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연의 차분했던 마음이 일시에 차갑게 식었다."그는 나를 두려워해." 박시준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박한과 함께 가는 한이 있어도, 내 주변에 있길 원하지 않은 거야.""시준 씨, 이 얘긴 꺼내지 말아요." 아연은 마음이 한순간 괴로워졌다. "우리 오늘 웨딩 촬영해요. 즐겁지 않은 이야기는 꺼내지 말고요."그녀는 생각했었다. 최운석이 박한 곁으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최경규 곁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최운석은 박한의 친동생이다. 어찌 됐든 박한은 자기 친동생을 나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 촬영팀이 도착했다.여소정 역시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소정의 도움으로, 아연은 세 가지의 촬영 테마를 선택했다.오늘은 날씨가 좋아, 야외 촬영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원래는 야외 촬영 하나와, 실내 촬영 둘만 찍을 예정이었지만, 야외에서 찍은 결과물들이 더 자연스럽고 좋아 야외 촬영을 한 세트 더 추가하기로 했다.어느새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스타팰리스 별장.저녁 식사."우리 먼저 먹자! 너희 어머니께서 오늘 웨딩 촬영 때문에 일찍 오기 힘드시대." 마이크가 진아연에게 전화를 한 후, 두 아이에게 말했다.라엘이가 자그마한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왜 주말에 찍지 않은 거야? 나도 촬영하는 거 보고 싶단 말이야!"마이크는 크게 웃음이 터졌다. "웨딩 촬영을 더 미루다간, 결혼식 날까지 일정을 맞추기 힘들 거야. 너희 부모님이 보기엔 참 똑똑해 보이셔도, 꽤 덤벙대신단다."라엘: "우리 부모님이 똑똑하지 않은 줄 알면서, 왜 친구를 해요? 그럼, 마이크도 똑똑하지 않은 거 아니에요?"마이크가 얼굴이 굳히고 말했다. "라엘아, 너희 오빠는 곧 해외에 나갈 거야. 그때가 되면 너랑 놀아줄 사람은 나뿐일 텐데, 예의 좀 차리지 그래?""흥! 동생이랑 놀면 되거든요!" 라엘이가 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난 오빠가 해외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한이: "우리 어젯밤에 얘기했잖아. 무르기
그녀는 한이가 의도적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마음이 복잡해진 그녀는 박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준 씨, 한이가 유학을 가겠대요. 내 곁을 떠나겠대요."시준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한이는 이미 마음을 정했대요. 마이크 말로는, 늦어도 내일모레에는 떠난다더군요. 한이는 이 집에서 하루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은가 봐요.""기왕 본인이 스스로 가겠다고 하니, 그냥 보내줘." 박시준이 체념한 듯 말했다. "울지 마. 이제 어린애도 아닌걸. 어린애처럼 대하면 안 돼.""하지만 나한텐 아직 어린애인걸요. 시준 씨, 어쩐지 난, 한이를 이대로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그렇지 않아. 한이는 당신 아들인걸. 절대로 한이를 잃을 일은 없어." 시준이 아연을 위로했다. "한이는 그저 나와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한이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때가 되면 한이를 보러 가면 되지."그의 깊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녀는 점차 진정되었다."아연아, 살면서 모든 일이 다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 한이가 무탈하기만 하다면, 우린 더 바랄 게 없지." 그는 계속해서 아연을 위로했다."맞아요.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한이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요. 갈 때 가더라도,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보낼 순 없죠.""그럼 일찍 쉬도록 해.""네. 당신은 지금 뭐 하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책 읽는 중이야.""무슨 책이요?" 그녀는 그의 곁에 누워 그를 안고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전쟁과 관련된 책이야.""... 너무 늦게까지 보지 말아요. 내일 컨디션 생각도 해야죠.""알겠어. 잘 자."전화를 끊은 후, 진아연은 눈을 뜬 채 어두컴컴한 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박시준은 모든 일이 다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그녀
그는 한 손으로는 라엘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아연의 손을 꼭 잡았다.그녀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공항 로비를 나섰다.공항 관제 센터.박시준은 아연과 라엘이를 데리고 들어온 후, 비행기의 활주로가 잘 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마주했다."30분 후면 한이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는 아연을 창가로 데려갔다. "어젯밤에 마이크와 대화를 나눴어.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한이가 지금 해외로 나가 공부를 하는 게, 어쩌면 한이한테 훨씬 좋은 선택일 수 있어."진아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예선전에서 한이는 동이보다 고작 3점밖에 높지 않았어. 그래서 동이는 선생님에게 점수의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거야. 만약 한이가 동이보다 30점이 더 높았다면, 동이가 이의를 제기했었을까? 한이의 실력은 아직 조금 부족해..."그의 말을 듣고, 진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은 당신 아들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거 아니에요? 한이는 동이보다 3살이 어려요. 그 말인즉, 동이는 한이보다 3년을 더 배웠단 뜻이죠. 그런데도 한이는 동이보다 3점이 더 높았어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라고요.""하지만 동이가 이의를 제기한 순간 한이는 곧바로 무너졌을 거야." 박시준은 아연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한이는 자기의 실력을 키우던지, 자기의 멘탈을 잘 조절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지금 한이는 본인의 실력을 키우는 쪽을 결정했고, 우리는 한이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진아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지금 한이가 자기의 실력을 확실하게 키워둬야만,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어." 시준이 말을 이었다. "난 내 아들이 앞으로 나를 능가하게 되기를 바라. 그래야만 자기 자신과 가족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의 짧은 이별 정도는 견딜 수 있어."진아연은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
