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대답하자마자 진정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지금의 그는 조명 기사일 뿐 아니라 갑이었던지라 밉보이면 안 되었다.그렇게 나는 잠옷 위에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입은 뒤 그의 방 문 앞으로 가 노크했다. 진정우는 문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내 머리칼로 향했고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아직도 아파요?”그가 나에게 물었다.그의 말에 나는 무엇을 말하는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네?”진정우는 시선을 내리더니 내 허리를 보았다. 그제야 난 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아, 괜찮아요.”나는 문틈 사이로 그의 방을 힐끗 보았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아 내가 샤워하고 있을 때 이미 남은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역시나 진정우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진정우는 걸음을 옮기며 방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듬직한 몸으로 가렸다. 나도 시선을 거두고 그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낮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티셔츠를 허리에 두르고 있어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 보였다.꼭 당장이라도 런웨이에 올라갈 것 같은 그런 모델 같았다.이런 그의 모습을 보니 그에게 푹 빠진 이소희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이걸 가져가서 발라요. 멍 빼는데 아주 좋은 연고니까요.”진정우는 작은 물건을 내게 건넸다. 그것은 연고였다.나는 그 연고를 받았다.“고마워요.”“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봐요.”그는 또 입을 열었다.연고를 챙겨 준 것도 모자라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가 나한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러자 그가 말했다.“전 제가 일할 때 누가 건강 문제로 빠지면서 진도를 늦추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알고 보니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이었다.나
진정우가 나에게 친구 신청한 것에 딱히 뜻밖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지금 그와 같이 일하는 사이였기에 앞으로 연락할 일은 아주 많을 것이니 메신저 연락처를 추가하는 것이 더 편리할 수 있었다.다만 나는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일단 안리영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안리영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마 바쁜 것 같았다.나는 이번에 강진혁에게 문자를 보냈다.[요즘 놀이공원 프로젝트로 바빠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구경시켜 드려도 될까요?]그리고 이내 나는 한 줄 더 보탰다.[죄송해요.]강진혁의 답장은 아주 빨랐다.[괜찮아.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몸 챙기는 거 잊으면 안 돼.]나는 답장을 생각한 뒤 전송하려고 했지만 강진혁의 문자가 이어서 왔다.[기다릴게.]결국 나는 원래 작성했던 짤막한 대답을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당분간 안 돌아가시려고요?][응, 당분간은 안 돌아갈 거야.]그의 답장을 본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몇 초 뒤에야 나는 답장을 보냈다.[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아주 기뻐하시겠네요.]강진혁의 상태에 작성 중이라고 나타났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나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메일을 눌러 미처 읽지 못한 메일을 읽으며 처리했다.이건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받은 메일을 전부 제때 확인하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메일함에는 아무런 메일도 없었다.받은 메일함에 0건이라고 표시되었다. 그 숫자를 본 순간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이때 이소희가 다가와 핸드폰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언니, 이 드라마 봤어요? 제가 최근에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인데 여기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 두 번째로 같이 작품하고 있는 거거든요. 정말 재밌어요.”나는 힐끗 이소희가 내민 핸드폰을 보았다. 주인공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 게다가 연기도 아주 잘했고 장르는 판타지인 듯했다.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한 마리의 닭으로 변한 뒤 자신을 놀리고 있던 남자 주인공을 쪼아
진정우는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이내 답장을 보냈다.[?]진정우는 내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미 아침을 먹었던지라 먼저 놀이공원으로 갔다.하룻밤 사이에 놀이공원의 전기 회로는 전부 수리되었다. 진정우도 조명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나는 담당자와 마찬가지였기에 그가 테스트하면 나는 살펴보았고 문제가 있는 조명을 발견하면 다시 조절했다.게다가 나는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건강이 업무의 진도를 늦추는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랐다.그는 기계처럼 쉼 없이 일했고 나도 쉬지 못했다. 심지어 물도 편하게 마시지 못했다. 가끔 물을 많이 마시면 자꾸만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했기 때문이다.내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 그는 어쩌면 벌써 조명 수리를 끝냈을지도 몰랐다. 