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빈: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넘어져서 이렇게 다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최은서는 혀를 쯧쯧 찼다.성빈은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소파 테이블 위의 약상자는 열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요오드포, 면봉 그리고 항염증제가 놓여 있었다."누구한테 맞았어요?" 최은서는 가까이에서 그를 비웃기 위해 그의 옆에 앉았다. "B국에도 적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래! 나도 B국에 적이 있을 줄은 몰랐어. 공교롭게도 그 사람의 성은 최씨야." 성빈은 약을 약상자에 넣었다.그는 최운철에게 맞았지만 그도 최운철을 때렸다.그렇지 않으면 최운철은 쉽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10살만 어렸더라도 최운철에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무슨 말이에요? 내가 때린 것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최은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당혹스러워했다."너랑 상관있는 게 아니라, 네 큰오빠랑 상관있어. 그 인간 너한테 전화하지 않았어?""아니요! 큰오빠가 여기 왔었다고요? 그리고 당신을 이렇게 때렸어요?" 최은서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왜 사람을 때리고 난리래요?"최은서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찾아 최운철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성빈은 그녀를 끌어 소파에 앉혔다. "내가 그렇게 못난 거 같아? 네 큰오빠가 나보다 더 다쳤거든! 결국 싸움에서 내가 이긴 셈이지.""아이고 아주 자랑이세요." 최은서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둘이 왜 싸웠는데요?""내 물음에나 대답해. 너한테 전화하지 않았어?""한 적 없어요! 전 연습할 때 전화 꺼놓고 있거든요. 나에게 전화해도 연락 안 되요." 최은서는 궁금해했다. "어떻게 여길 찾았는진 모르겠는데, 당신한테 돈을 달라고 했나요?""아니. 그 인간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할 배짱은 없어. 하지만 아마도 네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여기 온 거 같아." 성빈은 소파 테이블을 정리한 후 최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은서야, 너 지금 돈 없지?""조금은 있어요. 하지만 큰오빠에게 줄
최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20억! 20억! 20억!그녀는 속으로 세 번 읽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깨달았다.그녀의 놀란 표정을 본 성빈은 그녀가 믿지 않을까 봐 최운철에게 이체한 내역을 찾아냈다."은서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색하지 않아. 너는 내가 너를 무시했다고 계속 말하지만, 나는 널 무시한 게 아니야. 우리가 함께 자지만 않았다면...""그 얘기 하지 마요!" 최은서는 그의 말을 끊었다. "왜 큰오빠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줬어요? 뭐 하자고 그렇게 많이 준 거예요?"그녀는 열심히 돈을 벌어 그가 준 2억을 그에게 돌려줄 계획이었다.그런데 지금 2억이 20억이 되었으니, 그렇게 큰 빚은 단기간에 갚으려야 갚을 수 없었다.성빈은 심호흡했다.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지. 하지만 내 미래 신부에게 주는 결혼 예물이라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야. 그때 넌 나의 아이를 가졌는데 어떻게 널 섭섭하게 할 수 있겠어?""아, 그래요? 결국은 아이 때문에 준 거군요. 안타깝게도 아이는 없어졌지만." 최은서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없었으면 2억인가요?""네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 거야.""맞네요! 당신 부모님께서 그 아이를 너무 원해서 나랑 결혼하라고 강요한 거죠?" 궁금증이 풀린 최은서는 어딘가 불쾌했다. "큰오빠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서 왜 나한테는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어요?""사실대로 얘기하면 네가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봐. 너 전에도 돈을 갚겠다고 하지 않았어?""그러면 끝까지 얘기하지 말지 그랬어요.""난......""설명하지 마세요. 나중에 큰오빠가 날 찾아오면 돈을 갚으라고 할게요." 최은서는 소파에 기대어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근데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예요? 설마 날 찾아온 건 아니겠죠? 난 당신이랑 놀아줄 시간 없어요."그는 바닥에서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지난번에 튼튼한 상자로 바꿔주겠다고 했잖아?" 그는 상자를
