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우?!'‘택시 운전기사가 아니었나? 언제부터 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조명 기사가 되었지?!'그 순간 나는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진 기사님, 이분은 윤 팀장님이세요!”김석민이 간단히 소개했다.진정우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윤 팀장님.”그는 마치 나를 처음 만나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나는 의자에 앉은 상태였기에 나의 각도에선 날렵한 그의 턱선이 보였다. 그리고...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났던 그 섹시한 목울대로 보였다.이소희는 팔꿈치로 나를 툭툭 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그의 손과 나의 손이 겹쳐지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윤 팀장님께선 식사 마저 하세요. 전 현장으로 먼저 가 있을게요.”“아니요. 괜찮아요. 같이 현장으로 가요.”나는 바로 걸음을 뗄 생각이었지만 진정우는 움직이지 않았다.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김석민을 보았다.“석민 씨, 점심은 드셨어요? 전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해서 그러는데 혹시 이 근처에 맛집이 있을까요?”김석민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전 먹었어요.”이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여긴 음식 배달도 가능해요.”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지라 이소희에게 말했다.“소희 씨, 진정우 씨에게도 주문해주세요.”“아, 네.”이소희는 간단히 대답한 후 얼른 핸드폰을 들며 물었다.“진정우 씨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쌀밥, 면, 고기 중에서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진정우는 손을 들더니 내가 절반 먹다 남긴 음식을 가리켰다.“이거랑 같은 거로 주문해주시면 돼요.”내가 먹고 있던 것은 매운 소고기 칼국수였고 이소희가 주문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우는 매운 걸 잘 먹지 못했던지라 매운 소고기 칼국수는 그에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것을 주문해달라고 하다니.“네, 이 칼국수는 여기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에요. 진정우 씨 입맛이 저희 윤 팀장님이랑 같은 줄은 몰랐네요.”이소희는 중
아는 사이라도 답한다면 이소희는 분명 귀찮게 말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진정우의 사이는 더 어색해지게 된다.게다가 진정우의 방금 그 모습은 꼭 나와 아는 사이로 보이길 바라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와 아는 사이임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모르는 사이에요.”나는 부인했다.“그럼 어떻게...”이소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말했다.“그냥 맞혀본 거예요.”이소희는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진정우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밥을 아주 잘 먹었다. 심지어 오늘 주문한 음식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까스 덮밥이었다.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일 좋아하던 음식마저도 찬밥신세가 되었다.“맞혀본 거라고요?”이소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언니, 그런 추측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진정우 씨 얼굴에 쓰여 있던가요?”나는 정말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소희는 분명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던 순간 나의 눈에 진정우의 가방에 달린 키링이 들어왔다.작고 하얀 토끼 모양이었고 아주 귀여웠다.“그게.”나는 얼른 키링을 보며 말했다.“저걸 봤거든요. 저거라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을까요?”“저게 뭘 증명할 수 있는데요?”이소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상남자 분위기 풀풀 난다는 남자가 저런 아기자기한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는 자체가 이상하지 않아요?”나는 옆에 있던 밀크티를 들어 두 입 마셨다.‘을, 달아!'이것 또한 이소희가 주문해준 것이었다.“소희 씨, 다음엔 그냥 과일 주스로 부탁해요.”나는 바로 이소희에게 말했다.이소희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진정우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지원 언니 말은, 저 인형이 어쩌면 여자친구가 준 인형일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임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에요.”내 뜻을 드디어 알아챈 듯한 그녀를 보며 나는 어깨를 토닥였다.