그녀는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 후, 그를 밀어냈다. "얼른 전화받아요, 난 옷 갈아입고 올게요."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걸려 온 전화를 힐끗 보고는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박한이 오늘 최운석을 데리고 DNA 검사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수화기 너머 부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생각에 DNA 검사를 하게 한 동기가 탐탁지 않습니다. 최운석이 본인의 친동생임이 확실한 걸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대표님 곁에서 떨어뜨리더니, DNA 검사까지 받게 하다니요."박시준은 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녀는 거울을 마주한 채, 등 뒤의 허리 끈을 풀고 있었다."계속 지켜보다가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보고해." 시준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누구예요?" 그가 전화를 끊는 것을 본 아연이 그에게 물었다."박한이 최운석을 데리고 DNA 검사를 하러 갔대. 당신, 최운석이 걱정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사람을 시켜 그들을 지켜보게 했거든." 그는 성큼성큼 그녀의 뒤로 다가와 허리 끈을 풀어주었다."아, 박한이 당신한테 뭘 요구하진 않았고요?" 그녀는 내심 불안했다."아직은 아니야.""그가 당신에게 돈을 요구하면, 줄 거예요?" 그녀가 무심코 그에게 물었다. "이전에 낡은 집을 팔아 생긴 돈은, 박우진이 머지않아 다 탕진해버릴 거예요.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분명 당신을 찾아와 돈을 요구하겠죠.""그들이 우리를 찾아오면, 그때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지금부터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빈대 같은 사람들! 최경규도 아직 떠나지 않았죠?""아연아, 그들 때문에 기분 상해 할 필요 없어. 그들이 나에게 돈을 요구한다 해도, 나도 그냥 내주진 않을 거야." 그는 아연의 웨딩드레스를 벗겨준 후, 옆에서 잠옷을 꺼내어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며 말했다. "오늘은 집에서 쉬어!""그러려고요, 집에서 라엘이와 함께 있어 줘야겠어요. 한이가 떠났으니, 라엘이도 마음이
스타팰리스 별장.이모님이 우편물 꾸러미 하나를 진아연에게 가져왔다."아연 씨, 제가 열어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열어 보시겠어요?" 이모님이 물었다.아연은 우편물을 받아 들고 발신인을 확인했다.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작은 나라에서 온 것이었다.그녀는 곧바로 포장을 뜯어, 안에서 엽서 한 장을 꺼냈다.엽서를 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위정의 얼굴이 떠올랐다."위정 씨가 보낸 거예요?" 이모님이 물었다. "지난번과 주소가 같은가요?"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주소가 아니네요. 시준 씨가 결혼식 후에, 지난번에 엽서를 보냈던 나라에 가 볼 계획이었거든요. 지금은 괜찮아요. 나라가 또 바뀌었거든요."이모님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계 여행을 하고 싶으시대요?"아연은 엽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으로 된 엽서에는, 한 쌍의 남녀 캐릭터가 결혼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예전엔 그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줄 몰랐어요. "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이번 일 때문에 집에도 돌아가지 않을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그러니까요! 위정 씨 부모님도 위정 씨 아들 한 분뿐이신데,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으시니, 부모님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겠어요." 이모님이 말했다. "지금 위정 씨랑은 전혀 연락되지 않으시는 거예요?""네 안되요. 번호도 바꾼거 같아요.""무정도 하시지. 아이의 생일도 기억하고 있고, 두 분 결혼식도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위정 씨가 국내 뉴스에 줄곧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정말 모순적이네요."아연이 엽서를 내려놓았다. "그가 이후로도 내버려 둘 수 있는지 보자고요.""마이크 씨는 정오에 도착하신대요?""글쎄요." 아연은 시간을 흘끗 확인했다. "제가 지금 공항으로 데리러 가볼게요.""아직 시간이 일러요. 운전기사님께 부탁드려도 되고요. 괜히 공항에서 사람들 눈에 띄면 곤란하실 거예요." 이모님이 말했다. "이제 유명인이시잖아요."진아연:
"그럼, 할 수 있지! 중요한 건, 너희 둘이 달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거야! 이전에 너희가 싸운 게, 내가 바라서 그런 거겠어?" 마이크가 비웃었다. "그나저나, 한이는 걱정할 것 없어. 이미 거기서 어느 정도 적응했어.""한이가 너한테 개인적으로 귀띔한 건 없고?" 아연이 물었다.마이크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엷게 웃었다. "네 아들이 어디 다른 사람한테 귀띔 같은 걸 할 애니? 한이는 네 앞에서나 몇 마디 말하지, 다른 사람들 앞에선 너무 말이 없어. 새 학교에서 첫날, 선생님이 나한테 한이가 말을 못 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니까."진아연이 깜짝 놀라 말했다. "한이가 잘 적응했다며?!""적응했다니까!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다 한이와 잘 어울리고, 한이를 괴롭히게 두지 않겠다고 보장했어. 이게 잘 적응한 거 아니면 뭐겠어?" 마이크가 크게 웃었다.