그는 현재 자신이 최은서에 대한 태도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개처럼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 같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그것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오히려 그것이 꽤 흥미로웠다.최은서는 그의 말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그는 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낯가죽이 너무 두꺼운 건가?"그나저나 특별히 널 찾아온 건 아니야. 내일 연습 있으면 그냥 연습 가면 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자 그는 사실을 얘기했다. "네 둘째 오빠가 날 보낸 거야.""둘째 오빠가 보냈다고요? 무슨 일로요?""업무상의 일이야. 여기서 며칠만 지낼 수 있을까? 한이의 방이 비어 있던데...""한이 방에서 자지 마세요. 나중에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최은서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이 방에서 자요."성빈 방을 훑어보았다. "너무 작은데.""싫으면 호텔에 가든가. 당신은 돈 많으니까 로얄 스위트룸에서 자면 되겠네요." 최은서는 그를 비꼬았다. "난 여기 있으라고 한 적 없거든요.""또 오해하네. 작다고 한 건 그냥 객관적인 평가일 뿐이지, 싫다고는 안 했어... 그냥 여기서 머물게! 내일 네 큰오빠가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찾아와도 날 어찌하지 못할 건데, 당신이 이 누추한 곳에 머물 필요는 없잖아요.""휴... 난 그냥 너랑 잠시라도 더 있고 싶어. 네 큰오빠가 찾아오든 말든 상관없어." 성빈은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는 돌려서 말하면 안 되겠네.""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빙글빙글 돌려서 얘기해요?" 최은서는 키가 커서 그를 쏘아볼 때 고개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그래! 네 말이 맞아." 성빈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은서야, 난 모델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A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야.""원하는 대로 하세요! 어쨌든 난 같이 있을 시간 없으니까 원하는 만큼 여기 있어도 돼요.""조금 부드럽게 말하면 안 되?""방금까지 돌려서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수연은 켕기는 게 있는 듯 전화를 끊은 뒤 전원까지 껐다.그것을 지켜본 진아연은 차분하게 물었다. "전화를 왜 안 받으세요?"하수연은 자기 앞에 있는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요."하수연은 진아연과 왕은지가 서로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하수연은 매우 갈등했다.진아연은 그녀에게 잘 대해줬고 기꺼이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사실 그녀는 앞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만 있다면 별장 한 채와 20억은 필요 없었다.물론 때때로 그녀는 별장과 20억이 있으면 박시준이라는 아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박시준의 성격은 너무 냉철하여 앞으로 그녀에게 잘 대해줄지는 모르는 일이다.지난번에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시준은 그녀에게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이번 만남도 그녀가 참지 못하고 진아연에게 연락했기에 이뤄진 것이다."어머님, 전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어요." 진아연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이렇게 빨리 어머님께 연락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아마도 어머님이 박시준의 생모인 걸 알게 되어 연락했을 거예요. 그 여자가 처음 연락한 건 언제예요? 만난 적은 있나요? 뭐라고 하던가요?"진아연이 물어본 질문에 하수연은 속이 뒤집힐 듯 극도로 당황했다.그녀는 이번에 먼저 진아연에게 연락한 걸 왕은지에게 말하지 않았다.지금 그녀가 진아연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왕은지가 알았다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만난 적이 있어... 알 수 없는 여자야..." 하수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진아연은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그 여자는 저와 시준 씨의 적이에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의 원수예요. 그 여자가 우리 엄마를 죽였거든요.""그 여자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하수연은 그들 사이의 피맺힌 깊은 원한에 충격을 받았다."그 여자에게 딸이 있었는데 죽었거든요. 제가 죽인 게 아닌데, 그 여자는 제가 진범이라고 여기는 거죠.""그런 일이 있었구나...""어머님
