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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 화

작가: 민설
지은이 이토록 날카로운 말들로 자신에게 따지고 들 줄은 몰랐던 민호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2층 거실로 데려갔다.

“이거 놔!”

지은은 민호의 손을 뿌리쳤다.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나한테 계속 이런 식으로 대들 셈이야?”

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지은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덕분이라는 거 모르는 거야?”

그는 지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지은이 몸부림치며 아파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지은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모두 네 덕분이라고?”

‘네가 도대체 뭘 도와줬는데?’

지은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게다가 집밥을 먹고 싶다는 민호의 한마디에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서 회사에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이 집 마련할 때 내가 돈을 절반 부담했잖아. PX그룹 지분도 내가 아니었다면 네 보유분이 25%가 될 것 같아? 게다가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내게서 우리 회사 주식을 사려고 했는데, 난 전부 널 위해 거절했어. 그런데 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속 이런 식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거야?”

민호의 오만한 말에 지은은 어이가 없었다. 곧 손목에 전해지는 통증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민호, 이거 놔.”

“안 놓으면 어쩔 건데?”

민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앞으로 다신 나한테 대들지 마. 네가 엄마와 민영이한테 대드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얌전하게 굴어.”

“그리고 저 낡은 천 조각들은 다 가져다 버려. 괜히 일하는 데 영향이나 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아주 무심하게 마치 낡은 천 조각을 내던지듯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낡은 천 조각?’

지은은 그의 건방진 태도에 치를 떨며 말을 내뱉었다.

“그 낡은 천 조각들이 PX그룹 먹여 살린 건데, 어떻게 이걸 무시할 수 있어?”

민호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지은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온 걸 알아차리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나 민호는 오히려 비웃듯이 말했다.

“서지은, 네가 자수 좀 잘하는 건 인정해. 하지만 착각이 좀 지나친 것 같네. 네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자수 공예 명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헛된 꿈을 꾸기 전에, 차라리 연습 좀 더 하고 실력이나 좀 다져.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언제 유명해질 수 있겠어?”

민호는 능숙하게 지은을 깎아내리는 말을 꺼냈다. 지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만약 내가 정말 이름을 날릴 날이 온다면, 그때 사과할 거야?”

‘사과?’

민호는 절대 사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과한다 한들, 형식에 그칠 것이다.

그는 자기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호는 지은의 턱을 잡아 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넌 절대 유명해질 리가 없어. 재능 있는 자수 장인들은, 네 나이쯤에 벌써 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고 유명해졌을 거야. 네 실력은 결국 지금 딱 그 정도라는 얘기지.”

민호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않고, 그녀를 또 깎아내렸다.

지은은 찢어질 듯한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물었다.

“넌 왜 한 번도 날 응원해 주지 않는 건데? 왜 늘 내 자존심을 짓밟는 거야? 내가 그렇게 못마땅하다면서, 왜 헤어지지 않는 건데?”

“왜 점점 유치해지는 거야? 칭찬하는 말은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 뿐이야. 내가 이러는 건 모두 널 위한 것이라고.”

지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찢어진 자수들을 움켜쥐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

“민호야, 지은 씨가 또 밖으로 나갔어?”

지현은 줄곧 그들의 상황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지은이 방금 찢어진 천 조각들을 안고 나가자, 민호는 기분이 잔뜩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버려둬. 가봤자 어딜 가겠어? 결국 돌아올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쉬어.”

지현은 지금 민호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려웠기에 그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

PX그룹.

지은은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찢어진 자수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강씨 집안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과 정성이 깃든 작품들을, 쓰레기 취급하며 찢어버렸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서러움이 들자 그동안 참았던 지은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이 흘러 작품에 떨어질까 봐 그녀가 몸을 뒤로 빼자, 눈물 한 방울이 똑 소리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지현이나 민영의 행동에 솔직히 화가 나긴 해도, 지은이는 슬프지 않았다.

정작 그녀를 아프게 만든 건 민호의 태도였다.

