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밖에서 누가 찾아왔습니다. 손민철이라고 하는군요.” 집사가 급히 와서 보고했다.안금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손민철이 찾아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됐어, 그냥 들어오라고 해.” 손씨 집안이 경성 지방의 명문대가이지만 회사 내에 손씨 집안과 얽힌 사업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 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제일 중요한 것은 안금여의 확신처럼 일단 강씨 집안 문턱을 넘어온 이상 손민철이 아무리 간이 크다 해도 함부로 할 수는 없으리라 것.“예.” 집사는 즉시 사람을 집안으로 들였다.조수경의 일은 조금 전 옆에 서서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는 집사.손민철이 이곳에 온 것은 십중팔구 조수경의 일 때문일 터.거실에 들어오는 손민철을 안금여가 유심히 살펴보았다.생김새는 나름 잘 생겼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 음흉함이 숨겨지지 않은 채 미간에 드러나 있었다. 아마 횡포를 부리는 것도 바로 저 비열하고 음흉함 때문일 터.“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손씨 집안 큰 자제께서 방문을 다 하셨는가? 우리 북성과 경성은 수 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을 테네?”안금여의 말에는 은근히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그러나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손민철은 화도 내지 않은 채 히죽히죽 웃으며 안금여에게 말했다.“북성에 오면 당연히 강씨 집안 최고 어르신을 찾아 뵈어야죠. 연배가 낮은 아래 사람이 윗 연배의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예를 다하는 게 도리죠.”“손씨 집안 장남이 생각이 깊구만.” 안금여가 냉소하며 말했다.안금여 역시 충분히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았다.손민철에 차와 디저트를 갖다 주게 집사에게 지시했다.손민철은 능청스럽게 앉아서 차를 몇 모금 마셨다.앉은 지 몇 분 되지 않았을 때, 손민철도 더 이상 가장하지 않고 물었다. “어르신, 조수경이 북성에 와서 강씨 집안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이질 않네요. 여기에 있는지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척 걱정이 됩니다. 조수경
손민철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조수경이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두 사람 사이는 어르신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릅니다.”“조씨 집안은 비록 손씨 집안만큼은 못돼도 자네의 사리사욕을 위해 한 여자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넣은 게 잘한 짓인가? 좋아한다면 두 사람의 감정이 서로 같아지도록 애를 써야지, 이런 방법은 아니지 않나?”안금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평소 수경이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겨우 이번에 한 일 때문에 화가 난 수경이가 성질을 피우는 것에 불과합니다.”손민철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말했다.그는 줄곧 모든 게 오해이고, 조수경이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이런 무뢰한 행동에는 안금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어느 집안 연인들이 이런다는 말인가?손민철이 하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할 수 없이 안금여는 이렇게 말했다.“자네의 마음은 알겠네. 우선 돌아가 있으시게. 수경이는 잠시 여기에 머물 테니까. 자네 말은 내가 수경이에게 전해주지.”이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자신이 조수경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손민철의 안색이 흐려졌다.지금 조수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확신했다.외출을 한 건지 안금여가 어디로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그러나 이제 조수경에게 좋은 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평생 자신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손민철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아이고, 어르신, 강씨 집안의 정원이 정말 크기도 합니다. 한 번 구경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괜히 헛걸음만 한 게 될 테니까요.”말이 끝나자 손민철도 예의도 없이 바로 강씨 집안을 돌아다녔다.집사가 안금여의 귓가에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회장님, 사람을 보내 막을까요?”손민철은 정말 조금도 예를 차리지 않았다. 시골 아낙이 도시에 구경 온 듯이 자기집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정말이지 강씨 집안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건지, 강씨 집안에
실이 팽팽히 당겨진 듯 긴장된 분위기가 거실에 내려앉았다.그때 무진이 조수경을 데리고 고택으로 돌아왔다.조수경은 지금까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무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커다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무진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원래는 쇼핑을 하고 근처를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무진이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빨리 돌아왔다.그러나 웃으며 무진에게 말을 건네려던 순간, 고택의 거실에 앉아 있는 손민철이 눈에 들어왔다.조수경의 얼굴이 한순간에 확 변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손발마저 싸늘하게 굳었다.조수경이 걸음을 멈추자 무진이 그 시선을 따라 가니 손민철이 보였다.조수경의 반응을 보며 무진은 단번에 알았다. 저 사람이 아마 조수경을 괴롭히는 사람일 터.조수경과 무진을 눈으로 훑는 손민철이 눈동자가 탁해졌다. 그리고 일어서서 무진에게 웃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명성은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오늘 보니 확실히 강 대표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겠습니다.”조수경과 관련한 일로 손민철에 대한 무진의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무진이 불쾌한 빛을 띄며 말했다.