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 많이 쓰라고요. 선물해도 되니까요." 진아연에겐 이미 계획이 있었다. "위정 선배가 우리를 내일 선배 집으로 초대했는데, 선물하면 좋을 것 같네요.""아연아, 내 실력에 선물해도 될 수 있겠어? 확실해?""물론이죠! 진짜 서예가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당신이 아마추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박시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선지를 준비했고, 그는 붓과 먹을 준비했다.지성은 보석같이 맑은 눈을 뜨고 옆에서 구경했다."시준 씨, 인터넷에서 대련을 찾아놨는데 괜찮은지 한번 봐요." 그녀는 휴대폰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꽤 괜찮은 것 같은데..."해가 뜨면 강물은 불처럼 붉고, 봄이 오면 강물은 파랗고 초록빛이라는 뜻의 대련이었다.그리고 횡서는 노래하는 새와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이었다."그리고 이것도 좋은 거 같아요." 진아연은 그에게 설명했다. "겨울 눈 속에서 붉은 매화꽃이 피어나고, 푸른 버드나무가 싹을 틔우며 새봄을 맞이한다..."박시준은 날카로운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이건 획이 너무 많아."진아연: "난 당신이 뭐든 다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박시준: "쓸 수는 있지만, 잘 쓰느냐가 문제지."진아연: "그럼 먼저 써봐요. 좋아 보일 수도 있잖아요?""그렇다면 말 들어야지." 박시준은 먹을 갈기 시작했다.진아연은 옆에 서서 즐거워했다. "동작 보니 제법인데요, 아주 서예가 같아요."박시준: "그냥 척하는 거야. 사실 매우 긴장돼."그는 순전히 정조를 수양하기 위해 붓글씨를 썼는데,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선물하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하, 그럼 내가 긴장 풀게 해줄게요." 그녀는 붓과 선지를 집어 들고 먹을 찍어 선지에 '박시준'의 한자를 적었다.그녀는 붓글씨를 써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글씨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고마워.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렸어.""하하하! 나중에 나한테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줘요."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박시준’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선지를 지
"아들아, 먹을 얼굴에 칠하면 안 되지?" 박시준은 자신의 작품이 파괴된 것을 보았으나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지성의 까맣게 된 작은 손과 먹물로 잔뜩 얼룩이 진 옷이며 얼룩덜룩한 작은 얼굴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어디서 먹물을 묻힌 거야?" 진아연은 지성에게 다가가 옷을 벗겼다. "먹물은 어디서 났어? 책상 위에 올라가는 건 보지 못했는데!"지성은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작은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옆에 있던 의자 위에 박시준이 연습할 때 쓰던 먹물 한 병이 있었다."아까 먹을 꺼내면서 잠시 놓아둔 건데 집어넣는 걸 깜빡했네." 박시준이 설명했다. "아들 탓은 아니야.""두둔하기는. 병뚜껑은 어떻게 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진아연은 아들의 옷을 벗긴 후 바로 아들을 안고 목욕시키러 갔다.박시준은 아들이 난장판을 만든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한이도 어렸을 때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성은 확실히 장난꾸러기였다.다음날, 진아연과 박시준은 세 아이를 데리고 위정의 집을 방문했다.진아연은 박시준이 쓴 대련을 꺼내 위정에게 보여주었다."박시준이 썼는데 멋있죠?"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볼만 해."진아연은이 평가를 듣고 약간 당황했다. "그냥 괜찮은 정도인가요? 전 아주 좋은 것 같은데!"위정은 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바라보며 벽에 걸린 서예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걸린 건 어때 보여?"진아연은 벽을 흘끗 본 뒤 바로 감탄했다. "어머나! 획이 거침없이 매끄럽고 기세가 웅장한데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대가가 쓴 것 같네요."위정: "우리 아버지가 쓴 거야.""와! 아버님이 서예가이신 건 몰랐네요!" 진아연은 얼굴을 빨개진 채 자신이 선물한 대련을 되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위정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의 아버지가 서예에서 이렇게 높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위정의 아버지가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위정 선배가 벽에 걸린 서예가 아버님 작
