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003 화

Author: 민설
“너는? 잘 기억하고 있어?”

지은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민호는 방금 지은에게 손찌검을 한 사실에 대해 사과 한마디도 없이, 또다시 트집을 잡고 있었다.

예전에 지은은 민호의 말이라면 전부 들어주는 편이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지은이는 언제나 현모양처처럼 착실히 민호를 보살폈고, 열심히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그가 늦게까지 접대나 술자리를 하는 날이면 아무리 늦어도 차를 몰고 픽업하러 나갔다.

지은이가 그렇게 한결같이 헌신했던 이유는, 힘들었던 시절에 쌓인 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민호의 아버지 때문이다.

과거 서씨 집안은 강씨 집안에게 목숨을 빚졌다.

지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지은과 동생 지훈이 어머니의 유골을 들고 산에 오르던 그날.

산에서 내려가던 중, 지훈은 너무 슬픈 나머지 걷다가 발을 헛디뎌 산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때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민호의 아버지가 주저 없이 몸을 던져 지훈을 구했다.

그러나 지훈을 먼저 위로 올리고 올라가려던 민호의 아버지는 그만 탈진해서 다리가 풀리며 산 아래로 다시 떨어졌고, 결국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 일로 민호의 어머니, 김영애는 지은만 보면 원망과 욕설 세례를 퍼부었다.

“네 동생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왜 이런 고생을 하겠니!”

민호 아버지의 목숨이라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죄책감에, 지은은 민호의 성격이 갈수록 거칠어져도 참아낼 수 있었다.

지은은 자신이 번 돈 모두를 두 사람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계좌에 입금했다.

하지만 민호는 점점 이렇게 헌신적인 지은의 수고를 점점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은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은은 결코 민호의 작은 틀 안에 갇혀 민호만을 바라보는 애완견이 아니었다.

“감히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

민호는 코웃음 치며 위아래로 지은을 훑어보았다.

“혹시 대기업 사장님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네가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고 배짱이 커진 거야?”

지은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무심히 대꾸했다.

“당신이 백지현 뒷바라지하느라 바쁘니, 적어도 누군가는 날 좀 챙겨 줘야지 안 그래?”

민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날 원망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때 병실 밖에서, 김영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들, 저 불길한 년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저년 때문에 네 아버지 하나 죽었으면 됐지. 우리 집안을 또다시 망가뜨리려는 거야?”

“서지은! 네가 우리 집에 빚진 게 얼만데! 민호 아버지 아니었으면 네 동생은 진작에 죽었다고!”

민호의 동생 강민영도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민영은 최근에 이혼해서 친정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녀도 지은이 영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오늘 같은 날, 손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소한 눈치껏 행동했어야죠. 어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을 한 거예요? 정말 우리 집안과는 안 맞네!”

강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지은을 무시하며, 지금까지 회사가 이룬 결과물은 모두 민호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지은이 자수 실력이 좀 있다는 것은 알았다.

민호 아버지의 희생에 보답하겠다는 구실로 지은이 민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민호가 그녀와 만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때 백지현의 집안은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재벌가였다.

비록 지금은 지현의 부모님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인맥과 영향력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민호가 사업을 할 때 지은보다는 지현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두 사람을 비교해 본다면, 김영애는 분명 지현을 더욱 좋아했다.

사실 김영애는 예전부터 민호가 백씨 집안과 혼인을 맺길 바랐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김영애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들이 지은을 버리길 바라는 속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민호는 인상을 찌푸리고 돌아서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옛날 일 좀 꺼내지 말라니까요? 아버지가 사람을 구한 건 본인의 선택이었고,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 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얼른 돌아가세요.”

그는 제멋대로이면서도 자존심이 강했다. 머리는 좋은 편이지만, 예민하고 의심 많은 성격은 곧잘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김영애와 민영은 민호가 버럭 화내기 전에,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민호는 다시 시선을 지은에게 돌리며 명령조로 말했다.

“앞으로는 너 혼자서 CY그룹과 연락하지 마.”

지은은 손에 쥐고 있던 주성재의 명함을 꼭 움켜쥐었다.

