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이라도 답한다면 이소희는 분명 귀찮게 말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진정우의 사이는 더 어색해지게 된다.게다가 진정우의 방금 그 모습은 꼭 나와 아는 사이로 보이길 바라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와 아는 사이임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모르는 사이에요.”나는 부인했다.“그럼 어떻게...”이소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말했다.“그냥 맞혀본 거예요.”이소희는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진정우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밥을 아주 잘 먹었다. 심지어 오늘 주문한 음식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까스 덮밥이었다.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일 좋아하던 음식마저도 찬밥신세가 되었다.“맞혀본 거라고요?”이소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언니, 그런 추측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진정우 씨 얼굴에 쓰여 있던가요?”나는 정말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소희는 분명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던 순간 나의 눈에 진정우의 가방에 달린 키링이 들어왔다.작고 하얀 토끼 모양이었고 아주 귀여웠다.“그게.”나는 얼른 키링을 보며 말했다.“저걸 봤거든요. 저거라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을까요?”“저게 뭘 증명할 수 있는데요?”이소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상남자 분위기 풀풀 난다는 남자가 저런 아기자기한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는 자체가 이상하지 않아요?”나는 옆에 있던 밀크티를 들어 두 입 마셨다.‘을, 달아!'이것 또한 이소희가 주문해준 것이었다.“소희 씨, 다음엔 그냥 과일 주스로 부탁해요.”나는 바로 이소희에게 말했다.이소희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진정우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지원 언니 말은, 저 인형이 어쩌면 여자친구가 준 인형일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임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에요.”내 뜻을 드디어 알아챈 듯한 그녀를 보며 나는 어깨를 토닥였다.
‘여자친구?'‘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랑 맞선 보고 혼인신고 하려고 했으면서 벌써 여자친구가 생겼다고?'맞선 보자마자 나와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던지라 급하게 여자가 필요해 보여 나는 바로 거절했다. 그랬기에 어쩌면 이미 다른 상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더는 그를 피하거나 걱정할 것 없었으니까.다시 걸음을 옮겨 쓰레기 분리한 뒤 한쪽에서 그를 기다렸다.이소희는 2분도 지나지 않아 다가왔다. 그녀는 결국 치킨까스 덮밥을 전부 먹어치우지 않았다. 아마도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니 입맛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하...”이소희는 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좋은 남자는 전부 다른 사람의 것인가 봐요. 저한테는 꼬셔볼 기회조차 없네요.”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소희 씨, 그래도 여자로 태어난 걸 어머니한테 고마워하세요. 만약 남자였으면 소희 씨는 아주 유명한 카사노바가 되었을 거예요.”말을 마치자마자 진정우가 다가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작업 바지였으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걷는 자세마저 좋아 마치 걸어 다니는 호르몬 같은 기분이었다.“역시 잘생겼어요!”이소희는 감탄했다.“언니, 진정우 씨 정말로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잘생긴 것 같아요. 저 품에 한 번만 안겨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나는 손을 들어 이소희의 머리를 톡톡 쳤다.“그런 상상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예요.”“언니, 도대체 어떤 여자가 저런 완벽한 남자의 애인인 걸까요? 저 정말 너무 궁금해요!”이소희는 진정우에게 푹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저야 모르죠. 직접 물어봐요.”나는 말하면서 진정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비록 진정우는 갑이었지만 조명을 담당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그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여하간에 진정우가 조명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골치 아파질 사람이 나였으니까.이소희는 허둥지둥 나를 따라왔다. 진정우와 한
고개를 돌리자 까만 그의 두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뭔가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아니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오해하는 게 싫어서 그래요.”“...아.”그는 한 글자로 답했다. 나는 그가 무슨 의미로 이런 대답을 했는지 모른다.굳이 묻지 않았다. 다들 성인이니 서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까.게다가 진정우는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나와 진정우 사이엔 어색함만 맴돌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내가 결국 또 먼저 입을 열었다.“조명 수리하는 데 얼마나 걸려요?”“그건 모르죠.”“...”나는 강유형이 내게 명령 내리듯 하던 말이 떠올라 말했다.“스무날 안에 전부 처리해 주세요.”진정우는 나를 보았다. 그가 말을 이을 줄 알았지만 짤막한 대답만 들려왔다.“네.”‘이렇게 쉽게 대답한다고?'