담당자인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야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다.연속 사흘 동안 이렇듯 일한 덕에 결국 입안에 염증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나와 똑같이 물도 편하게 마시지 못하며 일한 진정우는 멀쩡했다.여자와 남자의 체력엔 역시나 차이가 존재했다.“언니, 물이라도 마셔요. 그러다간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겠어요.”이소희는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기에 당연히 바로 내 상태를 바로 눈치채고 걱정스럽게 말했다.나는 웃으며 답했다.“제가 쭈글쭈글해진다고 해도 할머니가 아니라 그냥 수분 부족 미소녀가 되어 있을 거예요.”말을 마친 나는 얼른 고개를 젖히며 물을 마셨다. 마침 진정우와 시선이 마주친 나는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했다.“언니, 뭘 그렇게 허겁지겁 마셔요?”이소희가 얼른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사다리에서 내려온 진정우는 생수병을 들고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그는 아주 빠르게 마셨기에 목울대의 움직임도 빨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유난히 진정우의 목울대에 예민한 것 같았다.‘설마 나 목울대에 페티시가 있는 건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강유형이 보였다. 강유형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소희에게 말을 걸었다.“어디 가요?”“아, 지원 언니 구내염이라고 해서 약 사러 가는 길이었어요.”이소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강유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에게로 왔다.“요즘 물은 마시고 있어?”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는 바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쉽게 열이 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쌀밥보다 죽을 더 자주 먹었고 평소에 물도 많이 마셨다.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구내염이 나거나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나는 강유형과 10년을 함께 보냈었기에 그는 이런 나의 체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이런 걱정 어린 말들은 비꼬는 것처럼 들렸고 나도 모르게 신지태의 말이 떠올랐다.‘둘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너무 잘 알고 있는 나머지 강유형은 나에게 더는 흥미가 없었고 과부에게 관심을 보이었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나는 강유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어투로 되물었다.강유형은 쌀쌀맞은 나의 모습에 바로 표정을 굳혔다. 입을 열려던 순간 내 옆에 서 있는 진정우를 발견하곤 말했다.“내가 여길 왜 왔겠어. 당연히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지.”비록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던지라 진정우가 옆에 있는 이 상황에선 대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강유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다만 멀리 가지는 않고 강유형을 불렀다.“나 일해야 하니까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강유형은 걸음을 멈추더니 잔뜩 불쾌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지금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한테 복수하려고.”“뭐?”서두 없는 말에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윤지원, 넌 혼인신고 하기 싫다고 억지 부렸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나한테 복수하겠다고 다른 남자를 찾아도 참아줄게. 그런데 지인한테 손을 대면 안 되지. 그러면 나중에 우리 서로 얼굴 어떻게 보고 살라고?”강유형의 말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나는 2초간 멍 때리면
이제 보니 강유형에게 내 생각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강유형, 넌 사소한 잘못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니야. 난 참을 수 없는 잘못이었어. 내가 너랑 몇 년을 함께 보냈는데 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겠지. 난 내 눈에 모래알이 들어오는 걸 참을 수가 없어.”나는 말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와 거리를 둘 생각이었다.“내가 한 사랑이 열정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내 남자가 다른 여자랑 애매모호한 사이가 되는 건 아주 싫거든. 조금이라도 애매모호해서도 안 돼. 난 완벽한 내 남자를 원하거든.”이 말을 내뱉으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강유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진정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내가 했던 말을 아마 전부 들었을 것이다.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그저 짧게 나를 빤히 볼 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유형을 보았다. 여전히 내가 억지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윤지원, 이 사회가, 이 세상이 변했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 거지? 그딴 헛된 환상 속에서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확실히 이 세상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아주 많았다. 예전처럼 느긋한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랑도 거의 없었다.나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완전한 내 남자가 될 수 없다고 나도 안 가질래. 뭐하러 쓸데없는 노력을 해.”강유형은 나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빤히 보았다.“강유형, 오늘 이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으면 좋겠어. 우린 이미 헤어졌으니까 각자 갈 길 가자고. 쓸데없는 미련도 품지 말고 깔끔히 헤어지자.”“하.”강유형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래, 서로 갈 길 가자. 나야말로 윤지원 네가 나 말고 어떤 남자를 찾는지 지켜보겠어.”말을 마친 그는 씩씩대며 자리를 떠났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유치하게 느껴졌고 토라진 어린아이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헤어지고 나서도 나