‘여자친구?'‘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랑 맞선 보고 혼인신고 하려고 했으면서 벌써 여자친구가 생겼다고?'맞선 보자마자 나와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던지라 급하게 여자가 필요해 보여 나는 바로 거절했다. 그랬기에 어쩌면 이미 다른 상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더는 그를 피하거나 걱정할 것 없었으니까.다시 걸음을 옮겨 쓰레기 분리한 뒤 한쪽에서 그를 기다렸다.이소희는 2분도 지나지 않아 다가왔다. 그녀는 결국 치킨까스 덮밥을 전부 먹어치우지 않았다. 아마도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니 입맛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하...”이소희는 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좋은 남자는 전부 다른 사람의 것인가 봐요. 저한테는 꼬셔볼 기회조차 없네요.”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소희 씨, 그래도 여자로 태어난 걸 어머니한테 고마워하세요. 만약 남자였으면 소희 씨는 아주 유명한 카사노바가 되었을 거예요.”말을 마치자마자 진정우가 다가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작업 바지였으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걷는 자세마저 좋아 마치 걸어 다니는 호르몬 같은 기분이었다.“역시 잘생겼어요!”이소희는 감탄했다.“언니, 진정우 씨 정말로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잘생긴 것 같아요. 저 품에 한 번만 안겨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나는 손을 들어 이소희의 머리를 톡톡 쳤다.“그런 상상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예요.”“언니, 도대체 어떤 여자가 저런 완벽한 남자의 애인인 걸까요? 저 정말 너무 궁금해요!”이소희는 진정우에게 푹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저야 모르죠. 직접 물어봐요.”나는 말하면서 진정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비록 진정우는 갑이었지만 조명을 담당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그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여하간에 진정우가 조명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골치 아파질 사람이 나였으니까.이소희는 허둥지둥 나를 따라왔다. 진정우와 한
고개를 돌리자 까만 그의 두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뭔가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아니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오해하는 게 싫어서 그래요.”“...아.”그는 한 글자로 답했다. 나는 그가 무슨 의미로 이런 대답을 했는지 모른다.굳이 묻지 않았다. 다들 성인이니 서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까.게다가 진정우는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나와 진정우 사이엔 어색함만 맴돌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내가 결국 또 먼저 입을 열었다.“조명 수리하는 데 얼마나 걸려요?”“그건 모르죠.”“...”나는 강유형이 내게 명령 내리듯 하던 말이 떠올라 말했다.“스무날 안에 전부 처리해 주세요.”진정우는 나를 보았다. 그가 말을 이을 줄 알았지만 짤막한 대답만 들려왔다.“네.”‘이렇게 쉽게 대답한다고?'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집주인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되었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만약 집주인 할머니가 없었더라면 나와 진정우의 사이는 지금보다 더 어색했을 것이다.곧이어 침묵만 이어졌다. 고작 몇 분이면 가는 길이 한 세기가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등 쪽에선 식은땀도 나기 시작했다.이 점에서 나도 내가 한심했다. 게다가 나도 의아했다. 전 약혼자 강유형의 앞에서는 스스럼없었지만 맞선 상대였던 진정우 앞에서는 너무도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나와 진정우의 침묵은 배전실까지 이어졌다. 전기 회로 담당자는 이미 배전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간단히 진정우를 소개했다. 담당자는 진정우를 데리고 놀이공원 전기 회로 설계도를 보여주었다.전부 확인한 후 나는 진정우에게 물었다.“문제가 있을까요?”“없네요.”그의 대답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 봐도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우가 왔다는 것은 조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다소 머리가
“언니, 방금은 일부러 넘어진 거죠?”나는 이소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줄이라곤 전혀 몰랐다. 지금도 허리가 아픈 걸 보면 넘어지면서 부딪힌 곳에 퍼렇게 멍든 것이 분명했다. 그 멍을 얼른 옷을 들어서 이소희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음란한 생각만 하던 이소희가 날 이토록 멍청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 줄이야.나는 눈을 뒤집어 깠다. 이소희를 말리지 않았다.“언니, 진정우 씨 품에 안긴 기분은 어떤 기분이에요? 팔 힘은 어때요? 아주 세죠? 품에 안기니까...”“이소희 씨!”나는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머릿속에 대체 뭐가 든 거예요? 이런 생각밖에 못 해요? 네?”이소희는 내가 화를 내자 바로 혀를 내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난 듣지 못했다.아픈 곳에 손을 올리며 먼저 배전실에서 나왔다.그제야 나는 진정우가 나를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덕에 내가 다치게 되지 않았던가.‘이 사람이 진짜...'보아하니 그와 나 사이에 필요한 것은 거리뿐만이 아니었다. 이성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진정우를 갑이라고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더구나 진정우는 나의 맞선 상대였을 뿐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이소희는 가져온 것을 진정우에게 건네준 뒤 바로 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언니, 진정우 씨가 저희더러 먼저 현장에 가보라고 하네요. 진정우 씨는 이따가 현장에 올 거라고 했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희와 현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신지태의 연락이었다.“어디야? 나 이렇게 버려두고 그냥 간 거야?”그의 말을 들은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뭐야? 아직도 안 갔던 거야?'‘놀이공원 이미 한 바퀴 다 구경하고 난 거 아니야?'“난 네가 간 줄 알았지.”난 솔직하게 말했다.“안 갔어. 넌 지금 어디야?”신지태가 물었다.나는 내가 있는 곳을 신지태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신지태는 나에게로 오겠다고 했다. 1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신지태가 왔다.“길 잃었던 거야?”나는