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집주인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되었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만약 집주인 할머니가 없었더라면 나와 진정우의 사이는 지금보다 더 어색했을 것이다.곧이어 침묵만 이어졌다. 고작 몇 분이면 가는 길이 한 세기가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등 쪽에선 식은땀도 나기 시작했다.이 점에서 나도 내가 한심했다. 게다가 나도 의아했다. 전 약혼자 강유형의 앞에서는 스스럼없었지만 맞선 상대였던 진정우 앞에서는 너무도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나와 진정우의 침묵은 배전실까지 이어졌다. 전기 회로 담당자는 이미 배전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간단히 진정우를 소개했다. 담당자는 진정우를 데리고 놀이공원 전기 회로 설계도를 보여주었다.전부 확인한 후 나는 진정우에게 물었다.“문제가 있을까요?”“없네요.”그의 대답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 봐도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우가 왔다는 것은 조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다소 머리가
“언니, 방금은 일부러 넘어진 거죠?”나는 이소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줄이라곤 전혀 몰랐다. 지금도 허리가 아픈 걸 보면 넘어지면서 부딪힌 곳에 퍼렇게 멍든 것이 분명했다. 그 멍을 얼른 옷을 들어서 이소희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음란한 생각만 하던 이소희가 날 이토록 멍청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 줄이야.나는 눈을 뒤집어 깠다. 이소희를 말리지 않았다.“언니, 진정우 씨 품에 안긴 기분은 어떤 기분이에요? 팔 힘은 어때요? 아주 세죠? 품에 안기니까...”“이소희 씨!”나는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머릿속에 대체 뭐가 든 거예요? 이런 생각밖에 못 해요? 네?”이소희는 내가 화를 내자 바로 혀를 내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난 듣지 못했다.아픈 곳에 손을 올리며 먼저 배전실에서 나왔다.그제야 나는 진정우가 나를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덕에 내가 다치게 되지 않았던가.‘이 사람이 진짜...'보아하니 그와 나 사이에 필요한 것은 거리뿐만이 아니었다. 이성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진정우를 갑이라고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더구나 진정우는 나의 맞선 상대였을 뿐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이소희는 가져온 것을 진정우에게 건네준 뒤 바로 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언니, 진정우 씨가 저희더러 먼저 현장에 가보라고 하네요. 진정우 씨는 이따가 현장에 올 거라고 했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희와 현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신지태의 연락이었다.“어디야? 나 이렇게 버려두고 그냥 간 거야?”그의 말을 들은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뭐야? 아직도 안 갔던 거야?'‘놀이공원 이미 한 바퀴 다 구경하고 난 거 아니야?'“난 네가 간 줄 알았지.”난 솔직하게 말했다.“안 갔어. 넌 지금 어디야?”신지태가 물었다.나는 내가 있는 곳을 신지태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신지태는 나에게로 오겠다고 했다. 1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신지태가 왔다.“길 잃었던 거야?”나는
“윤 팀장님.”이때 갑자기 진정우가 나를 불렀다.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어느 샌가 다가온 진정우가 내 뒤에 우뚝 서 있었고 그 옆엔 이소희와 전기 회로 담당자도 있었다.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진정우의 눈빛이 다소 차가워진 듯 기분이었고 나도 모르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진 기사님,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문제 생긴 데는 이미 전기 회로 기사님이 해결하러 갔습니다.”그는 다소 차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간단히 대답한 뒤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볼 참이었지만 그가 먼저 말했다.“오늘은 조명 테스트를 하지 않을 거예요.”“네?”너무도 뜻밖이었다.전기 회로 담당자가 바로 말했다.“전압에 문제가 생겨서 그것부터 수리해야 하거든요.”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그걸 수리하는 데 며칠 걸리죠?”“오늘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나는 남몰래 안도했다. 아마도 정말로 짧으면 사흘, 길면 닷새가 걸릴 것 같았다.“다른 건, 우리가 해야 할 건 없어요?”나는 진정우를 보며 물었다.“없어요.”나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리게 되었다. 이소희가 나보다 빠르게 입을 열었다.“진 기사님의 뜻은 저희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럼 먼저 퇴근해도 돼요?”“네, 다른 일 하러 가셔도 돼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해 드릴게요.”진정우의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나는 그가 이것저것 문제를 발견하며 열심히 해결할 줄 알았지만 우리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했기 때문이다.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진정우와 전기 회로 담당자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이소희가 나를 향해 작게 말했다.“언니, 강 대표님이랑 헤어지고 나서 뭔가 언니한테 남자가 더 붙는 것 같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나는 이소희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진 기사님의 품에도 안겨 보고 잘생긴 남자가 머리까지 쓰담기도 했잖아요. 정말 남자복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아요.”이소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뒤집어 까게
