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집으로 돌아간 송종철이 임수정과 송아연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임수정이 송종철에게 욕을 퍼부어댔다.“사과? 송성연 그 촌 것이 무슨 자격으로? 그럼 내가 뭐가 돼냐고?”“그러게 아빠, 걔한테 사과하라는 건 나더러 죽으라는 말 아냐? 정말 촌닭 송성연 같은 애한테 사과하라고 하느니 차라리 날 죽여.” 아연이 얼굴 가득 혐오감을 드러내며 거부했다.두 모녀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송성연 그 애가 자격으로 자신들의 절과 사과를 받느냐는 것만 생각했다.좀 더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송종철은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강씨 집안에서 말을 해 주지 않는 이상 북성에서 아연을 받아줄 학교는 없었다.이전엔 함께 욕하던 송종철이었지만, 이제는 그들을 질책했다.“소란 피우지 마. 이제는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야. 성연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귀염을 받고 있어. 강씨 집안 회장님이 직접 아연이 너더러 와서 사과하라고 하신 거야. 물론 나도 같이 고개 숙이고 잘못을 빌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를 외국으로 보내 공부시킬 수밖에 없다.”송종철 또한 여러 가지로 성연이 맘에 들지 않았다.괴롭기 그지없지만, 부득이 현실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학위도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야.“아빠, 전 외국에 나가지 않을 거예요. 난 계속 북성남고에 남을 거라고요.”아연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정말 해외로 나가게 되면 강제로 떠밀려 간다는 자패감에 스스로 창피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무엇보다 자신을 몰아낸 것이 다름아닌 송성연이라니.송성연, 그 촌닭, 촌뜨기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그런 자신에게 사과하라는 건 스스로 내 뺨을 때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성연은 틀림없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아연은 내가 직접 데리고 키웠다구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를 외국으로 보내서 어쩌려고? 혼자 집을 떠나보내다니, 당신 그럴 수 있어요? 당신한테 경고하는데, 아연이 정말 외국으로 보
그날 저녁.방과 후, 할머니 안금여의 병실에 들어서던 성연은 송종철, 임수정과 송아연 일가족이 모두 와 있는 걸 보았다.막 문을 들어서자 임수정이 친한 척하며 다가와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성연아, 학교 갔다 왔어?”이 가족들을 본 성연은 기분이 확 나빠졌다.임수정의 손을 차갑게 밀어내며 병상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할머니, 어떻게 된 거예요?”이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여기 왔을 리가 없다.송씨 일가족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한 자리에 모인 건 정말 드문 일이다.안금여가 침착하게 말했다.“이 분이 여동생과 함께 너에게 사과하러 왔단다. 지난 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너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나도 막지 않았다.”안금여는 임수정을 말하며 성연의 ‘새어머니’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계모’라는 말도 가당치 않았다.기껏해야 낯선 아주머니일 뿐.그게, 내내 온갖 짓으로 성연을 괴롭힌 행태에 딱 맞는 표현일 거다.그래도 ‘이 분’이라고 존칭은 써 준 셈이다.그리고는 송종철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사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제 성연이 왔으니 해 보시지요.”병실에 죽치고 있는 이 가족을 보는 것도 눈에 거슬리고 피곤했다.빨리 끝내고 나가기만 기다리는 심정이다.“회장님, 저희 아연이가 어려서부터 오냐오냐 커서 낯을 많이 가립니다.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입니다. 너그러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송종철이 얼른 대신 변명하며 아연을 다그쳤다.“언니에게 얼른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빌어. 한 가족 아니냐, 언니가 용서해 줄 거야.”송아연은 제 자리에 선 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런 아연을 지켜보던 안금여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버릇이 잘못 들었으면 지금이라도 바로 가르치면 늦지 않겠지요. 설마 내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뭐, 그래도 상관없다. 하기 싫으면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마. 다들 나가세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군요.”속으로 분을 참고 있던 아연은 성연에게 사과하고
아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험지를 훔쳤다. 성연을 모함하기 위해서. 시험문제는 보지도 않았다.‘송성연, 분명히 일부러 저런 말을 한 거야.’강씨 집안을 옆에 낀 성연의 말은 힘이 있었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을 보노라니 또 화가 치민다.옆에서 지켜보던 임수정 역시 이를 갈며 성연을 향해 불만을 드러내었다.“말이 너무 지나치잖니? 아직 어린 동생이 철이 없어 그런 건데!”성연에게 사과하러 오는 것까지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계였다.지금 제 후원자를 믿고 일부러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는 거 아닌가?자기 눈앞에서 방자하게 구는 성연을 임수정이 어찌 용납할 리가.참으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기어이 입에서 소리가 튀어나왔다.하, 저 심보가 십만 팔천 리나 뻗었지? 성연이 조소를 날리며 비아냥거렸다. “곧 성인이 되는데 아직 철이 없어? 너 지능이 없는 거니? 