"그럼 위정 씨 집에 걸어놔." 시은은 얼굴을 붉히며 속삭였다. "위정 씨랑 결혼하면 이 집도 제 집이니깐."진아연은 시은을 끌어당겨 소파에 앉혔다. "시은 씨,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시준 씨도 허락했어요. 내년 봄에 둘이 같이 살아도 괜찮다고 했어요.""지금 40kg 야. 위정 씨가 제 키에는 45kg이 딱 좋다고 말했어.""맞아요. 너무 말랐어요. 그렇다고 과식을 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시은은 가만히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연아, 나는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어."진아연: "너무 좋아요! 야외 결혼식은 정말 낭만적일 거예요."두 사람은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위정은 두 여자의 즐거워 보이는 대화를 끊을 수 없었다.아직 결정된 것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마치 결혼식이 곧 시작될 것처럼 흥분하며 이야기했다."한이야, 어색한 거야?" 위정은 한이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걸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고향인데 그럴 이유가 없죠." 한이가 대답했다."그럼 너랑 아빠는...""위정 삼촌, 아버지랑 김영아에 대해서 알고 있죠?""응." 위정은 그가 마음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한이 너는 공부에 집중하면 돼. 어른들 일은 어른들이 해결할 거니깐."한이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박시준이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는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시은 고모랑 결혼했으니 잘 해주세요." 한이가 갑자기 말했다."그럴게.""속상하게 만들지 마세요." 한이는 계속해서 말했다.위정은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모든 것들을 들어줄 수는 없을 거야.""그냥 고모가 말하면 먼저 경청해 주세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말하면 돼요. 싸우지 말고... 비난도 하지 말고요."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는 나중에 아주 좋은 남자가 될 거야."한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저... 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왜?""이유는 없어요. 그냥...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그래. 그건
정서훈이 죽은 뒤, 진아연은 정서훈의 가족과 연락을 취했었다.전화 혹은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했었다.정서훈의 부모님은 굉장히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정서훈의 죽음은 부모에게 아주 큰 충격을 줬지만 그들은 진아연에게 원망의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그런 모습에 진아연은 더욱더 죄책감이 밀려왔다.두 사람이 정서훈의 집에 도착했다. 진아연은 정서훈 어머니의 백발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아주머니, 예전부터 오고 싶었는데... 제 남편이 크게 다쳐서 지금에서야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정서훈 어머니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다."오지 말라 했잖니. 귀찮게...!" 정서훈 어머니는 그들에게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우리 서훈이의 죽음은 그래... 그렇다고 쳐도. 은솔이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타국에서 그렇게 죽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구나."정서훈의 어머니는 이 말을 하고선 눈물을 흘렸다.진아연은 바로 휴지를 꺼내 정서훈 어머니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았다."아주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정서훈과 은솔 씨가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아플 거예요."정서훈 어머니는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은솔이는 친딸이나 다름 없었단다... 항상 우리를 잘 챙겨줬어. 나중에 우리 서훈이랑 결혼을 하면 우리랑 같이 살고 싶다고 했어... 그렇게 착한 아이가... 우리 서훈이 복수를 위해 혼자 그렇게 가다니...!"진아연은 은솔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정서훈 어머니 말을 통해 은솔의 모습이 그려졌다."그만 울게나.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보겠다고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닐 텐데." 정서훈 아버지는 흐느끼는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연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며? 어서 물어봐!"진아연은 바로 말했다. "아주머니, 묻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물어보세요.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정서훈 어머니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서훈이가... 독살된 건... 김형문 그 사람이 했다고 하지 않았니? 대체 김형문이 왜
