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이 네가 무슨 선물이니, 어린 녀석이 돈 쓸 데도 많을 텐데. 앞으로는 이렇게 안 사와도 돼…….”노마님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선물을 풀고 있었다.상자 안에는 옥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골동품 파이프가 들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비싸 보였다.“우리 영은이 정말 다정한 아이지. 며칠 전 네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갖고 싶다더니만, 생일 날 소원이 이루어졌네. 영은아, 설마 너, 네 할아버지 배 속에 들어갔다 나온 거니? ”임씨 가문의 노마님이 웃으며 농담했다.영은을 바라보던 임 노인은 생각이 많은 듯 복잡한 눈빛
문소남 옆에 서 있는 여성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원아가 모두를 향해 다가올 때는 마치 한 송이 라벤더 꽃이 움직이는 듯 화사했다.특히나 초승달 같이 휜 원아의 두 눈은 웃을 때마다 별빛처럼 반짝거리며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여러 유형의 빼어난 여성들을 많이 만나보았던 주희진이었지만, 눈앞의 이 여성은 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게 했고 왠지 모를 친근감도 느껴졌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여성의 눈매가 자신의 젊었을 때와 좀 닮아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 인연인지…….주희진을 만난 원아 역시 첫눈에 우아해 보이
임영은은 손을 말아 꽉 쥐었다. 원아 저 여자가 어떻게 저 오만한 남자 문소남에게 어울린다는 말인가?임 노인은 소남의 소개를 듣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성의 이름이 ‘원아’라는 것을 알고 그의 침침하던 눈이 순간 밝아졌다.“원아? 소남아, 이 분이 나에게 새 집을 설계해 준 그 ‘원아’인 거니?”“네, 노인, 제가 노인을 위해 설계한 원아입니다. 추후 설계에 대한 불만이나 개선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임노인은 원아의 부드러운 음성과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거나 또 뻣뻣하지도 않은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많지 않고 주변이 아주 조용하였다.“안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했지요. 우선 여기 좀 앉아 있어요. 연회가 끝나면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소남이 원아를 흔들의자에 앉혔다.그런 후 볼에 뽀뽀를 하고 지갑을 꺼내 카드를 건넸다. “이 카드는 가지고 있어요.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즐기고 싶은 거 있으면 어디든 가서 즐겨요. 하지만 12시 전에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해요. 내가 찾을 수 있도록.”소남은 마치 아이를 대하듯이 원아에게 당부했다.원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원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주희진을 쳐다보았다.그 순간, 이 여인에 대한 모든 호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현격한 신분의 차이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문소남의 관계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원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이 여인이 입을 떼자마자 일격을 가하며 그녀 스스로 문소남 곁을 떠나라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사모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말씀하시는 지 몰라도, 저는 그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싸늘한 음성으로 말하는 원아의 주희진에 대한 태도는 더 이상 공손하지 않았다.찻잔을 만
원아는 주희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반박하리라 생각했다. 심지어 멜로드라마의 막장 스토리처럼 거액의 수표를 집어 던지거나, 그녀를 엄청 모욕할 거라 생각했다.만약 그런다면, 그녀는 분노하며 주희진에게 이성적으로 대들 것이었다.그런데 원아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그녀의 말을 들은 주희진의 태도가 여전히 덤덤했으며, 미간엔 온화한 기색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런 느긋한 태도와 성질 좋아 보이는 모습은 도리어 원아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원아는 속으로 부쩍 경계심이 들었다.‘이 사모님, 정말 대단하구나
“넌 생각이 많아. 이 세상에 닮은 사람은 무척 많아. 영은이만 해도 극 중의 두 대역과 꽤 닮지 않았어? ……별 이상할 것도 없어. 외모가 닮았다고 혈연 관계라고 판단한다면, 이 세상에 헤어진 모녀나 부자가 너무 많을 거야.”주희진이 개의치 않는 듯이 말했다.하지만 비록 이렇게 말은 했지만, 복잡한 빛의 두 눈은 잔 안에 담긴 와인으로 떨어졌다.연홍색의 액체는 마치 테라스에 있는 저 고집 센 여자의 실루엣을 비출 수도 있을 듯했다.원아라는 저 여자는 언뜻 연약해 보이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주희진의 눈빛이 점차 차분해졌
과연, 꽤 성공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성 몇몇이 잠시 대화를 멈추는 것이 보였다. 목젖도 몇 차례 오르내리는 듯했다.욕망이 담긴 몇 쌍의 시선들이 곧바로 허요염을 향해 쏘아졌다…….“영은아, 봤지? 이 남자라는 동물은 겉으로는 꽤나 신사인 양해도, 사실 괜찮은 남잔 별로 없어. 뼛속까지 나쁜 놈들이 남자야. 네가 쟤들한테 몸으로 시중만 잘 들어도, 쟤들은 원하는 하늘의 별도 어떻게든 따다 줄 걸. 게다가 너네 집안 배경 어마어마해, 너도 대 스타지, 얼굴, 몸매 죽이지, 너한테 안 넘어올 남자는 없어.”허요염이 임영은의 귓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