아니면 원래 머리가 없는 거니? …… 그리고 괜히 나를 탓하고 원망하는데, 어쩌죠? 저 그렇게 대단한 능력 없어요. 학교에 압력을 행사하다니요. 학교에서 거부하는 건 본인이 저지른 더러운 짓 때문이라는 거 모두 다 아는 일 아닌가요?”솔직히 송아연 같은 애는 성연이 손 댈 가치도 없었다.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게다가, 저 멍청한 머리로 지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거 아냐? 자기 꾀에 빠져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저런 쓸모없는 짓을 성연이 할 필요가 아예 없었다.아연의 얼굴이 매우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성연의 짓으로 되었다면, 적어도 그녀의 명성은 여전할 것이고 체면도 살아있겠지.하지만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모든 학교들이 아연을 거절하는 것이다.그녀의 아름다운 성적과 피아노의 성과들 모두 한 차례 우스개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어느 사이 뭔가 획 지나가는 듯하더니 뺨이 화끈거렸다.아연이 억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임수정이 성연을 비난하려는데, 송종철이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에게 눈빛으로 안금여 쪽을 가리켰다.그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치솟는 듯한 화는 어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종철은 속으로 또 한 차례 경악했다.이건 또 어떻게 된 거야? 성연이 총애 받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벌을 받는거지? 이거 보아하니, 마냥 총애받는 것 같지도 않구만.성연에 대한 강씨 집안의 태도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안금여 곁에 있던 강운경도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역시 시골에서 와서 그런지 교양이 없구나. 이제 보니, 예의 선생님을 불러 계속 가르쳐야겠다. 나중에 우리 집안 어른께도 이렇게 대들면 어떡할 거야?”성연은 강운경과 안금여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무서워 벌벌 떠는 모습을 연기하며 두 사람의 연극에 동참했다.“할머니, 제가 잘못 알았어요. 제가 예의를 몰라서 그랬어요.”말하면서 있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그만 해라. 옹졸한 모습은 사람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야.”안금여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임수정, 송아연 두 모녀는 안금여의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해졌다.자신들이 생각했던 전개와 달랐다.마침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안금여가 고개를 돌려 송종철에게 말했다.“사과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세요. 나중에 학교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죠.”송종철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회장님, 감사합니다.”기실 그 말은 공수표나 다름없었다.안금여가 어느 학교에다 얘기해 놓든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그들은 아연이 북성남고에 계속 남아 있게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안금여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그러나 어찌되었든 학위를 건사할 수 있게 됐으니 아연을 외국으로 보낼 필요가 없게 됐다.이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송종철이다.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임수정과 아연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병실을 나오자마자 안에서 당한 억울함과 불만의 말들이 임수정과 송아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송종철, 당신 설명 좀 해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송성연 그것이 총애를 받는다는 게 이거야? 오늘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망신
병실 안.사람들이 다 나가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안금여는 편안한 자세로 베개에 기대었다.송종철 일가를 상대할 때에 비해서 훨씬 부드러운 음성이다.“나이도 어린 것이 머리를 꽤 많이 쓰는구나.”송아연은 자신이 꾸며내는 말과 행동을 사람들이 못 알아챌 거라고 착각했다.사업을 하는 동안 다년간 장사치들 틈에서 굴러온 안금여와 강운경이었다.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들의 눈에 훤히 보였다.마냥 어린 계집아이가 마음속에 몇 근 몇 냥이 들어있는지 다 읽혔다.강운경도 혐오감이 일었다. 진심이라곤 없이 이런 잔꾀 부리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연기도 제대로 못하더군요.”‘송씨 저 세 가족은 하나같이 정말 진상이었다.’‘가치관이 저리도 삐뚤어지다니, 참.’‘그래도 성연이가 저들과 같이 지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그렇지 않았으면 성연을 어떻게 가르쳐 놨을지…….’성연은 여전히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방금 전의 분위기에서 아직 못 빠져나온 듯했다.이런 성연의 모습을 본 안금여는 웃음을 참기 힘든 듯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사람들 다 갔는데 계속 연기할 테냐?”성연이 고개를 들며 일부러 불쌍한 척했다.“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셨잖아요? 설마 가짜였어요?”능청스러운 성연의 말에 기가 찬 웃던 안금여가 짐짓 나무라듯 말했다.“이런 영리한 것 같으니라고. 네가 무릎을 꿇고 싶다면 내가 그렇게 해 주마.”아이고, 요 녀석, 혹시라도 야단 맞을까 봐 이렇게 또 확인까지 하는 것 봐.일부러 그러는 거지.그러나 이제는 송성연이라는 이 아이를 보물같이 여기며 친손녀처럼 대했다.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는 안금여다.그런데 성연을 위해 대신 신경 써서 화풀이까지 해주었다.조금전의 연약한 모습은 싹 씻어 낸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윽, 무릎 꿇기 싫어요. 할머니께서 화 내시는 시늉을 하시면서 저 대신 화풀이 해주셔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자, 이제 제가 할머니께 안마