"정서훈... 우리 아들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들인 게 틀림 없어." 정서훈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연이 너와 경호원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너희들을 원망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단다."진아연은 바로 말했다. "저랑 경호원 빼고... 병원 사람들이랑도 접촉을 했었어요."박시준은 그녀의 말이 끝난 뒤, 말했다. "또... 김영아와도 만났지.""그 말은... 김영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요?" 진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글쎄. 하지만 김영아가 정서훈을 만나러 갔던 적은 있었어.""김영아가 왜... 서훈이를...?" 진아연이 말했다. "설마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나요?""정서훈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어. 그때 정서훈에게 너를 데리고 그곳을 떠나게 만들려고 초대했다고 말했었지."박시준의 말을 듣고 김영아가 정서훈을 죽일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김영아가 정말 정서훈에게 진아연과 같이 떠나라고 요청했다면 정서훈이 거절했다 하더라도 김영아는 정서훈을 더더욱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딱 한 사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긴 하지." 박시준이 말했다. "아연아, 봉민이라는 사람 기억하지? 정서훈은 그의 손에 죽었을 거야. 정서훈의 여자 친구분 역시... 정서훈에게 사용했던 똑같은 독으로 죽었으니깐. 정서훈의 여자 친구는 봉민이 죽였어.""그럼... 그 봉민이라는 사람과 연락할 수 있겠니? 지금 Y국에 있는 거야?" 정서훈 어머니는 크게 동요하며 말했다. "내가... 직접 Y국으로 가서 물어볼게!""아주머니, 진정하세요." 박시준이 말했다. "비록 김형문이 죽어 세력이 많이 약해졌긴 하지만 그 봉민이라는 사람... 아주 악질입니다. 직접 가신다면 위험할 거예요.""하... 그럼 너희들이 봉민이라는 사람과 연락을 해보겠니? 복수보다는... 그저 왜 아들이 이렇게 개죽음을 당했어야 했는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그것만 알면 돼. 만약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우리 역시 더이상 살고 싶지 않구나...!"
자료가 너무 많아 정서훈 집에서 다 읽을 수가 없을 거 같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아연아, 성빈이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하는데." 박시준이 전화를 끊은 뒤, 말했다. "만약 너무 피곤하면 거절할게.""은서 씨와 같이요?" 진아연은 조금 피곤했지만 최은서를 볼 수 있다면 갈 의향이었다.박시준은 바로 성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최은서랑 같이 있어?""아직 퇴근 안 했는데? 요즘 맨날 9시에 들어와. 설마... 나만 있다고 저녁 식사 거절하는 건 아니지?" 성빈이 말했다. "만약 아연 씨가 피곤하면 너 혼자라도 나와! 이렇게 오랫동안 안 봤는데. 너도 내가 안 보고 싶은 거 아니지?"박시준은 약간 닭살이 돋았다. "네가 이쪽으로 온다면 뭐 생각해 볼게.""야... 내가 가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 알고 있지?" 성빈은 말했다. "나 지금 환자라고!""얼굴 상처 별로 심각하지 않다며?" 박시준은 비웃으며 말했다. "최운철이 그렇게 심하게 때렸는데 어떻게 견뎠어?"성빈은 차가운 그의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갈게.""만약 너 혼자 오는 거면 아내는 안 가겠데." 박시준은 그가 서운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많이 피곤하다고 했거든.""하! 알겠다고! 최은서의 손톱만큼도 안 중요하다는 거 알겠다고! 너랑 술마실 거야." 성빈은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박시준은 진아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린 문서를 가져갔다."그만 읽어. 내일 봐.""네? 그냥 심심한데...""아까 시원찮게 먹던데. 성빈이랑 같이 밥 먹으러 나가는 건 어때?" 박시준이 말했다. "성빈이가 이쪽으로 오기로 했어.""시준 씨만 가서 먹어요. 전 별로 배고프지 않아요!"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마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그럼 돌아올 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올게."정서훈의 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정서훈 어머니는 테이블 가득 음식을 차렸지만 모두
