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밤에 그녀의 계정 비밀번호를 보내왔었다.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려 깊이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어젯밤 밤을 새운 탓에 지금까지 깊은 잠을 자는 모양이다.그녀는 몸을 숙여 그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는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참이라 그녀의 키스에 갑자기 눈을 떴다."밤새 안 잤던 거예요? 눈 충혈된 거 좀 봐... 그냥 계정일 뿐이잖아요. 못 찾아도 괜찮은데." 그녀는 그가 그녀의 계정 때문에 잠을 못 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계정 찾는 건 마이크에게 부탁해도 됐어요. 하지만 예전 사진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거죠. 거기에는 엄마랑 노경민 교수님 사진도 있고, 그리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 사진도 많거든요."인생은 앞을 내다보며 살아가는 거라고 항상 자신에게 상기시키지 않는다면 과거의 기억 속에 갇히기 쉽다."어젯밤 네가 임신했을 때의 사진을 봤어. 보고 나니 죄책감이 들었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 말을 꺼냈다가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 바로 바꿨다. "오늘 새로 개발한 신제품 보러 회사에 간다고 했지?""네, 난 이만 일어나야겠어요. 당신은 계속 자고 있어요!"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 "밤새우지 마요. 몸에 안 좋으니까.""알았어."그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그는 그녀가 침실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을 계속 보았다.진명 그룹.진아연은 연구개발부에 가서 신제품 소개를 들었다.시간이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다."아연아, 어떻게 생각해?" 마이크는 그녀와 함께 식사하러 밖에 나갔다."괜찮은 것 같아. 원래는 제이그룹에게 주기로 한 디자인이라고?""맞아.""제이그룹에서는 무슨 반응이야?" 진아연이 물었다.마이크가 비웃었다. "이제 진명그룹의 대주주는 박시준이잖아. 왕은지가 감히 우리와 맞설 수 있겠어? 우릴 건드리는 건 곧 박시준을 건드리는 걸 의미하는데. 그 여자 지금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어."진아연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왕은
저녁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성빈은 최은서가 돌아온 줄 알고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예상과는 달리 문밖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성빈이 놀라 하자 문밖에 있던 남자도 놀랐다.두 사람은 전에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다."여긴 왜 왔어?!""너 왜 여기 있는데?"두 사람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다."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여긴 한이의 집이야." 성빈은 문을 막고 서서 최운철을 들여보내지 않으려 했다.전에 최은서는 최운철과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으며, 돈을 다 쓰기 전까지 최운철은 그녀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지금 최운철이 여기에 찾아온 건 돈을 다 써버린 건가?성빈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인간을 가장 싫어했다! 최은서의 현재 월급으로는 기본 생활만 유지할 수 있을 뿐 최운철에게는 줄 돈은 전혀 없었다.그래서 성빈은 최운철이 최은서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허허, 누구 집이든 중요하지 않아, 내 여동생이 여기 사는 것만 알면 되니까! 은서는 어디 있어?" 성빈에게서 푸대접받자 최운철은 조금 짜증이 났다."은서를 왜 찾는데?" 성빈은 집에서 나온 뒤 문을 닫았다."내가 내 동생을 찾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둘이 함께 있어?" 최운철은 성빈을 훑어보았다. "둘이 헤어졌던 거 아니야?""우리 둘이 헤어졌다는 걸 누구한테서 들었어?" 성빈은 차갑게 말했다. "대체 은서는 왜 찾는데? 지난번에 내가 준 돈 벌써 다 써버리고 은서한테 돈 달라고 찾아온 거야? 야, 최운철, 너 지금 꼬라지 좀 봐. 그 나이 먹고 동생한테서 돈이나 뜯어내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최운철 얼굴이 빨개졌고 화가 치밀었다. "동생 보러 온 게 네 눈엔 돈 뜯어내는 걸로 보여? 난 단 한 번도 은서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냥 너한테서 몇 푼 받은 거 가지고 그러네. 그리고 그건 네가 자진해서 준 거잖아! 왜? 내 동생이 유산하니까 그 돈 다시 돌려받으려고?!""네 그 못난