업무를 끝낸 무진이 마침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병실 입구에서부터 안금여의 웃음소리 사이로 대화하는 음성이 간간이 들렸다.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할머님, 뭐를 빼지 않는다고요?”“내가, 성연이 안마 솜씨가 좋아서 틈틈이 너도 해주라고 했거든. 어쩜 너한테 이런 복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안금여는 웃으며 무진을 놀렸다.다시 담담한 얼굴을 한 성연이 계속해서 다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성연을 한 차례 눈으로 흘깃한 무진이 입을 열었다.“할머니, 성연이가 매일 밤 안마해 줍니다. 다리가 많이 좋아졌어요.”성연이 만져 주기는 했지만 안금여가 생각한 만큼 횟수가 많지는 않았다.그런데도 무진은 수긍하고 받아들였고 다른 불만도 없었다.언제나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던 무진이 이런 말을 하자, 이 두 어린 부부의 감정이 꽤 괜찮은 듯 보였다.안금여는 더없이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이 어린 손주 며느리를 보며 감탄하는 한편, 과연 자신이 애쓴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했다.저녁, 병원에서 저녁을 먹은 후.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아, 너는 무진이를 따라 집에 가거라. 병원엔 너희들이 같이 있을 필요가 없어. 어쨌든 성연이 내일 또 학교 가야 하지 않니? 이런 늙은 사람 때문에 학업을 그르치면 안되지.”매일 병실로 오는 성연이다. 이런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다소 망설이는 듯한 무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요즘 병원에서 밤에 계속 고모님이 계셨어요. 낮에는 회사 업무를 보시는데, 많이 힘드실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무진이 자신에게 적극 관심을 보이자 곁에 있던 운경의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얼굴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무슨 고생이랄 게 있나? 네 고모부도 병원에 있으면서 잘 챙겨주지 않니? 걱정하지 마.”“그럼 고모도 건강 잘 살피세요.” 어쩔 수 없는 듯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후, 책가방을 집어 던진 성연이 물과 간식을 챙겨서 컴퓨터를 켰다. 목욕을 하고 나
성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진행하던 무진의 1차 치료 과정이 아직 덜 끝난 상태인데 지금의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했다.결국 일어난 성연이 무진을 뒤로 살짝 밀었다. “뒤로 좀만 가요.”방안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무진이 성연의 말을 따라서 살짝 뒤로 물러섰다.자세를 취한 성연이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몇 분 후, 동작을 마친 뒤 무진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기억하셨죠?”기억하긴 했다. 모두 간단한 동작들이니까.하지만 아리송한 표정의 무진이 말을 끌었다.“근데 이거…….”무진의 뚱한 표정을 본 성연이 냉소를 지었다.“아저씨, 이 동작들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리 회복에 정말 효과가 좋아요. 다른 사람은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고요…….”겉보기에는 느릿느릿한 것이 노인들의 스트레칭 자세와 비슷했다.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동작에, 무진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꼭 해야 돼?” 그래도 강씨 집안의 장손으로서 체면이 있지.“물론이죠, 제가 가르쳐 드린 것들 중에 틀린 것 있었어요? 봐 봐요, 이 동작은 하체의 근육과 뼈를 모두 스트레칭 할 수 있어요. 아저씨의 굳은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성연이 이치에 맞는 소리들만 읊었다.“다른 방법은 없어?” 여전히 체면을 내려놓지 못한 무진이 주저했다.“없어요.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다리도 아닌데요 뭐…….” 살짝 기분이 상한 성연이 눈을 흘기며 자리를 뜨려 했다.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바로 이런 비협조적이면서 의사를 못 믿는 이들이다.무진이 바로 성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 바로 할게.”성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또한 그를 위해서다.그의 이런 투정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가던 걸음을 멈춘 성연이 고개를 돌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처음해보는 동작
한 세트의 스트레칭 동작을 다 끝낸 무진은 다리가 천근만근 같이 느껴져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다리를 살짝 움직여 보니 왠지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듯했다.성연이 흘깃 보더니 설명했다.“정상이에요. 굳었던 근육이 이완되어서 그런 거에요. 지금 바로 침 맞고, 다시 약욕을 하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요.”성연은 바로 창고에 가서 무진에게 쓸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시간이 늦어 집사와 고용인들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없었다.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약을 한쪽에 놓고 무진을 눕힌 성연이 침을 놓기 시작했다.천천히 침을 놓는 성연에게 무진이 갑자기 물었다.“피곤해?”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안 피곤하겠어요?”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게임 좀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이렇게 산통을 깨다니…….