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윤의 뒤를 따라 나오던 이들은 그가 정말 명의라고 생각했다. 소남은 사윤을 믿었음에도 여전히 긴장되었다. “원아는 좀 어때?”사윤이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말했다. “걱정 마요. 제가 나서서 안 되는 일이 있던가요? 만약 형수가 죽음의 길로 올라섰다 해도 난 다시 데려올 수 있어요. 아기도 형수 다리도 모두 무사해요. 어때요? 결과에 만족하십니까?”“고맙다. 정말 고마워.” 소남이 진심을 다해 말했다. 평소에는 감정 표현을 안 해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던 그가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자 사윤은
동준은 쌍둥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실로 들어선 그는 대표님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동준이 보기에 그는 한결같이 냉정하고 우아한 신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 가득 알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동준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매서운 소남의 눈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최대한 빨리 사고를 낸 운전자를 찾아. 절대 놓치면 안 돼. 민석이 이미 조사하러 갔으니 넌 협조만 하면 돼."그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살기가 느껴졌다. 동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검사를 마친 병원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문 대표님, 사모님의 다리는 구사일생으로 살렸습니다. 뱃속 아기의 상태도 괜찮고요. 다만, 이제부터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모님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병원장이 ‘사모님’이라고 하는 말에 원아는 적응이 안 됐다. 소남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약혼식도 그렇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무척 난처했다. 하지만 소남이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었다. “고맙습니다, 병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지윤이 병실에 머문 것은 잠깐이었다. 그 사이에도 소남은 원아에게 끝없이 다정하게 대했다. 지윤은 숨이 막힐 것 같아 더는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질투 가득한 마음을 안고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윤이 가고 난 뒤, 주소은과 김훈 그리고 이연 등 직장 동료들이 선물을 가지고 원아를 찾아왔다. 그들은 소남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원아의 상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대표가 있는 자리라 긴장하여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소남은 자기 때문에 직원들이 불편한 것을 알아채고, 담배를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
장인숙이 소남의 방문을 열지 못하자 영은은 실망이 컸다. 하지만 여전히 밝은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소남 씨는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요. 낯선 사람이 개인적인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죠. 하물며 저는 지금 그와 확실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소남 씨가 알게 되면 틀림없이 엄청나게 화를 낼 거예요. 저에게 화가 나는 건 상관없지만, 어머님과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제가 죄책감에 마음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요.”“네 말이 맞구나. 네가 소남의 약혼녀가 되면,
번화한 밤거리 풍경은 여전했다. 소남의 차는 넓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그는 영은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둘은 아무 말 없이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영은은 창밖으로 도로가 막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집까지 가는 길은 한 시간 남짓했지만, 소남과 일 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소남을 바라봤다. 그는 참을성 있게 신호를 기다리며, 손으로 운전대를 짚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영은 씨, 혹시 할머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급하게 선물을
영은은 혹시나 소남이 할머니의 말을 거절할까 봐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숨죽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영은은 마치 중독된 듯 소남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편, 소남은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영은 할머니를 바라봤다.“할머님, 저는 영은과 이제 막 사귀기로 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여서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저는 영은에게 잘해줄 것입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때가 되면 제가 영은을 우리 집에 인사시키고, 가족의
주희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남을 주시했다. 그는 정말 외적으로도 훌륭했다. 정장 차림의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훨씬 털털한 차림의 흰색 셔츠에 검은색 캐주얼 바지를 입었음에도 우아한 자태는 감추어지지 않았다.그는 화려하면서도 차갑고 도도한 양귀비처럼 사람을 끌어당겼다. 또한, 흠 하나 없는 외모와는 달리 강한 카리스마로 여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사랑에 빠진 영은은 이제 맹목적으로 그만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소남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고 여겼고,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희진은 그의 눈에서 영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