민호가 몸을 숙여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알았지?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널 아내로 맞이할 거야. 넌 앞으로 강민호 아내로서 살기만 하면 돼. 나머지 일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지은은 눈을 감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문밖에서 지은과 민호의 대화를 엿들은 지현은 조금 전까지도 우아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정말 서지은이랑 결혼하겠다고?”

한때, 지현은 민호를 업신여겼지만, 지금 CY그룹과 견줄 만한 회사를 세운 대표가 된 그를 보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백씨 집안이 무너진 지금, 그녀에게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민호더러 치료비를 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부잣집 아가씨로 자라온 지현은 지금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 남은 생을 돈 때문에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지현은 이를 악물며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

집으로 돌아온 지은의 기분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응, 괜찮으니까 다들 일 보러 가.”

그녀는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두 사람은 동거하지 않았다.

민호는 출장 잦은 편이라, 공항 근처에 집을 구해 지내고 있었다.

이 별장은 두 사람이 6개월 전 함께 마련한 신혼집이었다.

지은은 이 집을 구입할 때 비용의 절반을 부담했다.

뒤따라 들어온 민호가 입을 열었다.

“지은아, 할 얘기 있어. 지현이가...”

그러나 민호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지은이 물었다.

“내 예복은 어디 있어?”

“죄송해요, 지은 씨.”

뒤따라 들어온 지현이 먼저 답했다.

“지은 씨 병원에 실려 간 뒤에 제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하느라 옷을 찢었어요.”

그녀가 손에 든 봉투 속에는 잘린 예복 자락이 들어 있었다.

그건 지은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품이었다. 다른 평범한 유품과는 같을 수 없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지은은 망가진 예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

민호가 대답했다.

“바로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야. 지현이는 결벽증이 있어서 병원 생활이 불편하대. 내 집은 병원과 너무 멀어서 당분간 이 집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야.”

민호는 사전에 지은과 미리 상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했다.

지은은 찢어진 예복을 빼앗아 들고, 아무 말 없이 2층 서재로 올라갔다.

그 서재는 지은의 사무용품과 자수 용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은은 말없이 자수 용품 앞에 앉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늘에 실을 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다시 꿰매 옷을 고쳐볼 생각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자수용 실은 엄청 얇았기에, 한 가닥을 100개 이상으로 쪼개야 할 때도 있어 조금만 호흡이 거칠어져도 실이 흔들리고 만다. 여름에는 땀이 묻어 실이 변형될 수 있기에 자수를 놓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러니 눈물이 실에 떨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조금이라도 원상 복구해 보려고 실을 이어 보는데, 어느 순간 지은의 감정도 북받쳐 올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지은은 끝내 바늘을 내던지고,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잡고 몸을 떨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10년간 어린 동생을 돌보고 대학까지 보내며, 밤낮없이 자수를 놓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인데...

정작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배려해야 할 민호의 언행들은 오히려 지은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Related chapters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4 화

    문밖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나르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자, 지현이 지은의 침실 쪽으로 짐을 나르고 있었다.그 방은, 결혼 후 지은이 민호와 함께 지낼 신혼부부 방으로 쓰려고 한 곳이었다. 지금은 민호와 함께 살진 않지만, 가끔 그는 야근 뒤 이 집에 들러 지은과 저녁을 먹곤 했다.“지은 씨, 이 방은 햇빛이 잘 들어서 제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지은 씨는 워낙 이해심 많은 사람이니 화내진 않겠죠?”지현이 다정한 척 그녀 손을 잡았다. 겉보기에는 마치 두 사람이 자매처럼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그러니 잠시만 신세 질게요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5 화

    지은은 망가진 자수 작품을 움켜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내 허락도 없이 내 물건을 망가뜨려 놓고, 지금 날 탓하고 있는 거예요?”“뭘 그렇게 따지고 난리야? 그깟 천 쪼가리 가지고.” 민영은 김영애를 믿고 계속 몰아붙였다. “우리 오빠 회사에 자수 장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는 쉽게 다시 수놓을 수 있다고! 어쩌면 이렇게 쪼잔할 수 있는 거지?”바로 그때, 지현이 한마디 거들었다.“지은 씨, 화내지 마요. 저 때문에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쓸모없는 것들 때문에 이모에게 화 낼 필요는 없잖아요.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6 화