마음속에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하지만 그저 속에서 담아둘 뿐,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받고 입을 싹 닦을 수는 없을 터.100억, 물론 그녀한테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고생이네.” 무진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그의 음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낮고 묵직하니 듣기 좋은 음성이 불쑥 귓가에 닿으니 성연의 귀가 간질거렸다.무진의 얼굴, 목소리, 몸매까지 모두 성연에겐 최고로 느껴졌다.무진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들킬 뻔했다.얼굴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성연은 일부러 앙칼진 말투로 부끄러움을 감추었다.“의사가 진찰할 때 말을 아껴야 하는 거 모르세요? 만약 침을 잘못 놓기라도 하면 어쩔거에요? 저는 책임 못 져요.”하얀 피부에 피어오른 홍조가 귓바퀴까지 번지며 아주 선명했다.성연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아차린 무진이 가볍게 웃었다.눈을 크게 뜬 성연이 무진을 노려보았다. 무진은 별일 없는 듯 침착하게 눈을 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은침을 다리에 놓고 성연은 욕조에 약재를 넣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약효
저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진과 성연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지금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갈아 입지 않았다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연계진과 조수경의 모습을 발견했다.조수경은 알지만, 연계진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그러나 연계진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조수경이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서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눈썹을 찌푸린 무진의 모습은 분명히 그들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는 게 확실했다.무진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보고 성연이 물었다.“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무진은 성연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쨌든 술을 손님들께 술을 권해야겠네요. 자, 갑시다.” 그래함이 다가와서 무진과 목현수에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야.’‘술을 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무진이 술잔을 들고 술을 권하러 두 사람을 따라 갔다.성연이 무진의 소매를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마셔요.”‘무진 씨 위장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알았어.” 무진은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목현수와 그래함이 말했다.“성연아 걱정 마. 네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두 사람의 놀리는 말에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성연을 더 이상 농리지 않고 세 사람은 바로 손님들에게 갔다.곧 무진, 목현수와 그래함이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성연은 샤넬, 유채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유채연은 궁금한 듯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연이 미처 대답
전통 혼례가 끝나자 이 결혼식도 비로소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무진과 성연은 방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갑자기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드러누웠다.‘정말 비즈니스나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갑자기 상체를 세운 무진이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도 눈을 뜨고 무진을 바라보았다.“너 드디어, 내 거야.” 무진이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성연도 무진의 등을 감싸 안고 말했다.“그래요, 나는 무진 씨 거고, 무진 씨도 내 거예요.”‘처음에 무진을 만나서 다행이었어.’‘무진 씨는 줄곧 나를 총애하고 감싸줬지.’‘아무도 내게 그렇게 잘해 준 적이 없었어.’무진의 눈빛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송성연 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천천히 눈을 감자 무진이 성연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이제 습관이 되었기에 성연에게 예전 같은 수줍음은 이미 사라졌고, 때로는 주동적으로 무진의 열정에 응하기도 했다.적절하게 동작을 멈춘 무진이 성연의 몸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성연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무진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무진이 물었다.“성연아, 할머니께 한 말은 진심이야?”성연은 약간 멍해졌다.“무슨 말요?”“아이를 갖는 일 말이야.” 무진은 곧 서른이 된다.아이를 키울 나이가 된 것이다.무진도 아이를 갈망했다.그러나 성연의 생각을 더 많이 고려했다.“당연히 사실이지요.” 성연은 자신이 승낙한 일을 식언하지 않았다.‘이미 무진 씨하고 결혼했으니까 조만간 아이도 가져야 해.’성연은 여러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썩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당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할머니께 잘 말씀드릴게.” 