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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화

Author: 민설
문밖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나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지현이 지은의 침실 쪽으로 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 방은, 결혼 후 지은이 민호와 함께 지낼 신혼부부 방으로 쓰려고 한 곳이었다. 지금은 민호와 함께 살진 않지만, 가끔 그는 야근 뒤 이 집에 들러 지은과 저녁을 먹곤 했다.

“지은 씨, 이 방은 햇빛이 잘 들어서 제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지은 씨는 워낙 이해심 많은 사람이니 화내진 않겠죠?”

지현이 다정한 척 그녀 손을 잡았다. 겉보기에는 마치 두 사람이 자매처럼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그러니 잠시만 신세 질게요. 어차피 전 곧 죽을 사람이니, 그냥 좀 불쌍히 봐주면 안 될까요? 오늘 지은 씨를 화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래, 지은이는 이런 일 가지고 화낼 사람 아니야.”

민호도 덧붙였다.

지은은 살짝 손을 빼내고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들이 기쁜 표정으로 부부방으로 짐을 옮기는 걸 지켜봤다.

“강민호.”

지은은 처음으로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불러 보았다.

뒤돌아서 있던 민호의 몸이 잠시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지은도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넌 대체 누구 남자친구야?”

민호는 담배 불씨를 그녀에게서 멀리 떼면서 대꾸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결혼식, 내가 만든 웨딩드레스, 이제는 내 침실까지 전부 내주는데 왜 아무 말조차 하지 않아?”

지은은 문간에 몸을 기대선 채 묻고 있었다.

“다음번에 내가 양보해야 할 건 너인가?”

민호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7년이야. 네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어, 그래 보여.”

지은은 살짝 뒷걸음질 치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니야?”

그녀가 자신을 뿌리치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민호는 자기 손을 한참 동안 내려보았다.

“방 하나 양보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네가 우리 집안에 진 빚은 벌써 다 잊은 거야? 난 네가 적어도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옆에서 강민영이 못마땅한 말투로 거들었다. 강씨 집안에게 빚을 졌다는 그 한마디에, 막 폭발하려던 지은의 감정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렇다. 지은도 그 목숨을 빚진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지은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민호는 얼른 지은의 뒤를 따라가서 물었다.

“어딜 가는데?”

지은이 대답 없이 문밖으로 나서자, 결국 민호가 성큼성큼 따라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어디 가냐고 물었잖아.”

그러자 지은이 지친 듯 웃었다.

“돈 벌러 갈 거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아 줄래?”

빚이라는 말 때문에 지은은 오랫동안 참아왔다.

오늘 같은 말은 수도 없이 들었고, 민호 아버지의 제삿날이면, 김영애는 더욱 가차 없이 지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지은은 민호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 올라,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녀가 사라지자, 밖까지 뒤따라 나오던 김영애가 혀를 찼다.

“재수 없는 년, 다신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네!”

민호가 고개를 돌리자, 김영애는 아들의 눈빛에 겁먹고 입을 다물었다.

“제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아버지 죽음은 아버지 잘못이지, 지은이에게 화풀이할 일 아니라고요.”

“너는 네 아버지 일에 그렇게 말하는 거야?”

“전 그냥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에요.”

민호는 이기적이긴 했지만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문가에 서 있던 민영은 민호를 힐끔 보며 무언가 궁리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혹시 이 집 살 때 오빠도 돈 냈어?”

민호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민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대답했다.

“뭐 할 말 있어?”

“그게...”

“여기서 지낼 거면 입 다물고 조용히 지내.”

2층에 있던 지현은 방금 들려온 민호의 말이 신경 쓰여 이를 악물었다.

‘지금 서지은 편을 든 거야?’

민호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김영애는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민영이 불만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 오빠 왜 저러는 거예요? 우리 서은을 욕할 때마다 지은이 편을 들다니, 자기도 지은을 계속 괴롭혔으면서.”

김영애가 딸을 노려보자, 민영은 입을 다물었다.

김영애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분명 저 지은이 꾀라도 부린 거겠지. 민호도 참, 이 크고 비싼 별장에 돈을 절반이나 보태다니. 저런 불길한 년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지낼 자격도 없어!”

그녀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기 아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지은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둘은 혼인 신고를 하기 전이었고 이 별장도 민호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위층 서재.

김영애가 서재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들, 잠깐 얘기 좀 해.”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집에서 나온 지은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운전 중에 이무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자 차를 길가에 세웠다.

“이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

[서 대표님, 이번 가을 대회에 출시할 작품, 다음 달 초까지 제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야 미리 접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지은은 마음을 정리하듯 깊이 숨을 들이쉬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마침 그녀가 거의 완성해 둔 자수 작품이 세 개 정도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 마무리해 제출하면 국내 대회에서 쉽게 수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업 중인 작품은 모두 집에 있어서, 지은은 결국 다시 집으로 가야 하긴 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도 자수 공예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PX그룹 같은 자수 공예 기업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3개월마다 열리는 자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다음 해 국제 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는 상금도 크지만, 홍보 효과 또한 엄청났다. 한 차례만 우승해도 PX그룹의 1년 치 매출과 순이익이 보장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은은 자기 정체를 숨겨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살짝 미완성이거나 일부 흠집 있는 작품을 내놓아 2등이나 3등 정도로만 수상하곤 했다.

물론 그 대회에서 주는 상금 때문에 그녀는 대회마다 참석했었다.

저녁 9시 반.

지은은 간단히 밖에서 식사를 마치고 결국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별장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지은이 현관문을 열자, 2층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김영애, 강민영, 그리고 백지현이 대화하는 목소리였다.

지은은 조심스레 2층으로 올라갔다.

“이 실 진짜 재밌네. 한번 쭉 잡아당기면 다 풀어지네!”

“이모, 이건 필요 없는 거 맞죠?”

객실에 들어서려던 지은은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세 사람이 함께 지은의 자수 작품을 보관한 상자를 열어, 실을 쭉쭉 뽑아내고 있었다. 민영은 아예 자수 작품 한쪽을 잡아당기며 실을 풀고 있었다.

깜짝 놀란 지은은 냅다 달려가, 이미 3분의 1쯤 풀려 망가진 자수 작품을 낚아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왜 제 물건에 손을 댄 거죠?”

지은의 말에, 김영애가 콧방귀를 뀌듯 대꾸했다.

“네 물건? 이 집안의 모든 물건은 우리 아들 돈으로 산 거야. 게다가 이렇게 박스에 처박아 둔 거 보니 오래된 쓰레기 아냐? 찢어 버리면 어때서!”

이건 전부 지은이 가을 대회나 CY그룹 의뢰로 출품하려 준비하던 작품들이다.

그중에는 지은이 엄청나게 아끼고 마음에 들어 하던 것들도 있었다.

특히 민영이 망가뜨린 것은, 지은이 CY그룹에 제출하기 위해 4개월 넘게 공들여 수놓은 가장 중요한 한 작품이었다.

지은이 장시간 공들여 만들어둔 작품들이 모두 허무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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