"어머님, 말씀하시기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여쭤본 거예요. 이따가 시준 씨에게 말해서 구정 때 어머님을 모셔 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고마워, 아연아!""별 말씀을요. 다 사소한 일이에요. 시준 씨에게 배다른 남매가 있는데, 지금까지도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태도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그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진아연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비밀번호는 나중에 휴대폰으로 보내드릴게요. 그 안에 있는 돈은 마음대로 쓰세요."하수연은 즉시 거절했다."받으세요, 어머님. 왕은지가 다시 연락하면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하세요. 여기서 어려움이 있으시면 저희가 해결해 드릴게요. 우린 가족이잖아요."진아연의 말은 하수연이 완전히 경계를 놓게 만들었다.그녀는 진아연의 카드를 받았다.그날 저녁.진아연은 집에 돌아왔다.그녀는 박시준에게 오늘 하수연과의 만난 것에 대해 말했다."왕은지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겉으로는 조용해진 듯하지만, 뒤에서는 계속 수작을 부리고 있네요. 내가 그 인간을 알아도 너무 잘 알죠.""하수연이 너에게 먼저 연락한 거야?" 박시준이 물었다."네. 곧 구정이잖아요? B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우리와 함께 설을 보내고 싶어 하던데요. 시준 씨, 어머니 모셔와서 같이 설 보내요." 진아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거절하면 왕은지에게 매수될 수도 있잖아요. 당신이 어머니한테 감정이 있든 없든 시준 씨의 생모는 한 명뿐인데, 우리가 어머니한테 잘해주는 건 우리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는 건 그도 잘 알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혐오스러웠다."그 여자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어."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문서를 집어 들었다. "내가 뒷조사 좀 해봤어. 처음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B국에 있다고 해서 먼저 B국에 사람을 보냈지. 근데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어."그녀는 문서를 받으며 그의 엄숙한 얼굴을 바라
다음날 박시준은 B국에서 걸어온 성빈의 전화를 받았다."시준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제이그룹이 B국에서 상장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박시준: "그 뉴스도 이미 삭제됐어.""음,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네. 제이그룹은 상장할 생각이 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먼저 여론을 알아본 거지. 왕은지가 자금을 모으기 위해 그렇게 열심인데, 상장은 하고 싶었을 거야." 성빈은 웃으며 말했다. "너만 없었으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언제 돌아와?" 박시준이 물었다."지난번에 얘기하지 않았어? 은서의 모델 대회가 끝나면 돌아갈 거라고." 성빈은 당분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와 최은서의 관계는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눈앞에 희망의 새벽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달력 안 봤어?" 박시준이 그에게 상기시켜줬다. "너 매년 부모님과 함께 구정 보냈잖아? 최은서가 참가하는 그 모델 대회가 바로 구정 당일이던데."성빈은 잠시 멍해졌다. "달력을 보지 않은 건 맞아. 그러면 올해는 은서랑 같이 보내면 되겠네 뭐! 그동안 계속 부모님과 같이 보냈는데, 어쩌다 은서랑 같이 보낸다고 뭐라 하진 않으실 거야.""둘이 지금 어디까지 갔어?" 그의 득의양양한 말투에 박시준은 궁금해졌다.성빈은 큰 소리로 웃다가 얼굴의 상처가 아파 바로 멈췄다."최운철 그 새끼가 내 얼굴에 손 댔어. 사람 만나러 나가기도 쪽팔려 죽겠어. 제이그룹 상장에 대해 알아보려고 나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 만날 때도 못 벗고.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알레르기가 있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을 정도야.""심각해?""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잘생긴 얼굴에 금이 가서." 성빈은 수심에 잠겼다. "대회 당일까지 다 나을지 모르겠네. 무대에 올라가 은서한테 꽃을 줄 생각인데."그의 말을 들은 박시준은 이틀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이 세상에 어떤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뭐랬더라? 아무튼 그 종이 딱 한 그루만 남았어. 남은 건 백 년 이상을 산 수나무인데, 암나무가 멸종해
