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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작가: 민설

0001 화

작가: 민설
“지은아, 지현이가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혼자 걷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래서 네가 신부 들러리가 되어주고 지현이 부축 좀 해줄 수 있을까? 너도 지현이 상황 잘 알잖아. 우리가 앞으로도 많이 함께 할 테니까, 우선 지현이 소원 하나는 이뤄줘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더 멋진 결혼식 준비해 줄게.”

회색 가죽 소파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무심한 표정으로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은, 바로 서지은과 7년 동안 사귀며 함께 자수성가한 남자친구, 강민호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틀 뒤에 치러질 화려한 결혼식이 민호의 여자친구인 지은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의 소꿉친구인 지현을 위한 결혼식이라는 것이었다.

한 달 전, 백지현이 폐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하며 민호를 찾아왔다. 마지막 소원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자, 민호는 주저 없이 그 부탁을 들어줬다.

사실, 지은은 민호가 어렸을 때 지현을 짝사랑했던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민호가 이 부탁을 바로 허락한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동안 지은이 정성 들여 준비해온 모든 것들은 다른 여자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지현이 시한부라는 이유로 지은은 거절 한마디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거절을 한다면, 당연히 옹졸한 사람으로 비칠 거고, 결국 죽을 사람에게 질투하는 꼴이 되어버릴 테니까.

어차피 청첩장은 이미 다 뿌렸고, 예식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틀 뒤면 예비 신부가 갑자기 들러리가 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A시 사람들의 입에 오를 게 뻔했다.

지은은 괴로운 마음이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입술을 깨물며 겨우 침착을 유지했다.

“이 결혼식은 내가 8개월 넘게 준비했고, 웨딩드레스도 전부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거야. 게다가 함께 맞출 보석은 우리 집 가보인데, 그걸 다 다른 여자에게 넘겨주고 무슨 수로 보상해 준다는 거야?”

“지금 나랑 싸우려는 거야?”

민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유는 이미 다 설명했잖아. 넌 항상 이해심 많았으면서, 왜 이런 일에는 이렇게 속이 좁은 거야?”

‘내가 속이 좁다고?’

민호도 지은의 불쾌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담배를 비벼 끄고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손을 잡았다.

“지은아, 너도 알잖아. 지현이는 곧 세상을 떠날 거야. 그러니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좀 해주자.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고 좀 넘어가주면 안 돼?”

민호는 평소 자기중심적이고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모습은 지은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대체 뭘 도와주길 바라는 걸까?’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

‘그럼 내가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건가?’

회사가 자금 위기를 겪을 때마다 지은은 조용히 대회에 참여해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을 팔아 PX그룹의 자금을 채웠다.

민호가 모르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양면 자수 공예 명장이 사실 지은이라는 것이다.

또, PX그룹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주문을 받게 되었는지, 그것도 지은의 실력을 알아본 덕분이다.

게다가 지금 A시의 여러 대기업들, 특히 자수 공예 업계의 선두주자인 CY그룹마저 지은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지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민호가 자기보다 뛰어난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고여서 지은의 피부를 스쳤다.

7년간의 수고와 고난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 내가 신부 들러리를 서 줄게.”

지은은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한마디는 그녀에게 남은 모든 힘을 앗아갔다.

그 말을 듣자 민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지은이가 제일 착하네.”

...

CY그룹 해외 지사.

“주 대표님, 확인했습니다.”

야근 중이던 주성재는 힐끗 눈을 들었다.

옆에 있던 비서 이무진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국제자수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자수 공예 명장이 바로 PX그룹의 서 대표님이었습니다.”

주성재가 펜을 들고 있던 손이 멈췄다.

“서지은?”

“네, 그리고 작년 경매에서 수십억에 낙찰된 다섯 개의 자수 작품은 물론,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들도 전부 서 대표님이 만드신 거라고 합니다. 다만, 사촌동생 하미정의 명의로 대회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즉,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하미정이 사실 서지은이라는 얘기였다.

이 비서는 깊은 감탄을 하며 계속 말했다.

“우리나라에 이 정도 수준을 가지고 계신 분은 서 대표님밖에 없습니다.”

주성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손짓을 했다.

“은희한테 연락해서 식사 자리를 마련하라고 해.”

이 비서는 서류를 쥐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은 약속 잡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서 대표님께서 모레 결혼하시겠습니다.”

...

이틀 후.

PX그룹의 두 대표의 결혼식에 A시의 유명한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객을 보냈다.

예식장에는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손님들로 가득 찼다.

예식장 밖.

오늘의 신부가 된 백지현은 원래 단출할 외모지만, 지은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씨 가문의 보석들을 몸에 두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났다.

“지은 씨, 이렇게 제 소원을 이루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지현은 화장을 해서 아픈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드레스를 만지작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근데 이 허리 라인이 좀 크네요. 제 몸에 맞게 조금 더 수선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요. 원래 제 사이즈에 맞춰 만든 옷이라.”

지은은 지현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 이대로 폭발해 지현이 입은 옷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제가 입고 있잖아요.”

지현은 승자처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태도는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지은은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 말라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이를 악물다가 그 손을 조심스럽레 받았다.

예식장 문이 천천히 열리고, 음악이 울리며 두 여자는 안으로 걸어갔다.

하객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쏠렸고, 여기저기서 혼란스러운 눈빛이 오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신부가 바뀐 것도 모자라, 원래 신부가 들러리가 되다니?!”

“저 여자는 또 누구지?”

지은은 사람들이 수군거릴 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민호가 무대 위에서 흥분된 눈빛으로 지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첫사랑과 결혼하는 게 소원이었을지도 몰라.’

지은의 가슴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난도질당하듯 아팠다. 그녀는 민호가 이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소원을 들어주는 거라면서 뭘 그렇게 흥분한 거야?’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지은이 직접 디자인한 정장을 입은 민호의 모습은 7년 전으로 돌아갔다.

민호의 집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예전의 지현 집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강씨 가문도 대대로 장사를 했지만, 민호의 할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며 가문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말았다.

결국 민호는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지은이 스무 살 때 그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잘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간신히 첫 집을 장만하던 그 순간부터, 민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지은은 몰래 대회에 나가 상금을 타고, 그 상금으로 민호에게 제대로 된 정장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해야 다른 회사와 협상할 때 체면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은의 손은 수없이 바늘에 찔렸다. 손가락이 찢어지고 아물고, 또 찢어지기를 반복한 탓에 이제는 그 상처조차 무감각해졌다.

고생 끝에 이제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호의 앞에 다다르자,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심으로 원하는 걸 얻은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어느 손을 내밀지 망설이다가 결국 왼손을 내밀었다.

한때 지은이 그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결혼식 때, 날 맞이할 땐 왼손을 내밀어 줘. 그게 더 멋져 보일 거야.”

하지만 그 왼손이, 다른 여자의 손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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