약의 효과는 아주 좋았다.바르고 나니 입안의 타들어 가는 통증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점심을 먹으면서 물을 마셔도 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다만 여전히 음식을 먹을 땐 조심스러웠다. 여하간에 반찬에 소금과 다른 조미료가 들어 있었기에 상처에 자극이 되어 분명 아플 것이었다.“언니, 우린 죽을 먹어요. 반찬은 간이 적은 야채 볶음을 먹어요.”이소희는 나를 엄청 챙겨주었다.나는 이소희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괜찮아요. 저만 죽 먹을게요. 음식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이소희는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진정우가 다가왔다.“점심 같이 얻어먹어도 돼요?”덩치가 큰 남자가 먼저 다가와 점심을 얻어먹겠다고 하니 정말로 이상했다.다만 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가 나의 입안에 약을 발라준 일이 떠올랐다. 그를 볼 때마다 민망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정우에게 푹 빠진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진 기사님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전...”진정우는 나를 힐끗 보았다.“윤 팀장님이랑 같은 거로 주세요. 죽이면 돼요.”이소희는 눈을 크게 떴다.“죽만 드시려고요? 다른 음식은 안 드세요?”“담백한 거로 주문해주시면 돼요. 간이 심심한 거로요.”진정우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저도 이틀 동안 물을 자주 마시지 않았거든요.”“진 기사님도 구내염인 거예요?”이소희는 감탄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괜히 나만 멀쩡한 것 같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농땡이 피우고 있었나?”결국 세 사람은 돼지고기 야채죽과 소고기 오이볶음, 그리고 잡채를 주문했다.“진 기사님, 혹시 부족하진 않으세요? 양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네요.”주문을 하고 난 이소희가 진정우에게 물었다.“충분합니다.”진정우는 말수가 적었다.며칠간 일하면서도 그는 대부분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언니, 우리 다른 요리 두 가지 더 주문해요. 진 기사님 몸은 아무리 봐도 이렇게 적게 먹는 사람 같아
나는 이소희가 포기하길 바라며 말했다.“아니요. 전 돈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돈이 없으면 아무리 신이 조각한 얼굴이라고 해도 저한테 무용지물이에요.”말을 마치자마자 마침 진정우가 다가왔다.어쩌면 내가 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나는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 이어질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차라리 그가 듣고 미리 단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나 나에게 스킨십을 하는데 내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오늘은 약을 발라주었을 뿐 아니라 사소한 행동까지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언니, 너무 밝히는 거 아니에요?”이소희가 투덜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우를 보지도 않았다.이소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고 비서님이에요.”‘고준석 비서님?!'“...네, 있어요. 놀이공원 A 구역에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고 비서님? ...아, 네. 그럼 기다릴게요.”이소희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를 보았다.“고 비서님이 언니를 찾으세요.”‘고 비서님이 날 찾는다고?'‘왜? 설마 또 강유형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오전에 강유형에게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설마 이젠 고준석을 시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준석이 왔다. 그의 손에는 도시락통이 있었다.“윤 팀장님, 이건 사모님이 전해주시라고 한 녹두차입니다. 속열을 내릴 수 있습니다.”‘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거라고?!'아주머니는 최근 나와 연락한 적 없었기에 속열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이것은 강유형이 만들어낸 핑계였다.만약 강유형이 가져다준 것이라면 고준석에게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아주머니가 만든 것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네, 고마워요!”나는 도시락통을 받았다.그러나 고준석은 가지 않았다. 꼭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봉화타운으
