.’‘몇 십년의 경험을 자랑하는 나이 많은 명의들보다도 의술이 더 뛰어난 것 같아.’진우현이 또 방문했다. 진료하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의약품 상자도 챙겨 가지고 왔다.하지만 사실, 의약품 상자 안은 비어 있는 채였다.무진의 멘탈 부분을 좀 살펴볼 생각에 방문한 터였다.며칠 오지 않았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