아연이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한이를 해외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한이는 이미 해외에 나갔고, 이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시준 씨가 결혼식이 끝난 후에 한이를 찾아가겠다고 하니, 너도 가서 만나 봐. 네 아들이 마르긴커녕 오히려 더 자랐을걸.""그게 최고지. 한이가 거기서 잘 지내지 못하면 곧바로 집으로 데려올 거야.""눈 찌푸리지 마. 내일 새신부가 되잖아." 마이크가 그녀를 훑어보았다. "소감이 어때?"진아연은 2초간 생각했다. "내 소감은, 결혼식은 번거로운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거야. 시준 씨는 그저께부터 호스트라도 된 것 같아. 매일 같이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어.""지운 씨한테 들었어. 시준 씨 말고도 성빈 씨도 너무 바쁘다던데. 그리고 지운 씨 말로는 성준 씨 대학 동창들 중에 미인이 적지 않대. 걱정 안 돼?"아연은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르며 여유롭게 말했다. "시준 씨 회사에 가본 적 없어? 시준 씨 회사에는 젊고 예쁜 여직원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아. 난 갈 때마다 미모랑 연관 된
"아연이는 요리도 잘해. 내가 먹고 싶은 건 뭐든 다 만들어 주지. 나에게 정말 잘해줘.""그리고 스웨터도 짤 줄 알아. 그녀가 짠 스웨터는 바깥의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더 나아.""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녀는 농담을 하면서 나를 웃게 해줘.""내가 기분이 좋을 땐 나를 데리고 나가. 너희들도 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한 사람인지. 하지만 한 번도 나를 내치지 않았어.""내가 아플 때, 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살뜰히 나를 돌봐주었어. 아연이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좋은 아내야."...박시준은 많이 취한 듯, 혼자서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연은 영문도 모른 채,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지 지금껏 알지 못했다.이것이 그가 꿈꾸는 아내의 모습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시준 씨,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그녀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스 한 잔을 따라주었다.그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오히려 머리를 높이 들고선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연아, 왜 나랑 결혼해?"진아연: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그의 생각을 알아챌 수 있었다.그는 방금 자신이 그녀를 칭찬한 것처럼, 그녀 역시 그를 칭찬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아연 씨, 왜 시준이랑 결혼하는지 말해줘요! 이렇게 훌륭한 분이시니, 분명 쫓아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누군가 농담을 했다.아연은 난감한 듯 목을 가다듬고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저는 속물이에요. 제가 결혼하려는 이유는, 시준 씨가 잘생기고 몸매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가 돈이 많기 때문이죠. 맞아요, 제대로 들으셨어요. 전 시준씨의 돈을 좋아해요."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시준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계속하도록 격려했다."그는 자기가 다 맞고,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남자예요. 그래서 자주 저를 화나게 하죠. 매번 저를 화나게 한 후엔 저에게 값비싼 선물을 줘요." 아연이 폭
"시준 씨, 난 당신이 밖에서 나에 대해 한 번지르르한 말 속의 사람처럼 될 수 없어요." 아연이 침대 밑에 앉았다. "난 스웨터 짜는 방법조차 모른다고요.""그들은 너를 잘 모르잖아. 그래서 내가 알려주려던 거야. 너가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란걸." 그는 종이에 모든 비밀번호를 적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보, 확인해보시죠."아연은 그의 해명을 받아들였다.그녀는 그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던 중, 무언가를 발견했다. "당신 SNS 비밀번호 앞자리의 JAY가 혹시 내 이니셜이에요?""응.""금고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고요?" 그녀는 또 다른 포인트를 발견했다."응. 은행 카드 비밀번호는 라엘이 생일이야." 그가 먼저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내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여자들이니까."그녀는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아들은 중요하지 않고요?""상대적으로 딱히?" 그는 침대 옆에 앉았다. "당신과 딸이 나랑 더 마음이 잘 맞지. 아들 녀석은 나한테 화만 낼 줄 아는데 말이야.""지성이는 당신한테 화낸 적 없어요. 한이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아들은 다 별로라고 생각하지 말아요.""아들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아냐. 그저 내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앞가림을 스스로 했으면 하는 거지." 그는 창가로 걸어가 속 커튼을 쳤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나도 기꺼이 도와줄 테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야."아연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막 성인이 되었을 때는, 말만 성인이지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을 텐데. 그래도 성인이라는 이유로 내버려 둘 거예요?""아이들이 나에게 도움을 구하면 난 도와줄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먼저 도와줄 생각은 없어." 그는 외투를 벗어 한쪽에 건 후, 그녀 곁에 앉았다. "난 우리 아들이 박우진 같은 망나니가 되지 않길 바래."아연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모든 재벌 2세가 박우진 같진 않아요. 물론, 당신의 결정을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