무진은 성연이 이 결혼에서 행복하기를 원했다.성연이 원하지 않는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누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지 말아 줄래요?” 성연은 불만스럽게 무진을 노려보았다.무진은 좀 놀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야.” 이렇게 말하는 안금여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항상 한식구였는데요.”성연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래, 성연이 네 말이 맞구나.” 안금여는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무진이도 이리 와.” 안금여가 무진에게도 손짓을 했다.무진이 천천히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나는 네가 앞으로 외톨이가 되는 게 두려워서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또 앞으로 네가 외톨이가 된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네 부모를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성연이와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안심이 돼. 마침내 내 걱정을 덜었어.” 성연과 무진을 보는 안금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렸다.기쁨의 눈물이다.‘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어.’“할머니.” 성연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울고 싶어졌다.‘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할머니는 묵묵히 나를 지지하시면서 뒤에서 보호해 주셨지.’‘만약 할머니와 어른들의 지지와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할머니는 내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온정을 주셨어.’옆에 있던 강운경이 위로했다.“엄마, 즐거운 날이잖아요? 앞으로 무진이하고 성연이가 함께 엄마 노후를 모실 거고, 나중에 또 아이도 생기면 집안이 더 시끌벅적할 거예요.”“그래, 너희들 서둘러야 해. 얼른 내게 증손자를 안겨줘야지.” 안금여는 바로 핵심을 짚었다.만약 무진과 성연의 아이를 볼 수 있다면, 안금여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할머니, 가능한 한 빨리 아이를 가질게요.”이전에 성연은 줄곧 아직 어린데 아이를 갖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안금여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보자 곧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할머니의 한평생 소원은 바로 자손이 번창하는 거였어.’‘지금은 할머니를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어.’‘할머니의 이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게 당연히 가장 좋겠지.’“정말이니?” 안
서양식 결혼식이 끝났다.무진과 성연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전통 혼례를 올려야 했다.결혼식장에서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전통 혼례의 절차는 더 복잡했다.자리에 앉은 채 안금여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안금여와 식구들은 미리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성연과 무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엄마, 그 말은 몇 번이나 물어봤어요.” 강운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강운경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안금여의 초조한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급해서는 안 돼.’“얼마나 지났는지 좀 볼래?” 안금여는 시계를 들고 강운경에게 보여 주었다.강운경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조승호가 옆에서 위로했다.“어머님, 저쪽에는 무진이하고 성연이 친구들도 많아요. 일이 있어서 지체되는 모양이에요. 시간도 아직 안 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무슨 일로 지체되는 거야?” 안금여는 다소 불만스러웠다.‘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밤낮으로 학수고대했는데 말이야.“엄마, 애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요. 걔들이 애도 아니니까 좀더 기다려봐요.” 강운경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어른이 너무 조급하게 재촉하는 건 좋지 않아.’딸과 사위가 모두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다만 입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곧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성연과 무진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운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할머니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알아!”성연도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알고 황급하게 달려왔다.바로 고모에게 사과했다.“고모, 죄송해요. 친구들이 많아서 접대하느라 좀 늦었어요.”“괜찮아, 왔으니 됐어, 빨리 가자.” 강운경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무진과 성연은 세 어른에게 차를 올렸다.세 어른들은 각자 두 사람에게 두둑한 돈봉투를 주셨다