성빈: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넘어져서 이렇게 다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최은서는 혀를 쯧쯧 찼다.성빈은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소파 테이블 위의 약상자는 열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요오드포, 면봉 그리고 항염증제가 놓여 있었다."누구한테 맞았어요?" 최은서는 가까이에서 그를 비웃기 위해 그의 옆에 앉았다. "B국에도 적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래! 나도 B국에 적이 있을 줄은 몰랐어. 공교롭게도 그 사람의 성은 최씨야." 성빈은 약을 약상자에 넣었다.그는 최운철에게 맞았지만 그도 최운철을 때렸다.그렇지 않으면 최운철은 쉽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10살만 어렸더라도 최운철에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무슨 말이에요? 내가 때린 것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최은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당혹스러워했다."너랑 상관있는 게 아니라, 네 큰오빠랑 상관있어. 그 인간 너한테 전화하지 않았어?""아니요! 큰오빠가 여기 왔었다고요? 그리고 당신을 이렇게 때렸어요?" 최은서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왜 사람을 때리고 난리래요?"최은서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찾아 최운철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성빈은 그녀를 끌어 소파에 앉혔다. "내가 그렇게 못난 거 같아? 네 큰오빠가 나보다 더 다쳤거든! 결국 싸움에서 내가 이긴 셈이지.""아이고 아주 자랑이세요." 최은서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둘이 왜 싸웠는데요?""내 물음에나 대답해. 너한테 전화하지 않았어?""한 적 없어요! 전 연습할 때 전화 꺼놓고 있거든요. 나에게 전화해도 연락 안 되요." 최은서는 궁금해했다. "어떻게 여길 찾았는진 모르겠는데, 당신한테 돈을 달라고 했나요?""아니. 그 인간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할 배짱은 없어. 하지만 아마도 네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여기 온 거 같아." 성빈은 소파 테이블을 정리한 후 최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은서야, 너 지금 돈 없지?""조금은 있어요. 하지만 큰오빠에게 줄
최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20억! 20억! 20억!그녀는 속으로 세 번 읽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깨달았다.그녀의 놀란 표정을 본 성빈은 그녀가 믿지 않을까 봐 최운철에게 이체한 내역을 찾아냈다."은서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색하지 않아. 너는 내가 너를 무시했다고 계속 말하지만, 나는 널 무시한 게 아니야. 우리가 함께 자지만 않았다면...""그 얘기 하지 마요!" 최은서는 그의 말을 끊었다. "왜 큰오빠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줬어요? 뭐 하자고 그렇게 많이 준 거예요?"그녀는 열심히 돈을 벌어 그가 준 2억을 그에게 돌려줄 계획이었다.그런데 지금 2억이 20억이 되었으니, 그렇게 큰 빚은 단기간에 갚으려야 갚을 수 없었다.성빈은 심호흡했다.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지. 하지만 내 미래 신부에게 주는 결혼 예물이라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야. 그때 넌 나의 아이를 가졌는데 어떻게 널 섭섭하게 할 수 있겠어?""아, 그래요? 결국은 아이 때문에 준 거군요. 안타깝게도 아이는 없어졌지만." 최은서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없었으면 2억인가요?""네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 거야.""맞네요! 당신 부모님께서 그 아이를 너무 원해서 나랑 결혼하라고 강요한 거죠?" 궁금증이 풀린 최은서는 어딘가 불쾌했다. "큰오빠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서 왜 나한테는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어요?""사실대로 얘기하면 네가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봐. 너 전에도 돈을 갚겠다고 하지 않았어?""그러면 끝까지 얘기하지 말지 그랬어요.""난......""설명하지 마세요. 나중에 큰오빠가 날 찾아오면 돈을 갚으라고 할게요." 최은서는 소파에 기대어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근데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예요? 설마 날 찾아온 건 아니겠죠? 난 당신이랑 놀아줄 시간 없어요."그는 바닥에서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지난번에 튼튼한 상자로 바꿔주겠다고 했잖아?" 그는 상자를
