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하얀 상복을 입은 채 엄마의 곁에 얌전하게 있었다.원민지도 소복을 차려입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살면서 오라버니의 마지막 모습마저 보지 못하고 이대로 떠나보낸 게 너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여전히 이 사실을 모르고 계셨으니.오라버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노인네 충격이 크실텐데...문소남은 팔에 흰색의 효대를 착용하고 원아를 대신하여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원강수의 동료, 친구 그리고 문소남과 같이 일을 했던 동지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평소 차갑고 냉철하기로 유명한 문 사
저녁 때 즈음 원씨네 집에 조문을 온 사람들이 하나둘 씩 떠나고 썰렁해진 방안에는 몇 안 남은 사람만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아이들은 진작 배가 고파왔고 원민지는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밥 먹으로 갔다.문소남은 전화를 받더니 원아한테 몇 마디 당부만 남긴채 급히 집을 나섰다.하루 종일 분주하게 보낸 원아는 이제서야 난잡해진 집안과 여러 상황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씨 집은 방 두개가 달린 층집이였고 방 구석구석을 살피던 원아는 물건들의 배치며 지금 이 환경이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10살이 넘어서야 이 집에 와서
그 순간 온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장정안의 매력적인 눈매에서 갑자기 검은 폭풍이 일더니 급기야 동공 지진과 함께 살벌한 기세가 퍼져나왔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에 이른 장정안, 입술에 피가 나도록 꽈악 깨물었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의 감정을 억지로 짓누르는 듯 했다."이혼을 하겠다? 원아 씨, 그건 꿈도 꾸지 마세요!” 장정안은 급기야 원아를 책상 머리로 밀쳐버리고 손 목으로 그녀의 몸을 막은 채 얼굴을 맞대고 분노에 차 씩씩거렸다.날카로운 시선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따갑
평소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원원이도 엄마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자 눈이 홱 돌아갔고 급기야 빗자루를 집어 들고 장정안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그리고 쨍쨍한 음성으로 장정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왜 우리 엄마를 괴롭혀요? 내가 아저씨 혼내줄 거야! 혼내 줄 거야!”찌릿-종아리에서 올라온 극심한 통증에 장정안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제서야 꽉 잡고 있던 원아를 놓아주었다.부랴부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원아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장정안을 노려보았다. 어찌나 시달렸는지 그녀의 입술은 어느새
그는 휴지 통에서 휴지 한 장을 꺼내 입술 가의 핏자국을 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피가 묻어난 휴지를 손으로 구기더니 휴지통에 던졌다. 그리고 홱 돌아서서 문을 쾅 닫고 나갔다.문 닫히는‘쾅’ 소리에 흠칫 놀랐던 원민지는 넋 나간 사람처럼 핏기 없는 얼굴로 서 있는 조카딸을 보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원민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원아야, 괜찮니? 아까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거야? 너 문소남 씨랑 사귀는 거 아니였어? 그런데 저 남자의 아내라니? 너 언제 결혼했었는데? 왜 고모한테 말 안 했어? 내가 소남 씨한테 전화
임문정은 딸이 관심을 주고 있는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성숙하고 노련미 넘치는 모습에 남다른 포스와 아우라까지, 이 시대 성공한 남성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도지사인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잘 보이려 하거나 아부하는 경향이 전혀 없었다. 그저 적당한 예의로 정중히 대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그런 문소남이 마음에 쏙 든 임문정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딸의 안목이 뛰어나군!’하는 생각에 딸의 소원을 꼭 들어주리라 다짐했다.문소남에게 자신의 딸 임영은을 소개해 준 임문정이 자연스럽
그러나 그녀가 연기한 다른 배역들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그 뒤 임영은이 여주인공 역을 맡은 후속작은 역대급 라인업을 자랑하는 대작이었다. 당시 최고의 스타 설도영는 물론 노련한 일급 배우 이종건까지 그녀 옆에 붙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 실력파 여배우는 무려 100억에 가까운 출연료에 매수되다시피 하며 임영은을 위한 서브 여주로 출연했었다.제작진이 출연진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시한 것은 당연히 임영은을 띄우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칠국의 난’이 상영된 뒤,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차마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임영은의 오그라
문소남의 말에 임문정이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로 문소남의 어깨를 연거푸 툭툭 치며 말했다. “문소남 씨, 그 문제라면 걱정 말아요. 담당자에게 얘기해서 내일 당장 심사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문 대표는 내 딸 아이를 잘 챙겨주길 바랍니다.”임문정은 문소남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물도 잘 생겼을 뿐 아니라, 대화를 통해 그의 영민함과 능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 대표라고 부르던 호칭이 어느새 소남 씨로 바뀌었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