체크인을 마친 진정우가 다가오며 태연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가요.”‘응? 뭐지?'‘뭐야, 설명도 없이 내 맞은편에서 지내겠다고?'나는 원래 따져 묻고 싶었지만 막상 정말로 묻는다면 조금 이상할 것 같았다.“진 기사님, 왜 저희 방이랑 가까운 방을 선택하셨어요?”이소희의 브레이크 없는 입은 가끔 좋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나 대신 궁금한 것을 물어봐 주고 있었으니까.진정우는 엘리베이터 입구로 간 뒤 버튼을 꾹 눌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방 키가 눈에 들어왔다. 308호, 바로 맞은편 방이었다.“편하니까요.”진정우는 이 한마디만 했다.‘대체 뭐가 편하다는 거지?'나도 모르게 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이소희는 그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나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진정우를 보았다.“진 기사님은 뭐가 편해서 저희 앞방을 선택하셨을까요?”나는 정말이지 이소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일까?엘리베이터 벽은 거울처럼 사람의 모습을 비출 수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벽으로 진정우를 보았다. 진정우도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우리의 시선이 그렇게 마주쳤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휙 피하며 이소희의 말에 대답했다.“뭐든 편하니까요.”“...”“...”나와 이소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결국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던 이소희는 그저 내 옷자락만 잡아당겼다.마치 작은 여우가 노련한 사냥 감에게 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3층이었던지라 빠르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을 열었을 때 이소희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진정우와 인사를 나눴다.“진 기사님,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주세요.”“네.”진정우도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소희가 나에게 찰싹 붙으며 물었다.“언니, 진 기사님 대체 무슨 뜻일까요? 왜 우리 맞은편 방을 선택한 걸까요? 혹
“네.”대답하자마자 진정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지금의 그는 조명 기사일 뿐 아니라 갑이었던지라 밉보이면 안 되었다.그렇게 나는 잠옷 위에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입은 뒤 그의 방 문 앞으로 가 노크했다. 진정우는 문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내 머리칼로 향했고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아직도 아파요?”그가 나에게 물었다.그의 말에 나는 무엇을 말하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네?”진정우는 시선을 내리더니 내 허리를 보았다. 그제야 난 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아, 괜찮아요.”나는 문틈 사이로 그의 방을 힐끗 보았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아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이미 남은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역시나 진정우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진정우는 걸음을 옮기며 방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듬직한 몸으로 가렸다. 나도 시선을 거두고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낮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티셔츠를 허리에 두르고 있어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 보였다.꼭 당장이라도 런웨이에 올라갈 것 같은 그런 모델 같았다.이런 그의 모습을 보니 그에게 푹 빠진 이소희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이걸 가져가서 발라요. 멍 빼는데 아주 좋은 연고니까요.”진정우는 작은 물건을 내게 건넸다. 그것은 연고였다.나는 그 연고를 받았다.“고마워요.”“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봐요.”그는 또 입을 열었다.연고를 챙겨 준 것도 모자라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가 나한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러자 그가 말했다.“전 제가 일할 때 누가 건강 문제로 빠지면서 진도를 늦추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알고 보니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이었다.나
진정우가 나에게 친구 신청한 것에 딱히 뜻밖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지금 그와 같이 일하는 사이였기에 앞으로 연락할 일은 아주 많을 것이니 메신저 연락처를 추가하는 것이 더 편리할 수 있었다.다만 나는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일단 안리영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안리영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마 바쁜 것 같았다.나는 이번에 강진혁에게 문자를 보냈다.[요즘 놀이공원 프로젝트로 바빠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구경시켜 드려도 될까요?]그리고 이내 나는 한 줄 더 보탰다.[죄송해요.]강진혁의 답장은 아주 빨랐다.[괜찮아.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몸 챙기는 거 잊으면 안 돼.]나는 답장을 생각한 뒤 전송하려고 했지만 강진혁의 문자가 이어서 왔다.[기다릴게.]결국 나는 원래 작성했던 짤막한 대답을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당분간 안 돌아가시려고요?][응, 당분간은 안 돌아갈 거야.]그의 답장을 본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몇 초 뒤에야 나는 답장을 보냈다.