손을 안 씻은 사람은 나와 강진혁이었다.나는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강진혁은 머쓱한 듯했다.“뭐 어차피 내 배 속으로 들어가는 데 문제없으면 그만이죠.”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다가오는 진정우 손에는 물티슈가 있었다.강진혁은 받으려 했지만 진정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받으면서 한 장을 꺼내 강진혁에게 건네곤 나도 손을 닦았다.“지원아, 이분은 누구야?”강진혁은 불쾌한 티를 팍팍 내는 진정우가 누군지 아주 궁금했다.“이분은 진정우 씨, 조명 기사님이세요.”나는 강진혁에게 소개했다.나를 보는 진정우의 눈빛에선 압박감이 느껴졌고 결국 진정우에게도 강진혁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다.“이분은 제... 오빠 강진혁이에요.”“안녕하세요.”강진혁은 진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진정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소희가 바로 입을 열었다.“진 기사님은 결벽증이 있어요.”강진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얼른 앉아서 먹어. 식으면 맛없으니까.”이소희는 입맛을 다셨다.“저도 하나 먹어도 돼요?”“물론이죠.”강진혁은 이내 진정우에게도 말했다.“진 기사님도 먹어봐요.”“아니요. 전 죽을 먹을 거예요.”진정우는 차갑게 거절한 뒤 자리를 떴다.이소희는 만두를 먹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나를 보았다.“언니, 진 기사님 혹시 생리하는 건 아니겠죠?”나는 그런 이소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정말 그런가 보네요.”강진혁은 나와 이소희의 대화에 웃음을 터뜨렸다.“진 기사님 성격이 좀 까칠하네요.”“아니에요. 사실 성격이 나쁘진 않아요. 조금 쌀쌀맞긴 하지만 이 정도로 까칠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이소희의 입은 음식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이때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다만 녹두차와 만두를 먹은 나는 더는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이소희와 진정우가 전부 먹어치웠다.이소희는 당연히 진정우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진정우는 먼저 이소희에게 먹으라
“여긴 공항이야,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도 있는데.” 진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고 있어.”“그런데도...” 내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러자 진정우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하고 싶어.”그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강유형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질투하는 거겠지.진정우는 강유형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런 걸까?그 생각이 들자 나는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심장은 요동치며 공항 대기실에서 진정우의 입맞춤을 기대했다.하지만 그의 입술이 다가오는 대신 내 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눈을 뜨고 보니 내 손에 작은 가방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이게 뭐야?”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진정우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내가 열어보라고 손짓했다.내가 의아한 마음으로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두 장의 카드와 하나의 증명서가 들어 있었다.그 카드와 증명서는 그가 전해주고 싶었던 것들이었다.“이게 무슨 의미야?” 나는 다시 물었다.진정우는 녹색의 책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건 내가 군 복무를 마친 증명서야. 그리고 이건 내 열정이 담긴 헌혈 증서야. 이 카드들은 내 전 재산이야.”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전 재산을 보여주는 장면이 떠올랐다.진정우는 내게 재산을 넘기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신념까지도 함께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특히 빨간 헌혈 증서를 보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이걸 왜 준비한 거야?” 나는 조금 울컥하며 물었다.“너에게 주는 믿음이야. 이게 사랑 보험보다 더 실용적이야.”진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강유형과 사랑 보험에 가입했던 사실을 안 것 같았다.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내게 주는 것이 모든 것 같았다.“이 두 개는 내가 가질게. 하지만 카드는 네가 갖고 있어.”나는 그가 준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고 돈에 욕심이 없다. 만약 돈에 눈이 먼 여자라면 나는 강유형과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진정우는 카드를 받지 않고 조금 난처한 듯 말했
“네, 누구세요?”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무심코 강유형을 쳐다보았다.그는 나를 보지 않고 혼자서 멀리 있는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저는 하트시그널 보험사의 A8338번 직원입니다. 4년 전, 윤지원 씨와 강유형 씨가 저희 회사 사랑 보험에 가입하셨고 이제 보험 만기일이 다가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이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본능적으로 진정우를 보았다.그는 내 옆에서 자리를 피하고 내가 전화를 받을 때는 멀리 떨어져 앉았다.그는 내게 충분한 개인 공간을 주고 있었다.진정우는 정말 세심하다. 나에게 필요한 안전감도, 여유도 모두 제공해 주고 있었다.“실례지만 두 분 지금 연애 중인가요, 아니면 결혼하셨나요?” 상대방이 조심스레 물었다.그 말에 나는 다시 강유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표정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지원 씨?” 상대방이 내 대답을 기다리며 다시 물었다.나는 침을 삼키는 동작을 하며 대답했다. “네, 듣고 있어요. 저희... “‘이미 헤어졌어요’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강유형이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피할 틈도 없이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우리는 그렇게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원 씨?” 상대방이 또 나를 부르며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어봤다. “왜 남자 쪽은 묻지 않나요?”“묻긴 했습니다. 다른 동료가 강유형 씨와 연락 중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니 강유형 역시 이 전화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엔 정말 재밌는 일이 많다.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우리는 헤어졌어요.”“확실한가요?” 상대방의 말투가 불쾌하게 들렸다.나는 강유형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진정우를 쳐다보며 손에 낀 반지를 살펴보았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상대방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원 씨. 만약 강유형 씨도 같은 답을 하셨다면, 이 사랑 보험 계약은 보험 규정에 따라