그는 현재 자신이 최은서에 대한 태도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개처럼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 같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그것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오히려 그것이 꽤 흥미로웠다.최은서는 그의 말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그는 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낯가죽이 너무 두꺼운 건가?"그나저나 특별히 널 찾아온 건 아니야. 내일 연습 있으면 그냥 연습 가면 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자 그는 사실을 얘기했다. "네 둘째 오빠가 날 보낸 거야.""둘째 오빠가 보냈다고요? 무슨 일로요?""업무상의 일이야. 여기서 며칠만 지낼 수 있을까? 한이의 방이 비어 있던데...""한이 방에서 자지 마세요. 나중에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최은서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이 방에서 자요."성빈 방을 훑어보았다. "너무 작은데.""싫으면 호텔에 가든가. 당신은 돈 많으니까 로얄 스위트룸에서 자면 되겠네요." 최은서는 그를 비꼬았다. "난 여기 있으라고 한 적 없거든요.""또 오해하네. 작다고 한 건 그냥 객관적인 평가일 뿐이지, 싫다고는 안 했어... 그냥 여기서 머물게! 내일 네 큰오빠가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찾아와도 날 어찌하지 못할 건데, 당신이 이 누추한 곳에 머물 필요는 없잖아요.""휴... 난 그냥 너랑 잠시라도 더 있고 싶어. 네 큰오빠가 찾아오든 말든 상관없어." 성빈은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는 돌려서 말하면 안 되겠네.""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빙글빙글 돌려서 얘기해요?" 최은서는 키가 커서 그를 쏘아볼 때 고개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그래! 네 말이 맞아." 성빈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은서야, 난 모델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A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야.""원하는 대로 하세요! 어쨌든 난 같이 있을 시간 없으니까 원하는 만큼 여기 있어도 돼요.""조금 부드럽게 말하면 안 되?""방금까지 돌려서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수연은 켕기는 게 있는 듯 전화를 끊은 뒤 전원까지 껐다.그것을 지켜본 진아연은 차분하게 물었다. "전화를 왜 안 받으세요?"하수연은 자기 앞에 있는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요."하수연은 진아연과 왕은지가 서로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하수연은 매우 갈등했다.진아연은 그녀에게 잘 대해줬고 기꺼이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사실 그녀는 앞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만 있다면 별장 한 채와 20억은 필요 없었다.물론 때때로 그녀는 별장과 20억이 있으면 박시준이라는 아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박시준의 성격은 너무 냉철하여 앞으로 그녀에게 잘 대해줄지는 모르는 일이다.지난번에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시준은 그녀에게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이번 만남도 그녀가 참지 못하고 진아연에게 연락했기에 이뤄진 것이다."어머님, 전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어요." 진아연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이렇게 빨리 어머님께 연락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아마도 어머님이 박시준의 생모인 걸 알게 되어 연락했을 거예요. 그 여자가 처음 연락한 건 언제예요? 만난 적은 있나요? 뭐라고 하던가요?"진아연이 물어본 질문에 하수연은 속이 뒤집힐 듯 극도로 당황했다.그녀는 이번에 먼저 진아연에게 연락한 걸 왕은지에게 말하지 않았다.지금 그녀가 진아연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왕은지가 알았다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만난 적이 있어... 알 수 없는 여자야..." 하수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진아연은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그 여자는 저와 시준 씨의 적이에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의 원수예요. 그 여자가 우리 엄마를 죽였거든요.""그 여자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하수연은 그들 사이의 피맺힌 깊은 원한에 충격을 받았다."그 여자에게 딸이 있었는데 죽었거든요. 제가 죽인 게 아닌데, 그 여자는 제가 진범이라고 여기는 거죠.""그런 일이 있었구나...""어머님