민호는 늘 남에겐 친절하고 매너 있는 척하면서, 정작 지은에게는 따뜻한 응원 한마디 해준 적이 없었다.

과거에 지은은 회사에 도움 주고자 직접 만든 자수를 대회에 제출해 겨울 대회의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민호가 기뻐할 줄 알았으나, 그는 우쭐거리지 말라며 운으로 1등을 한 거라고 지은의 성취를 깎아내렸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지은에게 민호는 애인이라기보다 차라리 직장 상사에 가까웠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민호의 마음 하나뿐이었다

지은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 바늘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

그녀는 손에 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몸을 뒤로 해서 의자에 잠시 기댔다.

지은은 사무실 책상에 이마를 댄 채, 흐르는 눈물을 감췄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오늘 하루가 그만큼 고달팠다.

...

새벽 3시 반.

지은은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민호가 걸어온 전화였다.

그는 30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지은은 민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일어나 세수를 한 뒤, 불을 켜고 다시 자수를 시작했다.

CY그룹과 약속한 작품이 마감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새롭게 만들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망가진 작품을 고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물론 민호가 걸어온 전화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 지은은 계속 PX그룹의 지사 사무실에서 지냈다.

민호는 본사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어 서로 굳이 찾는 경우가 아니면 마주칠 일은 없었다.

...

아침이 밝자, 지은은 바늘을 놓고 어깨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서 대표님?”

안유민이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은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커피 한 잔 부탁해.”

“네, 바로 갖다 드릴게요.”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린 지은은 계속 업무를 이어 갔다. 그리고 쉬는 틈마다 자수 작품을 손보았다.

지은은 벌써 나흘째 민호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호는 그동안 카톡으로 온갖 메시지를 보냈다.

[감히 내 전화를 안 받아?]

[이제 제멋대로 할 생각인 거야?]

[계속 안 받으면, 나도 앞으로 네 전화 안 받을 거야.]

죄책감이나 미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다. 지은은 답장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곧 안유민이 흥분된 표정으로 달려왔다.

“서 대표님, 전에 대회에 제출했던 자수 작품의 결과가 나왔어요! 국제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수품도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 종류가 적어도 세 가지가 넘는다.

PX그룹은 아직 대외적 인지도가 낮아, 지은은 이 기회를 통해 회사의 명성을 키우고 싶었다. CY그룹을 따라잡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기도 했다.

국제 전시관에 작품이 전시된다는 건, PX그룹에 꾸준한 홍보 효과를 가져다줄 엄청난 좋은 소식이기도 했다.

지은은 기쁜 마음에 얼른 민호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 전화했지만, 이번에는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강 대표 어디 있는지 알아?”

“오늘 본사 직원들이 단체 건강검진 하는 날이라 병원에 있다고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지은은 차 키를 챙겨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

병원에 도착해 본사 직원들에게 물으니, 민호가 2층 휴게실에 있다고 했다.

지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민호야, PX그룹 자수 작품이 국제전시관에...”

짝!

그 순간, 그녀의 왼쪽 뺨이 순식간에 얼얼해졌다.

뜬금없는 따귀가 지은의 기쁜 마음을 무너뜨렸다.

김영애가 증오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수 없는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 우리 민호가 교통사고를 당한 게 그렇게 기쁜가 봐?”

‘교통사고?’

지은은 곧 병상에 앉아있는 민호를 발견했다.

지현은 민호의 곁에 앉아 팔 상처를 소독해주고 있었다.

“서지은, 역시 우리 집이랑 안 맞아! 우리 오빠가 널 찾으러 지사에 가지 않았으면 이렇게 다쳤을 리가 없잖아!”

민영은 비난하듯이 말했다.

“지은 씨가 며칠 동안 연락을 안 받아서 민호가 걱정돼서 뛰쳐나간 거예요. 정말 민호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철없이 굴진 않았겠죠. 이번엔 좀 도가 지나친 것 같아요.”

지현도 곁에서 말을 보태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내 잘못이라는 거야?’

강씨 집안 사람들은 결국 모든 불행의 원인을 또다시 지은에게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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