    지은이 이토록 날카로운 말들로 자신에게 따지고 들 줄은 몰랐던 민호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2층 거실로 데려갔다.“이거 놔!”지은은 민호의 손을 뿌리쳤다.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나한테 계속 이런 식으로 대들 셈이야?”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지은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드러냈다.“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덕분이라는 거 모르는 거야?”그는 지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지은이 몸부림치며 아파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지은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모두 네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7 화

    지현이 억지스럽게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지은은 더 참을 수 없었다.“백지현 씨, 지금 무슨 자격으로 저희 문제에 대해 끼어드는 거죠?”“자격?” 김영애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 아들이 지현이와 결혼한 걸 알고 있어!”김영애는 지은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내쫓으려 들었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니 얼른 나가!”“엄마.”민호가 입을 열자 김영애는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일단 다 나가.”지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민호야, 네 팔이...”민호는 짜증 난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8 화

    지은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눈을 감자, 어린 시절 어머니가 늘 해 주신 말이 떠올랐다.“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인격과 사업은 포기해서는 안돼.”‘인격...?’ 민호 앞에서는 그녀에게 인격 따위는 무의미했다. 순종적으로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아내로만 있어야 하니까.그러나 최근 일어난 일들로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지은도 이번엔 민호의 요구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안 비서.”안유민이 안으로 들어왔다.“부르셨어요?”“CY그룹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 한 벌 준비해 줘.”지은은 창밖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았다.“알겠습니다.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09 화

    연회장 밖.지은은 민호의 손을 뿌리쳤다.“무슨 일인데?”“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누가 너더러 여기 오라고 했어?”“나도 초대받고 온 거야.”“네가 갑자기 나타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생각해봤어?”민호는 분노에 찬 눈빛이었지만, 주변을 의식해 소리를 낮추었다.지은은 담담히 웃었다.“왜 매번 내가 네 기분을 생각해야 하지?”민호는 상황이 다급했다. 오늘 파티에 CY그룹의 대표가 온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자신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깎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업계에서 큰 계약을 맺으려면 평판이 중요했다.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10 화

    “알겠습니다. 다만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해요.”지은은 아직도 찢어진 작품을 복구하느라 애먹고 있었다.이야기가 오가던 중, 멀리서 민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이분은 제 아내, 백지현입니다.”쨍그랑-지은의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카펫 위로 떨어졌다. 잔이 깨지진 않았지만, 술이 잔뜩 쏟아져 신발이 젖었다.은희는 웨이터에게 눈짓을 보내 곧바로 치우게 했다.“서 대표님이 나쁜 인간한테 발목 잡힌 것 같아서 내내 보기 안쓰러웠어요.”은희는 오랫동안 PX그룹과 협의하며, 지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던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11 화

    지은이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자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민호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낸 뒤, 핸드폰을 던져두고 자수들을 정리하며 복구를 이어갔다.한편, 집으로 돌아간 민호는 일부러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지은이 전처럼 먼저 전화를 걸어 사과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동안 둘이 다툴 때마다, 항상 잘못했다며 먼저 고개를 숙인 건 지은 쪽이었다.“싸웠어?”김영애는 민호가 잔뜩 인상을 쓴 걸 보며 물었다.민호는 넥타이를 헝클이며 짜증을 내듯이 말했다.“별것 아니에요.”“잘됐어! 차라리 싸우고 빨리

Latest chapter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6 화

    지은의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처럼 좋은 날, ‘강민호’라는 이름을 핸드폰 화면에 발신자로 떠서 그녀의 마음속엔 가시덩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가시가 지은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그로 인해 피가 배어 나오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지은은 민호의 예상대로 완전히 마음을 접지는 못했지만, 그를 향한 사랑은 이미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미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가 민호를 볼 때 느끼는 아픔은 그저 오래된 감정의 반작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잊고 상처 없이 떠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5 화