"어머님, 말씀하시기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여쭤본 거예요. 이따가 시준 씨에게 말해서 구정 때 어머님을 모셔 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고마워, 아연아!""별 말씀을요. 다 사소한 일이에요. 시준 씨에게 배다른 남매가 있는데, 지금까지도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태도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그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진아연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비밀번호는 나중에 휴대폰으로 보내드릴게요. 그 안에 있는 돈은 마음대로 쓰세요."하수연은 즉시 거절했다."받으세요, 어머님. 왕은지가 다시 연락하면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하세요. 여기서 어려움이 있으시면 저희가 해결해 드릴게요. 우린 가족이잖아요."진아연의 말은 하수연이 완전히 경계를 놓게 만들었다.그녀는 진아연의 카드를 받았다.그날 저녁.진아연은 집에 돌아왔다.그녀는 박시준에게 오늘 하수연과의 만난 것에 대해 말했다."왕은지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겉으로는 조용해진 듯하지만, 뒤에서는 계속 수작을 부리고 있네요. 내가 그 인간을 알아도 너무 잘 알죠.""하수연이 너에게 먼저 연락한 거야?" 박시준이 물었다."네. 곧 구정이잖아요? B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우리와 함께 설을 보내고 싶어 하던데요. 시준 씨, 어머니 모셔와서 같이 설 보내요." 진아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거절하면 왕은지에게 매수될 수도 있잖아요. 당신이 어머니한테 감정이 있든 없든 시준 씨의 생모는 한 명뿐인데, 우리가 어머니한테 잘해주는 건 우리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는 건 그도 잘 알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혐오스러웠다."그 여자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어."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문서를 집어 들었다. "내가 뒷조사 좀 해봤어. 처음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B국에 있다고 해서 먼저 B국에 사람을 보냈지. 근데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어."그녀는 문서를 받으며 그의 엄숙한 얼굴을 바라
다음날 박시준은 B국에서 걸어온 성빈의 전화를 받았다."시준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제이그룹이 B국에서 상장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박시준: "그 뉴스도 이미 삭제됐어.""음,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네. 제이그룹은 상장할 생각이 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먼저 여론을 알아본 거지. 왕은지가 자금을 모으기 위해 그렇게 열심인데, 상장은 하고 싶었을 거야." 성빈은 웃으며 말했다. "너만 없었으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언제 돌아와?" 박시준이 물었다."지난번에 얘기하지 않았어? 은서의 모델 대회가 끝나면 돌아갈 거라고." 성빈은 당분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와 최은서의 관계는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눈앞에 희망의 새벽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달력 안 봤어?" 박시준이 그에게 상기시켜줬다. "너 매년 부모님과 함께 구정 보냈잖아? 최은서가 참가하는 그 모델 대회가 바로 구정 당일이던데."성빈은 잠시 멍해졌다. "달력을 보지 않은 건 맞아. 그러면 올해는 은서랑 같이 보내면 되겠네 뭐! 그동안 계속 부모님과 같이 보냈는데, 어쩌다 은서랑 같이 보낸다고 뭐라 하진 않으실 거야.""둘이 지금 어디까지 갔어?" 그의 득의양양한 말투에 박시준은 궁금해졌다.성빈은 큰 소리로 웃다가 얼굴의 상처가 아파 바로 멈췄다."최운철 그 새끼가 내 얼굴에 손 댔어. 사람 만나러 나가기도 쪽팔려 죽겠어. 제이그룹 상장에 대해 알아보려고 나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 만날 때도 못 벗고.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알레르기가 있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을 정도야.""심각해?""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잘생긴 얼굴에 금이 가서." 성빈은 수심에 잠겼다. "대회 당일까지 다 나을지 모르겠네. 무대에 올라가 은서한테 꽃을 줄 생각인데."그의 말을 들은 박시준은 이틀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이 세상에 어떤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뭐랬더라? 아무튼 그 종이 딱 한 그루만 남았어. 남은 건 백 년 이상을 산 수나무인데, 암나무가 멸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