“손씨 집안 자제께서 이 집안엔 어찌 왔는지요?”무진의 차가운 음성이 손민철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조수경을 쳐다보며 손민철이 대답했다.“강 대표님, 당연히 약혼녀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온 거지요.”손민철이 입을 열자마자 조수경이 즉시 그와의 관계를 완강히 부인했다.“나는 당신과 약혼한 적이 없어요. 여기서 허튼소리 지껄이지 말아요!”말이 끝낸 뒤에 손민철이 무서워진 조수경은 무진의 뒤로 가 숨었다.조수경의 행동을 보던 손민철은 또 다시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조수경과 강무진은 이제 막 만난 거잖아? 그런데 저렇게 강무진을 의지해?’ 무진도 조수경을 뒤에 숨긴 채 말했다.“조수경 씨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손민철 씨, 강요는 좀 그렇지 않나요?”한참을 이를 악물고 있던 손민철은 간신히 온화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무진의 동공이 차갑게 수축했다. 손민철을 향해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며 바로 축객령을 내렸다.“손민철 씨, 여기를 나가 주시죠. 우리 강씨 집안에서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에는 오지 말기를 바랍니다.”앞으로 손민철이 오면 집사에게 시켜서 못 들어오게 할 것이다.집안에 저 놈을 들인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의 기분만 나빠질 뿐.그리고 조수경을 그와 함께 가도록 보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손민철은 원래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다.강무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냉랭한 시선으로 무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조수경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절대 여기를 나가지 않을 겁니다.”무진이 건조하게 말했다.“그럼 마음대로 하든지. 내가 당신 잠자리라도 잡아 줄까요?”무진은 손민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손민철이 있든 없든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조수경이 고택에 머무는 이상 조수경을 제대로 보호할 책임이 있었다.이것은 남자라면 가져야 할 몸가짐이다.손민철도 무진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되받아 쳤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5성급 호텔에 묵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손씨 집안은 경성 지역에서는 큰 가문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강씨 집안 앞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셈.5성급 호텔이라 해도 강무진 앞에서 내세울만 만한 게 못된다.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왕 이렇게 된 이상 손민철 씨는 속히 떠나 주십시오. 우리 강씨 집안은 너무 작아서 손민철 씨 같은 대인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군요.” 무진의 음성은 담담한 듯하나 그 의미는 온통 비아냥이다.손민철은 무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조수경을 바라보았다.“수경아, 내가 다시 한번 물을게. 너 나와 같이 떠날 거야? 말 거야?”그리고 자신의 말에 위력이 없다고 느꼈는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너희 부모님의 일은 나와 상관없어. 그리고 진짜 방법을 찾았어. 설마 너는 네 부모님을 구하고 싶지
드디어 오랫동안 속에 담고 있던 말을 털어놓은 조수경은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손민철은 조수경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뭐? 내가 싫다고?”조수경이 입술 끝에 힘을 주며 다시 한번 말했다.“맞아요, 난 당신이 싫어.” “좋아.” 손민철이 무시무시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조수경은 손민철이 또 갑자가 어떤 미친 짓을 벌일까 겁이 났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는 조수경을 본 무진이 조수경의 앞으로 나서며 손민철에게서 시야를 차단했다.이러한 무진의 행동에 조수경은 마음속에 다시 한번 더 감동이 밀려왔다.손민철이 강무진의 반 정도만 따라가도 자신이 지금처럼 손민철을 싫어하지는 않았을 텐데.안금여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이보게, 감정의 문제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닐세. 수경이 원하지 않는다니, 자네도 그만 포기하게.”설령 억지로 조수경의 몸만 가진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얻지 못한 다음에야 함께 지내는 게 지옥일 텐데.안금여가 보기에 조수경에 대한 손민철의 감정은 진짜인 듯하다. 단지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참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한두 마디 덧붙여 설득했건만.“저는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조수경, 너는 나밖에 가질 수 없어.” 손민철은 마차 편집증 환자 같았다. 두 눈에 가득한 집요함에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안금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래봐야 저 자신만 힘들어질 뿐인 걸.’“그럼 나도 경고하죠. 내가 살아있는 한, 나와 함께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요!” 조수경의 눈에 단단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이제야 간신히 강씨 집안의 보호 아래 숨 좀 돌릴 수 있게 됐는데, 이걸 박차고 손민철을 따라 간다고?’변태 같은 손민철을 따라갔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결국 손민철은 혼자 고택을 떠났다.북성에 오기 전에 손민철의 부친은 절대 강씨 집안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손민철에게 당부했었다.그러나 속에서 끓어오르는 성질을 도무지 통제
