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우는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나씨 가문이 뭐가 부족해서 나랑 뺏아요?”“나한테 부탁해요.”나침어는 평온한 표정으로 진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나한테 부탁하면 사람을 놓아줄게요.”진시우는 어이없어하며 짜증스럽게 손을 휘둘렀다.“강설 씨, 이 사람들 내보내세요!”강설은 진시우를 흘겨보았다. ‘내가 시중드는 하인이야?’하지만 강설도 따지기가 귀찮아서 곧장 일어나 말했다.“나침어 씨, 가시죠.”“그래요.”나침어는 매우 평온하였다. 그리고 부한식과 함께 기씨 가문을 떠났다.진시우는 불쾌하게 욕했다.“귀찮아!”강설은 담담하게 말했다.“장무사 조장 레벨의 사람은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부조장 정도라면 가능할 수 있지만 부한식 같은 사람은 서남 이곳을 지켜야 하니까요.”“나침어는 그런 사람을 절대 내주지 않을 거예요. ‘진’이라는 꼬리표를 붙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앞으로 큰 일을 하려고 힘을 모으는 거 맞죠?”“그런데 장무사 조장은 취임할 때 이미 꼬리표가 붙어버렸으니 부조장 레벨에서 시작하는 게 좋아요.”진시우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그런 거였어? 그럼 운교영을 데려가야겠네.”“설마 윤교영까지 거절하지는 않겠지. 안 내주면 나문후를 찾아갈 거야.”강설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나문후 이름이 나오면 그 무게는 달라진다.손성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진약원을 재정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출발하기 전, 그는 손지연을 진시우에게 맡기며, 그녀를 동해시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진시우는 거절하지 않았다.어차피 서남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고, 이제 동해에서 근무할 때가 된 것 같았다.취임서가 내려온 지 오래됐지만 진시우는 아직까지 장무사에 가지 않았다. ‘아마 동해 장무사 쪽에서 불만이 있을 지도 몰라.’강설의 제안에 따라 그는 부한식에게 운교영을 데려가겠다고 했다.부한식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곧바로 승낙했다.하지만 운교영은 인수인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늦게 동해로 떠날 것이다
“아가씨, 삼십만 원만 빌릴 수 있을까요?”“거... 거기 서! 다가오지 말라고!”진시우는 눈앞의 여자가 자신을 보고 너무 놀라자 어색한 나머지 기침을 했다.“아가씨,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돈만 빌리려고 했을 뿐이에요. 진짜 다른 의도는 없어요!”임아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가방에서 돈을 꺼낸 뒤 차에 올려놓고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너, 너 이돈 갖고 꺼져!”돈을 본 진시우가 감격해 표정으로 말했다.“아가씨 너무 고마워요. 옛날 속담이 틀리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사람은 심성마저 착하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돈을 갚..”“필요 없어! 그 돈 갖고 꺼져!”임아름은 이 남자가 자신한테 나쁜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출장에서 막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병을 고쳐줄 의원님을 모시러 가는 길이었다.갑자기 담장을 타고 나타난 남자가 그녀의 혼을 쏙 빼놓았다.남자가 나타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이 자리에서 죽는 상상까지 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돈만 달라고 했을 뿐이다.“이거 참, 미안해서 어떡하죠. 전 그냥 돈만 빌리려고 했는데!”진시우는 어쩔 바를 몰랐다. 봉사부의 명으로 온양시에 온 그는 사부의 은인을 찾아뵙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망할 영감 사부가 그의 돼지 저금통을 홀라당 날려 먹은 것이 아니겠는가. 천오백만이 있었던 돼지저금 통에는 만 원 지폐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그돈으로 사부의 은인도 찾아야 한다...며칠간 밖에서 먹고 잔 그의 행색은 그야말로 상거지 꼴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사부의 은인을 차아뵐 수는 없었다.혼신의 사투 끝에 겨우 마음씨 착한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임아름은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당장 꺼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어... 아니 아니 아니! 나 갈게!”돈을 손에 쥔 진시우는 줄행랑을 쳤다. 임아름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후 신속하게 차에 올라타 출발했다. “사기꾼!”놀란 마음을 진정한 임아름은 너무 화가 나 입술을 꼭 깨물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