"네. 일이 좀 있어서요.""알겠어요. 그럼 일 끝나면 만나요.""네. 그럼 집 가서 푹 쉬어요. 성빈 씨는 기다리지 말고요. 당신 둘째 오빠랑 오늘 밤새 술 마실 거예요."최은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 둘째 오빠가 아연 씨 앞에서 꼼짝도 못 하네요!""그런 것보다... 존중해 주는 거죠. 술 냄새를 풍기고 돌아오면 화를 낼 거라는 걸 알거든요.""아연 씨, 둘째 오빠를 아주 참 잘 가르쳤어요.""저도 늦게 들어올 때, 그에게 말하는 걸요." 그녀는 씻고 나온 상태라 침대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졸음이 몰려왔다.전화 통화를 마친 뒤, 그녀는 불도 끄지 않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레스토랑.박시준은 성빈의 얼굴에 있는 마스크를 벗겼다.얼굴의 멍은 아직 그대로였다."다 마실 수 있겠어?" 박시준이 물었다."안 아파. 항염증제도 안 먹어도 되고. 그러니 술 마실 수 있어." 성빈은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네 다리도 다 나았나보네. 진아연 씨가 이렇게 너보고 나오라고 허락하는 걸 보니.""응. 술 마시겠다고 말했는 걸.""허락했어?""응.""에? 허락했다고? 난 네가 몰래 나와 마시는 줄 알았는데!" 성빈은 그와 잔을 부딪혔다."내가 몰래 술 마실 사람이냐? 그리고 내 와이프가 바보도 아니고. 속일 걸 속여라.""하하하! 예전에 고독에 쩔어 있으면서 비웃던 사람이 누구더라... 진아연 씨한테 붙잡혀 사네! 봐봐, 난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마실 수 있지. 누구한테 보고할 필요도 없고." 성빈이 놀리기 시작했다.박시준은 천천히 와인을 마셨다. "글쎄. 내가 볼 때는 아무도 널 신경 안 쓰는 게 아니고?""하... 아주 붙잡혀 사는 주제에. 허세는?""당연하지. 과음하고 집에 돌아가면 돌봐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거든."성빈: "..."와인 두 잔을 마신 뒤, 두 사람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시준아, 예전에는 내가 많이 어리석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할 수 없지만 너한테만큼은..."박시준: "됐
박시준은 휴대폰 화면을 끄며 말했다. "아연이한테는 말하지마.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깐.""뭘 기다리는 건데?" 성빈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아이가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누굴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박시준은 계속 해서 말했다. "나와 김영아의 아이라면... 라엘이와 닮을 수 없지.""그건 그렇네! 라엘이는 진아연 씨랑 완전 붕어빵이니깐! 누가 봐도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지. 만약 너랑 김영아 씨 사이의 아이라면 널 닮거나, 김영아 씨를 닮아야지... 진아연 씨를 닮을 수는 없어!" 성빈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흥분하며 말했다."아연이한테는 말하지마. 아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박시준은 말했다. "아연이랑 약속했어. 다시는 Y국에 가지 않겠다고. 그러니 김영아에게 절대로 먼저 연락하는 일 없을 거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로 김영아와 그 아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거야." 박시준은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라엘이를 닮은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매우 괴로워졌다."걱정마. 절대 말하지 않을게." 성빈은 와인병을 치운 뒤, 물 한 잔을 따랐다. "술맛이 확 떨어졌어.""왜?""내가 취해버리면 누가 널 위로해 주냐?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고?" 성빈은 힘없이 말했다. "다시 말해서 네가 술에 취하면 내가 진아연에게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해야할 거 아니야."박시준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고 있어. 오늘 오자마자 정서훈 집에 갔거든.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않았어.""내가 그녀라도 죄책감을 느낄 거야.""정서훈 부모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어.""당연히 그녀를 비난할 수 없지. 정서훈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으니깐!" 성빈은 그리고 아이에 대한 화제로 돌리며 말했다. "근데 Y국에 앞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럼 김영아 아이는 언제 보려고?"박시준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를 흘끗 보았다."글쎄. 아무튼 난 가지 않을 거야. 가면 진아연이 화를 낼 테니깐."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