내가 그런 말을 했지만 이건 사적인 일이 아닌가?진정우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 알아차린 듯 바로 설명해 줬다. “내가 그 사람한테 말한 거야.”“아, 그렇구나.” 나는 대답하고 계속 죽을 먹었다. 그런데 두어 숟갈 먹고 나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너 허 대표님하고 그렇게 친해? 내가 대신 휴가를 부탁했더니 대표님이 그냥 허락하고, 오히려 공손하게 나한테 말까지 했잖아?”진정우는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그렇게 친한 건 아니야.”“친하지 않다고? 내가 보기엔 마치 네가 그 사람의... 대표님 같아.”진정우가 한마디만 하면 허진호는 절대 거절할 리가 없어 보였다.“비슷한 거지.” 진정우가 의외로 그렇게 대답했다. “허 대표님이 나한테 새 제품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돈을 벌어줘야 하니까내가 말하면 거절할 수 없어.”대단하네!나는 마음속으로 존경을 표하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역시 자신감 넘치게 말한다. 이게 바로 진짜 실력이지.“우리 늦지 않았어?” 나는 밥을 다 먹고 물어봤다.“괜찮아. 늦으면 그냥 항공편 변경하면 돼.” 진정우는 정말 나를 방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이해가 안 돼서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하지 않아? 나 좀 재촉해줘도 될 텐데.”“네 마음대로 하게 하고 싶어.” 진정우가 또 닭살이 돋는 멘트를 하자 나는 당황해서 얼른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만을 털어놨다. “어제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내가 준비했을 텐데.”“어제... 내가 말할 기회가 없었잖아.” 진정우의 말에 나도 순간 뜨끔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진정우는 살짝 웃으며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며 평온하게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 부족한 것 있으면 가서 사면 돼.”“일찍 말했으면 내가 준비 안 했을 텐데.” 내가 그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진정우는 화내지 않고 또 한마디 했다. “근데 나는 네가 물건 정리하는 모습 보는 게 좋아.”“
“왜 안 받아?” 내가 무심코 물었다.“받을 거야.” 진정우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는 자지 말고 일어나서 씻고 아침 먹어.”나는 깜짝 놀랐다.“아침 벌써 준비했어?”나는 그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정우는 이미 아침을 다 준비하고 내가 일어나지 않자 다시 침대에 돌아와서 나와 함께 공부한 거였다. 역시 뛰어난 사람은 항상 뒤에서 묵묵히 노력하는구나.“응, 내가 계란 죽을 끓였어. 일어나서 좀 먹어.” 진정우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사랑받는 느낌은 정말 좋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진다.진정우는 전화를 받으러 나갔고 나는 손을 이불에서 빼내며 내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서 한정판이라고 묘사했다.그리고 다시 SNS를 놀다가 잠시 후에야 일어났다. 그런데 진정우의 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가서야 나는 안리영이 준 약이 반 통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전에 약을 4분의 1만 썼던 것 같은데 그럼 진정우가 사용한 건가? 언제였지?혹시 내가 자고 있을 때?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왜 아직도 안 씻었어?” 진정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어색하지 않게 하려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게 제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말이 나와버렸다. “너 기다리느라 그래.”진정우가 잠깐 멈칫하다가,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분명, 내 말이 그에게 어떤 자극을 준 거였다. 나는 더 이상 아침에 뭔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서둘러 씻고 그에게 말했다. “빨리 죽 끓여 놓고 나오는 대로 밥 차려줘.”“안 늦었어.”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안 늦었다고 해?” 내가 그를 비꼬며 말했다.“10시 비행기야, 시간 충분해.” 진정우의 말에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나는 원래 거울 속에서 그를 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
“알았어.” 진정우는 여전히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이제야 네가 왜 서른이 넘도록 연애를 안 했는지 알겠어. 네가 너무 재미없잖아.”“너도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해?”그는 가볍게 내게 물었다. 연애라는 부분에서 그는 약간 둔한 면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내 말은 네가 여자 마음을 잘 달래주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야.”그는 몇 초 동안 조용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내 생각엔 달래는 건 속인다는 뜻이야.”그의 참신한 대답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럼 내가 널 달래줘야겠어?”진정우가 다시 물었다. 어떤 여자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다정함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정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나는 과거 강유형이 나를 대했던 방식을 떠올리며 말했다.