진시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허, 이거 일이 즐겁게 됐네.임호군의 저택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 돈을 빌린 미녀가 임호군의 손녀라니.할아버지 말대로 예쁘장한 얼굴에 훤칠한 키, 이기적인 자태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슈퍼모델급 몸매라니, 완전 연예인 급이었다.진시우를 본 순간 임아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다. 사기꾼이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름아! 진시우에게 그러면 안 돼! 너의 남편이 될 사람이야!”임아름이 진시우에게 삿대질하는 광경을 본 임호군의 표정이 엄숙하게 변했다.할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임아름은 이를 악물며 물었다.“할아버지, 장난치시는 거죠? 쟤가? 내 남편이 될 사람이라고요?”임호군이 잔 기침을 하며 말했다.“이 할아버지가 너를 위해 골라온 최고의 신랑감이야. 시간이 지나면 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거야!”그는 진시우의 사부를 처음 만난 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했다. 아마 신선이 있다면 바로 그 모습이라고 확신했다.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면 가족에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임아름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저 남자랑 결혼 못 해요! 쟤가 얼마나 나쁜 사기꾼인데요! 아까...”“시끄러!”화난 임호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네가 아무리 내 친손녀라고 해도, 진시우를 모욕한다면 참지...”말을 하던 임호군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진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할아버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 할아버지! 괜찮으세요?”“나......”임호군은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할아버지!”임아름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표정이 굳어진 진시우가 할아버지의 맥을 짚으려던 그때, 임아름이 그를 밀쳐내더니 있는 힘껏 쏘아붙였다.“꺼져!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할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너 같은 게 나타나서!”진시우의 미간이 깊게 찌푸러졌다. 저택 현관문에서 진시우를 기다리는 임호군의 모습을 본 그는 임호군의
“아버지!”임하운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영감이 제대로 미친 것인가?어디 근본도 없는 놈에게 아름이를 맡긴다고!?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임호군에게 말했다.“아름이 결혼은 우리 집 대사입니다. 이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임호군의 미간이 찌푸려 졌다.“우리 집 사위로 진시우가 제격이야, 네 생각은 안 그러냐?”임하운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아닙니다. 조금 이른 감이...”“아름아, 할아버지 말도 듣지 않을 셈이냐?”임하운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자 그의 눈빛은 임아름에게로 향했다.“할아버지, 저.... 저는...”결혼이 너무 하기 싫었지만, 자신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거절한다면 할아버지께서 또 쓰러지실까 두려웠다.“결혼은 정상적으로 진행해.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몸을 일으키고 싶었던 임호군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 작은 동작 하나로 진시우가 혈자리에 놓은 침의 위치가 변하게 되었다.임호군의 얼굴색이 삽 시에 새하얗게 질리더니 땀방울이 그의 머리에서 뚝뚝 떨어졌다.이 모습을 지켜본 임아과 다른 사람들은 어쩔 바를 몰랐다.“할아버지, 어디가 불편하세요?”당황한 임아름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결혼할게요, 할아버지. 진정하세요!””조 의원!”임하운이 조 의원을 다급하게 불렀다.임호군의 맥을 짚어본 조 의원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어, 어떡하지? 임 노인의 기가 흐려졌어요.”이런 변수는 그의 예상에 없었다!임 노인이 깨어나야 되는 시간도 6시간 후의 일이었는데!조 의원은 다급하게 침을 임 노인의 혈자리에 꽂았으나 나아지지는 않고 도리어 임호군이 피를 토해냈다.“아버지!”당황한 임하운 부부가 조 의원에게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임 노인에게 응급처치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임호군의 온몸이 간질병 환자처럼 떨리기 시작했다.