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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화

Author: 민설
지은은 망가진 자수 작품을 움켜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허락도 없이 내 물건을 망가뜨려 놓고, 지금 날 탓하고 있는 거예요?”

“뭘 그렇게 따지고 난리야? 그깟 천 쪼가리 가지고.”

민영은 김영애를 믿고 계속 몰아붙였다.

“우리 오빠 회사에 자수 장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는 쉽게 다시 수놓을 수 있다고! 어쩌면 이렇게 쪼잔할 수 있는 거지?”

바로 그때, 지현이 한마디 거들었다.

“지은 씨, 화내지 마요. 저 때문에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쓸모없는 것들 때문에 이모에게 화 낼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대신 배상해 드릴게요. 여섯 작품에 200만 원이면 충분하겠죠?”

“돈 주지 마!”

김영애가 황급히 지현을 막았다.

“그딴 허접한 물건들이 어딜 봐서 200만 원이나 되겠어!”

“여섯 개?”

지은은 곧장 상자 안을 뒤졌다.

마무리 직전이던 다섯 개의 자수 작품이 죄다 칼자국으로 망가져 있었다.

지현은 쭈그려 앉아 싱글벙글 웃었다.

“저는 안 쓰는 것들인 줄 알고 조금 잘라 놨어요. 도안이 예뻐서 꽃병에 장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지은 씨가 자수할 줄 아니까, 제가 돈을 드릴 테니 다시 수놓으면 되잖아요?”

지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섰고,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 꺼져.”

“뭐라고? 너 지금...”

김영애가 욕설을 뱉으려 했다.

“모두 꺼지라고!”

지은이 크게 화를 내자, 김영애도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야?”

민호가 서재에서 나와 소란스러운 광경을 봤다.

바닥에는 찢어진 자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지은은 그걸 움켜쥔 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민호야, 모두 내 잘못이야.”

지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난 지은 씨가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몇 개를 골라 잘랐거든. 민영 씨도 별생각 없이 실 좀 풀었는데 지은 씨가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네. 나, 나 그냥 나갈게. 괜히 너한테 민폐만 끼친 것 같네...”

지현은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어깨를 떨었다.

민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너도 실수였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넌 A 시에 아는 사람도 없으면서 어딜 가겠다는 거야? 그냥 여기서 지내.”

“강민호.”

지은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망가진 비단 천 조각을 손에 쥔 채 나직이 물었다.

“내 자수 작품이 다 뜯겨 버렸는데, 그냥 실수인 척 봐주고 넘어갈 생각이야? 정말 그게 다야?”

“그러면 어쩔 건데? 이미 모두 망가졌잖아.”

지은의 머릿속은 넘쳐 오르는 분노와 강씨 집안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간신히 진정하려 노력했다.

“그러면 사과 따위는 할 필요 없다는 거야?”

“강민영, 사과해.”

민호가 명령했다.

민영은 사과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호가 하도 무섭게 노려보자 마지못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됐죠?”

그러면서 찢긴 자수를 일부러 발로 밟고 지나갔다.

“X랄하네.”

지은은 시선을 지현에게 돌렸다.

“당신도 사과해야 해요.”

“서지은, 꼭 이렇기까지 해야 해?”

민호가 인상을 구기며 지현의 앞을 막아서자, 지은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 백지현 씨도 내 작품 잘랐잖아.”

지은은 손에 움켜쥔 천 조각을 흔들었다.

민호와 지현, 그리고 김영애가 한쪽에 서 있었고, 지은만 홀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강민호, 정신 좀 차려. 저 사람들이 내 물건을 망가뜨렸다고!”

“지현이는 많이 아프잖아. 꼭 아픈 사람이랑 싸워야겠어? 사과하면 이것들이 원상태로 복구되기라도 해? 게다가 네 작품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상 하나 못 받는 수준이면서 꼭 이렇게까지 난리 쳐야겠어? 공장 쪽 자수 장인들 시켜서 다시 수놓으면 되는 거 아냐?”

민호는 귀찮다는 듯 돌아서서, 지현을 보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쉬어. 이 일은 네 잘못 아니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

“내가 너한테 민폐를 끼친 것 같으니 이만 가볼게. 그래도 남의 집인데...”

“남의 집이라니?”

“이 집은 지은 씨 집이잖아.”

민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 집은 내 명의로 되어있어.”

그 순간, 지은의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러면 이 집도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지현은 싱글벙글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아까 지은 씨가 화내며 당장 나가라고 해서, 더 이상 신세 지기 미안했거든.”

민호가 다정하게 그녀 어깨를 토닥였다.

“널 내보낼지 말지는 내 선택에 달렸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김영애는 한쪽에서 여유롭게 지은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고작 내 아들 곁에 오래 있었다고, 정말 내 아들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김영애는 곧 승자가 된 듯한 표정을 보이며 방으로 돌아갔다.

“서지은, 넌...”

민호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지은은 고개를 돌려 민호를 외면하고 상자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딜 가려는 거야!”

민호가 서둘러 잡아당기는 바람에, 상자가 떨어져 그 안에 든 망가진 자수 작품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지은에게는 더 이상 그것들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화가 난 듯한 민호는 얼굴에 짜증을 드러냈다.

‘도대체 왜 화를 내지? 자기가 화낼 자격이 있긴 한가?’

지은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민호가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가?’

그러나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민호였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기 시작한 거야? 고작 화 좀 났다고 나가버리는 거야? 어디서 그런 못된 습관을 배운 거야?”

그는 여전히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지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지은이 CY그룹 같은 대기업 대표들을 알게 되면서, 점점 기고만장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말에 지은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표정은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민호도 지은의 낯선 웃음에 위화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지난 7년간, 지은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민호에게 자기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지은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백지현이 내 결혼식을 가로챈 덕분에, 나는 A시에서 엄청난 웃음거리가 되었어.”

“게다가 백지현은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유일하게 남기신 예복을 망가뜨렸고 내 허락도 없이 내가 쓰던 침실을 빼앗아 갔어.”

“오늘 이렇게 내 자수 작품을 난도질한 것도, 결국 네가 계속 모르는 척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지은은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런데도 날 탓해? 강민호, 너 정말 제정신이야? 설마 우리 가족이 너희 가족에게 진 빚을 내가 죽을 때까지 갚아도 부족하다고 말할 생각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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