“아니, 지금처럼 해. 난 너의 방식이 좋아. 너는 정말 특별하니까.”그의 품에 더 깊숙이 기대며 덧붙였다.“내가 프러포즈하면 받아줄 거야?”진정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했다.“안 하면서 뭘 물어?”그 순간, 진정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불 안에서 내 손을 꺼내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만지며 말했다.“윤지원, 나와 결혼해 줄래?”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네 프러포즈이야?”“아니, 완전한 건 아니지만 맞기도 해.”그의 애매한 대답에 나는 그를 살짝 때리고 싶었다. 솔직히 내가 처음으로 프러포즈를 받을 거라고 상상했던 장면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한때 나는 내 인생 첫 프러포즈는 강유형이 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진정우였다.그 말을 들으니 얼마 전 강유형이 나를 위해 준비한 놀이공원 프러포즈 이벤트가 떠올랐다.나는 가지 않았지만 이후 몇몇 네티즌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렸다. 그들은 그걸 단순히 오픈 이벤트의 리허설로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온몸이 이불에 휩싸인 채 침대로 돌아오고 나서야 내가 괜히 이상한 상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 번 더 군인 출신인 진정우의 자제력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했다.그는 단순히 나를 씻겨준 것뿐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깨끗하게 씻겨준 것.이미 그의 능력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승부욕이 발동해 장난스럽게 말했다.“진정우, 너 혹시... 안 되는 거 아니야?”이 말은 남자에게 치명적인 모욕이다. 어지간한 남자는 이런 말을 듣고 참을 수 없겠지만 진정우는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얌전히 있어. 그리고 더 이상 애쓰지 마. 아무 소용 없으니까.”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살짝 상처받았는데...”나는 일부러 힘없이 실망한 척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그러자 그가 이불을 살짝 당겨 내 얼굴을 드러내며 내 볼을 살짝 문지르며 말했다.“내가 안 되는 게 아니고 네가 날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내가 널 다치게 할까 봐 조금 더 기다리는 거야.”그의 말에 내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럼 내가 너랑 가까워지기만 하면 다칠 것 같으면 너 평생 나한테 손도 안 댈 거야?”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응, 참아야겠지.”“...”나는 다시 이불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이불째 나를 품에 안았다.“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그의 말에 내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그는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조금만 쉬어. 나 샤워하고 올게.”분명 찬물 샤워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찬물 샤워하러 간다.”“...”정말 원칙 하나는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나를 상처 주지 않으려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가 돌아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불렀다.“진정우.”“응?”“너, 진짜 최고야.”그리고는 창피해서 혀를 쏙 내밀고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러자 그가
진정우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는 내가 모든 원칙을 포기해도 괜찮은 사람이니까.”그는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하게 말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자체로 깊은 사랑을 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지 않아도, 문장 하나하나가 사랑이었다. 나는 코끝이 찡해졌고 전을 먹으며 입안 가득 찬 상태로 웅얼거렸다.“진정우, 이리 와봐.”“왜?”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오라면 오라니까.”나는 괜히 고집을 부렸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잠시 놀란 듯 멈췄고 내가 말했다.“네 어깨에 기대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진정우가 나를 침대에 눕히며 물었다.“오늘 여기서 잘까, 아니면 네 방에서 잘까?”“여기서 잘래!”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문득, 밤마다 푸쉬업을 하고 찬물 샤워를 하던 그가 떠올랐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근데 오늘 밤에는 푸쉬업 금지야.”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일부러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얘긴 다시 꺼내지 마.”나는 그의 품에 안기며 그의 허리를 살짝 감쌌다.“안 하면 안 꺼낼게.”진정우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였다.“장난치지 마.”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못 참겠어?”나는 한층 대담하게 물었다. 진정우는 내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장난은 이제 그만. 그리고 나를 더 자극하지 마.”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이듯 낮아진 목소리였다.“너도 원하고 있잖아.”나는 점점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지원아...”그는 나의 손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의 티셔츠 끝자락을 잡아 올리며 안으로 파고들었다.“지원아.”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귀에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난 이제 다 나았어.