“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진시우는 손에 쥔 혼인 신고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짜라고? 이 아가씨, 큰일 날 사람이네. 이런 일까지 해낼 수 있다니.“오, 그래.”진시우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가짜 혼인신고도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번거로운 일들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임아름은 귀찮은 표정으로 진시우를 보며 말했다.“집은 너 혼자 가야겠다. 나는 볼일이 아직 남아서!”말을 마친 임아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홀로 남겨진 진시우가 중얼거렸다.“도시에 사는 재벌집 아가씨는 참으로 모시기 어렵네요...”“그래, 3-4개월 뒤면 산으로 갈수 있어. 빨리 은혜나 갚자!”뒤이어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캔 진시우는 약초를 다져 까만 알약을 만들었다.독특한 약초의 향이 풍기자 진시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약만 먹으면 할아버지의 병도 모조리 낫게 될 거야.”오랜 시간 동안 임 노인의 몸에 갇긴 나쁜 기가 그의 오장 육부를 망쳐놓았다. 시중에서 파는 약으로는 임 노인의 상한 기를 빼낼 수 없었다.임 노인이 먹을 약을 완성한 진시우는 이 도시를 좀 익혀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돌아다녔다.점심때가 되어서야 저택에 도착했다.기력을 많이 회복한 임 노인이 소파에 앉아 그를 맞이했다. 임 노인은 그와 함께 바둑이나 두려고 불렀다.“할아버지, 제가 산에 가서 약을 준비해 봤어요. 이 약을 드시면 손상된 장기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시우가 준비한 약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임 노인은 기뿐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좋아! 밖에 나가서도 이 늙은이 걱정을 해주다니!”진시우가 말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임호군이 그런 진시우에게 다정하게 물었다.“시우야, 어떤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니? 이 할아버지가 당장 사람들을 불러 준비시키도록 하마. 일주일 안에 아름이와 결혼식...”“할아버지!”임호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황한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임아름이 집에 돌아왔다.임아름은 임호군의 곁에 앉아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할아버지
진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아요. 심성이 착한 사람이에요. 저에게 30만 원이라는 거금도 빌려줬어요.”“하하하 네가 이해하면 되지.”십여 분 후, 조 의원을 모시러 나간 임하운이 조 의원과 함께 저택에 도착했다.조중헌이 큰 소리로 진시우를 불렀다.“시우 동생!”진시우도 소파에서 일어나 조 의원을 반갑게 맞이했다.“조 의원님.”임하운이 그런 진시우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임아름과 백설아가 함께 주방에서 나왔다. 백설아가 조 의원을 살갑게 맞이했다.“조 의원님,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드시지요!”조중헌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풍성한 음식도 마련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백설아가 말했다.“저희 아버님을 구해주신 은인한테 이까짓 음식이 뭐라고요. 조 의원님한테 신세 진 것의 천분의 일도 안됩니다.”조중헌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시우 동생만 아니었다면...”임아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조 의원님, 저 자식 좋은 말만 하지 마세요. 저 나쁜 자식이 양 똥을 할아버지한테 먹이려고 했다니까요!”“양 똥 몇 알을 갖고 오더니 약초라 하면서 할아버지한테 거짓말까지 했어요!”임아름의 말을 들은 임하운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뭐라고?”조중헌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럴 리가요?”안색이 좋지 않은 임호군이 차가워진 분위기를 급히 수습했다.“아무 일도 아닐세. 내 손녀가 오해했어. 시우가 나를 해칠 일이 뭐가 있겠는가.”임하운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아버지, 우리 아름이가 어디 거짓말을 할 아이입니까? 이런 일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집에서 맘 편하게 있을 수 없을 겁니다.”임호군의 낯색이 더욱 일그러졌다. 부녀가 진시우에 대한 오해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외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진시우의 체면을 챙겨야 된다고 생각했다.진시우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진시우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 조중