지금 연계진과 조수경도 결혼식장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눈길을 보내는 사람조차 없었다.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거물들에 비하면 두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수경은 그야말로 성연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증오했다.‘저 자리는 분명히 내 거였어.’‘그러나 송성연이 거듭 초를 쳤지.’‘송성연만 없었다면 지금 강무진과 결혼하는 사람은 나였을 거야.’그리고 무진을 주시하는 연계진의 눈빛은 더욱 원망이 가득했다.‘연씨 가문이라는 강력한 적수가 없었기에 강씨 가문이 지금 잘 나갈 수 있었어.’‘강씨 가문이 지금 가진 모든 건 연씨 집안의 것이었어.’‘강씨 가문과 강무진이 우리 걸 도둑질했어!’‘연씨 가문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저들 차지가 될 수 있단 말이야?’어두운 표정의 두 사람은 낯빛도 좋지 않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자세히 보았다면, 아마도 결혼식에 참석한 게 아니라 신부를 훔치러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정말 참을 수 없게 된 조수경은 이를 악물고 연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진 씨, 우리의 계획은 도대체 언제쯤 실행할 수 있을까요?”얼른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이쪽에 주의하지 않자, 연계진은 비로소 눈썹을 찌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그런 말을 왜 해? 우리가 뭘 하겠다고 사람들한테 광고라도 하는 거야? 만약 강무진이 알게 되면, 우리 둘을 끝까지 쫓을 거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불만이었다.‘결국 연계진은 강무진이 두려운 게 아닐까?’그러나 감히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수경도 연계진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연계진은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거스르는 걸 가장 싫어하지.’조수경은 얼른 사과했다.“내가 너무 조급했어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것들은 왜 저렇게 잘 사는 걸까요.”이 말이 오히려 연계진을 자극했다.연계진도 조수경과 같은 생각이었다.눈을 가늘게 뜬 연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에 결혼식도 진행되기 시작했다.연미복을 입은 무진은 기사처럼 묵묵히 성연의 곁을 지키면서, 성연에게 가장 진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성연은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웨딩드레스의 아래쪽 레이스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어서, 한 벌에 수억 원이나 할 정도로 화려했다.물론 목현수와 샤넬, 그래함과 유채연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그들의 출중한 외모와 아름다움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레드카펫에 나란히 선 세 쌍의 신랑 신부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무진과 성연은 가운데에 있었다.결국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선서를 하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결혼식이 끝났다.세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이 결혼식을 축복했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이건 분명히 내가 여태까지 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야.”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북성에서의 신분과 지위도 낮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큰 인물들이 돋보이는 속에서는, 그들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게다가 이 결혼식에는 더욱 큰 돈을 썼을 텐데, 누가 이렇게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낼 수 있겠어?’‘강씨 가문 이외에는 누구도 이렇게 하지 못할 거야.’“그래, 내가 예전에 참석했던 결혼식들은 모두 결혼식도 아닌 것 같아. 이거야말로 진정한 결혼식이야.”“강 대표가 자신의 소중한 여자에게 다시없는 총애를 준 거야.”“이렇게 좋은 남자는 왜 내 남자가 아닌 거야?”이렇게 말하는 젊은 아가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또 가끔씩 머리를 흔들면서 탄식하기도 했다.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그 아가씨의 입을 막았다.“오늘은 강 대표와 부인의 결혼식인데,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혹시라도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그 아가씨가 주위를 둘러보고 곰곰이 생각해
그 외에도 점점 더 많은 거물들이 등장했다.모두 이 세 쌍의 신랑 신부들을 축복하러 온 것이다.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 모두는 이 라인업에 놀라면서도 어느새 좀 무감각해졌다.어떤 불가사의한 인물이 오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눈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도 마음속으로 감탄했다.‘보아하니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평소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이렇게 많은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무진 씨였어.’무진은 속으로는 더욱 놀라서 성연에게 물었다.“성연아, 저 사람들이 모두 네 친구들이야?”‘이 사람들 중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있겠어?’“맞아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진이 왜 이렇게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야?” 무진의 입에서 감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성연이가 정말 깊숙하게도 숨기고 있었네.’‘내가 아직도 모르는 게 있울지 모르겠어.’“아무리 대단해도 무진 씨 건데요?”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날 무진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때부터 성연은 무진에게 속일 일이 없었다.무진이 자신을 믿고 있기에, 성연도 당연히 상응하는 믿음을 줘야 했다.“그 말이 맞아.” 무진은 이마로 성연의 이마에 마주한 채 달콤하게 서 있었다.