이 상황, 얼마나 민망했을지 상상이 간다. 물론 진정우는 예외였다.“잠시만요.”진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소파에 앉혔다. 그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천천히 물티슈를 꺼내 내 손을 닦아주었다.“천천히 먹어. 죽이 좀 뜨거우니까 급하게 먹지 말고.”문가에 서 있는 강진혁은 들어오기도, 물러서기도 난감해 보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가 나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내가 알아서 먹을게.”내 말은 진정우에게 얼른 강진혁을 챙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정우는 자리를 뜨기 전에 모든 음식 포장을 풀고 식기를 내 앞에 정갈히 놓아주었다.문가에 서 있던 강진혁은 그야말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애정 행위를 강제로 목격한 셈이었다.아마 나를 짝사랑하는 그의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강 실장님, 무슨 일이 신가요?”진정우는 문가로 걸어가며 강진혁에게 물었다.강진혁은 병실 밖으로 나갔고 그가 진정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진정우는 약 3분 후에 돌아왔는데 그의 평온한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가 표정을 드러내지 않자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래서 나는 죽을 먹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별일 아니야.”그의 대답은 꽤 건조했다. 아마도 그 자신도 느꼈는지 덧붙였다.“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더군.”“스카우트? 어디로? KS그룹?”강진혁은 아직 총괄 감독에 불과하다. 스카우트 같은 건 인사 부서나 그룹 회장이 해야 할 일 아닌가?혹시 이미 강유형의 자리를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만약 그렇다면, 아까 그가 내게 한 말은 다 무슨 뜻이었을까?내게 심리적 준비를 시키려는 걸까, 아니면 나를 떠보려는 걸까?“어디로 간다는 얘기는 없었고 그저 내 생각을 물어봤어.”진정우는 덤덤하게 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나는 죽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뭐라고 대답했는데?”“고려하지 않는다고 했어.”그의 대답은 직설적이고 단호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너무 솔직하고 귀여워서.”칭찬을 듣자
“오빠, 강유형은 성인이에요. 본인이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죠.”나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강유형을 회사에서 내보내든, 관계를 끊든, 그건 전부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나도 알아. 하지만 아버지랑 그렇게 싸우는 걸 보니 속이 타더라. 그리고 그가 회사에서 나가면 회사에도 영향이 클 거야.”강진혁은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오빠가 있잖아요?”그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지원아, 난 한 번도 회사를 관리할 생각을 해본 적 없어. 그러지 않을 거였으면 애초에 회사를 떠나지도 않았겠지.”그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나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다만 내 생각을 덧붙였다.“회사의 일은 삼촌께서 알아서 계획하고 계실 거예요. 강유형이 떠난다고 해서 회사가 멈추는 건 아니죠.”나는 이성적으로 말하며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했다.“세상은 누구 없어도 돌아가게 돼 있어요.”강진혁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야.”“오빠, 아마 너무 걱정되니까 그런 거겠죠.”나는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말을 덧붙였다.강진혁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원아, 네가 4년 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4년 전?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4년이라는 시간은 아이도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다.“그걸 성장이라고 하죠.”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강진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맞아. 네가 정말 많이 컸다, 우리 꼬마 지원이.”그의 말에 가슴 한쪽이 찡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강가에 들어왔을 때, 강유형과 강진혁은 종종 나를 이렇게 부르며 장난스럽게, 때로는 애정을 담아 나를 놀리곤 했다.그런데 그 말을 들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오빠, 이런 문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세요. 너무 관여하면 오히려 안 좋아요.”그의 ‘꼬마 지원이'라는 말에 잠시 감정이 흔들렸지만 나는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강진혁은 고