흐뭇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 조중헌과 반대로 임호군은 밥을 먹는 내내 표정이 울적했다. 조중헌이 떠나기 전 임호군에게 두 알을 나눠주고 나서야 그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까 있은 일 때문에 어색한 부녀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진시우가 임 노인의 뒤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한 후에야 임 노인은 화만루를 입에 넣었다.임호군이 말했다.“시우야, 화만루 약효가 아주 좋은 것 같아. 아까보다 많이 편해졌어.”진시우가 물었다.“할아버지 솜씨도 좋으신 것 같은데, 젊었을 때 누구에게 맞아서 이렇게 되신 거죠?”임호군은 손을 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젊고 혈기왕성할때 있은 일이지. 기분나쁜 말을 하지 말자구나. 살아있다보면 언젠간 갚을날이 오겠지.”임호군이 말을 아끼자 진시우도 더 묻지 않았다.정신이 맑아진 임호군은 진시우를 끌고 바둑을 몇 판 두었다.오후 두시쯤. 예쁘게 꾸민 임아름이 핸드백을 들고 내려왔다.“아가야, 어디로 가는게냐?”임호군의 물음에 임아름이 대답했다.“이안이랑 커피 마시러 가요.”“그래? 마침 잘 되었구나. 시우도 데리고 나가거라. 친구들에게 남편을 소개시켜주는 자리가 되겠구나.”임호군이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임아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진시우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싶지 않았다. 이안이 자신을 놀릴게 뻔했다!진시우를 바라본 그녀는 위협적인 눈빛을 보냈다.그녀의 위협적인 눈빛을 무시한채 손에쥔 바둑을 놓은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어차피 저는 한가하니까요.”이 뻔뻔한 놈이 지금 나랑 같이 나가겠다는 거야? 임아름의 두눈이 경악으로 바뀌었다.할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임아름은 마지못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그러자. 같이 가면 되지.”임아름과 함께 저택을 나선 진시우는 그녀의 붉은 애마에 올라탔다.엑셀을 있는 힘껏 밟은 임아름은 조수석에 앉은 진시우를 보며 물었다.“너, ‘낄끼빠빠’ 라고 들어 밨어?”진시우가 창밖을 보며 말했
이현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마음이 조급해 죽겠는데 어디서 근본도 없는 젊은이가 나타나 조중헌의 침술을 방해하는 모습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거기 젊은이.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만약 여기서 큰일이라도 생기면 약만당은 당장 문을 닫아야 될지도 몰라!”진시우는 그의 오만한 자태를 보는 것도 귀찮았다.조중헌을 보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있었다.“첫 번째 혈자리, 백회혈.”조 의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백회혈에 침을 꽂았다. 진시우는 계속하여 혈자리를 가리켰다.“두 번째 혈자리, 신정혈.”침이 다시 한번 정확하게 혈자리를 찾아갔다.“세 번째 혈자리, 신궐혈.”“네 번째...”열여섯 개의 침들이 열여섯 개의 혈자리에 꽂혀 있었다. 담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노인의 호흡이 평온해지더니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이병천 노인은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고비는 넘긴 셈이다.조중헌은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진시우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시우 동생, 고마워. 오늘도 너의 도움을 받았구나!”깜짝 놀란 이현문은 황급히 이병천의 곁으로 다가가 부축했다.“아버지, 괜찮으세요?”이병천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괜찮아...”이현문의 부축을 받은 그는 진시우를 보며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내 목숨을 구해준 젊은이. 고마워.”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말다툼 소리를 들었다.진시우가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별말씀을요. 다 나으셨다면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시는 약만당에 발걸음을 하지않기를 바랍니다. 조 의원은 당신들의 귀한 목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이현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너 이 새끼 너...”“조용!”이병천의 호통소리에 이현문은 급히 하던 말을 멈췄다.긴 숨을 내쉰 이병천은 조중헌을 향해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조 의원님, 제 아들이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조중헌도 겸손하게 말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