옆에 있던 무진 또한 조수경을 안심시켰다.“고택에서 계속 지내면 돼.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아무도 감히 너를 괴롭히지 못해. 우리 강씨 집안은 북부 지역에서만 대단한 게 아니라 남부 지역에서도 쉽게 덤비지 못할 테니.”“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니, 그리고 무진 오빠, 운경 이모.” 감사 인사를 하는 조수경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강운경이 옆에서 놀리며 말했다.“난 무진이 고모야. 무진일 오빠라고 부르면서 날 이모라고 부르는 건 안 맞는 것 같애. 너도 무진이처럼 날 고모라고 불러야지.”“네, 고모.” 조수경의 입에서 수줍은 듯한 음성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저녁 식사 시간, 특별히 저녁 메뉴에 신경 쓰라고 주방에 미리 일러 둔 참이다.할머니 안금여를 위시해서 고모 강운경, 무진, 조수경, 이렇게 네 사람이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둘러 앉았다.“이 집에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있도록 해.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널 위한 환영만찬을 알아서 준비하라고 주방에 일렀는데, 입에 맞을런지 모르겠다.”안금여를 비롯해 모두가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하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던 조수경.안금여의 말에 얼른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아네요, 할머니. 저는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어요.”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래, 정말 착하구나.”고개를 숙이는 조수경의 뺨이 발그레해진 것이 다시 또 쑥스러워진 모양.식사하는 내내 안금여는 멀리 떨어진 음식들을 덜어주었다. “수경아, 너 이렇게 말라서 어쩌니? 기운을 차리게 좀 더 많이 먹어야겠다.”말 잘 듣는 학생처럼 조수경은 안금여가 덜어준 음식들을 깔끔하게 먹어치웠다.“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할머니.”“뭘 또 그리 인사하니?” 안금여가 너무 예의 차린다고 타박을 했다.강운경 역시 옆에서 음식을 집어주며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수경아,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포자기해서는 안돼.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면 희망이 있는 거야. 지금 당장은 맞서 싸울 수 없다 해도 힘을 기르며 적당한 때를 기
“그래.” 잠시 생각하던 무진은 조수경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그래서 자리에 일어나 같이 거실로 나왔다.테이블 위에는 이미 고급 다기 세트가 올려져 있었다.무진의 시선이 다기를 향하자 조수경이 설명했다.“조금 전에 집사님에게 대신 준비해 달라고 했어요. 여기 다기가 우리 집 것보다 훨씬 좋네요.”“평소 할머니도 좋아하시니 고택에서 지내는 동안 함께 즐기면 되겠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히 제가 바라던 바예요.”조수경이 웃으며 말했다.너무나 인자하신 안금여 할머니를 생각하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무척 즐거울 것 같았다.“네가 다도를 알 줄은 몰랐는 걸.”무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보통 여자 아이들은 다도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다도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조수경이 입술을 늘인 채 웃으며 말했다.“나도 예전엔 몰랐는데 이렇게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 후로 다도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직접 차 밭도 가꾸었어요. 무진 오빠, 내가 직접 재배한 찻잎을 맛 보여 줄게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기 옆에 놓인 샴페인 골드 색의 차 주머니를 보았다. 파란색 리본으로 매듭지은 모습이 무척 고급스러워 보였다.그 모습을 보노라니 조수경은 삶 속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것 같았다.조수경은 다도에 대한 거창한 말 같은 건 하지 않은 채익숙한 듯이 주머니 안의 찻잎을 꺼내 다기 안에 넣고 우리기 시작했다.차를 우리는 내내 마치 구름과 물이 흘러 가는 듯 매끄러운 동작이 아주 보기 좋았다.보는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조수경이 동작을 멈추자 향긋한 차 향이 거실을 가득 채우며 마음까지 촉촉히 적시는 듯했다.‘만약 손민철만 아니었다면 이 여자 아이는 아무런 근심 염려도 없이 지냈을 테지.’‘안됐군.’무진은 불현듯 안타까움을 느꼈다.그러나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저 조수경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뿐.조수경 같이 착한 아이가 이런 일을 겪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을 뿐이
무진은 인사치레의 말은 그만하고 싶어서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왜 찻잎을 만들어서 너희 집안 브랜드로 상품화하지 않은 거니?”무진 자신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훌륭한 차였다.‘상품화해서 시장에 내놓는다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무진이 그 점을 언급하자 조수경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물론 그렇게 하고 싶었죠. 그런데 현재 손씨 집안에 의해 다 훼손되었어요. 차 밭도 다 갈아엎어졌고 차를 만들던 공장도 폐쇄되었어요.”조수경 자신도 다도를 공부하면서 무진이 언급한 부분들을 생각했었다.졸업해서 찻잎을 상품화해서 부모님을 도우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심혈을 기울여 일군 결과물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그 고통은 자신만 알 수 있을 터.손민철이 그토록 악랄하게 굴 줄 누가 알았을까?무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손민철 어디가 구애를 한다는 거야? 사람을 망가뜨리려는 게 분명하구만.’아마도 그는 조수경을 의지할 곳이 없게 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 그의 세계에서만 살 수 있었을 것이다.“너와 손민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이야?” 무진은 의구심이 들었다.손민철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런데 어째서 그런 짓을 했을까?’‘너무 극단적이잖아.’“우리 두 사람 사이에 혼약이 있었던 건 맞아요. 다만 어른들끼리 구두로 약속일 뿐이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그냥 농담으로 여기셨고요. 그런데 세상에 손씨 집안에서 갑자기 찾아와 혼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의상 손민철을 만나러 갔는데, 누가 알았겠어요. 손민철이 미친 듯이 저를 쫓아다닐 줄. 그 뒤로....”그 이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던 조수경의 집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조수경이 다 끝내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무진도 알았다.“미안해, 가슴 아픈 일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