“윤 팀장님.”이때 갑자기 진정우가 나를 불렀다.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어느 샌가 다가온 진정우가 내 뒤에 우뚝 서 있었고 그 옆엔 이소희와 전기 회로 담당자도 있었다.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진정우의 눈빛이 다소 차가워진 듯 기분이었고 나도 모르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진 기사님,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문제 생긴 데는 이미 전기 회로 기사님이 해결하러 갔습니다.”그는 다소 차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간단히 대답한 뒤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볼 참이었지만 그가 먼저 말했다.“오늘은 조명 테스트를 하지 않을 거예요.”“네?”너무도 뜻밖이었다.전기 회로 담당자가 바로 말했다.“전압에 문제가 생겨서 그것부터 수리해야 하거든요.”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그걸 수리하는 데 며칠 걸리죠?”“오늘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나는 남몰래 안도했다. 아마도 정말로 짧으면 사흘, 길면 닷새가 걸릴 것 같았다.“다른 건, 우리가 해야 할 건 없어요?”나는 진정우를 보며 물었다.“없어요.”나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리게 되었다. 이소희가 나보다 빠르게 입을 열었다.“진 기사님의 뜻은 저희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럼 먼저 퇴근해도 돼요?”“네, 다른 일 하러 가셔도 돼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해 드릴게요.”진정우의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나는 그가 이것저것 문제를 발견하며 열심히 해결할 줄 알았지만 우리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했기 때문이다.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진정우와 전기 회로 담당자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이소희가 나를 향해 작게 말했다.“언니, 강 대표님이랑 헤어지고 나서 뭔가 언니한테 남자가 더 붙는 것 같네요.”“그게 무슨 말이에요?”나는 이소희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진 기사님의 품에도 안겨 보고 잘생긴 남자가 머리까지 쓰담기도 했잖아요. 정말 남자복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아요.”이소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뒤집어 까게
체크인을 마친 진정우가 다가오며 태연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가요.”‘응? 뭐지?'‘뭐야, 설명도 없이 내 맞은편에서 지내겠다고?'나는 원래 따져 묻고 싶었지만 막상 정말로 묻는다면 조금 이상할 것 같았다.“진 기사님, 왜 저희 방이랑 가까운 방을 선택하셨어요?”이소희의 브레이크 없는 입은 가끔 좋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나 대신 궁금한 것을 물어봐 주고 있었으니까.진정우는 엘리베이터 입구로 간 뒤 버튼을 꾹 눌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방 키가 눈에 들어왔다. 308호, 바로 맞은편 방이었다.“편하니까요.”진정우는 이 한마디만 했다.‘대체 뭐가 편하다는 거지?'나도 모르게 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이소희는 그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나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진정우를 보았다.“진 기사님은 뭐가 편해서 저희 앞방을 선택하셨을까요?”나는 정말이지 이소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일까?엘리베이터 벽은 거울처럼 사람의 모습을 비출 수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벽으로 진정우를 보았다. 진정우도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우리의 시선이 그렇게 마주쳤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휙 피하며 이소희의 말에 대답했다.“뭐든 편하니까요.”“...”“...”나와 이소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결국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던 이소희는 그저 내 옷자락만 잡아당겼다.마치 작은 여우가 노련한 사냥 감에게 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3층이었던지라 빠르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을 열었을 때 이소희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진정우와 인사를 나눴다.“진 기사님,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주세요.”“네.”진정우도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소희가 나에게 찰싹 붙으며 물었다.“언니, 진 기사님 대체 무슨 뜻일까요? 왜 우리 맞은편 방을 선택한 걸까요? 혹
“네.”대답하자마자 진정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지금의 그는 조명 기사일 뿐 아니라 갑이었던지라 밉보이면 안 되었다.그렇게 나는 잠옷 위에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입은 뒤 그의 방 문 앞으로 가 노크했다. 진정우는 문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내 머리칼로 향했고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아직도 아파요?”그가 나에게 물었다.그의 말에 나는 무엇을 말하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네?”진정우는 시선을 내리더니 내 허리를 보았다. 그제야 난 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아, 괜찮아요.”나는 문틈 사이로 그의 방을 힐끗 보았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아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이미 남은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역시나 진정우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진정우는 걸음을 옮기며 방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듬직한 몸으로 가렸다. 나도 시선을 거두고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낮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티셔츠를 허리에 두르고 있어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 보였다.꼭 당장이라도 런웨이에 올라갈 것 같은 그런 모델 같았다.이런 그의 모습을 보니 그에게 푹 빠진 이소희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이걸 가져가서 발라요. 멍 빼는데 아주 좋은 연고니까요.”진정우는 작은 물건을 내게 건넸다. 그것은 연고였다.나는 그 연고를 받았다.“고마워요.”“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봐요.”그는 또 입을 열었다.연고를 챙겨 준 것도 모자라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가 나한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러자 그가 말했다.“전 제가 일할 때 누가 건강 문제로 빠지면서 진도를 늦추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알고 보니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이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