다른 두 쌍의 달콤함에 비해서, 미스 샤넬과 목현수는 거리가 좀 멀었다.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했던 목현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미스 샤넬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그렇지만 한동안은 미스 샤넬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다.그 동안은 줄곧 미스 샤넬이 주동적이었다. 지금 목현수에게 기회가 생겼지만, 오히려 자신을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미스 샤넬은 몇 번이나 목현수에게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잠시 후, 미스 샤넬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불쾌하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목현수는 멍해졌다.“왜 그렇게 물어?”“내가 당신에게 결혼을 강요해서 당신이 억지로 나와 결혼했
갑자기 현장에서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즐겁고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에도 축복이 담겨 있었다.이 은은한 소리는 좀 익숙했다.그 소리를 들은 성연은 깜짝 놀랐다.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과연 루카의 모습이 보였다.루카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급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루카의 연주회 티켓을 아가씨들이 사려고 해도 매번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된다.루카는 용모도 아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서 거의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결혼식에 특별히 와서 연주를 한 것이다.여기에는 루카의 팬들도 많았다.무대 위의 루카를 보면서 팬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눈시울도 붉어졌다.한 명문가의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나는 몇 년 동안이나 항상 루카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들어보지 못하고 동영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루카의 연주를 봤으니 내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고 생각해.”그 아가씨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있던 동료는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지금 강 대표의 결혼식을 빌어서 소원을 이뤘으니, 앞으로 강 대표와 강 대표 부인에게 감사해야 해.”“물론이지, 루카, 내 루카는 어쩌면 저렇게 대단할까?” 그 아가씨는 여전히 루카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집착하는 눈빛이었다.문득 뭔가 생각이 난 그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치면서 말했다.“빨리, 빨리, 핸드폰으로 나하고 루카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줘, 빨리.”동료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몇 장만 더 찍어. 오랜만에 루카의 모습을 봤으니까 반드시 많이 찍어야겠어.” 그 아가씨는 자신을 과시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동료를 재촉했다.성연은 웨딩드레스 자락을 들고 루카의 앞으로 걸어갔다.“네 결혼식인데 내가 당연히 참석해야지. 우리는 예전에 모두 약속했어.” 루카는 온몸에서 온화한 기운을 발산했다.성연이 놀리듯이 말했다. “첼리스트의 출연료는 저는 정말 드릴 수
이렇게 국제적인 스타 가수인 소지한.그런 소모한이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러 온 것이다.소모한은 오늘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다.한쪽에 서서 세 쌍의 신랑 신부를 보고 있자니, 위안도 얻으면서 즐거웠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대의 전용기가 무진과 성연의 결혼식장에 도착했다.알고 보니 심우재가 온 것이다.성연은 심우재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심우재의 일은 정말 바빴기 때문이다.결혼식에 올 수 있는 것도 인연에 따른 것이기에, 성연은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정말 바쁜 중에, 시간을 내서 온 것이다.무진과 성연은 함께 심우재를 맞이하러 갔다.“우재 오빠.” 성연은 나지막하게 불렀다.“왜? 곧 아줌마가 되는데도 아직도 아가씨처럼 그렇게 쉽게 부끄러워하는 거야.”심우재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우재 오빠, 너무 바쁘신데 안 오셔도 됐어요.” 심우재 눈 밑의 다크 서클을 보면서, 성연은 심우재가 얼마나 급하게 일을 해서 시간을 냈을지 생각했다.“내 여동생의 결혼식인데 당연히 내가 와야지. 이 정도의 시간도 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심우재는 성연이 결혼을 하든 어떤 모습이 되든 줄곧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여겼다.“강 대표.” 심우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이 손을 내밀어 심우재와 악수를 했다.“심 회장님.”“우리 집 성연이를 이제 자네한테 맡길 테니까 잘 해줘야 해. 만약 성연이에게 무슨 억울한 일이 생기게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네 자리를 물려받게 될 거야.” 심우재의 이 말은 오빠로서 매제에게 하는 경고였다.성연의 친정 사람으로서 무진에게 좀 엄포를 놓으려고 한 게 분명했다.“심 회장님 안심하세요. 저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겁니다.” 무진은 예리한 표정으로 심우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강 대표, 그럴 필요는 없어요. 강 대표의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만약 성연이에게 잘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나하고 얘기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