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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허태준 한 사람만 있었다면 허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아마 진작에 내려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도 허태준과 전선을 통일한 것 같아 허태준한테 화를 내면 심유진한테도 화를 내게 된 것 같았다.

몇 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주며느리인데 함부로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조율을 하거라.”

허 할아버지는 명령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허태준한테 말했다.

“유진이한테 맞춰줘라. 그러면 날짜는 정해지지 않겠느냐?”

“네.”

허태준은 잘도 대답을 하였다.

이제 모든 압력은 심유진한테로 돌아왔다.

그녀는 화가 나 그를 노려보았다. “팀원”을 버리고 도망가는 행위는 비열한 행위였다.

“유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허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물었다.

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정이 지나면 상사한테 물어볼게요. 결혼 휴가는 언제 써도 될지를요.”

“좋다.”

허 할아버지는 드디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또 내가 죽을 때까지도 이 불효 손주가 장가가는 것을 못 보나 했다!”

“할아버지는 오래 앉으셔야죠! 못 보긴 뭘 못 봐요!”

허태준은 말하면서 심유진과 맞잡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손주며느리를 이렇게 데려왔잖아요?”

허 할아버지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눈가에 미소는 가려지지 않았다.

**

허 할아버지는 말씀을 잘하셨다. 심유진을 붙잡고 온 오후를 얘기 나눴다. 물을 마실 때 빼고는 입이 쉴 새가 없었다. 그는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나 심유진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바로 다른 화제로 뛰어넘어 한시도 분위기가 가라앉은 적이 없었다.

그의 언행과 행동거지는 심유진이 “재벌 가족”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자상하고 귀여운 어르신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허 할아버지는 둘을 자고 가라 하였으나 허태준은 거절했다. “심유진이 내일 아침부터 일하러 가야 해서요. 호텔에 묵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요. 너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어서요.”

심유진은 그의 옆에서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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