[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아주 기뻐하시겠네요.]강진혁의 상태에 작성 중이라고 나타났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나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메일을 눌러 미처 읽지 못한 메일을 읽으며 처리했다.이건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받은 메일을 전부 제때 확인하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메일함에는 아무런 메일도 없었다.받은 메일함에 0건이라고 표시되었다. 그 숫자를 본 순간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이때 이소희가 다가와 핸드폰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언니, 이 드라마 봤어요? 제가 최근에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인데 여기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 두 번째로 같이 작품하고 있는 거거든요. 정말 재밌어요.”나는 힐끗 이소희가 내민 핸드폰을 보았다. 주인공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 게다가 연기도 아주 잘했고 장르는 판타지인 듯했다.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한 마리의 닭으로 변한 뒤 자신을 놀리고 있던 남자 주인공을 쪼아
“여긴 공항이야,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도 있는데.” 진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고 있어.”“그런데도...” 내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러자 진정우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하고 싶어.”그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강유형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질투하는 거겠지.진정우는 강유형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런 걸까?그 생각이 들자 나는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심장은 요동치며 공항 대기실에서 진정우의 입맞춤을 기대했다.하지만 그의 입술이 다가오는 대신 내 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눈을 뜨고 보니 내 손에 작은 가방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이게 뭐야?”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진정우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내가 열어보라고 손짓했다.내가 의아한 마음으로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두 장의 카드와 하나의 증명서가 들어 있었다.그 카드와 증명서는 그가 전해주고 싶었던 것들이었다.“이게 무슨 의미야?” 나는 다시 물었다.진정우는 녹색의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건 내가 군 복무를 마친 증명서야. 그리고 이건 내 열정이 담긴 헌혈 증서야. 이 카드들은 내 전 재산이야.”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전 재산을 보여주는 장면이 떠올랐다.진정우는 내게 재산을 넘기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신념까지도 함께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특히 빨간 헌혈 증서를 보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이걸 왜 준비한 거야?” 나는 조금 울컥하며 물었다.“너에게 주는 믿음이야. 이게 사랑 보험보다 더 실용적이야.”진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강유형과 사랑 보험에 가입했던 사실을 안 것 같았다.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내게 주는 것이 모든 것 같았다.“이 두 개는 내가 가질게. 하지만 카드는 네가 갖고 있어.”나는 그가 준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고 돈에 욕심이 없다. 만약 돈에 눈이 먼 여자라면 나는 강유형과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진정우는 카드를 받지 않고 조금 난처한 듯 말했
“네, 누구세요?”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무심코 강유형을 쳐다보았다.그는 나를 보지 않고 혼자서 멀리 있는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저는 하트시그널 보험사의 A8338번 직원입니다. 4년 전, 윤지원 씨와 강유형 씨가 저희 회사 사랑 보험에 가입하셨고 이제 보험 만기일이 다가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이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본능적으로 진정우를 보았다.그는 내 옆에서 자리를 피하고 내가 전화를 받을 때는 멀리 떨어져 앉았다.그는 내게 충분한 개인 공간을 주고 있었다.진정우는 정말 세심하다. 나에게 필요한 안전감도, 여유도 모두 제공해 주고 있었다.“실례지만 두 분 지금 연애 중인가요, 아니면 결혼하셨나요?” 상대방이 조심스레 물었다.그 말에 나는 다시 강유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표정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지원 씨?” 상대방이 내 대답을 기다리며 다시 물었다.나는 침을 삼키는 동작을 하며 대답했다. “네, 듣고 있어요. 저희... “‘이미 헤어졌어요’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강유형이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피할 틈도 없이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우리는 그렇게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원 씨?” 상대방이 또 나를 부르며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어봤다. “왜 남자 쪽은 묻지 않나요?”“묻긴 했습니다. 다른 동료가 강유형 씨와 연락 중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니 강유형 역시 이 전화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엔 정말 재밌는 일이 많다.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우리는 헤어졌어요.”“확실한가요?” 상대방의 말투가 불쾌하게 들렸다.나는 강유형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진정우를 쳐다보며 손에 낀 반지를 살펴보았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상대방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원 씨. 만약 강유형 씨도 같은 답을 하셨다면, 이 사랑 보험 계약은 보험 규정에 따라