"붓글씨 많이 쓰라고요. 선물해도 되니까요." 진아연에겐 이미 계획이 있었다. "위정 선배가 우리를 내일 선배 집으로 초대했는데, 선물하면 좋을 것 같네요.""아연아, 내 실력에 선물해도 될 수 있겠어? 확실해?""물론이죠! 진짜 서예가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당신이 아마추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박시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선지를 준비했고, 그는 붓과 먹을 준비했다.지성은 보석같이 맑은 눈을 뜨고 옆에서 구경했다."시준 씨, 인터넷에서 대련을 찾아놨는데 괜찮은지 한번 봐요." 그녀는 휴대폰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꽤 괜찮은 것 같은데..."해가 뜨면 강물은 불처럼 붉고, 봄이 오면 강물은 파랗고 초록빛이라는 뜻의 대련이었다.그리고 횡서는 노래하는 새와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이었다."그리고 이것도 좋은 거 같아요." 진아연은 그에게 설명했다. "겨울 눈 속에서 붉은 매화꽃이 피어나고, 푸른 버드나무가 싹을 틔우며 새봄을 맞이한다..."박시준은 날카로운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이건 획이 너무 많아."진아연: "난 당신이 뭐든 다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박시준: "쓸 수는 있지만, 잘 쓰느냐가 문제지."진아연: "그럼 먼저 써봐요. 좋아 보일 수도 있잖아요?""그렇다면 말 들어야지." 박시준은 먹을 갈기 시작했다.진아연은 옆에 서서 즐거워했다. "동작 보니 제법인데요, 아주 서예가 같아요."박시준: "그냥 척하는 거야. 사실 매우 긴장돼."그는 순전히 정조를 수양하기 위해 붓글씨를 썼는데,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선물하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하, 그럼 내가 긴장 풀게 해줄게요." 그녀는 붓과 선지를 집어 들고 먹을 찍어 선지에 '박시준'의 한자를 적었다.그녀는 붓글씨를 써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글씨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고마워.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렸어.""하하하! 나중에 나한테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줘요."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박시준’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선지를 지
"아들아, 먹을 얼굴에 칠하면 안 되지?" 박시준은 자신의 작품이 파괴된 것을 보았으나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지성의 까맣게 된 작은 손과 먹물로 잔뜩 얼룩이 진 옷이며 얼룩덜룩한 작은 얼굴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어디서 먹물을 묻힌 거야?" 진아연은 지성에게 다가가 옷을 벗겼다. "먹물은 어디서 났어? 책상 위에 올라가는 건 보지 못했는데!"지성은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작은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옆에 있던 의자 위에 박시준이 연습할 때 쓰던 먹물 한 병이 있었다."아까 먹을 꺼내면서 잠시 놓아둔 건데 집어넣는 걸 깜빡했네." 박시준이 설명했다. "아들 탓은 아니야.""두둔하기는. 병뚜껑은 어떻게 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진아연은 아들의 옷을 벗긴 후 바로 아들을 안고 목욕시키러 갔다.박시준은 아들이 난장판을 만든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한이도 어렸을 때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성은 확실히 장난꾸러기였다.다음날, 진아연과 박시준은 세 아이를 데리고 위정의 집을 방문했다.진아연은 박시준이 쓴 대련을 꺼내 위정에게 보여주었다."박시준이 썼는데 멋있죠?"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볼만 해."진아연은이 평가를 듣고 약간 당황했다. "그냥 괜찮은 정도인가요? 전 아주 좋은 것 같은데!"위정은 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바라보며 벽에 걸린 서예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걸린 건 어때 보여?"진아연은 벽을 흘끗 본 뒤 바로 감탄했다. "어머나! 획이 거침없이 매끄럽고 기세가 웅장한데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대가가 쓴 것 같네요."위정: "우리 아버지가 쓴 거야.""와! 아버님이 서예가이신 건 몰랐네요!" 진아연은 얼굴을 빨개진 채 자신이 선물한 대련을 되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위정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의 아버지가 서예에서 이렇게 높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위정의 아버지가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위정 선배가 벽에 걸린 서예가 아버님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