    “네가 뭘 알아? 이번 PX그룹의 대회 출품작이 서지은이 만든 거였다고!” 민호는 고함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서지은이 감히 나를 감쪽같이 숨기고, 뒤에서 딴짓하고 있었다고! 심지어 어떤 늙은 여자랑 짜고 나를 속였어!” 그는 작품을 판매했던 임수진에 대해 떠올렸다. 임수진은 당시 작품을 소개하며 그것이 지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건 분명 서지은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수작일 거야!’민호는 스스로 이렇게 믿으며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했다. 그는 자신이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4 화

    지은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한 손이 그녀의 어깨 근처에 얹혔다. 지은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성재가 서 있었다. 그는 굳건하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그녀 옆에 서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흔들리지 않는 산과 같았다. 민호조차 성재의 강력한 아우라 앞에서 조금도 반박하거나 반응할 수 없었다. 성재는 말 한마디 없이 지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그런 다음 민호의 달라진 얼굴색을 완전히 무시하며 그녀를 데리고 대회장을 떠났다. 이 장면은 남아있던 A 시의 모든 자수 기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뭐지? 그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3 화

    지은의 한마디에 민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입술까지 떨려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대회장은 고요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고, 모든 시선이 PX그룹과 민호에게 쏠렸다.‘뭐? 그 작품이 서지은이 한 거라고?’민호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지은이 저렇게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도 안 돼! 설령 서지은이 했다 해도, 그건 우연히 잘 된 거겠지.’민호는 속으로 부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행동했다. 그는 지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 서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2 화

    민호의 비아냥과 깎아내리는 말들은 지은이 PX그룹에 있을 때부터 수년간 반복되어 왔다. 그녀는 이미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들었고,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과거의 지은이었다면 민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며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민호의 교만한 태도와 비웃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슬렸다. 마침 대회 측 관계자가 CY그룹 쪽으로 다가와 1위를 축하하려던 순간, 지은이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던졌다. “만약 외부에서 고급 작품을 구매해 출품한 경우,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1 화

    지은이 PX그룹에 있을 때, 출품 작품 선정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강조했던 원칙이 있었다. 바로 자수 공예 장인들의 이름을 작품에 절대 표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작품 선정과 투표 단계마다 다양한 부서의 관리자를 참여시켜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혹시라도 부정행위가 발생하면 정직하게 노력한 자수 공예 장인들에게 너무나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했다.그녀는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무대 뒤, 선정된 자수 공예 장인들이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40 화

    지은은 긴장이 풀린 듯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입선했으면 다행히.’CY그룹에 막 발을 들인 그녀로서는, 첫 대회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민호와의 지난 경험은 그녀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다. '손에 꽉 쥐고 있어야 내 거지, 그렇지 않으면 언제가 사라질 거야.'뒤쪽에 앉아 있던 CY그룹의 팀장들은 스크린에 비친 작품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색감의 조화, 표면에서 반짝이는 광택감, 그리고 투명함을 강조한 디테일! ‘이건 진짜 대가의 작품이야!’그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39 화

    대회 분위기는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미 세 개 기업이 작품을 제출한 상황에서, 이제 PX그룹의 차례가 되었다. 양나인은 멀리서 지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서 대표님이 정말 PX그룹을 떠나서 CY그룹으로 가셨구나...’ 그녀는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서 대표님이 그렇게 큰 회사로 가셨는데, 혼자서 팀원도 없이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지은이 없는 PX그룹의 분위기가 퍽 어수선해졌기에, 나인은 지은의 현재 상황이 걱정스러웠다. ‘혹시 서 대표

  • 소꿉친구에게 결혼을 빼앗긴 서씨 아가씨   0038 화

    지은은 민호의 말에 순간적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지금은 상하관계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재의 팔을 살짝 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이런 자리에서 강 대표와 다투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다. ‘강민호 같은 사람과 말다툼하는 건 내 품격만 떨어뜨리는 일이야.’하지만 성재는 그녀와는 달랐다. 성재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냉랭하게 굳어 있었다. 이 상황을 놓치지 않은 이는 바로 그의 비서, 이무진이었다. 무진은 성재의 미묘한 신호를 읽고 반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