내가 그런 말을 했지만 이건 사적인 일이 아닌가?진정우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 알아차린 듯 바로 설명해 줬다. “내가 그 사람한테 말한 거야.”“아, 그렇구나.” 나는 대답하고 계속 죽을 먹었다. 그런데 두어 숟갈 먹고 나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너 허 대표님하고 그렇게 친해? 내가 대신 휴가를 부탁했더니 대표님이 그냥 허락하고, 오히려 공손하게 나한테 말까지 했잖아?”진정우는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그렇게 친한 건 아니야.”“친하지 않다고? 내가 보기엔 마치 네가 그 사람의... 대표님 같아.”진정우가 한마디만 하면 허진호는 절대 거절할 리가 없어 보였다.“비슷한 거지.” 진정우가 의외로 그렇게 대답했다. “허 대표님이 나한테 새 제품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돈을 벌어줘야 하니까내가 말하면 거절할 수 없어.”대단하네!나는 마음속으로 존경을 표하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역시 자신감 넘치게 말한다. 이게 바로 진짜 실력이지.“우리 늦지 않았어?” 나는 밥을 다 먹고 물어봤다.“괜찮아. 늦으면 그냥 항공편 변경하면 돼.” 진정우는 정말 나를 방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이해가 안 돼서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하지 않아? 나 좀 재촉해줘도 될 텐데.”“네 마음대로 하게 하고 싶어.” 진정우가 또 닭살이 돋는 멘트를 하자 나는 당황해서 얼른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만을 털어놨다. “어제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내가 준비했을 텐데.”“어제... 내가 말할 기회가 없었잖아.” 진정우의 말에 나도 순간 뜨끔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진정우는 살짝 웃으며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며 평온하게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 부족한 것 있으면 가서 사면 돼.”“일찍 말했으면 내가 준비 안 했을 텐데.” 내가 그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진정우는 화내지 않고 또 한마디 했다. “근데 나는 네가 물건 정리하는 모습 보는 게 좋아.”“
“왜 안 받아?” 내가 무심코 물었다.“받을 거야.” 진정우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는 자지 말고 일어나서 씻고 아침 먹어.”나는 깜짝 놀랐다.“아침 벌써 준비했어?”나는 그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정우는 이미 아침을 다 준비하고 내가 일어나지 않자 다시 침대에 돌아와서 나와 함께 공부한 거였다. 역시 뛰어난 사람은 항상 뒤에서 묵묵히 노력하는구나.“응, 내가 계란 죽을 끓였어. 일어나서 좀 먹어.” 진정우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사랑받는 느낌은 정말 좋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진다.진정우는 전화를 받으러 나갔고 나는 손을 이불에서 빼내며 내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서 한정판이라고 묘사했다.그리고 다시 SNS를 놀다가 잠시 후에야 일어났다. 그런데 진정우의 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가서야 나는 안리영이 준 약이 반 통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전에 약을 4분의 1만 썼던 것 같은데 그럼 진정우가 사용한 건가? 언제였지?혹시 내가 자고 있을 때?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왜 아직도 안 씻었어?” 진정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어색하지 않게 하려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게 제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말이 나와버렸다. “너 기다리느라 그래.”진정우가 잠깐 멈칫하다가,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분명, 내 말이 그에게 어떤 자극을 준 거였다. 나는 더 이상 아침에 뭔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서둘러 씻고 그에게 말했다. “빨리 죽 끓여 놓고 나오는 대로 밥 차려줘.”“안 늦었어.”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안 늦었다고 해?” 내가 그를 비꼬며 말했다.“10시 비행기야, 시간 충분해.” 진정우의 말에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나는 원래 거울 속에서 그를 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
“알았어.” 진정우는 여전히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이제야 네가 왜 서른이 넘도록 연애를 안 했는지 알겠어. 네가 너무 재미없잖아.”“너도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해?”그는 가볍게 내게 물었다. 연애라는 부분에서 그는 약간 둔한 면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내 말은 네가 여자 마음을 잘 달래주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야.”그는 몇 초 동안 조용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내 생각엔 달래는 건 속인다는 뜻이야.”그의 참신한 대답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럼 내가 널 달래줘야겠어?”진정우가 다시 물었다. 어떤 여자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다정함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정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나는 과거 강유형이 나를 대했던 방식을 떠올리며 말했다.“아니, 지금처럼 해. 난 너의 방식이 좋아. 너는 정말 특별하니까.”그의 품에 더 깊숙이 기대며 덧붙였다.“내가 프러포즈하면 받아줄 거야?”진정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했다.“안 하면서 뭘 물어?”그 순간, 진정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불 안에서 내 손을 꺼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만지며 말했다.“윤지원, 나와 결혼해 줄래?”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네 프러포즈이야?”“아니, 완전한 건 아니지만 맞기도 해.”그의 애매한 대답에 나는 그를 살짝 때리고 싶었다. 솔직히 내가 처음으로 프러포즈를 받을 거라고 상상했던 장면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한때 나는 내 인생 첫 프러포즈는 강유형이 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진정우였다.그 말을 들으니 얼마 전 강유형이 나를 위해 준비한 놀이공원 프러포즈 이벤트가 떠올랐다.나는 가지 않았지만 이후 몇몇 네티즌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렸다. 그들은 그걸 단순히 오픈 이벤트의 리허설로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온몸이 이불에 휩싸인 채 침대로 돌아오고 나서야 내가 괜히 이상한 상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 번 더 군인 출신인 진정우의 자제력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했다.그는 단순히 나를 씻겨준 것뿐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깨끗하게 씻겨준 것.이미 그의 능력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승부욕이 발동해 장난스럽게 말했다.“진정우, 너 혹시... 안 되는 거 아니야?”이 말은 남자에게 치명적인 모욕이다. 어지간한 남자는 이런 말을 듣고 참을 수 없겠지만 진정우는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얌전히 있어. 그리고 더 이상 애쓰지 마. 아무 소용 없으니까.”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살짝 상처받았는데...”나는 일부러 힘없이 실망한 척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그러자 그가 이불을 살짝 당겨 내 얼굴을 드러내며 내 볼을 살짝 문지르며 말했다.“내가 안 되는 게 아니고 네가 날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내가 널 다치게 할까 봐 조금 더 기다리는 거야.”그의 말에 내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럼 내가 너랑 가까워지기만 하면 다칠 것 같으면 너 평생 나한테 손도 안 댈 거야?”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응, 참아야겠지.”“...”나는 다시 이불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이불째 나를 품에 안았다.“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그의 말에 내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그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조금만 쉬어. 나 샤워하고 올게.”분명 찬물 샤워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찬물 샤워하러 간다.”“...”정말 원칙 하나는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나를 상처 주지 않으려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가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불렀다.“진정우.”“응?”“너, 진짜 최고야.”그리고는 창피해서 혀를 쏙 내밀고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러자 그가
진정우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는 내가 모든 원칙을 포기해도 괜찮은 사람이니까.”그는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하게 말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자체로 깊은 사랑을 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지 않아도, 문장 하나하나가 사랑이었다. 나는 코끝이 찡해졌고 전을 먹으며 입안 가득 찬 상태로 웅얼거렸다.“진정우, 이리 와봐.”“왜?”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오라면 오라니까.”나는 괜히 고집을 부렸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잠시 놀란 듯 멈췄고 내가 말했다.“네 어깨에 기대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진정우가 나를 침대에 눕히며 물었다.“오늘 여기서 잘까, 아니면 네 방에서 잘까?”“여기서 잘래!”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문득, 밤마다 푸쉬업을 하고 찬물 샤워를 하던 그가 떠올랐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근데 오늘 밤에는 푸쉬업 금지야.”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일부러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얘긴 다시 꺼내지 마.”나는 그의 품에 안기며 그의 허리를 살짝 감쌌다.“안 하면 안 꺼낼게.”진정우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였다.“장난치지 마.”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못 참겠어?”나는 한층 대담하게 물었다. 진정우는 내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장난은 이제 그만. 그리고 나를 더 자극하지 마.”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이듯 낮아진 목소리였다.“너도 원하고 있잖아.”나는 점점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지원아...”그는 나의 손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의 티셔츠 끝자락을 잡아 올리며 안으로 파고들었다.“지원아.”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귀에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난 이제 다 나았어.
이 상황, 얼마나 민망했을지 상상이 간다. 물론 진정우는 예외였다.“잠시만요.”진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천천히 물티슈를 꺼내 내 손을 닦아주었다.“천천히 먹어. 죽이 좀 뜨거우니까 급하게 먹지 말고.”문가에 서 있는 강진혁은 들어오기도, 물러서기도 난감해 보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가 나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내가 알아서 먹을게.”내 말은 진정우에게 얼른 강진혁을 챙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정우는 자리를 뜨기 전에 모든 음식 포장을 풀고 식기를 내 앞에 정갈히 놓아주었다.문가에 서 있던 강진혁은 그야말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애정 행위를 강제로 목격한 셈이었다.아마 나를 짝사랑하는 그의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강 실장님, 무슨 일이 신가요?”진정우는 문가로 걸어가며 강진혁에게 물었다.강진혁은 병실 밖으로 나갔고 그가 진정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진정우는 약 3분 후에 돌아왔는데 그의 평온한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가 표정을 드러내지 않자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래서 나는 죽을 먹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별일 아니야.”그의 대답은 꽤 건조했다. 아마도 그 자신도 느꼈는지 덧붙였다.“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더군.”“스카우트? 어디로? KS그룹?”강진혁은 아직 총괄 감독에 불과하다. 스카우트 같은 건 인사 부서나 그룹 회장이 해야 할 일 아닌가?혹시 이미 강유형의 자리를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만약 그렇다면, 아까 그가 내게 한 말은 다 무슨 뜻이었을까?내게 심리적 준비를 시키려는 걸까, 아니면 나를 떠보려는 걸까?“어디로 간다는 얘기는 없었고 그저 내 생각을 물어봤어.”진정우는 덤덤하게 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나는 죽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뭐라고 대답했는데?”“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어.”그의 대답은 직설적이고 단호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너무 솔직하고 귀여워서.”칭찬을 듣자
“오빠, 강유형은 성인이에요. 본인이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죠.”나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강유형을 회사에서 내보내든, 관계를 끊든, 그건 전부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나도 알아. 하지만 아버지랑 그렇게 싸우는 걸 보니 속이 타더라. 그리고 그가 회사에서 나가면 회사에도 영향이 클 거야.”강진혁은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오빠가 있잖아요?”그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지원아, 난 한 번도 회사를 관리할 생각을 해본 적 없어. 그러지 않을 거였으면 애초에 회사를 떠나지도 않았겠지.”그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나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다만 내 생각을 덧붙였다.“회사의 일은 삼촌께서 알아서 계획하고 계실 거예요. 강유형이 떠난다고 해서 회사가 멈추는 건 아니죠.”나는 이성적으로 말하며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했다.“세상은 누구 없어도 돌아가게 돼 있어요.”강진혁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야.”“오빠, 아마 너무 걱정되니까 그런 거겠죠.”나는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말을 덧붙였다.강진혁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원아, 네가 4년 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4년 전?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4년이라는 시간은 아이도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다.“그걸 성장이라고 하죠.”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강진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맞아. 네가 정말 많이 컸다, 우리 꼬마 지원이.”그의 말에 가슴 한쪽이 찡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강가에 들어왔을 때, 강유형과 강진혁은 종종 나를 이렇게 부르며 장난스럽게, 때로는 애정을 담아 나를 놀리곤 했다.그런데 그 말을 들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오빠, 이런 문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세요. 너무 관여하면 오히려 안 좋아요.”그의 ‘꼬마 지원이'라는 말에 잠시 감정이 흔들렸지만 나는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강진혁은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